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성을 잃은 브라질 좌파의 추락

2017-01-02     길레르미 볼루스

2016년 8월 31일, 브라질 상원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보수 성향의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브라질 좌파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한다. 노동자당은 부도덕한 행동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우파가 반격하고 있는 상황에 처했다. 주요 브라질 사회운동 단체 소속 임원이 현 상황을 분석한다.


2002년부터 노동자당(PT)이 대선에서 연속 4번 승리한 이후, 보수세력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무너뜨리고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교체하기 위한 재정비에 성공했다. 그러나 만약 노동자당이 그만큼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법적으로 매우 의심스러웠던 탄핵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을 것이다.(1) 노동자당은 민중시위 선동을 거부했고 여러 우파와 반복적으로 연합을 맺었으며(훗날 일부 우파는 노동자당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다), 사회 불만이 커질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긴축정책을 택했다.(2) 이와 같은 결정은 우파의 공세에 맞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 쉽지 않았다. 

전례 없이 가혹한 공공투자 동결정책

정권을 잡자마자,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은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의 처방전은 강도 높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내린 첫 번째 결정부터 브라질 근래 역사상 전례 없는 사회적 후퇴를 보여준다. 우선, 테메르 정부의 내각 구성을 보면 다양성과 양성균형은 그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 장관, 흑인 장관은 없고 지역 과두정치와 관련된 나이 지긋한 백인 남성 일색인데다가, 이들 다수는 부패 혐의가 있다. 게다가, 인권부와 농업개발부는 폐지됐다. 테메르 대통령은 문화부도 폐지하려 했지만, 다른 행정부처 폐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예술계가 강력하게 항의하자 폐지 계획을 취소했다. 

이러한 계획은 테메르 대통령에게 은행과 대기업의 지지를 가져다주지만, 계획이 표결에 붙여진 적은 없었다. 게다가 브라질 경제인과의 모임에서 테메르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서, 자신의 약속이 “재정조정을 우선순위로 두는 정책을 펼치는 데”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3) 달리 말하면, 테메르 대통령은 국민에게 강요한 정책의 대가를 치를 위험이 없기 때문에 더욱 단호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혹독한 정책이 예상된다. 테메르 대통령은 세 가지 제안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수립한다. 바로 공공지출 상한선 설정을 위한 헌법 개정(헌법 개정안 또는 PEC 241), 사회복지 ‘개혁’, 그리고 노동법 ‘유연화’다. 

‘PEC 241’은 향후 20년 간 모든 분야에서 공공투자 동결을 강제한다. 개정안에 의하면, 브라질 연방정부의 공공지출은 2037년까지 인플레이션 증가율만큼만 늘어날 것이다. 결국 브라질 인구에 비해 공공지출은 실질적으로 늘지 않는 것이다. 공공서비스의 붕괴, 사회복지정책 죽이기 같은 공공투자 동결정책은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수준이다. 필립 알스톰 유엔 빈곤 및 인권 특별보고관은 2016년 12월 9일 성명서를 통해 공공지출 동결정책으로 발생할 여파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테메르 정부가 내세우는 변명에 의하면, 브라질은 재정적자를 줄이고 공공부채를 상환해야 할 긴급상황에 놓여있다고 한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증가하고 있는 공공부채는 브라질 국내총생산(GDP) 대비 66%에 불과한, 유럽연합보다 낮은 수준이다. 하원에서 승인된 ‘PEC 241’은 2016년 12월 13일 상원에서도 승인됐다. 

사회보장 개혁도 마찬가지다. 테메르 대통령이 제시한 개혁안은 이미 권리 축소를 초래했던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의 개혁안에서 더 나아간다. 공식 법안의 세부 내용은 아직 의회에 제출되지 않았지만, 퇴직 정년을 최소 65세로 연장하는 내용은 이미 알려졌다(현재 퇴직연금을 충분히 냈다면 더 일찍 퇴직할 수 있다). 그런데 브라질 일부 지역에서는 기대 수명이 65세가 채 되지 않는다. 테메르 대통령의 세 번째 야망은 노동법 유연화와 ‘임금’ 감축이다. 그 방법은 모든 경제활동 분야에서 하청을 허가하고 기업 협상을 법적으로 우선시하는 것이다. 기업 협상의 경우, 이미 하원에서 해당 법안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고용자와 피고용자가 이미 협상을 했기 때문에 위법이 된 계약서를 이 법안을 통해 합법적인 서류로 인정해주려 하고 있다.

경제 기득권층은 우파 국회의원이 작성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 찬성을 초반에 주저했지만, 위 세 가지 제안을 보고 결국 탄핵에 동의했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2015년 구조조정 기본안을 마련하고 사회복지 개혁을 계획하면서 경제 기득권층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오산이었다.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의 정책은 경기 후퇴와 국민 불신을 악화시켰고, 은행과 기업은 정책 결정이 부실하다고 판단하면서 테메르 정권으로 교체되길 원했다. 

바닥을 드러낸 ‘윈-윈’ 합의 효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은 브라질경제 순환 모델의 종결을 의미한다. 지난 13년 간 노동자당은 부유층의 이익을 해치지 않으면서 극빈층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사회진보를 촉진하기 위한 ‘합의’를 강화하는 데 힘썼다. 그 결과 이익은 늘어나면서 빈곤도 개선됐다. 이렇듯,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은 합의정책의 대설계자였다.(4) 사회 ‘하위계층’은 최저임금 인상정책, 노동자의 구매력 강화 정책, 빈곤퇴치, 대학 진학, 주거 및 건강 관련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았다. ‘최상위 계층’ 역시 브라질 국영 경제사회개발은행(BNDES)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관대한 면세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역사상 전례 없던 이러한 특혜를 재검토한 적은 없었다. 거의 재분배가 안 된 세법은 재산이 부동산과 도시로 집중되는 수준 이상으로 수정되지 않았다. 노동자당은 브라질 지배계층 대부분이 보유한 부채의 상환을 보증하기 위해서 기초재정흑자 달성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유지했고 더 나아가 강화했다. 또한 노동자당은 민간기업이 미디어를 장악하는 상황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물려받던 정치 시스템의 윤활제인 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시도조차 없었다.(5)

‘윈-윈’으로 불린 이러한 합의는 경제성장 없인 불가능했을 것이다. 브라질 경제는 성장세였고(‘룰라’ 대통령의 두 번 연임 기간 경제 성장률은 평균 4%였다), 특히 이는 세계경제 호조 덕분이었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고 중국경제가 성장세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리한 경제상황 덕택에, 브라질 정부는 외화 보유고를 늘리고 최소한의 구조개혁을 감수하지 않고도 사회투자를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와 세계정세 변화로 브라질 경제 모델은 붕괴된다. 2009년 룰라 대통령이 실시한 정책 초반에는 브라질의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재앙을 지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014년 호세프 대통령 시절, ‘윈-윈’ 합의 효과가 바닥났다는 신호가 울렸다. 계층 간 이해 합의를 유지하기 위한 내용 변경은 제한적이었고, 호세프 대통령이 대안으로 내놓은 경기순응적 긴축정책은 위기를 앞당겼다. 노동자당의 주도권을 보장하던 사회적 합의가 끝났음을 알린 2013년 6월 시위에서 위기는 분명해졌다.(6) ‘라바 자투(Lava Jato, 세차용 고압분사기) 작전’이라 불리는 부패 척결 조사는 브라질 국영 에너지 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와 대기업의 투자력을 감소시키면서 당의 이미지를 훼손했다. 여당은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우파는 집결됐다. 이후 노동자당의 전략적, 제도적 실패는 확실해졌다.

이러한 상황으로 브라질 좌파와 사회 운동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다. 노동자당의 실패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공세를 부추기면서 진보진영에 영향을 줬다. 특히 부패 스캔들로 인해 국민의 눈에 좌파로 비친 이들의 도덕적 권위가 실추됐다. 또한 사태수습을 하지 못하는 당의 무능력한 모습은 위기를 악화시켰다.  

좌파의 위기, 급진성 회복이 해결책이다

노동자당은 35년간 브라질 좌파의 주도세력이었다. 또한 사회 운동 세력과 진보세력이 집결하는 곳이 노동자당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와 같은 역할을 맡은 노동자당의 능력은 약해졌다. 하지만, 이것이 노동자당의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룰라 전 대통령은 여전히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법과 언론의 폭력 속에서도, 차기 대선에서 최선의 선택은 당연히 룰라 전 대통령이다. 그러나, 노동자당은 활기와 결집력을 많이 잃었고, 노쇠해졌다. 노동자당의 빈자리를 채울 만한 세력이 전혀 없는 상황 속에서, 좌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현재 많은 저항세력, 특히 ‘PEC 241’과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에 대해 저항하는 이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더군다나 헤난 칼레이루스 상원의장이 공금유용 혐의로 기소된 상황은, 들끓는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집 없는 노동자 운동(MTST)’은 대도시에서 많은 시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소수정당이지만 사회주의자유당(PSOL)에는 노동자당을 떠난 호전적 국회의원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제안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족하다. 

따라서 진보주의자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한다. 우선, 반(反) 테메르 정부 시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진보세력을 결집하고 시위의 중대성을 노동자에게 알려야 하는 사회운동의 역량에 성패가 달려있다. 다음은 합의의 시대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정치 진영을 건설하는 것이다. 현재 충돌과 대립 없이 최소한의 사회적 진보를 생각할 수 없다. 기득권층과 우파는 이를 잘 알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나 프랑스의 마린 르 펜처럼, ‘아웃사이더’들을 이용해 국민의 분노를 거둬들이는 ‘새로운 우파’가, 위기로 증폭된 사회‧정치적 불만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어떤 해결책이 필요할까?

결론적으로, 좌파는 과거 집권하자마자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던 ‘급진성’을 하루 빨리 회복해야 한다. 정치 참여와 브라질 다양성 제시를 목표로 민주적 급진성을 되찾고, 정치 시스템과 생산 모델 변화, 미디어 개혁 등과 같은 야심찬 사회개혁 정책을 통해 희망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략적 급진성을 되찾아야 한다. 이러한 진영을 구성할 제도적 형태와 시기도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좌파 진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글·길레르미 볼루스 Guilherme Boulos
브라질 ‘집 없는 노동자 운동(MTST)’ 간사


번역·윤여연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로랑 델쿠르, ‘Printemps trompeur au Brésil (브라질 가짜 봄 반부패 운동을 가장한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6월호.
(2) 브레노 알트만, ‘Virage à droite pour le Parti des travailleurs(‘무늬만 좌파’인 지우마 브라질 대통령의 추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5년 5월호.
(3) <폴라 지 상파a울루>, 2016년 7월 30일.
(4) 제이자 마리아 호샤, ‘Bourse et favelas plébiscitent “Lula”(룰라의 집권 8년, 브라질은 정말 나아진 걸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0년 9월호.
(5) 라미아 우알랄루, ‘Au Brésil, “trois cents voleurs avec des titres de docteur”(‘강도질’하는 브라질 국회의원 300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1월호.
(6) 자네트 아벨, ‘Un pays retrouve le chemin de la rue(노동자당 집권 10년, 거리시위에 나선 브라질 국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