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터키, 동맹인가 숙적인가?
2017-01-02 모하마드 레자 잘릴리, 티에리 켈네르 레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003년 정권을 장악한 뒤 지속적인 동맹 관계의 독일과 대대로 오랜 숙적이었던 이란에 대해 타협적인 외교 노선을 채택해왔다. 그러나 유럽연합 가입이 무산되고 ‘아랍의 봄’ 혁명과 시리아 내전 사태가 불거진 후로는 독일 및 이란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갈등이 빚어지는 양상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터키와 이란 양국은 때때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수시로 적대 관계에 놓였지만, 그럼에도 양자관계에 있어서는 실리주의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랍의 봄’을 통해 양국 간의 뿌리 깊은 반목이 드러났고, 나아가 새로운 대립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서도 두 나라에서는 초기부터 이미 불협화음이 감지됐다.(1)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에 별 소득 없이 개혁을 권장했던 터키는 ‘주변국과의 마찰 제로’ 외교 정책에 따라 시리아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하면서도 시리아 반군을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아 기반의 대 중동 정책을 펴고 있는 이란은 터키와 정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다. 이란은 우선 시리아 정부를 지지하는 한편 헤즈볼라를 포함한 레바논 동맹 세력을 동원했고, 아울러 이라크 민병대와 다른 국가에서 온 자원대를 비롯한 시아파 세력을 규합한다. 이렇듯 이란을 중심으로 모인 시아파 지원군은 특히 동 알레포 함락 전투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최소한 2015년 9월 러시아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 이란은 시리아 정부의 최대 동맹국이었던 반면, 터키는 나토군이 자국 영토 내에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까지 했다.(2) 이는 러시아 공군이 터키 영공을 침범한 이후 내려진 후속 조치였지만, 시리아 측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기 위한 방어 조치이기도 했다. 이런 터키의 행보는 이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이란의 시각에서 이런 방어진의 구축은 부분적으로 자국을 향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터키는 2003년 미군의 순조로운 이라크 군사 개입을 도와주지 않은 시점부터 독립적인 대미 외교 정책 노선을 추구해왔지만, 이란은 터키가 이러한 대미 의존도 극복 정책을 폐기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2015년 7월에도 터키는 미군이 IS 군대 폭격 작전을 위해 터키의 인지를릭 공군 기지에서 비행기를 이륙시킬 수 있도록 허가해준 바 있다. 비록 이 같은 조치가 IS의 진군을 막는 데에 유리하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테헤란은 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미국과 터키가 다시금 손을 잡는 한 방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2015년 초 시리아 문제를 두고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3국은 반군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히고 상호 공조 활동을 합의하는 등 서로 간에 의견의 일치를 봤는데, 이란은 이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었다.(3) 이에 따라 이란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초래된다. 2015년 3월 말부터 반군 세력이 다른 지역으로까지 계속해서 진격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에 테헤란은 결국 모스크바의 개입을 부추긴다.(4)
이란 핵 문제에 관해서는 2015년 7월 합의가 도출됐지만, 이란과 터키는 각각 서로에게 ‘테러 진영’을 지지한다고 비난하며 시리아 사태를 두고 언쟁을 벌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IS가 쥐고 있는 시리아 유전에서 터키가 석유를 들여오는 것에 대한 이란 언론의 비판을 결코 달갑게 보지 않았다. 보다 놀라운 사실은 일부 원유 대국과의 교류 확대를 추진하는 차원에서 터키가 2016년 5월 역내 최대 동맹인 카타르 영토에 군 기지를 신설했다는 점이었다. 터키의 이러한 군사적 행동은 2015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정식으로 출범한 수니파 동맹(터키 및 카타르 포함)의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오스만 제국 멸망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페르시아 만 지역은 이란이 으레 자국의 영향권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여기에 터키 세력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은 물론, 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이란 정부의 우려를 사기에 충분했다.
터키와 이란이 역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였지만, 에너지 교역 및 경제 교류에 있어 양국은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터키는 이란으로부터 석유와 가스를 구입하는 반면, 이란은 터키산 소비재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국 간의 정치적 대립은 교역량의 감소로 이어지는데, 2012년 218억 9천만 달러였던 무역 규모는 2014년에 137억으로 줄어들고, 2015년에는 97억 수준으로 급감한다. 이 같은 교역액의 감소에는 물론 유가 하락도 일정 부분 작용했지만, 어쨌든 양국이 정한 목표 교역량인 350억 달러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15년 11월 27일 터키 전투기가 러시아 항공기를 요격하자 이란은 곧 러시아와 터키 사이에 고조된 위기를 중재하고자 나섰는데, 여기에는 터키와의 관계 개선을 꾀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2016년 봄에는 이란과 터키가 테러 관련 협약을 체결하고 석유 및 가스 부문의 전략적 공조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양국의 외교 노선에서 실리주의가 우선한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2016년 7월 16일 새벽 터키에서 시도된 쿠데타도 이란이 (본의 아니게) 터키에 화해의 제스처를 표하는 계기가 됐다. 아직 쿠데타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란 외무부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터키 정부에 지지 의사를 보냈으며, 이어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주재한 이란 최고국가안전위원회에서도 ‘터키의 적법한 정부’에 대한 공식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러한 즉각적인 반응은 에르도안 정부의 동맹이었던 NATO 회원국들이 보여준 늑장 대응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쿠데타 실패 후 얼마 뒤에 로하니 대통령이 역내 문제에 관한 논의를 제안했는데, 이를 통해 이란은 터키 정부에 시리아 문제에 대한 입장 재고를 권유했다.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나라는 곧 화해의 급물살을 탔고, 세 가지 주요 안건들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과거 로하니 대통령의 취임 3개월 후 양국이 비밀리에 가진 회동에서 이미 논의가 이뤄졌지만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했던 안건들이었다. 이에 따라 시리아의 영토 보존, 무장 과격 테러리스트들의 척결, 그리고 유엔 감독 하에 치러지는 선거를 통한 단일 정부 수립 등 세 가지 목표 과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5)
그러나 이들 사항에 대한 형식적인 합의는 이뤄졌을지언정 양측의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두 나라의 유대 관계를 약하게 만들었다. 미국과 터키는 7월 쿠데타의 실패 이후 경직됐던 양자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려 노력했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9월 초에 회담을 가진다. 특히 2016년 8월 24일 터키는 이란 측에 알리지도 않은 채 워싱턴과의 공조 하에 시리아 북부에서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을 실시한다. 이에 당황한 이란 정부는 터키가 역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비난하며 동 작전에 대해 “시리아의 주권 침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이란의 반발에도 터키는 작전을 보다 확대해 시리아 영토 내에 사실상 반군을 위한 ‘안전지대’를 설정한다. 동 알레포의 반군 지역 함락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성역이 마련됐다는 것은 특히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이란 정부의 구미에는 분명 맞지 않는 처사였다.
이란과 터키는 공식적으로 관계 완화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양국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때 비공식 회담을 가진 것에서도 이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역내 정치 현안에 관한 두 나라의 입장은 계속해서 엇갈린다. 언제나 시아파 노선을 따르는 이란의 대외 정책에 맞서 에르도안 대통령도 조금씩 수니파를 지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모술 재함락 전쟁과 관련해서도 터키 대통령은 테헤란이 지지하는 민병대의 현지 주둔이 수니파를 위협하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이라크 국경 쪽에 군대를 집결시키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만에 하나 수니파가 (투르크메니스탄 소수민족의 대규모 거주지인) 텔 아파르 및 모술 지역에서 IS 공략 작전으로 인한 피해를 입게 될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렇듯 터키가 이라크 내 이란 기지에 대해, 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이란의 대이라크 관련 정책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추후 터키가 트럼프 신임 정부와 가까워지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란에 대한 신임 미 대통령 및 그 보좌관들의 발언 내용을 감안할 때, 만일 터키의 이러한 행보가 정말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란으로서 이는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글·모하마드 레자 잘릴리 Mohammad-Reza Djalil
티에리 켈네르 Thierry Kellner
모하마드 레자 잘릴리는 제네바 국제 개발 고등교육원 명예교수이며, 티에리 켈네르는 브뤼셀 자유대학 정치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100가지 문제로 알아보는 이란 L’Iran en 100 questions>(Tallandier, Paris, 2016)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술레이만 시대의 오스만 제국> 등의 역서가 있다.
(1) 모하마드 레자 잘릴리 및 티에리 켈네르, <‘아랍의 봄’ 맞은 이란과 터키: 중동 지역의 새로운 전략적 경쟁 관계로 나아가나? L’Iran et la Turquie face au “printemps arabe”. Vers une nouvelle rivalité stratégique au Moyen-Orient?>, 평화 안전 정보 연구회(Groupe de recherche et d’information sur la paix et la sécurité, GRIP), Bruxelles, 2012.
(2) 모하마드 레자 잘릴리 및 티에리 켈네르, ‘Iran’s Syria policy in the wake of the “Arab Springs”’, <Turkish Review>, vol. 4, n° 4, Istanbul, 2014.
(3) ‘Turkey, Saudi Arabia agree to boost support to Syria opposition’, Anadolu Agency, 2015년 3월 2일.
(4) Laila Bassam & Tom Perry, ‘How Iranian general plotted out Syrian assault in Moscow’, Reuters, 2015년 10월 6일.
(5) Julian Borger, ‘Iran and Turkey’s secret talks on Syria revealed’, <The Guardian>, London, 2016년 1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