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왈로니아의 저항, 허세인가 돌파구인가

EU와 캐나다 간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

2017-01-02     라울 마르크제나르 ㅣ 정치학자
 
유럽연합(EU)과 캐나다는 2009년부터 EU-캐나다 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을 극비리에 협상해 2016년 10월 27일 체결 예정에 있었다. 그러나 서명식을 13일 앞두고, 사회당이 이끄는 벨기에 왈로니아 지방정부가 연방정부의 CETA 체결에 동의하지 않았다. 왈로니아의 반대는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있어 청천병력과 같았으며, 국민들에 대한 경멸심을 표출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결국 왈로니아 지방정부 총리인 폴 마그네트는 2015년 여름 그리스 총리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비롯해 ‘감히 순응하지 않은 자’들과 같은 처지에 놓였으며, 그는 유럽위원회의 포화를 받게 됐다. 협박을 동반한 마라톤협상 끝에, 마침내 왈로니아 지방정부는 새로이 구상된 협정에 동의했다. 일각에서는 왈로니아 지방정부의 동의는, 그리스 정부가 결국 긴축정책의 수용을 타협했던 것과 같은 경우로 해석한다. 그러나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왈로니아의 경우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전개된 결과이며, 타협으로 간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CETA에 관한 협상은 2013년 말에 최초로 결론지어졌다. 당시 유럽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조제 마누엘 바호주는 이 협정을 자신의 공적에 남기고자 캐나다 정부에게 빠른 시일 내에 서명식을 개최할 것을 종용했다. 이에 서명식은 2014년 9월 26일에 개최됐다. 협정문이 공개되자, 왈로니아는 공개된 협정문의 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벨기에 연방 헌법이 연방을 이루는 지방정부에게 부여한 일부 국제조약에 대한 비준 권한을 근거로, 왈로니아 의회는 협정문을 검토하고 전문가 및 법률가, 조합운동가, 협회계 대표 등에게 자문을 구했다. 사실상 유럽 내에서 이와 같은 조치를 한 곳은 왈로니아 의회가 유일했다.  
 
한편, CETA와 동시에 EU-미국 간에 추진되는 협정이 있는데, 바로 EU-미국간 범대서양자유무역지대(TAFTA)다. CETA와 TAFTA는 공통적으로 국가의 규제로부터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중재 장치가 있다.(1) 이 중재 장치는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조약 체결에 유보 입장을 표명할 정도로 상당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유럽위원회는 일부 수정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투자법원제도’를 제안했지만 기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재인은 여전히 존재했고, 규정은 이해 대립을 피하기 위한 강제성이 전혀 없었다. 
미미한 수정에 만족한 캐나다와 유럽정부는 새로이 서명식을 개최하기로 합의했지만, 왈로니아 의회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워했다. 왈로니아 의회는 2016년 4월 27일 결의안을 통해 CETA의 비준 전 시범도입에 반대하며, CETA 서명에 대한 권한을 벨기에 연방정부에게 위임하는 것을 거부했다. 왈로니아 의회는 협정문이 기존의 유럽 조약에 부합한지에 대해 유럽 사법재판소에 자문을 구할 것과, CETA를 각국의회의 비준을 전제로 하는 ‘혼합 협정’으로 규정할 것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왈로니아 의회는 ‘유감스럽게도 CETA에 포함되지 않은’ 구속력 있는 14가지 조항을 자유무역협정문에 신설할 것을 주장했다.(2) 바로 인권 및 근로권, 환경 규범에 대한 준수, 서비스 자유화에 관한 ‘포지티브리스트(원칙적으로 수입은 금지·제한하지만 수입이 자유화된 품목만을 열거한 상품 품목표-역주)’의 채택(공익서비스를 제외하고 해외기업에게 개방된 서비스 명단 기재), 문화다양성에 관한 유네스코협약 및 보호원칙의 준수, 식량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농업특례조항 기재, 농촌경제 보호와 자연 및 생물다양성 보호, 공설시장에 사회 및 환경조항 기재와 단거리 유통시 특혜 부여 가능성, 향후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투명성 보장 등이다. 이 조항들은 시민이 참여해 주요문제들로 제기한 것들이었다.
 
파리와 베를린을 비롯한 주요 수도에 영향을 준 왈로니아의 무모함은 이제 의회들이 의사를 표명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2016년 7월 5일, EU 각료이사회는 유럽위원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CETA를 ‘혼합 협정’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CETA에 관한 우려들을 해결하기 위해, 캐나다와 함께한 ‘공동 해석선언’이 채택됐다.(3) 그러나 10월 5일에 채택된 이 ‘해석선언’은 왈로니아 의회가 제시한 요구사항을 보장하지 못했다. 결국 2016년 10월 14일, 왈로니아 의회는 벨기에 연방정부에 권한위임을 재차 거부했다. 그러자, 벨기에와 캐나다는 왈로니아를 향해 격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캐나다 총리인 저스틴 트뤼도는 “1~2주 내 유럽이 캐나다를 비롯해 일개 국가와 진보적 무역협정에 서명하지 못하게 된다면, 향후 유럽이 어떤 나라와 거래할 수 있겠는가?”라고 질문했다.   
 
하지만 왈로니아의 요구가 극단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왈로니아는 자유무역협정의 원칙을 거부하거나 WTO협정을 문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영향을 완화시키길 바랄뿐이다. 하지만 왈로니아 정부는 재협상을 철저히 거부하는 캐나다 정부,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유럽정부와 대적하고 있다. (서명에 반대해) CETA 비준을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한, 왈로니아 총리 마그네트는 더욱 개선된 ‘해석선언’을 요구했다. 협상과 협박으로 점철된 며칠이 흐른 10월 30일, 새로운 선언과 38가지의 다른 부속서류가 채택됐다. 이 부속서류는 모든 당사국에 해당되는 불가분한 일련의 법 조항들로 구성돼 있다. 마그네트 총리에 따르면, 최종협정은 ‘그 자체로 협정의 수정안으로서 가치가 있는 보완서류 및 해설, 상세한 설명,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4) 이로써 왈로니아 의회는 서명에 승인했다. 타협과는 거리가 먼 왈로니아의 결정과 저항을 통해 우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최종안에 의하면, CETA는 유럽연합에서 시행된 사전예방원칙(확실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환경파괴의 위험이 있을 때는 적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원칙-역주)에 관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게다가 CETA내 ‘정규협력이사회’의 권한이 현저히 축소됐다. 만일 원안대로 진행됐다면 협력이사회는 조약이 채택되는 대로 사회 및 보건·산업·환경 규범의 적합성을 초월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민간 부문이 이의를 제기해 모든 법과 법규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었다. 캐나다와 유럽연합의 대표들로 구성된 이 이사회는 민주주의적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한 국가 또는 연합이 판이한 규칙의 도입을 제안할 때, 항상 이사회의 결정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최종안은 각 국가의 주권을 보호하고, 이번 협력의 결과에 대한 의무성을 모두 배제했다.
 
더 나아가 각국은 공공서비스와 관련한 자국의 규정을 따르며, 민영화된 서비스를 자국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다. 이러한 권리가 네거티브리스트의 기본방침(5)과 내국민대우 원칙(6)에 대한 효과와 상충하는 것일까? 아니다.
 
새로이 구상된 협정은 캐나다에 진출한 유럽기업에 유럽과 동일한 규정을 적용시키면서, 셸컴퍼니(기존 회사의 외형은 그대로 둔 채, 신생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기업을 지칭-역주)와 페이퍼컴퍼니의 운신의 폭을 제한한다. CETA의 혜택을 보려면, 이 기업들은 지역 경제와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7) 
 
워싱턴 협약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났던 민간기업과 국가 간의 분쟁조정제도는 대폭 수정해야 할 사안이었다.(8) 이에 당사국들은 중재에 대한 기본방침을 포기하고, (중재자와 달리) 사법권 고유의 윤리규정을 따르는 전문사법관에 의한 특별법원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것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상소기구를 본떠 창설된 것이다. 이 기구는 판례를 세우고 법적질서 및 동등한 접근을 보장할 것이다. 
 
 농업부문에는 보호조항이 신설됐다. 이 보호조항에 의해 CETA의 몇몇 조항은 ‘시장 불균형’ 초래 등의 요인으로 중단 될 수 있는데, 그 외에도 수입품의 양과 다른 요인으로도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지리적 표시 보호(농산품의 원산지를 보증하는 유럽 상표)관련 조항은 지리적 표시가 캐나다에서 부당하게 도용될 경우에 중단 목록에 추가를 허용한다. 환경보호와 같은 보호업무는 다음과 같이 강화됐다. 체결국은 보호업무에 관한 규제범위를 축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원안에 명시된 것과 달리, 체결국은 각종 결정과정에 있어서 투자자의 기대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서는 안 되며, 투자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이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 
 
CETA의 본문 자체는 변경되지 않았다. 벨기에 총리 샤를 미셸은 유럽의 지도자들이 결코 ‘작은’ 왈로니아(그래도 왈로니아는 연방의 7개 지방정부보다 인구가 많다)에 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한 자도 바꾸지 않았다”고 공언했다. 바뀐 점은 바로 조약이 시행될 방식이다. CETA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만장일치로 각국 의회의 비준이 전제돼야 한다.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며, CETA의 비준 반대투쟁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남아있다.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뤄냈으나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상당부분 남아있으며, 협상 중 제안하는 것에 신중했던 유럽 당국이 과연 개선된 조항을 준수할지에 대해 회의감을 품을 수 있다. 그래도 왈로니아 사회당원들은 모든 정부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가능한 한 많은 성과를 이룩했다. 이들은 지배적인 제도적 틀 안에서도 저항하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주요쟁점이 유럽연합 정상급 회의에서 제기되고 논의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글·라울 마르크제나르 Raoul Marc Jennar 
정치학자, 로랑스 카라파티데스와 함께 <L’AGCS. 국가가 다국적기업과 마주해 양위할 때>(래종 다지르, 파리, 2007)의 공동저자 및 <거대 범대서양 시장. 유럽인들에게 드리운 위협>(캅베어 에디션스, 페르피냥, 2013)의 저자.
 
번역·김세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브누아 브레빌 및 마르틴 뷜라르, ‘국가를 유린하는 다국적기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4년 7월호.
(2) ‘포괄적 경제·무역 협약에 관한 결의안’, 왈로니아 의회, 나뮈르, 2016년 4월 25일.
(3) 조약의 해석이 다양할 경우, 체결국은 모든 당사국에 의해 일원화된 해석을 포함한 부속서류에 합의할 수 있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의해, 부속서류는 그 자체로 조약의 조항과 동일한 강제성을 지닌다. 
(4) 유럽문제 담당 위원회, 왈로니아 의회, 2016년 10월 27일 공개회의.
(5) 목록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서비스에 대한 경쟁의 활로가 열려있다.  
(6) 자국 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외국 기업을 대할 의무(보조금, 지원 등).
(7)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설립한 조약의 제 54조에 의거해, 1962년 1월 15일 결정.
(8) 국가 간 및 타국국민간의 투자분쟁해결에 관한 협약이 1965년 3월 18일 워싱턴에서 체결됐다. 이 협약에 의해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가 창설됐으며, 투자분쟁의 2/3가 이곳에서 처리된다. 이 협약은 항소 기회를 배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