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오랜 동맹국, 차드의 도박

2017-01-02     델핀 르쿠트르
올해로 집권 27년 차인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차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대선 투표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석연치 않은 승리와 그 동안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국방장관은 4월 29일 은자메나 방문을 예정대로 강행했다. 한편 차드는 최근 사헬 지역 반테러 투쟁의 핵심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국가들에 둘러싸여 불안정하고 가난한 이미지로 대표되던 차드는, 최근 몇 년 사이 사헬 지역과 중앙아프리카의 지하디즘 투쟁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인권 탄압을 이유로 NGO들로부터 주기적으로 비난을 샀으며,(1) 무려 4반세기 동안 집권한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대통령의 독재 정부는, 과거 식민지배국이었던 프랑스와 미국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지리학자인 제로 마그랭은 사헬과 수단의 교차점에 위치한 차드에 대해 “수단에서부터 카자망스 지역까지 ‘전선(Battle line)’이 이어지는 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로, 북쪽으로는 이슬람 지역과, 남쪽으로는 인구 대부분이 정령을 숭배하거나 기독교를 믿는 지역과 맞닿아있다”고 설명했다.(2) 또한 블랙 아프리카와 아랍 국가들 사이의 ‘과도적 공간’이기도 하다. 차드가 전략적 요충지가 된 데는 주변에 별다른 지역 강국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중부에는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부룬디가 있는데, 모두 천연자원은 풍부하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이다.(3)

차드는 프랑스와의 관계를 현명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1960년 차드가 독립한 이래 프랑스는 차드를 군사훈련기지로 사용해왔는데,(4) 2013년 1월, 차드 정부는 말리 북부의 지하디스트 공격을 막기 위한 프랑스군의 서발 작전(Operation Serval)을 지원하려고 2천여 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2014년 8월부터는 바르칸 작전(Operation Barkhane)이 진행 중이다. 현재 차드에는 프랑스군 사령부와 3,350명의 프랑스군이 영구주둔하고 있다. 두 국가의 관계는 부처 간 및 대통령 간의 강력한 외교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프랑스 역시 동맹국인 차드에 대해 감사 표시를 확실히 하고 있다. 2008년 프랑스의 물자보급이 없었더라면 데비 대통령 정부는 이웃국인 수단의 반군에 의해 전복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하디스트의 위협으로 차드의 입지는 더욱더 공고해졌다. 현재 차드는 보코 하람에 맞서는 군사적 투쟁에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2013년 5월 영토 북부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이며, 카메룬은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모든 재정과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5) 2015년 7월 30일, 차드 의회는 몇 개월 전 폐지했었던 사형 제도를 부활시키는 반테러 법을 채택했다. 중앙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차드보다 더 큰 군사력을 갖춘 국가는 없다. 1989~1990년 1만 7천 명이었던 차드의 병력은 2013년에는 2만 5,350명으로 늘어났다. 차드의 군사비 지출은 2011년 GDP의 6.6%를 기록해, 미국과 가까운 두 국가인 앙골라(2012년 5.2%)와 르완다(2013년 1.1%)보다 높았다.(6)

 차드 군대는 특히 사막 전투에 강하기로 유명하다. 티베스티 산지, 에네디 협곡, 다르푸르 국경 지역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러한 노하우 덕분에 프랑스군은 아드라르 데 지포라스 산맥에서와 같이 아날로그적인 작전을 수행해야 할 때 차드군과 긴밀하게 협력했다. 차드군의 불패신화는 1987년 9월 5일 리비아 ‘Maaten al-Sarra’의 공군 기지 기습과 같은 실제 사례들에 근거하고 있다. 당시 차드군은 상대편에 무기와 병력이 월등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둠으로써, 무아마르 알 카다피 대통령을 협상테이블에 앉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학자인 마리엘 드보에 따르면, 차드군은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말리에서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와 맞서고 차드 호수에서 보코 하람과 싸우는 정예부대들이다. 이들은 프랑스와 미국의 막대한 지원금을 바탕으로 최첨단 장비를 갖추고 최고 수준의 훈련을 받는다. 프랑스와 미국은 데비 대통령의 측근들로 구성된 정예부대원들이 저지르는 잔인한 행위들을 묵인한다. 두 번째는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부대들로, 부대원들의 출신 민족과 정치적 성향도 매우 다양하다.”(7) 차드군은 아프리카 중부 지역들에 대한 수탈 행위로도 악명이 높다. 민간인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아 종종 “배신자, 겁쟁이, 차드군을 추방하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무관하게 프랑스와의 관계는 계속해서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2016년에는 데비 대통령에 반대하던 군인 50여명이 숙청되는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4월 30일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국방장관의 차드 수도 방문은 예정대로 이뤄졌다.

 차드는 각종 이해관계의 장인 아프리카 대륙에서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통한다. 1998년 9월에는 로랑 데지레 카빌라를 지원하기 위해 콩고민주공화국에 2천여 명의 병력을 파견했고, 유엔평화유지권(MINUSCA)의 임무에도 동참했다. 차드는 또한 2000년대 중반부터 아프리카연합의 상임국대표위원회(Corep)와 평화안보위원회(CPS) 회의에 전략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아프리카연합 내에서의 입지도 다지고 있다. 차드의 군사고문은 군사참모위원회와 아프리카연합의 평화 지원 계획에도 참여한다.
 데비 정부는 아프리카의 경제대국인 나이지리아와 남아공뿐만 아니라 군사강국인 알제리, 이집트, 에디오피아, 앙골라, 세네갈과도 관계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아프리카연합 집행위원회 반테러 투쟁과 국경지역 범죄를 막기 위한 사무소를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에 설치했다. 은자메나에는 부르키나파소, 말리, 모리타니, 니제르와의 안보 협력을 위해 구성된 ‘G5 Sahel’의 본부도 위치해 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차드가 유엔안보리의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평화강국’의 역할을 강조했던 덕이 컸다. 

 중앙아프리카 경제공동체(CEEAC)(8)의 회원국인 차드는 ‘프랑스어권 국가들 간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CEEAC의 영향권 밖인 서아프리카 지역의 문제들에도 개입한다. 2011년에는 코트디부아르 선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된 아프리카연합 전문가 그룹에 남아공, 부르키나파소, 모리타니, 탄자니아와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2004년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의 중재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차드는 이웃 국가인 나이지리아 측에서 제안한 군사적 개입안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처럼 오늘날 아프리카 외교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축이 된 차드는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간의 화합에 기여하고 있다. 2012년에는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반테러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CEDEAO)의 옵서버 국가 자격을 얻었다.(9)

 데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다르푸르 지역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의 반대세력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 지역을 둘러싼 높은 관심은 이 지역 남부의 석유매장지 때문이다. 2003년 석유 개발에 성공하면서 차드는 아프리카 9위의 산유국이 됐다. 이 때문에 데비 대통령은 중아공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집권하기를 원한다. 2014년 1월 21일 그는 중앙아프리카 경제공동체 위원장 자리를 이용해 중아공의 임시 대통령이던 미셸 조토디아가 사임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중아공의 과도 정부를 해체시켰다.(10) 2015년 1월 2일에는 반란군 압델카데르 바바 라데를 체포해 범인인도를 승인받았다.
 또 다른 지역적 문제는 바로 오마르 알-바시르가 이끄는 수단 정부와의 관계 정상화다. 2000년대에 차드와 수단은 전쟁을 치렀는데, 수단은 차드가 다르푸르 지역의 반란군을 지원한다고 비난하고 차드는 수단으로 도피한 데비 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을 지원한다고 비난하면서 촉발된 전쟁이었다.

 2011년 말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이 사망하고 석유 값이 상승하면서 차드의 영향력은 커졌다.(11) 그러나 리비아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수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우선 리비아에서 일하던 차드 출신의 목동들과 노동자들이 리비아 내전으로 인해 발이 묶인 상태이다. 카다피가 선발한 2~3만여 명의 차드군도 현재 트리폴리와 투브루크에 흩어져 있어, 차후 IS의 먹잇감이 될 위험이 크다. 또한 미스라타 감옥에도 4~5천여 명의 죄수들이 수감돼 있다.

 프랑스의 최대 동맹국인 차드는 한 명의 지도자가 수십 년을 집권 중인 중앙아프리카의 다른 독재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적도 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대통령, 앙골라의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대통령, 카메룬의 폴 비야 대통령, 콩고의 드니 사수 은게소 대통령은 모두 30~40년 간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미 25년 넘게 집권한 데비 대통령은 지난 4월 10일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5선에 성공했다. 그의 공식 득표율은 61.56%였으나, 낙선한 나머지 6명의 후보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의 납득할 수 없는 승리”라며 한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한다. 2005년 데비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앰으로써 또 다시 대통령직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바 있다.

 그러나 데비 대통령의 국가경영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유엔개발개획(UNDP)의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차드는 총 188개국 중 185위를 기록했다. 사회 내부적인 분노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석유 개발은 국민들이 아닌 독재 정부 측근들의 배만 불리고 있고, 중국과의 수교로 정유공장, 공항, 철도가 건설되고는 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2014년 이래로 살인적인 물가, 공무원들의 월급 지급 지연, 각종 사기 행위, 독재적이고 억압적인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6년 2월 8일에는 정부 고관의 자녀들이 즈후라(Zouhoura)라는 소녀를 집단 강간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분개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주로 여성들로 구성된 시위대는 권력이 있으면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사회 행태를 규탄하며 검찰조사를 촉구했다. 이 시위대는 나아가 국민 대부분이 하루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차드의 전반적인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를 대상으로 좀 더 포괄적인 요구안을 내놓기도 했다.  


글·델핀 르쿠트르 Delphine Lecoutre
정치학자, EDHEC 비즈니스 스쿨(릴), 외교전략대학원(파리), 국제사면위원회 프랑스지부 차드-중앙아프리카 책임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2015~2016년 차드에 관한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서, www.amnesty.org
(2) 제로 마그랭, <북부를 잃어버린 남부? 차드 분열과 관련된 최근의 쟁점들>, 프랑스 지리학자 협회 보고서, vol.79, n.2, 파리, 2002년 6월.
(3) 제라르 프루니에, ‘중부 아프리카, 살육의 향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2월호.
(4) 롤랑 마르샬, <차드에 대한 프랑스 및 유럽 정책과 관련된 크고 작은 논쟁들>, CCFD-Terre solidaire-Secours catholique, 파리, 2015년 4월.
(5) 로드리그 나나 느가삼, ‘보코 하람으로부터 위협받는 카메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1월호.
(6) Collectif, <차드: 실속 없는 패권국>, 벨기에 국방부, 국제 관계 및 전략 부서-평화와 안보에 관한 국제적 리서치 그룹(GRIP), 브뤼셀, 2015년 5월 18일.
(7) 마리엘 드보, ‘사라진 차드군들의 운명에 대한 프랑스의 침묵’, <르몽드>, 2016일 5월 11일.
(8) CEEAC에는 앙골라, 부룬디, 카메룬, 콩고, 가봉, 적도기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상투메 프린시페, 차드가 회원국으로 있다.
(9) CEDEAO에는 베냉, 부르키나파소, 카보베르데, 코트티부아르, 감비아, 가나, 기니비사우, 라이베리아, 말리, 니제르, 나이지리아, 세네갈, 시에라리온, 토고가 회원국으로 있다.
(10) 미쉘 런텀부&시몬 마소크, <중부 아프리카: pax tchadiana(차드가 주도하는 평화)의 위험과 숨겨진 이면>, 분석 보고서, GRIP, 브뤼셀, 2014년 2월 27일.
(11) 국제위기그룹, <카다피 없는 아프리카: 차드의 경우>, 아프리카 보고서, n.180, 2011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