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세계는…

2008-10-29     주섭일 | 본지 명예회장

 세계를 진동시키는 글로벌 금융 위기에 대한 처방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G7정상회담, G20경제장관회담, 유럽 27개국 정상회담, '유로존' 15개국 정상회담이 미국발 위기에 응급 처방을 가했다. 그러나 위기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바로소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0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미대통령과 회담, "새로운 금융 질서를 창설하기 위한" G20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G8과 한국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 12개국 정상이 11월 15일 뉴욕에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 구축을 위한 회담을 갖기로 결정했다.  
유럽연합 순번제 의장인 사르코지는 부시와의 회담에서 1944년 7월 출범한 브레튼우즈 체제의 근본적 개혁을 제안했다. 유럽의 목적은 "새로운 세계 금융 질서 구축을 위한 규제, 감시, 관리의 규칙을 마련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미국은 "브레튼우즈를 고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견을 보였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오늘의 파국을 앞으로 재생산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브레튼우즈를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대공황 망각, 신자유주의가 화근
지금까지 파산한 은행들의 국유화, 공적자금 투입, 국가의 은행 대출 보증으로 급한 불길을 잡기는 했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여전히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국가가 일반 예금까지 지불 보증을 서기로 했음에도, 뉴욕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 증시는 연일 기록적 대폭락을 계속하며 요동치고 있다. 부시와 영국 고든 브라운, 독일 메르켈 총리가 자본주의의 벼랑 끝에서 은행 국유화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발상이지만, 신자유주의자인 부시와 메르켈은 국유화를 감수해야만 했다.
여기서 1929~1933년, 자유 무역과 상업자본주의가 빚은 대공황이 상기된다. 이번 위기는 1930년대 대공항의 교훈을 망각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 때도 은행과 기업들의 줄도산, 실업자 홍수에다 인플레이션으로 자본주의 멸망의 공포에 떨었다. 미국 루즈벨트는 뉴딜 정책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중도 좌파 정부의 사회 보장 처방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프랑스의 인민전선 정부가 유급 휴가를 최초로 실시했고, 미국은 최초로 사회보장법을 선포했다. 독일은 자본주의 구출을 명분으로 완전 고용을 공약한 나치 히틀러가 집권했다. 소련은 스탈린주의로 철저한 계획 경제와 사회 집단화를 강화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대공항의 교훈을 살려 새로운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열었다. 국가의 시장 규제를 주장한 케인즈의 해법, 기업이 종업원의 사회보장비를 부담한 포드주의, 그리고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1945년부터 '황금의 30년'을 열었다. 이는 대공황의 반성으로 구미 선진국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창안한 새로운 민주적 경제 체제였다. 프랑스의 혼합 사회, 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 스칸디나비아 복지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국가가 모두의 행복을 보장한 시스템이다. 시장 경제에 사회주의 정책을 효율적으로 접목함으로써 시장과 인간 사회가 균형을 잡는,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룬 사회복지체제다.
카지노 자본주의, 인간 자본주의로 대체돼야
1970년대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시장 경제를 비효율, 비생산적이라는 이유로 공격했다. 영국총리 대처는 노조를 파괴하고 사회보장제를 허물며, 국영기업과 조달청 철도청 등 일부 정부까지 민영화했다. 대처와 미국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는 1989년 공산주의 멸망을 계기로 세계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산업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로 대체된 것이다. 21세기에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 정부조차도 대처의 신자유주의를 계승했다. 블레어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대륙의 사회적 시장 경제를 공격했다. 독일 사민당 슈뢰더 총리는 블레어의 권유로 신자유주의 개혁 '2010'을 가동시켰다. 아이슬란드, 벨기에, 네덜란드가 뒤를 이었다. 영국, 독일, 벨기에의 거대 은행이 파산으로 국유화된 이유다.   
문제는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증권 시장 폭락으로 기업에 자금 조달이 안 되면 1930년대 대공황이 재현될 위험이 많다. 부시는 신자유주의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새로운 세계가 뜨고 있다. 국가가 규제하고 관리하며 윤리화할 때 위기의 출구는 열릴 것"이라며 대전환을 강조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후쿠야마 등 미국의 석학들이 신자유주의 종식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대공황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모든 세계 지도자들이 공조하고 있어 희망적이다. 새 브레튼우즈 체제 구축으로 '카지노 자본주의'를 인간 자본주의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