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된 도발

2017-01-02     미카엘 포주르

루이스 부뉴엘 감독뿐만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 베르너 헤어조크, 노먼 메일러 감독들도 찬사를 보낸 책이 있다. 바로 1977년에 프랑스어로 출간돼 2쇄를 발행한 아모스 보겔의 <전복 예술로서의 영화>(1)다. 300개의 삽화가 풍부하게 실린 이 책은 약 600편의 영화에 대해 설명하며, 작가주의 영화와 전위영화가 파괴적인 위력을 지녔음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이 장르의 영화들이 대담한 형식을 보여준다며 높이 평가했으며, 1960~70년대의 격동기와 맥을 함께해 현대적인 예술미학과 뜨거운 정치적 희망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40년 후, 이 책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는 대항문화 사상이 실패를 거뒀다. 물론 에이모스 보겔은 이전부터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자본주의를 파괴하기보다는 ‘파괴의 파괴’라는 방식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부흥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과감한 형식, 초현실주의적 미학, 터부를 넘나드는 대담함, 도발은 부르주아의 질서에 타격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광고와 할리우드에서 차용됐다. 스캔들이 오히려 고수익을 가져오는 일이 많다. 하지만 1974년은 철학자 미셸 클루스카르가 이론화한 극단적인 자유주의의 전환점을 인식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였다.(2) 뿐만 아니라 이성적 진보를 믿던 시대가 지나고 이성적 진보를 더 이상 믿지 않는 포스트모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공포영화는 ‘전복’, 정확히 말하면 ‘질서의 위반’과 연관이 깊다. 공동저서 <공포의 표현>(3)에서 프레데릭 아스트뤽은 추리, 에로티즘, 공포를 아우르는 이탈리아 영화의 장르이자 고어 영화처럼 유혈 낭자한 폭력이 난무하는 ‘지알로’, 그리고 차마 보기 힘든 극단적인 장면을 매번 선보이며 공포를 새롭게 표현하는 다양한 파생 장르를 소개한다. 

요약하면, 지알로 장르의 선구자 마리오 바바 감독부터 지알로 장르의 개척자 다리오 아르젠도 감독까지, 공포영화의 고전인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부터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까지 소개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당시 시대를 반영하고 전후 사회의 큰 변화를 맞아 점차 검열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준다. 한편 벤자민 토마스 감독의 영화는 마치 일본 공포영화를 연상시키듯 현대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인간관계를 공포스럽게 다루며 완전한 상호주관성(나의 시각과 타인의 시각의 일치)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2000년대에 등장한 ‘스플래터 무비’는 사디즘과 여성 혐오를 반영해 논란의 중심에 선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다.(4)  평단에서는 별로 큰 호평을 받지 못했으나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둔 스플래터 무비는 극단적으로 잔인한 장면 묘사에 치중한다. 영화 <쏘우> 시리즈의 포스터(뽑힌 이빨, 잘린 손가락, 절단된 팔다리 등)를 생각하면 된다. 파스칼 프랑세는 스플래터 무비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공포영화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1970년대까지 공포영화는 현대사회와 대립하는 장르에 속했으나(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하고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스플래터 무비는 “정치든 예술이든 윤리든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세상,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혼란 속에서 불확실하고 우연이 난무하는 혼란 속에서 섹스와 죽음만이 영원불멸한 소재가 되는 세상”을 내세우며 탄생했다. 파스칼 프랑세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조에 반기를 드는 스플래터 무비가 새로운 시각과 낯선 미학을 공포영화로 재현하고 의문점을 갖는 힘과 불편함의 미덕을 영화로 재현했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던적인 방식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스플래터 무비는 냉소와 조롱이 없는 표현 방식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고 고문과 신체 절단을 클로즈업해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그렇다면 스플래터 무비의 미학은 관객을 무엇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있으며 무엇을 추구하는가? 줄리아 크리스테바(5)의 말을 인용해 ‘방향이 무너지는 곳으로 나를 이끄는 역겨움’을 표현하려는 것은 아닐까? 시대가 위기를 맞으면, 우선 중심 가치가 무너지고 그 다음에 시대 상황에 맞는 혁신적인 전복 운동이 일어났다. 혁신적인 스플래터 무비는 이데올로기가 무너진 시대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방향 상실 말이다. 


글·미카엘 포주르 Mikaël Faujour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Amos Vogel, <Le Cinéma, art subversit>(전복 예술로서의 영화), Capricci, 파리, 2016년
(2) 참고할 도서 : Michel Clouscard, <L'Être et le Code. Le procès de prodiction d'un ensemble prècapitaliste>(존재와 코드. 초기 자본주의가 완성되는 과정), L'Harmattan, 파리, 2004년 / <Néofascisme et idéologie dú désir>(네오파시즘과 욕망의 이데올로기), Delga, 파리, 2008
(3) Frèdéric Astruc, <Représenter l'horreur>(공포 표현), Rouge profond, 액상프로방스, 2015년
(4) Pascal Françaix, <Toture Porn. L‘horreur postmoderne>(스플래터 무비. 포스트모던 시대의 공포), Rouge profond, 2016년
(5) Julia Kristeva, <Pouvoirs de l'horreur. Essai sur l'abjection>(공포의 권력. 역겨움에 관한 에세이), Points Essais, 파리,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