‘약자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는 인문학

2010-02-04     이명원

대학의 ‘강단인문학’은 위기에 빠진 반면, 삶의 다채로운 장소에서 전개되는 이른바 ‘실천인문학’은 가히 대단한 열풍으로 실험이 거듭되고 있다. 인문학이 학습되고 향유되는 장소의 맥락에 따라 위기와 열광 사이를 왕복운동하는 이 아이러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일견 분열증적 삶의 정황을 치밀하게 검토하는 이해의 통로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나 자신이 인문학의 현장에서 겪은 미묘한 생각과 느낌을 피력해보도록 하겠다.

경험의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담론 수준에서 볼 때도 오늘의 강단인문학이 큰 위기에 빠져 있다는 진단에 동의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국 계급 재생산의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대학 입시에서 문학·역사·철학을 비롯한 전통 인문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지원율을 보여준 것도 오래된 일이다. 반면 법학·경영학·의학으로 상징되는 세칭 인기 학과들은 날이 갈수록 수험생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글이 된 강단, 위기에 몰린 인문학

한국인의 일반적 학문에 대한 감각에서 보자면, 인문학은 그 현실적 유용성을 생산할 수 없다는 근본적 조건에 대해 일종의 멸시적 배제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90년대 중반을 경과하면서 대학을 중심으로 한 강단인문학의 위기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 인문학 관련 교양필수 과목의 전면적 축소는 물론이고, 학과 통폐합과 문화 콘텐츠나 역사 콘텐츠 같은 실용적 색채를 띤 학과로의 강제된 변화 역시 현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항간에서는 이를 강단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강단인문학자의 위기일 뿐이라고 말하는 시각이 있는데, 이러한 판단은 사실처럼 보이기도 하고 과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강단인문학의 위기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1990년대 중반을 경과하면서, 상대적으로 삶의 기예(技藝)로서 인문학적 전통 존중이 강렬하던 대학의 인문학자들조차 지식 생산의 목표와 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과열된 학술연구주의에 매몰되어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된 것이지만, 1960년대 이후 고등교육 부문에서 한국 교육 개혁의 변함없는 목표는 국가 발전 전략과 연계되어 있었다. 고등교육은 국가 발전에 필요한 고급 인재의 양성과 연구개발, 민주사회에서 요구되는 지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그 초점이 있었다. 교육투자론, 인간자원론, 교육계획론이 한국에서 최초로 기획된 것은 박정희의 제3공화국이 출범한 직후인 1963년부터였다. 이것이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인적자원론과 지식경제론, 문화산업론이라는 진화된 교육목표의 전사(前史)였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대학을 중심으로 한 강단인문학은 출발 자체가 위기를 배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인문학이 직접적 재화의 산출과 연계될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한 국가적 고려나 인문학자 자신의 동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인문학은 국가 발전 전략에 별다른 쓸모가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반면, 고등교육 이수자의 사회적 리더십의 형성과 얼마간 관련이 있겠지만, 이조차도 다소 느슨한 범주의 교양(bildung)의 가치 형성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교양인이야말로 대학의 끈질긴 이상이었고, 독일에서 명명된 ‘상아탑’이라는 대학의 별칭은 사회 현실과 상대적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서재에서 진행되는 인문학의 고립과 분과학문적 심화라는 모순적 상황을 의미하는 조어였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전 사회의 무한경쟁의 시장화 흐름과 맞물려 강단인문학 역시 구조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심원한 인간 이해에 주목하는 인문학의 본질을 고려해보건대 경쟁체제와 시장화는 과연 가능한 목표인가. 그것의 명백한 가능성은 알 수 없지만 실현해야 한다는 강요된 목표가 인문학에 압력을 가한 것은 사실이었다.

인문학 영역에서조차 경쟁을 강조하는 시각은 연구업적주의에 대한 맹신을 낳았다. 학술진흥재단을 중심으로 한 일원화된 등재학술지 평가를 통해, 국가는 인문학자의 국제 경쟁력의 근거를 논문 생산의 양적 축적이라는 목표에 종속시켰다. 당근과 채찍 전략은 거액의 연구비를 인문학 분야에 투입하되, 그것을 교원의 신분 보장과 연계하는 데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발표하거나 죽거나’의 구호가 이 시기부터 한국 인문학자에게도 큰 압력으로 작용해, 강의실에서 학생과의 전인적 만남이라는 교육적 포부는 연구실에서의 경쟁적 업적 축적이라는 형태로 변화했다.

위기, 인문학 폐쇄회로의 손잡이

동시에 인문학 자체의 실용적 상품화에 대한 요구에도 부응해야 했다. 문화산업론이라는 국가의 요구에 조응해 대학과 인문학자는 인문학 역시 재화를 산출하는 콘텐츠 산업이 될 수 있으며, 현대 지식경제의 핵심에 있는 창의성과 상상력의 토대가 인문학에 있음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학문의 실용적 경쟁력을 강조하는 이러한 시각은 콘텐츠 생산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문학·역사·철학을 학제 간으로 연결하거나 변용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문학·역사·철학이 콘텐츠 부문과 결합해 문학콘텐츠·역사콘텐츠·문화콘텐츠학과로 전환되었고, 여러 대학에서 학문 연구에 집중하던 인문학과들이 퇴출되거나 통폐합되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통찰력이라는 교육적 목표는 이 과정에서 실종되었다.

인문학과 관련한 교양 교육 역시 그 실용성을 강조하면서 인문학의 전통적 커리큘럼이 대폭 축소된 반면, 쓰기·말하기·토론하기와 같은 실용적 리더십의 기초와 관련된 강의가 대폭 증가했다. 사실 읽고 쓰고 말하기와 같은 문해(literacy) 교육은 고등교육의 목표라기보다는 기초이며,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와 관련된 기능의 문제라기보다는 ‘무엇을’이라는 목표다. 근대인문학은 세속적 인문주의를 목표로 하면서 자유인으로서 인간의 자기 이해와 비판적 사회 이해를 중시했다. 이 때문에 근대인문학은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와 시장, 종교의 억압과 금기에 대항해 인간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사회의 외부에서 강력하게 불어오는 물질주의에 대항해 문화와 교양의 비가시적 가치를 옹호하는 데 힘썼다. 그래서 인문학의 가장 강력한 수원지는 언제나 인간의 삶이었고,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무상성에 대항하는 내면적 힘과 자치 능력을 기르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인문학은 ‘삶의 전체적 의미’에 대한 물음은 종교에 빼앗겼고, 시장과 국가에 대한 물음을 폐기한 채 실용적 상품화와 연구자의 학술주의로의 매몰이라는 어두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강단인문학의 위기는 여러 반응을 낳았다. 오늘날 대학 외부에서 전개되는 인문학자의 다채로운 지적 모색과 실험은 강단의 시장화에 맞선 인문학자 자신의 반란 성격을 띠고 있다. 강단인문학이 협소한 세부 전공주의와 물신화된 논문 생산의 폐쇄회로에 빠져드는 일이 가속화되자,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그야말로 소수의 인문학자들은 본연의 인문학적 고뇌를 삶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려 했다. 1990년대 후반을 관통하면서 형성된 ‘수유+너머’, ‘철학아카데미’, ‘다중지성의 정원’, ‘지행네트워크’, ‘독서대학 르네21’을 포함한 대안적 인문학 공동체는 인문학의 장소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이며, 인문학이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으려는 자유인 또는 시민적 지식인이 되려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과 더불어 2000년대 중반을 경과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통한 자기 이해와 자치 능력을 강조하는 교육적 실험이 전개되었다.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성프랜시스대학의 ‘희망의 인문학’이나 구치소와 교도소의 재소자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평화인문학’, 빈곤 계층이나 탈북 청소년, 성매매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를 중심으로 인문학 교육을 전개하는 ‘실천인문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안적 인문학이 일종의 사회적 열광으로 확대되는 한 계기를 이룬 것은 미국에서 인문학 교육을 통한 사회운동을 전개했던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 번역되고, 이러한 교육철학에 입각하여 대한성공회를 중심으로 성프랜시스대학이 설립된 데 기인한다. 얼 쇼리스는 앞의 책에서 사회적 소외 계층은 단지 물질적 빈곤뿐만 아니라 무력(force)에 의해 포위되어 있으며, 이러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한 근거를 인문학에서 찾고 있다. 얼 쇼리스가 위에서 ‘무력’으로 명명하는 것은 소외 계층의 시민적 주체화를 불가능케 만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빈곤과 이에 따른 박탈감이다. 그는 인문학을 통한 자부심과 자존심의 회복을 통해서 무력에 대항하는 ‘힘’(power)을 기를 수 있고, 이 때문에 인문학이야말로 약자의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얼 쇼리스가 강조하는 인문학에 대한 기대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논리적 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인문학을 통한 자기와 사회,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토대로 한 인식 변화가 즉각적으로 소외 계층의 시민적 주체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력에 대항하기 위한 힘의 확대를 위해서는 소외 계층의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개입이 필요하고, 이것은 다시 물질적 한계 상황 너머의 폭넓은 개입을 요구한다. 그러나 인식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의 괴리란 소외 계층뿐만 아니라 시민적 현실 일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인문학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달콤한 위안이 아니라 그야말로 위험한 지적 고투가 되려면 인문학 강의가 진행되는 장소를 넘어선 현실 전반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동반되어야 한다.

‘모두의 인문학’ 위한 강단 밖 실험

오늘날 대학 바깥에서 다채롭게 전개되는 인문학적 실천의 가장 핵심적인 배경과 질문에는 역사 속에서 인문학은 항상 사회적 엘리트의 전유물이었으며, 소외 계층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 범주를 넓히면 풀뿌리 민중은 물질적 빈곤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빈곤에도 노출되어 있던 상황의 명백한 계급·계층적 격차의 부당성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물론 인문학의 현장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거나 강의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동일하게 견지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소외 계층이 포위된 ‘무력’의 형태 역시 천차만별이어서 인문학 교육의 편차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자발적인 인문학자의 참여에서 시작된 교육 모델이 서울시의 ‘희망의 인문학’ 과정이나 학술진흥재단의 시민인문학 지원과 같은 제도화에 수렴되고,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인문학 과정과 같은 형태로 확대됨으로써, 체제 내화되거나 유한 계층의 과시적 문화 소비의 일환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대다수 청년이 진학하고 있는 대학 과정에서의 인문학의 위기 상황은 방치한 채, 대학 외부에서 인문학적 실험에만 열광하는 것의 위험성도 자주 지적된다.

그럼에도 인문학은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구호는 아름답다. 나는 인문학을 통한 해방의 가능성은 인간과 사회의 평등주의적 가치를 구호가 아닌 내면적 각성을 통해 촉진하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자는 한 사회의 정치·경제학적 압력에 대항하는 것과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의 위대한 내면적 힘을 신뢰해야 한다. 위기에 빠진 강단인문학이나 이제 막 실험을 벌이고 있는 실천인문학 모두가 혼란 속에서도 투쟁과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글•이명원
문학박사. 전 서울디지털대 교수, 현 지행네트워크 연구위원. ‘사제 카르텔 논쟁’과 ‘표절 시비’ 등 문단의 지배질서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지속해왔다. 저서로 <타는 혀>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시장권력과 인문정신> <말과 사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