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자산을 갉아먹는 뱅시(Vinci)의 3류 지리학

2017-01-02     니콜라 들라 카지니에르
정부는 고집스럽게 노트르담데랑드 공항을 건설하려 한다. 국가를 등에 업고 설립된 다국적기업 뱅시에게 허용한 사업권 양여 계약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조달시장의 포식자인 이 대형 건설회사는 두 가지 부문, 다시 말해 투자회수가 빠른 건설 부문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는 인프라 양허사업 부문을 조화롭게 운영하며 수익을 끌어 모으고 있다.

뤼에이 말메종(오드센), 페르디낭 드 레셉스 2번지, 뱅시 그룹 본사. 

통유리창 뒤편으로 냉방장치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뱅시의 이 웅장한 잿빛 본사 건물은 1992년 이 회사의 모체가 된 SGE에 의해 건립됐다. 1899년 두 창립자의 이름을 딴 회사 ‘지로 앤 루쇠르’가 1908년 SGE에 의해 승계됐다. 현재 이 본사 건물에는 그룹사 전체 인력의 0.6%에 해당하는 1천 2백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뱅시 그룹은 100여 개 국가에 18만 5천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 중이다). 뱅시 제국은 2014년 매출액 387억 유로, 순이익 2백5십만 유로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뱅시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장단기에 걸친 두 가지 시간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한 덕택이다. 먼저 단기적으로는 뱅시의 주력분야인 건설사업을 통해 빠른 투자 회수의 장점을 누리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공항·교량·터널·고속도로 등 각종 인프라 사업권 양허계약(Concession·민간 사업자가 시설의 운영, 보수, 유지관리 및 서비스 향상을 위한 신규 자본투자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공급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는 민간 위탁의 일종-역주)을 통해 안정적인 장기 소득을 챙겼다. 흔히 정부는 양허계약을 체결해 민간 사업자에게 대형 토목 건설사업의 자금 조달과 시공을 맡기고 있다. 그러면 기업은 그 대가로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지급받거나 계약기간 동안 시설물 운영에 따른 수입을 챙겨간다.

건설사업이 단기자본 회전의 이점을 누리게 해준다면, 양허사업은 30~70년에 걸쳐 시설물을 관리하며(대개의 경우 사업자가 설계나 시공도 같이 맡는다) 때에 따라 토목건축 사업의 부진을 상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례로 2014년 뱅시는 신규 건설계약 체결 건수가 줄었음에도 양허사업에서 나오는 소득이 증가한 덕분에 영업마진은 오히려 늘어났다. 뱅시의 양허사업에서 비롯된 소득은 전체 매출의 15%(그리고 전체 인력의 3.6%)에 불과하지만, 전체 영업수익의 60%에 달한다.

다른 수많은 다국적기업이 그렇듯 라틴어 계열의 이름이 붙은 뱅시(Vinci·빈치) 그룹은 2000년 여러 토목건축기업들의 전략적 제휴와 합병, 자본의 집중 등을 기반으로 탄생한 뒤 순식간에 건설업계의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그룹은 뱅시라는 새 간판을 내걸어 1990년대 부정부패로 얼룩진 수도업체(리오네즈데조)와 공공 공사업체(GTM, 뒤메즈)의 이름을 조용히 감출 수 있었다. 오늘날 파리 증시 지수 CAC40(파리 증시에 상장된 40개 우량 기업-역주)에 편입된 기업 중 최고의 우량기업으로 성장한 다국적기업 뱅시는 자사를 추월한 기업이 기껏해야 중국의 세 그룹에 불과하다. 뱅시는 거대한 제국을 이룬 뒤에도 기업집중에 대한 야망을 놓지 않았다. 가령 2009년 뱅시는 카타르로부터 ‘세젤렉’(기업 및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기술 서비스 및 기술 엔지니어링 분야의 거물급 기업으로 전 세계적으로 2만5천명의 직원을 고용 중이다)을 인수하기 위해 자사 지분의 5.78%를 ‘카타리 디아르’에 넘겼고, 그 결과 ‘카타리 디아르’가 뱅시의 2대 주주가 되기도 했다.

다국적기업 뱅시는 총 2,100개 계열사로 구성돼 있다. 굵직굵직한 회사 몇 개에 대부분은 수많은 군소회사들이다. “겉보기엔 대그룹 같지만 실제로는 군소기업이나 더 나아가 종업원이 10여 명에 불과한 영세기업들의 집합일 뿐이다”고 전 프랑스노동총동맹(CGT) 소속 건설부문 법무담당자 르네 드프로망이 말했다. 뱅시 그룹을 구성하는 군소회사의 수는 매번 인수, 합병, 매각 등의 상황에 따라 뒤바뀐다. 대표적으로 2014년 6월 자회사 ‘뱅시 파크스’는 전체 지분의 75%를 보험회사 ‘크레디 아그리콜 아쉬랑스’와 투자회사 ‘아르디안’에 넘기기도 했다.

사실 프랑스 고속도로 운영사업은 뱅시에게 가장 쏠쏠한 수익을 안겨다주는 아이템 중 하나다.(1) 2001년 3월 뱅시는 리옹-마르세유 간 A7번 고속도로와 보르도-리옹 A89번 고속도로 톨게이트 사업을 함께 수주하는 행운을 누렸다. 로랑 파비우스 경제부장관은 ‘프랑스 남부 고속도로’의 지분 49%를 뱅시에 내줬고, 이어 2006년 3월에는 도미니크 드 빌팽 정부가 완전히 이 회사를 매각했다. 2014년 9월 프랑스 경쟁청(공정거래위원회)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뱅시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이 사업으로 17~30%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다른 두 프랑스 고속도로 사업자인 에파주와 아베르티스를 앞지르는 수치다. 고속도로 사업은 2014년 뱅시 그룹 총매출의 12.3%에 불과하지만, 같은 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5.2%에 달했다.

사실 뱅시가 인프라 양허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 몇 년째 치열한 로비를 벌이는 것도, 알고 보면 이 사업이 그토록 높은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탓이다. 계약이 1년 씩 연장될 때마다 주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줄 두 자리 수의 보너스(최대 30%)가 보장되는 셈이다. 가령 2013년 양허사업에서 비롯된 수익은 뱅시 그룹이 토목건축분야에서 올린 수익에 비해 5.1%가 높았다. 본래 계약 기간인 35년에 추가 계약기간이 연장될 때마다 방음벽,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무인 톨게이트, 카풀 장려 등 모든 사업이 전부 새로운 수익원으로 연결됐다. 뱅시는 교통 부문(도로, 철도, 항공 등) 외에도 수도 공급, 원자력 산업, 발전소 설치 및 폐쇄, 폐기물 처리 등 온갖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다. 뱅시 그룹은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종종 국제면 기사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아가데즈 지역의 아를리트(니제르)
소제아 사톰(뱅시의 자회사) 주재원 마을

높은 철책이 드리워진 경비가 삼엄한 총 40동의 빌라. 고도의 보안을 자랑하는 이 구역에는 뱅시의 자회사 소제아 사톰에서 파견된 간부급 주재원들이 거주하고 있다. 아를리트 지구라고 불리는 이곳은 광산단지다. 1967년 우라늄 광산을 개발하고, 광부들과 엔지니어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프랑스 원자력 발전 수요의 1/3을 충당할 정도로 전략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우라늄의 프랑스 수출을 목적으로 사막 한복판에 세워졌다. 인간이 만든 이 오아시스에는 베드타운은 물론 유럽의 고가 수입품들로 가득 찬 슈퍼마켓, 심지어 경마장까지 들어서 있다. 모두 2천 명에 이르는 노동자와 주재원이 니제르 군인과 헌병 3백 명을 비롯한 경호원 5백여 명원의 보호 속에 외부출입도 삼간 채로 조용히 머무르고 있다. 아를리트는 본래 니제르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손꼽혔다. 그러나 2010년 9월 난데없이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에 의한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아레바’의 직원 1명과 그 부인, 그리고 ‘아레바’를 위해 공공 공사와 건설사업을 시공 중인 소제아 사톰의 직원 5명이 치밀하게 계획된 납치공작의 표적이 됐다. 2011년 인질 3명이 먼저 풀려났고, 이어 2013년 인질 4명이 마저 풀려났다. 몸값을 지불했는지 여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1930년대 설립된 소제아는 본래 모로코 라바트에서 수도관 사업을 벌였다. 그러다 당시 프랑스 보호령이던 모로코의 다른 시장들로 차츰 관심 분야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가봉, 니제르, 차드 등지로 사냥터를 서서히 넓혔다. 그러다 수많은 신설합병, 흡수합병을 통해 ‘소제아 사톰’이 탄생한다. ‘소제아 사톰’은 훗날 뱅시의 아프리카 부문을 책임지게 된다.

정지작업, 도로, 교량, 수도, 대사관 및 빌딩 건축(콩고의 수도 브라자빌에 우뚝 솟은 106m 높이의 웅장한 마천루 엘프 타워가 대표적인 예다). 사톰은 뱅시의 모체가 된 SGE의 창립자 루이 루쇠르와 교분이 두터웠던 프랑스 ‘식민지당’의 명맥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식민지당’은 공식적으로 말해 정당은 아니었고, 일종의 압력을 행사하는 집단이었다. 이 집단은 1910년대 공격적이며 국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성격의 식민지주의를 표방하며, 프랑스 기업들이 양심과 도덕, 지정학적 여건, 환경 등을 모조리 내팽긴 채 막대한 이윤 챙기기에 몰두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줬다. 가령 남아프리카 가리에프 댐 건설은 오늘날 뱅시의 자회사로 자리 매김한 뒤메즈가 맡아서 건설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한창이던 1964~1970년, 가리에프 댐 사업의 수익은 뒤메즈가 비관세 지역 밖에서 거둔 총매출의 11%를 차지했다.(2)

 2002년 뱅시는 리비아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한 인공 강’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에도 참여했다. 2천 년 묵은 지하수 층에서 화석수를 길어내 4,200km 규모의 관을 이용해 연안지대로 퍼내는 일이었다. 1984년 첫 삽을 떴을 당시 이 사업은 세계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로 간주됐다. 이 사업에 소요되는 예산 310억 달러는 석유수입으로 조달됐다. 사실상 고갈 중인 화석자원이 재생 불가능한 또 다른 화석층을 파괴하는 데 동원됐다고 볼 수 있었다. 지하수가 다시 재생되기까지는 7만 년도 더 걸릴 것으로 추산됐다. 이 귀중한 지하수는 관개수로 사용됐으나, 불행히도 그 정도로 건조한 지대에서는 지하수의 40~60%가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모조리 증발해버리기 마련이었다.(3) ‘생태범죄’라고 말할 수까지는 없을지 몰라도, 정상적인 사업이 아님은 분명했다.

도하(카타르)
공항과 도심을 잇는 지하철 공사 현장

얼굴 전체를 마스크로 가린 채 별다른 보호 장비도 없이 간신히 안전모만 걸쳐 쓴 노동자들이 철로를 놓고 있었다. 찜통 같은 열기에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응달에서 잰 기온이 무려 42도에 육박했다. 카타르는 일인당 국민총소득이 가장 높은 국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100% 풀가동 중인 거대한 공사장을 연상시킨다. 이 토후국은 사실상 뱅시에게는 황금의 땅이나 다름없다.

2013년 6월, 뱅시 그룹이 도하 지하철 건설 수주에 성공했다. 카타르의 수도에 자리한 역사적 중심가 므셰이레브와 공항을 잇는 총 연장 13.8km의 지하철 건설사업으로 투자규모가 15억 유로에 달했다. 그로부터 1년 후에는 알스톰과 루사일 트램(노면전차) 사업도 체결했다. 도하에서 15km 거리에 위치한 사막 한복판에 건설될 주민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호화 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는데 투자비가 20억 유로에 육박했다. 루사일은 고급 주택가와 오피스텔 빌딩, 상업지구, 골프장, 인공섬, 놀이동산 등이 어우러진, 이른바 도시개발자들에게 환상적인 꿈의 도시와도 같은 곳이었다.

2022년 도하 스타디움에서는 월드컵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릴 예정이다. 이 행사를 앞두고 카타르는 지하철, 트램(노면전차), 철도, 스타디움, 부대시설 등의 건설에 모두 64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이미 공사현장마다 인도인과 네팔인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 150여 명이 분주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뱅시도 카타르에서 단단히 한몫을 챙겼다. 마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비판의 목소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2015년 3월 프랑스노동총동맹(CGT)과 경제범죄 희생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비정부기구 ‘셰르파’는 “강제 노동과 노예 생활에 가까운 열악한 노동조건”을 문제 삼아 뱅시 그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뱅시는 셰르파의 직원 2명과 대표 윌리엄 부르동 변호사를 명예훼손 및 무고죄로 고소하며 맞불을 놓았다. 뱅시의 홍보부 책임자도, “셰르파에 대한 소송 취하를 요구하는 3,300통이 넘는 우편더미로 인해 심각한 심적 고통에 시달린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이 소송은 모두 심리 중이다. 

매년 인도 대사관과 네팔 대사관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과로와 폭염, 탈수 등으로 인한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하는 자국민 수는 수백 명에 달한다. 프랑스에서도 토목건축은 흔히 항구적 장애로까지 이어지는 각종 산업재해 누적건수가 가장 높은 분야다. 각종 공사현장에서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가령 2013년 뱅시의 노동자 중 토목건축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8.5%에 불과했지만, 산재로 인한 병가의 16.3%, 산재로 인한 사망의 26.3%를 차지했다.(4)

그럼에도 뱅시는 산재 예방에 앞장서고 있다고 자부한다. 가령 뱅시는 공동으로 일정목표를 달성하면 간부급 직원에게는 상여금, 일반 노동자에게는 특별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일례로 ‘소제아 사톰’과 ‘유로비아’에서는 전사적으로 일정 기간 무사고 행진에 도전해 성공하는 경우 모든 직원에게 각각 1루이 금화를 나눠주고 있다. 가령 ‘유로비아’가 설정한 무사고 기간은 432일인데, 2014년 4월 99명의 직원이 마침내 1루이 금화를 손에 넣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한편 무사고를 기록한 기업에게는 사회보장분담금 산정 때 혜택이 돌아간다. 그러나 프랑스노동총동맹(CGT)에 의하면 이러한 제도는 오히려 기업이 사고 사실을 신고하지 않거나, 동료나 부하직원에게 산재 신고를 못하도록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파리, 베르시가 139번지
동부 1동 5059호, 재무부(경제부 산하) 
민관협력사업지원국(MAPPP)

베르시에 소재한 민관협력사업지원국(MAPPP)은 민관협력사업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사실상 프랑스의 모든 민관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뱅시에게 있어 MAPPP는 매우 중요한 파트너다. MAPPP는 부이그, 에파주와도 강력한 소수 권력 집단을 형성하며, 경제계와 지자체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고 있다. 뱅시도 2014년 장피에르 쉬외르와 위그 포르텔리 의원이 상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른바 “예산 시한폭탄”이라고까지 표현된 민관협력사업 분야를 평정하고 있는 공룡기업이다. 정부는 민관협력사업의 일환으로 민간 사업자에게 대형 시설물이나 대학, 경기장, 고속철(LGV) 등의 투자와 운영, 유지 및 관리를 위탁한다. 그러면 지자체가 민간 컨소시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물론 이익은 민간 컨소시엄의 몫이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긴축정책이 한창인 시절에 이런 구도가 여러모로 이점이 있다. 설령 계약 기간 동안 재정적 부담이 공공시장에 대한 직접 투자에 비해 3~5배 더 높다 할지라도, 재정적 영향은 사업을 승인한 위원의 임기가 끝난 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원들은 시민들에게 굳이 자신의 의사결정이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설명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여기저기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2015년 1월, 뱅시와 니스시가 민관협력사업의 일환으로 2년 전 개장한 알리안츠 리비에라 대형 스타디움에 대한 사법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달 비아리츠시도 뱅시를 상대로 2011년 문을 연 해양박물관 ‘바다의 도시’에 대한 양허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2012년 뱅시가 완공해 인도한 ‘파리7대학(디드로 대학)’ 건물 역시 송사에 휘말렸다. 2010년 시민과 건축가들은 시민을 위한 건축물이 지켜야 할 규정을 잘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건물에 대한 건축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청원을 낸 것이다. 처음에 파리행정재판소는 건축 허가와 건물 개장에 관한 법령을 취소했다. 그러나 신규건축 허가와 도 단위 법령을 통해 끝내 건축물을 개장했다.

파블로 네루다가 6번지
낭테르(오드센), 지방검찰청.

29장의 문서와 53개의 부속서류. 2013년 6월, 낭테르 검찰청에는 예심을 위해 재무조사팀에 전달됐던 ‘부정부패 협정’에 관한 소장이 도착했다. 소장에는 ‘뱅시 콩세시용 뤼시(러시아 컨세션)’가 2009년 7월 러시아 최초의 민자사업의 일환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간 고속도로 톨게이트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국 공무원 매수”, “독직, 특혜, 불법 합의” 등의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적혀 있었다. 또한 러시아 정부도 법률 및 행정절차를 위반하는 한편, 부정부패 및 조세 은닉 의혹이 있다고 지적됐다. 사실상 러시아 도로 건설 공사 현장에서는 신원 미상의 조직 폭력배들이 거의 범죄에 가까운 온갖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며 사업에 장애가 되는 반체제 인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인 희생자가 바로 모스크바 외곽의 지역신문 <킴킨스카야 프라우다>의 편집장 미하일 베케토프였다. 그는 2008년 쇠파이프로 무장한 복면 쓴 괴한 두 명에게 무참한 폭행을 당했다. 반신불수에 언어장애까지 얻은 그는 한 쪽 다리와 손가락 세 개가 절단됐고, 2013년 4월 8일 55세의 나이로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비정부기구 ‘부정부패, 거짓말, 불명예에 대항해’의 일원인 알베르트 프체린체프 역시 2009년 7월 괴한 2명의 공격으로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2010년 11월에는 언론인 올레그 카신이 쇠파이프 공격을 받아 5일 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는 두 다리와 턱에 골절상을 입는 한편 손가락 하나를 절단 당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이 지난 뒤 반체제인사로 유명한 경제학자 블라디미르 밀로프가 로이터 통신에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러시아 도로 건설사업에는 얼마나 부정부패가 횡행하는지 모른다. 심지어 계약가를 반으로 나눈 것이 실제 가격에 해당할 정도다.” 2011년 2월에는 당시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도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당시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지닌 소수의 상업적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공익이 희생됐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 따르면, “이고르 레비틴 장관을 포함해 부정부패로 얼룩진 교통 분야에 종사 중인 러시아 고위 공직자들”의 입맛에 따라 고속도로 구간이 선정됐다.

프랑스에서는 비정부기구 셰르파의 대표 부르동 여사가 제기한 소송이 현재 심리 중에 있다. 이 소송에는 ‘러시아 자유’, ‘뱅크워치’ 등 러시아와 체코의 여러 시민단체들과 러시아 환경운동가 세 명이 동참했다. “뱅시는 사실상 러시아 정부 최초의 민관협력 도로 건설사업에서 탈세를 은폐해주거나 올리가르히를 비호해주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뱅크워치’ 측은 설명했다. 이 비정부기구에 따르면, 이번 고속도로는 그린벨트로 묶인 임야를 가로지르는 등 최악의 선정으로 간주됐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고속도로(M10)를 개량해서 쓸 수 있는 데도 굳이 이중으로 새로운 노선을 개발하기로 결정하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불공정한 민간 사업자 선정 절차, 모든 경쟁자를 배제할 수밖에 없도록 계획된 미심쩍은 입찰과정 외에도, 고소장에는 컨소시엄으로 선정된 회사의 불투명하고도 복잡한 구조 역시 도마에 올랐다. 가령 컨소시엄으로 선정된 ‘서북 컨세션 회사’는 ‘뱅시 콩세시옹 뤼시(러시아 컨세션)’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인데, 이 회사는 또 다시 뱅시의 자회사 두 곳의 소유였다. 게다가 이 자회사 역시 또 다시 키프로스에 소재한 ‘리마솔 선스톤 홀딩 유한회사’와 제휴를 맺고 있다. 말하자면 해외기업들을 하나씩 끼워 맞추는 블록쌓기 게임을 통해 뱅시는 영국의 버지니아 섬에서, 키프로스, 바하마, 케이먼제도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다양한 창구를 늘려가고 있는 셈이다.(5) 가령 키프로스 니코시아에 소재한 뱅시의 한 자회사는 이런 식으로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아카디 로텐베르그가 소유한 ‘올폰 인베스트먼트 유한회사’까지 연줄이 닿기도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절친한 친구인 로텐베르그는 1964년 이후 푸틴과 유도장을 함께 드나드는 돈독한 사이로 유명하다. 

킴크히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는 복면을 쓴 무장 경비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호를 펼쳤다. 2014년 말 43km 규모의 첫 구간이 개통된 데 이어, 2015년 7월 33km 구간이 더 열렸다. 전 구간은 2018년 5월 경 완전히 개통될 예정이다.

A680번 고속도로 인근
그라냐그(오트가론느), 코카뉴 정원. 

A680번 고속도로를 타고 툴루즈에서 카스트르를 가다보면 길 양편에 과수원 2헥타르와 유기농 채소밭 5헥타르가 펼쳐져 있다. 고속도로 양편 자투리 공간에 마련된 ‘코카뉴 정원’(유기농산물 재배를 통해 취약계층의 자활을 돕는 비영리단체-역주)에서 일하는 40여 명의 노동자는 2005년부터 뱅시 그룹으로부터 후원금을 지원받고 있다. 뱅시는 이처럼 ‘코카뉴 정원’을 친환경 시민활동의 창구로 널리 활용하고 있다. 뱅시는 취약계층을 위한 자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유기 농산물을 재배하는 이 조직을 지원하며 ‘친환경적 사회참여기업’이라는 이미지 쇄신에 힘쓰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뱅시가 직접 녹지관리 등의 소규모 사업을 하청 받아 운영하기도 한다. ‘도시를 위한 뱅시’ 재단은 현재 각 사업마다 약 2만 유로씩을 지원하고 있다. 2014년 이 재단의 예산은 뱅시 그룹 전체 수익의 0.1%에 해당했다.

토목건축계의 이 공룡기업은 후원 사업을 통해 세제 혜택을 누리는 한편, 기업 이미지 제고에 앞장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사의 간부급 직원들이 지원조직을 위해 후원금을 내거나 무료로 ‘재능기부’에 나서도록 권장하고 있다. 재능기부에 지원한 간부급 직원은 근무시간 동안 지원 단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 회사는 이런 종류의 사회참여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지원단체를 위해 멘토 역할에 나서겠다고 자원한 후원자들은 평소 멀게만 느껴지던 취약계층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또 가끔은 이 자활지원 사업에 참여한 노동자 가운데 ‘채용 가능한’ 인재를 물색해 뱅시의 자회사에 취직시켜주기도 한다. 물론 대대적인 행사를 통해 고작 취약계층 몇 명에게 ‘항구적 일자리’를 제공하게 된 것을 요란스럽게 선전할 테지만.

이처럼 뱅시 그룹은 기업의 이미지 제고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뱅시는 현재 낭트시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노트르담데랑드 공항 사업으로 큰 무리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 한편, 대학 내 생태건축 및 토목공사 강의를 위해 연간 2만 5천 유로씩을 지원하고 있다.(6)  


글·니콜라 들라 카지니에르 Nicolas de la Casinière
언론인 겸 삽화가. 주요 저서로 <콘크리트의 포식자들. 다국적기업 뱅시에 관한 조사>(Libertalia·파리·2013년), <외상 공공서비스. 민관협력사업의 수혜자는 누구인가?>(Libertalia·2015년), <기후파괴자들>(Seuil-Reporterre·파리·2015년) 등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Philippe Descamps, '민간이 톨게이트를 운영하는 공공 고속도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2년 7월호.
(2) Dominique Barjot, <건축가들의 발자취. 뱅시 그룹의 역사>, Textuel, 파리, 2003년.
(3) Omar Khedher, ‘리비아의 거대 인공 강과 지속가능한 개발’, <아그로파리테크>, 2007년 ; ‘거대 인공 강, 리비아 세대 간 시너지’, <그랑 프로제>(‘뱅시 건설’ 사보), 제23호, 2006년 2월 ; Amy Otchet, '푸른색 혹은 녹색 황금, 리비아의 선택‘, <유네스코 쿠리어>, 파리, 2000년 2월.
(4) 건강보험 통계
(5) ‘Vinci. A cover for oligarchs and tax havens in Russia's first road PPP', 뱅크워치 네트워크, 프라하, 2011년 4월 30일.
(6) 취재진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뱅시 그룹은 취재진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대신 자사의 연례보고서나 웹사이트에 게재된 공식자료만 보내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