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가득한 해녀의 바당

2017-01-02     김지연
   
 

출렁이는 바당(1)의 수면 위에는 주황색 테왁(2)들이 동그랗게 떠 있다. 잠시 후 하나둘씩 잠수복을 입은 해녀들의 머리가 올라오고, “호오이 호오이”하는 낯선 소리가 들린다. 휘파람 소리 같기도, 새소리 같기도 하다. 오랜 시간 동안 참았던 숨을 내뱉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다. 숨비소리 안에는 살기 위해 깊은 바다 속에서 숨을 멈췄던 위험한 시간과 그것을 이겨내고 다시 숨을 이어 나가는 강인한 생명력이 동시에 담겨 있다. 


제주의 문화라 하면 대개 해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제주해녀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로 알려진 한편, 제주 여성의 척박한 삶과 험난한 노동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에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강인한 어머니’라는 피상적인 이미지 외에 그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오래 전 흥행했던 전도연 주연의 영화 <인어공주>에도, 19세기의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탐나는도다>에도, 최근의 영화 <계춘할망>에서도 해녀가 등장하지만 해녀문화에 대해 충분히 그리기보다는 기존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전후로 제주해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단지 오랫동안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다는 초인 같은 기록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아닐 것이고, 단순히 맨몸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를 우리나라와 일본 아니면 찾아볼 수 없다는 희소성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제주해녀문화의 특별함은 여성, 생태, 공동체 중심의 작업 방식과 그 오랜 역사에 있다. 

상생과 배려가 녹아있는 해녀들의 문화

아마 신석기시대의 자맥질로부터 시작됐을 것이라고 추정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제주의 해녀들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으며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의 질서를 무엇보다 중시하며 일한다. 제주에는 현재 약 100여 개의 어촌계가 있는데 어장의 경계, 해산물 채취 자격, 각 해산물들의 채취 방법과 기간 등을 모두 어촌계와 해녀회의 자치규약으로 정하고 있다. 매일의 물질도 공동의 결정에 의한다. 물질은 바람과 물살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기가 오면 마을 잠녀회의 해녀들이 모여 공동의 결정 하에 작업을 시작한다. 준비가 빠르다고 앞서 나가거나 한 사람씩 자유롭게 작업하는 법은 절대 없다. 모든 사람이 불턱(3)에 모여, 잠수복을 입고 바닷물에 잠기기 쉽도록 ‘연철’을 허리에 차고 물안경인 ‘눈’에 김이 서리지 않도록 밑작업을 한 뒤 테왁망시리를 어깨에 둘러메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나머지 사람들은 기다린다. 누군가 서두르면 느린 사람은 미처 준비를 마치지 못한 채 바다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은 곧 부상이나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해녀들은 잠수 실력에 따라 상·중·하군으로 나뉜다. 상군 중에서도 실력이 좋고 나이가 많은 해녀는 ‘대상군’으로 불리며 해녀 공동체의 수장 역할을 한다. 하군은 가까운 바다에서 해초나 흔한 해산물들을 채취하고, 상군은 길게는 3분 동안 해저 20여 미터까지 잠수하며 손바닥만한 전복을 캐낸다. 하군의 입장에서는 상군의 바다가 탐날 법도 하다. 그러나 해녀들에 따르면 어떤 군에 속할지는 거의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고 한다. 하늘이 정해준 타고난 실력이 아니면 상군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각자의 능력에 맞는 바다에 들어가며,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다. 자신의 잠수실력을 넘어 무리한 욕심을 부리면 물숨(4)을 만나게 되고, 다시는 뭍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상·중·하군의 바다 외에 나이가 많은 해녀들을 위한 ‘할망바당’도 있다. 물살이 세지 않고 얕은 바다를 늙은 해녀들을 위해 내어 주는 것이다. 물론 할망들의 수확물은 젊은 해녀들만큼 풍성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스스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들에게 할망바당은 소중하다. 상군 해녀들은 할망들의 망시리에 자신이 캐온 것들을 한 두 개씩 슬쩍 넣어 주기도 한다. 또한 생리 중인 해녀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데,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등이 공격하면 공동체 전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해녀들이 그를 위해 해산물들을 모아 주고 그것으로 생계를 꾸린다. 임신·출산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상생을 중시하고 서로 배려하는 해녀들의 문화다. 예측 불가능한 거대한 자연으로 매일 뛰어 들어야 하는 그들의 지혜이기도 하다. 
한편 해녀들은 물 밖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해녀들이 작업 전후로 휴식을 취하는 불턱은 단순한 휴식공간이 아니라 해녀들만의 규율과 질서가 존재하는 공간이자 기술을 전수하고 친목을 다지기도 하는 곳이었다. 한 마을의 주민이기도 한 해녀들 간에 갈등이 있더라도 불턱 내에서 대상군의 중재 하에 이를 해결하고, 다시 서로에게 목숨을 의지하는 동료로 돌아가곤 했다. 이렇게 공동체 의식이 강한 이들은 사회 참여도 적극적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제주해녀항일운동을 이끌었고, 물질에서 얻은 수익으로 기금을 조성해 마을의 길을 정비하거나 학교를 신축했다. 마을을 위해 수고하는 이장에게 수익을 몰아주는 ‘이장바당’, 학교를 짓기 위한 ‘학교바당’ 등을 지정하기도 했다. 여성을 중심으로 이뤄진 해양공동체 문화를 구성하는 이 모든 것이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삶을 위해 죽음 앞으로 달려드는 삶

문화유산이라고 불릴 만큼 의미 있고 아름다운 해녀문화지만, 그들의 삶은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다. 여성은 바깥일을 하지 않았던 육지와 달리, 제주의 여성들이 바다로 나서야만 했던 것은 척박한 섬에서의 삶 때문이었다. 섬의 땅은 농사만으로 생계를 꾸리기에는 척박하고, 남자들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기 일쑤였다. 찬 바닷물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남은 가족의 삶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여성이 직접 경제력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현실의 삶은 고됐다. 물질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밭일과 집안일, 육아가 이어졌다. 거친 바다 앞에서, 혹은 찰나의 욕심이 불러 온 물숨 앞에서 동료나 가족을 잃기도 하고,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기도 했다. 
 
우도 해녀들의 삶을 7년 동안 따라간 다큐영화 <물숨>에서, 한 늙은 해녀는 열일곱 살 어린 딸을 바다에 묻던 날을 회상한다. 물살이 센 그 날 바다로 들어간 딸은 돌아오지 않았고, 먼 마을에서 딸의 테왁만 발견됐다. 바다가 무서웠지만, 남은 어린 자식들 때문에 다시 바다에 들어갔다고 한다. 또 어떤 딸은 물숨을 들이킨 어머니의 시신을 직접 건져내야 했고, 누군가는 상어에 물려 죽는 동료를 눈앞에서 바라봤다. 그래도 이들은 “숙명”이라며 다시 바다에 들어간다. 살아야하기 때문에 죽음 앞으로 다시 달려드는 삶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해녀들의 물질에 대해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도 한다. 이들은 원래 강인했던 것이 아니라, 온갖 고난을 겪고 강인해져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자신에겐 숙명이지만 딸에게는 절대 시키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일본에도 해녀와 비슷한 ‘아마’가 있다. 일본에서 이 아마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려 강력 추진하면서 제주해녀의 등재가 위태로워졌고, 그로 인해 국내에서 아마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마는 제주해녀와는 작업 방식이 다르다. 제주해녀가 테왁에 의지해 혼자 해산물을 채취하는 데 비해, 아마는 보통 2인 1조로 한 명이 배 위에서 밧줄을 고정하고 나머지 한 명이 물질을 하는 방식이다. 아무래도 잠수실력이나 작업방식에 있어 제주해녀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으며,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현재까지는 수적으로 제주해녀가 일본 아마에 비해 우세하다.
 
한편 제주도는 10년 전부터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준비를 해왔으며, 2007년 일본에 공동등재를 제안했었다고 한다. 그러자 일본은 갑자기 아마를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하더니 드라마 제작, 아마 축제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학자들과 외교채널까지 적극 합세해 “아마가 해녀문화의 원조”라고 전 세계에 홍보했다. 그 결과 2013년 <르몽드>에서는 아마에 대해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그간 속수무책이던 우리나라 문화재청은 2015년 3월에야 뒤늦게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을 했다. 그 사이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수중촬영전문 사진작가 와이진은 수많은 제주해녀의 사진을 찍었고, 박람회 등 국제무대에서 제주해녀문화를 알리는 ‘해피 해녀 프로젝트’를 자력으로 진행했다. 또 작년 7월 SBS스페셜에서 제주해녀와 아마의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한 한·일 간의 갈등과 각국 대처에 대해 집중 취재한 <해녀삼춘과 아마짱>을 방송하고, 뉴욕한국문화원의 지원으로 사진작가 김형선의 해녀 사진전이 뉴욕에서 열려 이목을 끄는 등 문화계에서는 다방면으로 제주해녀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 달 1일, 제주해녀문화는 등재가 확정되며, 아리랑, 농악, 줄다리기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19번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해녀, 해남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도록

아름다운 제주해녀문화가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되고 널리 알려진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등재 확정은 사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미 일본의 공격적인 노력으로 세계에 알려진 아마를 넘어 제주해녀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살아 있는 문화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고령화된 제주해녀의 숫자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반면, 아마가 되고 싶다는 일본 청소년들이 늘어나서 아마는 점차 젊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나에게는 바다가 숙명이지만, 내 딸은 공부시켜 육지로 보낼 것’이라는 해녀 할망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물질은 내 소중한 생계수단이자 직업이지만, 너무 힘들고 위험한 일이며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기에, 내 자식은 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해녀를 가업으로 잇지 않는 것은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결정이다. 
 
제주해녀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자랑스럽게 여겨진다면, 그것의 전승과 발전도 함께 이뤄야 할 것이다. 다른 전통문화도 그러하듯이 ‘그들’에게 미뤄만 둔다면 문화는 점차 힘을 잃고 사라진다. 또한 해녀문화의 전승을 위해 제주여성들에게 계승을 강요하는 것 역시 소외를 반복하는 일이다. 등재 사실에 기뻐하며 그것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해녀가 될 수 있도록 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는 것, 그리고 해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나도록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문화재청과 지자체가 할 일이 아닐까. 다행히도 등재 확정 이후, 고령 해녀 및 신규 해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해녀들의 주 수입원인 소라 가격 안정 등 각종 지원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이 장기적으로 유효할지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물숨>에 등장했던 해녀 할망들은 다시 태어나도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노쇠해 물질을 못 나가고 방 안에 있더라도 숨비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늦게라도 물질을 배워 해녀가 되고 싶다는 젊은 육지 사람들이 있다. 해남을 꿈꾸는 남성들도 있다. 누군가는 해녀학교에 입학했고, 누군가는 이미 수료하고 해녀인턴이 됐다.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등재가 확정되던 날에도 이들은 등재여부와 상관없이 물질을 했을 것이다. 세간의 관심은 화려하게 눈에 띄는 화제의 물살을 따라 떠들썩하게 흐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소중한 문화의 의미나 미래의 희망은 상이나 찬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주해녀문화의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해녀의 깊은 바다에, 그들의 숨비소리 속에 있었다.  


글·김지연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무석사를 받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2006~2008년) 싸이월드 페이퍼와 올리브TV홈페이지 등에 미술에세이를 연재했다. 미술전문지 <그래비티 이펙트(Gravity Effect)>의 미술비평공모에 입상했다.

(1) ‘바다’의 제주 방언
(2) 해녀의 기본적인 물질 도구. 예전에는 박의 속을 파서 만들었으나 현재는 스티로폼으로 만든다. 망시리를 달아 채취한 수산물을 담고, 테왁의 부력을 이용해 작업 중간에 몸을 의지해 쉬기도 한다. 
(3) 바닷가에 돌로 둥그렇게 담을 쌓고 그 안에서 불을 피워 해녀들이 물질 준비 및 휴식을 취하는 곳을 말한다. 지금은 현대식 탈의실로 바뀌었다.
(4) 물속에서 숨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들이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