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이냐, 광산이냐?

스웨덴 북부의 광산개발을 둘러싼 갈등

2017-02-01     세드릭 구베르뇌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 <세계의 부족들> 시리즈, 2016 - 안느 드 반디에르 www.annedevandiere.com
스웨덴 북부에서는 새 광산의 개설에 찬성하는 이들과, 이를 반대하는 사미족 간의 갈등이 점점 팽팽해지고 있다. 자연 보존에 충실한 원주민, 사미족은 민족자결의 원칙을 열망하나 이는 스웨덴 법체계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사법부에서 내린 결정이 판세를 뒤바꿀지도 모른다. 
 
삼림도로 근처에서 순록 몇 마리가 풀을 뜯어먹고 있다. 우리의 안내를 맡은 시민활동가 토르 룬드베리 투오르다는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저들은 무리에서 뒤처진 순록들이다. 봄이 되면 (스웨덴과 노르웨이 국경에 있는) 고지대에서 제 무리와 합류한다. 암컷들은 매년 같은 산에 와서 새끼를 낳는다.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오르다 자신은 순록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목축업을 지속하는 이들은 사미족 중 10%에 불과하다. 그러나 순록은 사미족과 긴말한 관계를 맺고 있고, 투오르다는 순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과거 스웨덴 호적에 그의 이름이 단지 ‘토르 룬드베리’라고만 기록됐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내 조부모를 ‘표가 나지 않는 사미족’이라 부른다. 그들은 스웨덴에 동화되어 스웨덴 이름을 썼다. 나는 학교에서 스웨덴어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후 자칭 ‘개인적인 탈식민화 과정’을 거쳤다. 스스로 사미족 언어를 배웠고, 조상의 성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산업은 자연을 파괴하며, 
식민주의적이다”
 
투오르다가 차를 세웠고, 우리는 숲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설명했다. “이건 숲이라 부를 수 없다. 소나무와 자작나무만이 자라는 공간이다. 생물종도 적고, 생물다양성도 희박하며, 그러니 순록의 식량은 거의 없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이탄이 가득한 호수 수면이 반짝였다. 투오르다는 오두막들과 못으로 고정시킨 널빤지를 가리켰다. “우리가 지금 와 있는 곳은 칼라크다. 우리 사미족은 여기서 야영을 하며 광산건설 계획에 반대하다가 경찰에게 쫓겨났다.” 그는 더 먼 곳에 있는, 이끼 낀 통나무 장작을 가리키며 예전 오두막의 흔적이라고 덧붙였다. 주위 나무들에 걸려 있는 파랗고 노란 끈들은 스웨덴 당국이 나무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미족이 여기서 아득한 옛날부터 살았다는 증거다. 사미족의 옛 종교에서는 모든 나무와 물줄기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는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산업은 단기적 이익밖에 보지 못한다. 산업은 자연을 파괴할 것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크고(약 1만㎢), 가장 북쪽에 위치한 노르보텐은 순록치기들과 갱내 광부들의 땅이다. 유럽연합에서 소비되는 철의 약 90%가 바로 이 노르보텐에서 나온다. 국영기업 LKAB는 ‘에펠탑의 6배 높이에 이르는’ 일일채굴량을 자랑한다. 이렇게 채굴된 철은 철도로 이송돼 룰레오 항구에서 발트해로, 나르비크 항구에서 노르웨이해로 수출된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초 험난한 전투를 벌이며 서로 차지하려던 그 유명한 ‘철로’다. “룰레오 강에 15개 댐이 건설됐는데, 이는 주로 전동열차의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이 모든 산업활동을 식민주의적이라고 본다.”
 
2013년 여름, 사미족 주민 수십여 명이 이곳에서 야영하며 영국광산기업 베오울프의 시추 작업을 중단시키려 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탈세계화주의 투쟁가와 환경운동가, 칠레 마푸체족을 비롯한 원주민 부족 대표가 이들을 지지했다.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사미족 주민들은 독일 원자력반대 운동가들이 고안해낸 시위방식을 택했다. 즉, 도로 중간에 고정된 콘크리트 받침대에 자신의 몸을 묶는 것이다. 
경찰이 이들을 내쫓았고, 탐사시추가 이뤄졌지만 항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 40km 떨어진 요크모크 마을에서 우리는 한 30대 남성을 만났다. 칼이오한 웃시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광산 건설에 직접 관련된 두 사메뷔(1) 중 하나인 ‘시리에스’의 대변인이다. “우리 사메뷔는 1백여 명의 목축업자로 이뤄졌으며, 계절에 따라 노르웨이 산맥에서부터 발트 해 근처에서 1만 6천여 마리의 가축을 방목한다.” 사메뷔는 국가 소유인 이 영토의 사용권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웃시는 이 광산건설 계획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우리는 베오울프 사에 명확한 의지를 보여줬다. 댐과 도로, 철도, 플랜테이션 농장, 관광업, 풍력발전소, 그리고 기후온난화 사이에 이제 개발은 더 이상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지론이다. 이미 지금도 과도한 개발이 이뤄졌다. 광산은 우리 순록들의 방목장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 광산 지지자들은 우리를 자기 생활방식과 순록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는 자연과 벗하며 살아왔기에 자연을 잘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책임을 막중히 여기며 장기적으로, 이 지구의 미래를 고려하고 있다. 광산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일자리나 수익 같은 단기적인 소득밖에는 보지 못한다.”
 
실제로 베오울프 사는 “250개의 직접고용직과 그만큼의 간접고용직을 창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자연 보존보다는 일자리가 중요하다”
 
매년 2월이 되면 요크모크 마을은 4세기가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미족 장인들의 박람회에 온 수만 명의 관광객을 맞이한다. 하지만 나무집에 팔룬의 적색(2)이 칠해진 이 마을은 비수기가 되면 온통 선잠에 빠져든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광산을 경제를 부흥시킬 기회로 보기도 하지만, 광산계획에 공공연히 찬성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사회민주주의자인 시장은 “너무 바빠서 당신들을 만날 수 없다”고 했고, 일부 조합원에게 보유 구획을 베오울프 사에 팔라고 권유한 삼림소유주 협동조합장(사미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리에서 마주친 대부분의 행인은 “얘기할 시간이 없다”며 피했다.
 
우리는 한 가족에게 대담하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그들은 사람들이 왜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 중 한 50대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광산에 찬성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바를 자유로이 말할 수는 없다. 이곳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누군지 알만한 내용은 절대 적지 말아 달라. 우리는 사미족 친구들, 동료들과의 사이가 틀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지만, 우리도 나름의 관점이 있다.”
 
두 가지 관점, 아니 그보다는 서로 양립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두 가지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이 여성은 자신의 조부모가 스스로를 ‘개척자’로 여겼다고 말했다. 그들은 1920년대 국영전기회사 발렌팔이 ‘룰레오 강에 댐을 건설하고 모두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을 때’ 남부에서 왔다. 요크모크 마을은 20여 년 전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인구는 줄고, 관광업이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릴 정도는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남부로 이주하고 있다. 광산은 인구가 정착하도록 해줄 것이다. 나는 칼라크에 외부에서 온 투쟁가들이 있다는 게 불편하다. 수도에서 온 사람들, 심지어는 영국인이나 독일인까지 와 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 그들은 우리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만들었고, 우리를 대신해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투자할 대기업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도 이케아 매장이 하나 생기는 게 더 좋다.”
 
이 말을 끝낸 여성이 웃음을 터뜨리자 주변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대신 광산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우리도 자연을 보존하고 싶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잠시 후 카페에서 마주친 젊은 계약직근로자들은 그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중 한 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는 발렌팔 사에서 가끔 일을 받아서 한다. 하지만 광산이 생기면 일자리가 훨씬 늘 것이다.” 한편 순록 얘기가 나오자 격분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순록이야 광산을 돌아서가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미족’을 언급할 때 무리 중 또 다른 한 명이 그의 말을 받아 ‘라폰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경멸적인 의미가 담겨 있음을 숨길 수 없는 표현이다.(3)
 
스웨덴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칼라크 광산 계획은 과연 마무리될 수 있을까? 2015년 10월, 광산국립감독원은 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공식 표명했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는 2015년 11월과 2016년 3월 두 차례 서면을 보낸 베오울프 사에 불리하게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다양한 정보통에 의하면, 정부는 북부(4)의 사회민주주의 유권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환경론자들 사이에서 고민하며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는 듯하다. 게다가 탐사시추 이후 최초의 채굴이 이뤄지기까지는 보통 15년은 족히 걸린다.(5)
 
여기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키루나는 세계최대의 지하철광이다. 20세기 초, 이 신흥도시는 스웨덴 전역에서 온 개척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오늘날 LKAB는 1만 8천 명에 달하는 이 도시의 주민들 중 2천여 명의 일자리(간접고용직 제외)를 책임진다. 광산은 주택들 아래로 1,400m 이상의 깊이에 위치해 있는데, 근처 도시 말름베리에트에서 발생했던 식의 침강사고를 막기 위해 키루나의 도심이 3km 정도 이동될 것이라고 했다. 주민 입장에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이주 계획이지만 주민들은 체념한 듯 보였다. LKAB에서 근로하는 어느 젊은 부부는 이렇게 요약하여 말했다.
 
“광산 없이는 도시도 없다. 계속 일하기 위해 도시를 옮겨야 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일견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계획은 스웨덴이 광업 분야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노르보텐 행정구의 비즈니스개발국장 안드레아스 린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스웨덴 정부는 늘 광업을 중시해왔다. 19세기 말에는 (광석수출을 위한) 룰레오와 나르비크를 잇는 철도건설 계획 하나가 국가예산의 13%를 차지했다.”
 
1992년 보수파 총리 칼 빌드트는 광석관련법(Minerallagen)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 덕분에 스웨덴 광업 분야는 민영기업의 경쟁에 노출돼 외국 시추기업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스웨덴 지질학연구소(SGU) 산하의 광산국립감독원(Bergsstaten)이 이 광업 관련 허가를 배부하게 됐다. 이 법의 반대자들은 기업들에 과도한 특혜를 준다고 비난했다.(6) 하지만 유럽연합 제1광업국인 스웨덴은 이 같은 지위를 한층 강화하기로 결심했다. 이 점은 최근 발간된 한 정부 보고서에서 명확히 드러났는데, 스웨덴에서 현재 가동 중인 광산 16개가 2030년에는 자그마치 5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7) 2011년 당시 6천8백만 톤에 달했던 철광석 채굴량이 2030년 1억 5천만 톤으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린드 개발국장은 이 같은 정책을 정당화했다. “유럽은 전 세계 철의 20%를 소비하지만 자체 생산량은 4%에 불과하며, 그 중 9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그러니 이 철들을 환경적 측면이나 노동권, 인권 수준이 열악한 국가에서 수입해오느니 스웨덴에서 수입하는 편이 낫다. 나는 스웨덴 정부가 환경적 측면을 중시할 것임을 확실히 말할 수 있으며, 환경은 광산의 수익성보다 우선시되는 사항이다. 하지만, 이 광산건설 계획은 미미하게나마 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안타깝지만 우리 삶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인 셈이다.”
 
그는 ‘일부 사미족’의 반대 의견을 인정하지만, 합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스웨덴은 합의의 나라다. 칼라크에서 벌어진 일은 매우 안타깝다. 타지에서 온 전문 시위꾼들이 상황을 양극화하고 노르보텐을 전장으로 만들려 했다. 우리는 순록치기들과 광부들, 산업계와 정부 각각의 이익을 양립시킬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집행권은 주지 않고 
의견만 내놓으라는 정부
 
키루나는 스웨덴 사미족 의회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사미족 의회 사메팅에트(Sametinget)는 1993년에 막을 열었으며 몇 년 후 노르웨이와 핀란드에도 생겨났다. 사메팅에트는 선출국회인 동시에 정부기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부기관에 더 가까운데, 사메팅에트 대변인 마리에 에녹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유감을 표했다. “오해하면 안 된다. 사메팅에트는 실질적 권한이 전혀 없는 의회다. 선출의원 31명이 연 3회 모이는데, 의견을 표명할 수는 있지만 스웨덴 정부가 그 의견을 들을 의무가 없다.” 법적지위로 말하자면 더 보잘 것 없다. “‘의회’라고 지칭하기는 하지만, 사메팅에트는 국회나 시의회를 대신하거나 그에 견줄 만한 기관이 전혀 아니다.”
 
에녹슨은 좀 더 상세히 설명했다. “사미족 성인 약 9천 명이 사메팅에트의 유권자로 등록돼 있다. 유권자 등록을 위해서는 본인 혹은 적어도 본인의 부모나 조부모 중 한 명이 사미족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과거 스웨덴 정부가 우리의 언어를 말살시키려 저지른 온갖 만행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9천이라는 수치는 정부에서 산정한 사미족 인구 2~4만 명의 25~50%에 달한다.(8) “또한 우리도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일부 사미족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에녹슨은 지적했다. 정부기관으로서 사메팅에트는 ‘특히 문화활동 및 언어활동과 순록 사육에 할당된 3,850만 크로네(410만 유로)에 달하는 예산’을 관리한다. 사미족 환경당 ‘민 예아이드누(‘우리의 길’이라는 의미)’의 당원이자 사메팅에트 전 의장인 한나 소피 웃시는 “정부는 사메팅에트에 이 예산의 집행권은 주지 않으면서 의견만 내놓게 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사미족의 민족자결주의에 동의한다. 우리 사미족은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일부를 이루며 스웨덴의 시민이지만, 스웨덴인은 아니다. 그러니 나는 이누이트족이 그러듯, 우리 역시 우리의 미래와 사안들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길 바란다.”(9) 그렇지만 사메팅에트가 필요없다고 보지는 않았다. “우리는 이 사메팅에트를 스웨덴 정부가 바랐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구로 만들었다. 특히 사미족 언어의 문제를 진일보시켰다.”
 
스웨덴은 2007년의 UN 원주민 권리 선언(UNDRIP, 제3조를 통해 민족자결권한을 강조한다)에 조인했지만 이 선언문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특히 스웨덴은 원주민의 권리와 토지 및 지하 관리에 관련된 ILO 협약(ILO 169, 1989년)에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니 칼라크 건은 사미족 의회의 입김이 닿지 못하는 사항인 셈이다. 에녹슨은 “사메팅에트는 칼라크 건에 발언권이 없다. 우리는 의사결정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단지 두 개의 관련 사메뷔, 시리에스와 야카카스카의 의견을 얻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광산개발 위협에, 
기후온난화까지
 
모히칸 헤어에 차가운 눈빛이 인상적인 리카르드 란타는 야카카스카 사메뷔 대표 중 한 명이다. 우리는 반짝이는 부족 전통의상 차림의 순록치기들이 한 자리에 모인 스웨덴 사미족 전국연맹(Svenska Samernas Riksförbund, SSR) 회의에서 그를 만났다. 5월 말에 SSR과 사메팅에트는 키루나와 그곳에서 800km 떨어진 오스테르순드에서 같은 날짜에 회의를 개최하는데, 이는 사메팅에트와 SSR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요컨대 사미족 의회는 SSR이 전체 사미족 중 10%에 해당하는 순록치기들의 권리만 지지한다는 점을 비난하는 한편, SSR은 사미족 의회가 서로 대치되는 이중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을 비난한다. 다른 사메뷔들도 세미샤우르 니아리, 밥스텐, 보에르네세 같은 광산 건설계획에 직면한 만큼, 란타는 칼라크 건을 전혀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들(정부와 기업들)에게는 시간이 충분하다. 결국은 그 광산을 열 것이다. 철 가격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돈밖에 보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일부 사미족마저 그럴 것”이라고 단언했다. 자신에게는 돈이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고 말했다. “순록이야말로 우리 삶의 방식이다. 우리의 자유 그 자체다.”
 
키가 크고 꽁지머리를 묶은 마티 베리는 이리아스 사메뷔를 주재한다. 베리의 이름과 얼굴은 스웨덴 전역에 잘 알려져 있다. 2016년 2월 3일, 6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베리가 속한 사메뷔와 SSR은 정부를 대상으로 전례 없는 사법적 승리를 거두었다. “1986년 이전 사뮈족은 자신의 영토에서 누가 낚시하고 사냥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 우리는 그 권한을 되찾았다. 우리는 우리 영토에서 누가 낚시하고 사냥할지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민족자결주의를 향한 위대한 한 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영토의 관리권과 광산건설 거부 권한으로의 한 걸음 말이다. 내 사메뷔에서는 여러 광산기업들이 탐사를 진행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당신들, 서양인들은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으로만 재단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광산으로 훼손된 산보다는 때 묻지 않은 산 하나가 훨씬 더 가치 있다.”
 
이 사건은 맹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6월 11일, 스웨덴 정부 대 이리아스 사메뷔 간의 법정공방 양상을 우려하던 스웨덴 연구자 및 대학교수 59명은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에 공개서한을 실어 정부가 ‘인종주의적 생물학의 시대’로 귀결되는 논거들을 남용한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사법적 승리는 긴장감을 자극했다. 키루나의 낚시용품 상점에서 어느 젊은 고객들은 “정부가 항소해서 안심했다”고 서로 이야기했다. 그들은 “낚시와 사냥이야말로 우리가 이곳에 자리 잡고 사는 가장 주된 이유다. 그러니 사미족이 승리해서 판례가 만들어진다면, 사미족은 허가증의 가격을 – 당분간 헐값으로 - 제멋대로 책정할 것”이라고 투덜거렸다. 나이가 지긋한 사냥꾼들과 낚시꾼들도 한마디씩 했다. “대체 차별받는 게 누구인가? 어째서 사미족이 우리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하는가? 그들의 선조가 우리들의 선조보다 더 먼저 이 땅에 왔다고 해서? 우리 모두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는가!”
 
게다가 사미족에게는 또 다른 강적이 있다. 바로 기후온난화다. 란타가 부연설명하길 “이제는 겨울에 비가 내린다. 물이 얼어서 그 위로 눈이 내리지만, 또 다시 비가 와 얼음이 언다. 순록은 눈을 파헤쳐서 먹잇감을 구하지만, 얼음을 직접 깰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순록의 먹이까지 구입해야 한다. 거기에 포식동물(스라노시, 곰, 특히 오소리)로 인한 피해, 교통사고 피해까지 더해진다. 한 가구가 먹고 살려면 순록 600마리를 길러야 하는데, 그중 30%를 잃어버리면 새로 태어나는 새끼들로는 죽은 순록을 보충할 수 없다. 그럼 완전히 끝장인 셈이다. 더 이상 순록을 기를 수 없다면 사미족은 몰락할 것이다. 들소가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처럼 말이다. 내 아이들도 나처럼 살길 바라지만,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백야가 키루나를 감싼다. 21세의 올라프는 온종일 근무한 후 펍에서 갈증을 달랜다. 순록치기 집안에서 태어난 이 사미족 젊은이는 자신이 스키스쿠터를 운전하며 가문의 순록 떼를 이끄는 동영상을 휴대폰으로 자랑스레 보여줬다. “모두 4백 마리다. 하지만 순록 사육만으로 먹고 살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면서 또 다른 사진들을 보여줬다. 이번에는 어느 터널에서 굴착기를 모는 모습이다. 그는 살짝 난처한 듯이 말했다. “광산에서 막 되돌아온 참이다. 거기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갱저(坑底)에 있을 때 내 머릿속은 내 산과 순록 떼에 대한 생각뿐이다.” 결국에는 기후온난화 문제와 광산에 대한 갈망이 고대부터 시행돼온 목축을 정복할 것으로 보인다.  
 
 
글·세드릭 구베르뇌르 Cédric Gouverneur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기자
 
번역·박나리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저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방목 및 이동식 목축에 할애된 일정면적에서 순록을 치는 경제공동체.
(2) 팔룬 구리광산의 광석찌꺼기를 가지고 만드는 스웨덴 페인트.
(3) ‘사미’라는 용어가 ‘라퐁’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라퐁의 스웨덴어 어원은 ‘넝마를 걸친’을 의미함)로 대체됐다. 사미족 스스로는 본인들의 영토를 ‘사프미’라 지칭하지만, 이 지역은 외부에 ‘라포니’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4) 2014년 스웨덴 북부(노르보텐 행정구)에서 사회민주당은 득표율 49%(반면 보수당은 13%, 극우당은 11%), 전국적으로는 31%(반면 보수당은 23%, 극우당은 13%)를 기록했다. 
(5) ‘Taxation in the mining sector – Selected case studies’, Raw Materials Group, Stockholm, 2012년 6월.
(6) Cf. Johannes Forssberg, <광산기업 여러분, 맛있게 드세요!(Mesdames les compagnies minières, servez-vous!)>, Fokus, Stockholm, Vox Europ 번역, 2013년 10월 14일.   
(7) ‘Sweden’s minerals strategy’, 스웨덴 산업에너지커뮤니케이션부 보고서, Stockholm, 2013년 6월. 
(8) 더 구체적으로 산정하기는 어렵다. 스웨덴도 프랑스처럼 인종별 통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9) 그린란드는 1979년 이후 덴마크 자치령이 됐으며, 2002년 자치정부가 강화됐다. 이누이트족 또한 1999년 이후 누나부트(면적 2백만㎢ 이상의 캐나다 연방령)에서 자치를 실시하고 있다. 
 
 
 
 
박스기사
 
원주민 ‘사미족’의 투쟁
 
오스테르순드의 사미족 정보연구원(Samer) 조사에 따르면, 사미족은 노르웨이에 5만~6만5천 명, 스웨덴에 2~4만 명, 핀란드에 8천 명, 러시아에 2천 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유럽 대륙 최후의 원주민(1)인 사미족은 약 1만 년 전의 해빙기에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와 러시아 콜라 반도에 자리 잡았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게르마니아(98년)>에서 최초로 ‘북부의 유목민’을 언급했는데, 여성들도 사냥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경탄했다. 여기에 사미족 달력의 8계절이 각각 순록의 생애주기와 상응하며, 사미족 언어에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다.
 
 17세기가 돼서야 각국 정부들은 라포니의 얼어붙은 땅과 모피, 어량이 풍부한 해역을 탐내기 시작했다. 스웨덴은 1634년 은 광맥을 발견하면서부터 식민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스웨덴 왕국의 세금 징수인들은 ‘라폰스’들에게 세금을 납부시켰던 한편, 루터파 교회는 이 애니미즘 신봉자들을 개종시키려 노력했다. 사미족의 신성한 북을 불태웠고 때로는 1693년 처형된 라르스 닐손의 사례처럼 샤먼 역시 불태웠다. 개척자들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극한의 기후 때문에, 라프마르크 선언(1673)이 선포돼 이곳의 소작세와 군역이 면제됐다. 덕분에 스웨덴 왕국에서 순록치기들과 소작인들이 서로 낯붉히지 않고 함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위도의 땅에서 농업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소작인들도 사냥과낚시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소작인들과 분쟁이 생겼을 경우, - 왕실 국고에서 사미족의 모피를 높이 쳤기 때문에 - 사미족이 재판에서 이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사미족에 대한 인식은 19세기 말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등장하며 바뀌기 시작했다. 순록치기이자 사미 라디오의 기자 안나-카렌 니아는 이렇게 회상했다. “1920년대에 인종주의 생물학 연구소 학자들이 찾아와 사미족의 두개골 크기를 재고 갔다. 그중에는 내 조부모도 포함됐다. 흡사 나치 독일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모욕적인 처사는 우리 부족에게 크나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게다가 스웨덴과의 국경이 그어지고 나자, 노르웨이(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와 소련과 핀란드(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는 유목민의 장거리 이동을 금지했다. 스웨덴의 사미족 수천 명이 남부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스웨덴 정부는 사미족 동화 정책을 시도했다. 학교에서 부족 언어를 구사하는 사미족 아이들은 체벌을 받았고 배척당했다. 니아는 “우리 부모님은 교사가 하는 말조차 이해하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사미족 자녀들은 강제로 부모와 분리돼 기숙학교에 배치됐다. 규격에 맞춰지기 위해 수많은 사미족이 성을 바꿨고 부족 언어를 자녀에게 전승하지 않았다.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정치적 해방이 시작됐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는 사미족이 알타 강 댐 건설 계획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이 투쟁은 1989년 노르웨이에서 최초로 사미족 의회를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이에 영감을 받아 핀란드, 이후 스웨덴에서도 사미족 의회가 생겨났다. 노르웨이는 원주민에게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도록 권장하는 국제노동기구 169번 협약에 1990년 이후 비준한 유일한 국가다. 노르웨이는 자국 최북단 행정구 핀마르크(인구 7만 3천, 면적 4만 6천㎢)의 85%에 최대한의 자치를 부여했는데, 이 핀마르크 행정구는 2005년 이후 사미족 의회와 행정자치단체에 의해 공동 관리되고 있다. 니아는 스웨덴 라포니에 5개 있는 키루나 사미족 학교 중 하나에 다니는 아들을 찾으러 교문으로 향하며 “노르웨이 사미족의 투쟁이 우리에게 영감을 선사했고, 다음 세대들이 우리 언어를 배웠다”고 말을 덧붙였다. 한편 이리아스 사메뷔를 변호하는 스웨덴 사미족 전국연맹(SSR)의 변호사 옌뉘 비크-칼손은 “나는 남부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는 스웨덴어밖에 배우지 못했다. 십여 년 전부터 사미족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내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무언가를 다시금 되찾는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는 전체 사미족 중 40~45%가 부족 언어를 구사한다고 추정된다.   
 
 
글·세드릭 구베르뇌르 Cédric Gouverneur
 
번역·박나리 
 
(1) 유엔에 의하면, 원주민을 정의하는 데는 4개의 기준이 존재한다. 첫째, 지역이 식민화되기 이전에 현존하던 주민들의 후손인가. 둘째, 경제적 및 문화적 행태에서 자신의 영토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셋째, 소수파로서 경제적 및 정치적 소외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가. 넷째, 스스로가 자신을 원주민으로 인식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