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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랑스 우파 대통령들은 자유주의자?

2010-02-04     세르주 알리미

30년 동안 정치인 4명의 경쟁이 프랑스 우파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들은 모두 합해 대선에 8차례 출마해 3차례의 승리(1974년·1995년·2002년)를 거뒀다. 이들은 모두 프랑수아 미테랑과 한판 승부를 벌였고, 이 중 2명은 미테랑 대통령의 총리(자크 시라크와 에두아르 발라뒤르)까지 되었다. 레몽 바르가 2년여 전에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나머지 3명은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에도 정치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우선, 발라뒤르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제도 개혁에 대해 조언을 해주었고, 나머지 2명(시라크와 지스카르 데스탱)은 전직 대통령의 자격으로 프랑스 헌법위원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3명 모두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같은 정치 성향인 ‘우파’이면서도 경쟁관계인 서로 견제한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로 동일한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는 걸까? 경제와 사회보장 부문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이견이 없는 편이다. 시라크와 바르는 데스탱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으며, 발라뒤르는 시라크 정부에서 금융장관을 지냈다. 시라크와 발라뒤르가 각각 집필한 저서(1)를 읽어보면 서로 얼마나 생각이 다른지 알 수 있다.
우선, 시라크의 저서에서 느껴지는 시라크는 대중적 인기를 의식한 이미지다. 시라크는 희망과 신뢰를 주고 튼튼하고 균형 잡힌 경제, 책임감과 솔선수범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듯하다. 특히 시라크는 프랑스 손으로 좀 더 공평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물론 시라크는 남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중국의 역할을 고려하는 듯하다. 시라크는 엘뤼아르·아라공·르네 샤르의 시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인들의 문체와 비슷한 글솜씨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간혹 시라크의 저서는 그리 솔직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라크는 상당히 현실적인 정치가다. 1967년에 시라크를 알게 된 헨리 퀴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급진적이 될 수 있는 젊은이군!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야.” 하지만 시라크는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형적인 우파 같은 인물이 아니군. 보수적인 인사도 아니고.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으려는 정치인이야.’ 1986년에 프랑스 총리를 지낸 시라크는 강력한 민영화 부처를 세웠는데, 이런 말을 했다. “국가의 권한을 축소하는 자유주의 방식은 전반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중략)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유일한 모델은 언제나 같습니다. 바로 국가가 제 할 일을 하고 시민이 책임감을 갖는 인간적인 경제 모델이죠.”

후대 사람들은 발라뒤르를 그렇게 강한 이미지로 기억하지 않는다. 우선 발라뒤르는 1995년 제1차 선거에서 대선에 실패했고 큰 인기도 있지 않아서다. 혁신적인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어떤가? 시라크는 원치 않았지만 데스탱은 호의적이었던 듯하다. 발라뒤르는 대단히 비판적이었다.(2) 발라뒤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 주변을 바라보니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사회정의를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방패막이에 불과하더군요.” 또한 발라뒤르는 국민전선, 전쟁 경제, 국가 레지스탕스 위원회, 좌파 지식층의 지배처럼 50년을 지배해온 현상이 낳은 폐해를 비난했다.

결론적으로 시라크는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인간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보여주고 싶어하고, 1993∼95년에 총리를 지낸 발라뒤르는 남들로부터 존경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미테랑 대통령보다는 자신이 속한 공화국연합(RPR)에 불만이 많았다. “미테랑 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속해 있는 공화국연합(3)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각주>
(1) 자크 시라크, <한 발짝 한 발짝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회고록, Nil, 파리, 2009, 500쪽. 에두아르 발라뒤르, <권력은 나눠지지 않는다: 프랑수아 미테랑과의 대화>, Fayard, 2009, 436쪽.
(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9월호 ‘지스카르 데스탱의 시대로 돌아가다’ 기사 참조.
(3) 공화국연합은 2002년 대중운동연합(UMP)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