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재산, 그 모호한 프로젝트
2017-01-02 세바스티엥 브로카
1980년대 이후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공유재산’의 개념은 좌파 인사들에게 날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식수 공급에 관해서든 프리소프트웨어에 관해서든, 공동관리는 민영화가 효율성을 높인다는 신화를 깬다. 그러나 공유재산 지지자들은 국가의 역할 축소를 주장하며 국가에도 대항 중이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인류와 지구를 위해 사회복지제도와 생태학이 결합해, 행복한 삶과 공유재산을 보장하는 사회를 구성하는, 새로운 성장방식을 탑재한 사회다.”
2016년 1월 11일, 프랑스 공산당의 피에르 로랑 대표는 신년 소원을 밝히며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이렇게 묘사했다. ‘공유재산’이라니? 한편, 공산당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 정당 ‘프랑스를 위한 운동’의 필립 드 빌리에 대표는, 동일한 개념인 ‘공유재산’을 프랑스 사회의 쇠퇴 원인으로 꼽았다. “국가는 더 이상 공유재산의 제공자로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우리에 대해 어떤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1)
2015년 5월 경제학자 벵자맹 코리아(Benjamin Coriat)가 <공유재산의 귀환&소유 이데올로기의 위기>를 출간했다.(2) 그리고 그로부터 꼭 1년 후인 2016년 5월 자유주의자 장 티롤이 <공유재산의 경제>를 출간했다.(3)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우리의 생각(Nos idées)’ 항목에서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는 “해결책을 널리 알리고 공유재산을 되찾고자 하는” 희망을 밝혔다. 기업 연구소(Institut de l‘entreprise) 대표는 “민간분야가 공유재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썼다.(4)
어떻게 하나의 개념에 대해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까? 정치권과 대학가에서 공유재산은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유재산’이라는 표현이 ‘공공이익’의 유의어처럼 받아들여지면서 모든 성향의 정당 대표들이 거론하는 용어로 떠올랐다. 대학가에서는 공유재산의 등장이 종종 개념적 갈등을 겪곤 하는 사회운동에 새로운 지적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갈피를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1985년 4월 미국의 아나폴리스 국립연구재단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대학교수들이 ‘공유재산’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공유재산은 사실 오래된 역사를 연상시키는 용어다. 바로 산업혁명 초기에, 공동으로 관리되던 방목지가 울타리로 경계가 지워진 사유재산으로 변모한 사건이다. 이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은 자본주의 발전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이것은 칼 마르크스가 말한 ‘원시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에 속한다). 또한 사유재산이 개인권의 하나로 인정받게 됐음을 상징한다. 칼 폴라니는 이를 두고 ‘빈곤층에 대한 부유층의 혁명’이라 명명했다.(5) 아나폴리스에 모인 연구원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되새기면서, 아직도 지구상에는 농업, 어업, 임업이 공동으로 이뤄지는 지역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자원은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고, 공동체는 자원의 개발을 공동으로 조직하는 방식이다.
연구원들은 이러한 공동 시스템이 상당히 효율적이며 자원의 과도한 개발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6) 가렛 하딘이 그 유명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 기사에서 펼쳤던 주장(7)을 완전히 뒤엎는 내용이다. 또한 자유주의 경제학의 교리들도 공격을 면할 수 없게 됐는데, “절대적인 사유재산제도야말로 부족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1990년, 경제학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은 아나폴리스 컨퍼런스에서 발표됐던 연구들의 주요 내용들을 종합했다. 그녀는 특히 공유재산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제도적 조건들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개발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규칙 없이는, 공유재산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굳이 국가권력을 동원할 필요 없이, 관련 공동체가 충분히 필요한 규칙을 세우고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사례들 중에서, 그녀는 터키의 어업을 예로 들었다. “터키의 어부들은 규칙을 실행하고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8) 오스트롬은 이 연구로 2009년 일명 ‘노벨 경제학상’, 알프레드 노벨을 기리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깨끗한 물’이라는 공유재산,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이탈리아에서는 공유재산의 이점에 관한 재조명이 정치권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로마노 프로디 정부가 설립한 위원회가 2008년 연구결과를 내놓으면서부터다. 법학자인 스테파노 로도타가 회장으로 있는 이 위원회는 공유재산을 “한 대상의 기본권 이행과 자유로운 능력 개발에 필요한 것들”이라 정의했다. 공유재산과 관련된 대상들, 즉 공유재산 ‘소유자들’의 지위는 중요하지 않다. 소유자가 법인이든, 공법인이든, 개인이든 말이다.(9) 위원회는 다만, 권리의 실행을 위해서는 자원이 그 기능에 적합하도록 관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물을 ‘공유재산’이라 한다면, 공급을 담당하는 주체가 누가 됐건 간에 모든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충분한 양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물의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로도타 위원회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수많은 사회 및 정치단체들은 공유재산의 개념을 기본적인 집단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민간분야와 신자유주의 정부를 규탄하는데 사용하고 있다.(10) 식수 공급을 담당하는 지방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여부를 결정하는 2011년 6월 국민투표에서는 전체 투표자들 2천7백만 명 중 2천5백만 명이 민영화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공유재산의 재발견은 천연자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98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IT 연구원이었던 리처드 스톨먼은 유즈넷(Usenet)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리며, 일반인들에게 무료배포되는 운영 시스템의 개발을 제안했다. 이를 시작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저작권의 보호를 받으며 제한적인 사용조건을 준수해야 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든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장에 반대하는 ‘프리소프트웨어 운동’이 일어났다.(11) 이 경우 컴퓨터 코드는 더 이상 한 개인 주체의 독점적 소유물로 간주되지 않으며, 자유롭게 접근이 가능한 자원이 돼 누구나 이를 개선시킬 수 있다. 많은 디지털 공유물(Digital commons)들은 이런 개방 및 공유의 원칙들을 취했고, 백과사전(Wikipedia)과 데이터베이스(Open Food Facts)의 생성, 예술적 창작물의 프리 아트 라이센스(Free Art Licence)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등록 시 이 원칙들이 적용됐다.
서로 간에 차이점은 있지만, 공유운동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은 모두 배타적인 소유권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탈리아의 공유재산(Beni communi) 운동의 경우 공공서비스의 민영화에 반대한다. ‘물리적인’ 공유재산의 이점은 방대한 면적의 토지 확보가 전제될 때 얻어질 수 있다. 디지털 공유물의 개발과 관련해서도 정보와 지식의 사유화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 부분은 일부 법학자들이 ‘제2의 엔클로저 운동’을 거론했을 정도로 거센 논란의 대상이 됐다.(12)
공유재산의 논리는 사유재산의 보장이 경제적 효율성을 증가시킨다고 믿는 신자유주의 성향의 중앙기관들의 입장에 반기를 든다. 오스트롬의 연구로 이들의 가설은 힘을 잃었고, 수많은 공유 자원들이 등장하면서 실제에서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유형 자원의 경우 공유재산은 대부분 공동 소유물의 형태를 띠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에는 협동조합 조직이나 농경지조합(GFA)이 존재한다. 반면 디지털 공유물은 고전적인 지적재산권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라이선스에 의해 보호돼, 공동창작물이 공유되면서 내용이 더 풍부해질 수 있도록 한다. General Public License(GPL), Creative Commons, Open Database License(ODbL)가 그 예다. 공유재산의 지지자들은 사유재산을 문제시할 뿐만 아니라, ‘자유화’라는 명목 하에 공공재산을 처분하는 것 역시 비판한다. 만약 국가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보유자원을 자유롭게 매도할 수 있다면, 공공재산과 사유재산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반드시 공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는 어느 주체에게로, 사유재산이 그저 이동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13)
신자유주의적 기업이나 국가에 대항해
공익을 수호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로도타 위원회가 제안했던 공유재산의 정의를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탈리아의 법학자들은 공유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주장하면서, 일부 권리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장 대신 복지국가의 고전적인 논리, 즉 공공재산을 공공이익의 수호자로 간주하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러한 관점의 이동은, 공공서비스가 모두의 이익을 지켜주지 못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공공서비스의 관료화 반대 움직임과 일맥상통한다. 공공재산 감소에 대한 비판은 시민 참여의 중요성 촉구로 나타났는데, 나폴리 시에서 일어난 ‘물을 공유재산으로(ABC)’ 운동은 흥미로운 사례다. 2011년 국민투표 결과 나폴리시의 수자원 관리는 다시 시영화됐고, 실무는 ABC가 선정한 특별 공공기관(Azienda speciale)이 담당하게 됐다. 그리고 이사회에는 두 명의 일반 시민이 포함됐으며, 사용자 및 협회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감시 위원회도 구성돼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관리가 가능해졌다.
이탈리아에서 공유재산의 개념이 정치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공유재산 지지자들과 국가 간의 모호한 관계를 보여준다. 사유재산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신자유주의 정부에 대한 반대 속에서 탄생한 공유재산 운동은, ‘시민 사회’의 자가조직능력에 대한 단조로운 찬가로 종종 이어진다. 단지 국가를 또 다시 후퇴시키기 위해 사유재산 신성화를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의 ‘유용한 바보’가 되는 위험을 떠안은 채 말이다. 많은 학자들과 공유재산 지지자들은 이러한 위험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벵자맹 코리아가 언급했듯이, “공유재산이 발전하려면 국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커머너(Commoner; 공유재산의 생산자들)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들(법적자원 포함)을 바로 국가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14) 예를 들어, 컴퓨터 판매 시 몇몇 소프트웨어들을 강제로 끼워 파는 행위를 금지한다면(컴퓨터의 구매는 곧 컴퓨터와 윈도우의 구매와도 같다) 프리소프트웨어의 발전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최근의 변화들을 고려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재확인해야 한다. 이는 공유재산을 촉진시킬 수 있는 법적 틀과, 공유재산을 가장 잘 지원할 수 있는 구조(협동조합 등)를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공공재산은 국가가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사용돼야 하는 재화와 서비스 일체를 가리키는 것인 만큼,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관리돼야 함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사회나 국가는 모든 개인이 사유재산과 이익 추구 외의 분야에서도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물질적·금전적 수단을 제공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공유재산의 개념은 상업적 영역, 국가의 임무, 그리고 자유로운 형태로 조직된 단체들 간의 경계선을 재검토하게끔 한다. 공유재산은 정치철학적으로도 좋은 주제이며, 아마 좌파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글·세바스티엥 브로카 Sébastien Broca
사회학자이자 파리 8대학 정보처리 및 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 주요저서로 <프리소프트웨어의 유토피아(Utopie du logiciel libre), 정보처리 작업에서 사회적 재발견까지(Du bricolage informatique à la réinvention sociale)>(Le Passager clandestin, Neuvy-en-Champagne, 2013)등이 있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Parlez-vous le Philippe de Villiers?(필립 드 빌리에를 아십니까?)> BFMTV.com, 2016년 10월 7일
(2) 벵자맹 코리아, <Le Retour des communs&La crise de l'idéologie propriétaire>, Les Liens qui libèrent, 파리, 2015
(3) 장 티롤, <Economie du bien commun>,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2016
(4) 프레데릭 몽루이-필리시테, <Pour une élite économique engagée(현실참여적인 경제 엘리트를 위해)>, L'Opinion, 파리, 2015년 4월 16일
(5) 칼 폴라니, <La Grande Transformation(커다란 변화)>, Gallimard, 파리, 1983
(6) Cf. National Research Council, Proceedings of the Conference on Common Property Resource Management, National Academy Press, 워싱턴, DC, 1985
(7) 가렛 하딘, <The Tragedy of the Commons>, Science, n.162, 워싱턴, DC, 1968
(8) 엘리너 오스트롬, <공유재산의 거버넌스. 천연자원에의 새로운 접근을 위해(La Gouvernance des biens communs. Pour une nouvelle approche des ressources naturelles)>, De Boeck Supérieur, 파리-루뱅-라-뇌브, 2010(1990년 1쇄)
(9) 로도타 위원회, 우고 마테이가 인용한 결론, <La lutte pour les "biens communs" en Italie. Bilan et perspectives(공공재산을 위한 이탈리아의 투쟁. 성과 및 전망)>, Raison publique, 2014년 4월 29일, www.raison-publique.fr
(10) 우고 마테이, “공유지의 비극, 희극으로 바꾸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1년 12월
(11) 세바스티엥 브로카, “프리소프트웨어의 이상한 운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4년 11월
(12) Cf. 제임스 보일, <The second enclosure movement and the construction of the public domain>, Law and Contemporary Problems, vol.66, n.1-2, 더럼(미국), 2003
(13) Cf. 피에르 크레투아 & 토마 보콩-기보, <Etat social, propriété publique, bien communs(사회국가,공공재산,공유재산)>, Le Bord de l'eau, 로르몽, 2015
(14) <Ne lisons pas les communs avec les clés du passé(과거의 시각으로 공유재산을 바라보지 말자)> 벵자맹 코리아와의 대담, Contretemps, 2016년 1월 15일, www.contretemps.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