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야마, 본능의 시선
2017-02-01 필리프 파토 셀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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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컬러>, 2008~2015 - 다이도 모리야마 |
검은색으로 뒤덮인 수수한 모습의 다이도 모리야마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잠시 후,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사진작가 모리야마는 카르티에 재단 빌딩의 유리벽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운다. 빛에 따라 반짝이는 정육면체 하나. 갑자기 반짝임이 멈추자 유리 너머로 사진들이 나타난다. 사진들은 마치 바깥의 복잡한 도시 풍경에 자석처럼 이끌리는 모습이다. “마음에 듭니다. 광고판 같잖아요. 사진을 찍었던 거리와 일상의 장소로 제 사진들이 돌아오는 셈이죠. 좋군요. 액자 안에서 정지된 모습의 생기 없는 사진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모리야마가 숨을 내쉬며 말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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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진작가 모리야마는 10년 만에 두 번째로 카르티에 재단에서 전시회를 연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대형 컬러 사진 86점이다.(2) 그는 78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반점이 난 피부에 까마귀처럼 새카만 가발을 늘 착용하고 있다. 도쿄의 거리에서 여러 번 촬영된 사진 속의 새도 그와 마찬가지로 뭔가를 노리듯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다. “숨겨진 보물이 가득한 이 도시에 늘 시선이 갑니다. 어두컴컴한 그림자에 드리워진 것이든(담배꽁초, 전깃줄 뭉치, 통풍기 배관, 환기구 등), 네온사인의 강한 빛에 모습을 드러난 것이든(빨간 입술이 클로즈업된 광고 포스터, 망사 스타킹을 신은 다리 등), 어떤 것도 제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의 발걸음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모리야마가 정처 없이 걷는다. 그의 몸은 도시와 같은 리듬으로 움직인다. “한 시간이 남아서 좀 걸으려고요. 걸으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걸음은 본능과 순간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움직임인 듯하다. 한 발짝 한 발짝. 은이 함유된 필름이 뚫리면서 영상마다 유탁액이 흘러나오고 필름의 틈새가 점점 벌어지며 빛을 내뿜듯이. 자국을 내는 동시에 자국이 남는 빛줄기. 모리야마는 오사카에 산다. 그는 선원이 되고 싶었지만 그 꿈은 실패로 돌아갔다. “재능이 없었죠.”
꿈을 이루지 못한 바다에서, 그는 넓은 수평선으로 시선을 돌린다. 좁아터진 파인더로 보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검은색 소형 카메라. “분신 같은 존재입니다.” 마치 개가 코로 땅 속을 뒤지며 사람 냄새가 나는 곳에서 킁킁거리는 듯, 그도 손끝으로 열심히 찾아 헤맨다. 마치 개가 소변을 보기 위해 다리를 들 듯, 그도 구도와 초점을 신경 쓰지 않고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보이는 것을 찍고 싶은 본능. 현실세계의 냄새를 맡는다. “마치 개가 같은 장소를 맴돌고 싶어 하는 본능과 같습니다.”
1970년대, 모리야마는 호텔에서 나오다가 마치 자신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어느 개와 마주친다. 털은 거의 빠져있고 눈동자는 백내장에 걸린 듯 창백하고 광견병에 걸린 듯 보였으나 의외로 순하고 겁에 질린 모습이다. 그 모습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반쯤 벌린 입, 얼이 빠진 듯한 눈, 뭔가를 갈망하는 눈빛. 당시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모리야마는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곧바로 행동에 나선다. 거울효과가 점점 강렬해진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개를 관찰한다. 개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면 그도 언젠가는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훗날 책으로 각인시킨다. “사실, 책을 내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자서전 <어느 개의 회고록>이 2004년에 출간됐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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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마에게 걷기는 무엇보다도 움직이면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는 현대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걸어간다(여행자 250만 명이 매일 도쿄 신주쿠 역을 지난다). 현대인들의 이동 방식은 여행자를 단순한 승객으로 만든다. 더 이상 여기저기를 주체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것이다. 모리야마는 이동하는 동안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을 무시한다. 가는 길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않는 존재이기에 무시하는 것이다.(4)
정돈된 도시 공간(도쿄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 바닥에 반듯하게 새겨진 표시가 몇 개인지만 봐도 알 수 있다)의 분위기를 완전히 깨는 방황, 물질적인 생존에만 관심 있는 사회가 강조하는 실용주의 명령에 충실한 정돈된 도시 공간, 밀려드는 남녀의 규칙적인 발걸음이 목적에 따라 나뉘어진다. 한 쪽은 생산 영역으로 향하는 발걸음, 또 한 쪽은 소비 영역으로 향하는 발걸음, 도시의 진정한 모습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되는 주변의 소소한 것에 늘 관심을 기울이며 걷는 모리야마에게는 여유를 잃은 듯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낯설다.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은 여백이다.” 장 뤽 고다르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처럼 모리야마는 앙드레 브르통(프랑스의 시인. 초현실주의의 주창자), 기 드보르(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작가, 영화 제작자) 같은 사람들이 내세우는 슬로건을 충실히 따른다. 브르통과 드보르 같은 인물은 일터라는 지루한 장소에 맹목적으로 향하는 당시의 사람들을 보며 돈에 팔려 가는 움직임이라고 했다. 모리야마는 복종을 요구하는 일터의 부름에는 응하지 않는다. 초현실주의자와 상황주의자들도 이 같은 부름에 오히려 한가로운 산책으로 맞설 것이다.(5)
자극적인 원색으로 빛나고 시끌벅적하고 끝없이 요동치는 이 도시, 모리야마가 걷고 있는 이 도시는 도쿄의 북서쪽에 위치한 서민 동네이자 에도(도쿄의 옛 이름)의 관문 중 하나였던 신주쿠다. 이곳은 집세가 저렴하고 도쿠가와 막부(1603~1867)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를 내세우며 강요했던, 완전한 획일주의와는 거리가 먼 라이프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이런 특징은 튀고 싶은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작가, 트랜스젠더, 창녀, 탈주자, 배우, 예술가, 야쿠자가 전후, 가부키 전용 극장이 다시 세워져야 하는 가부키초(신주쿠에 위치한 대표적인 환락가-역주)에 몰려든다. 가부키초는 신주쿠의 핫플레이스가 된다. 모리야마가 가부키초를 산책한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다. “아마도 저와 신주쿠 사이에는 뭔가 모르게 비슷한 점이 있어서일 겁니다.” 이곳은 무궁무진한 만남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모리야마는 23세가 되던 1961년에 우연히 사진작가 에이코 호소에(1933년생)를 만난다. 사진작가 이와미야 타케지(1920~1989)로부터 막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던(그래픽 아트 졸업장이 있었다) 젊은 그에게 에이코 호소에와의 만남은 큰 행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리야마는 에이코 호소에의 어시스턴트가 돼 전후 가장 상징적인 시리즈 사진 작품에 속하는 <장미로 인한 시련>의 작업을 돕게 됐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전위적 스타일의 미장센과 편집방식을 보여주는 작품이 <장미로 인한 시련>이다. 모리야마는 도쿄에 완전히 정착한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68년, 그의 첫 작품집 <일본 극장 사진첩>이 출간된다.(6)
신주쿠를 만드는 장소 중에서 ‘황금의 거리’라는 뜻을 가진 골든가이(일본 도쿄 신주쿠 구청과 하나조노 신사 사이에 있는 좁은 골목으로, 195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200여 개의 술집이 밀집해 있다-역주)는 아마도 모리야마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일 것이다. 좁은 골목길이 여기저기 나있고 거실 크기의 허름한 집들이 늘어선 이곳에서 선술집마다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곳에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 <방파제>에 대한 오마주로 같은 이름을 간판으로 단 선술집이 있다. 이 선술집의 단골손님으로는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1932~2013), 이마무라 쇼페이(1926~2006),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1940),(7) 타쿠마 나카히라(1938~2015), 후카세 마사히사(1934~2012), 그리고 토마츠 쇼메이(1930~2012)가 있다. 특히 토마츠 쇼메이는 모리야마와 함께 서로의 작품을 소개하는 사진 아틀리에를 기획, 진행했다.
“당시에는 뭔가에 홀린 듯, 구석진 골목들을 사진에 담으러 다녔습니다. 미일 상호방위 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1970년 사위를 하루 앞두고 정치 투쟁의 봄이 한창인 시절이었습니다. 동시대의 사진작가들과 이끈 캠프(Camp) 갤러리의 시대였습니다.”(8)
소중한 공간. 사진이 주로 전시되는 이곳은 실험적인 시선의 공유보다는 기술 성능의 홍보에 더욱 열을 올리는 카메라 제조사가 소유한 갤러리다. 실험적인 시선을 공유하는 것은 감성을 공유하는 일로 사진 예술의 기본적인 시각의 코드까지 바꾼다. 예술 사학자 유리 미츠다는 이를 세 개의 형용사로 표현한다. 아레(격렬한), 부레(격정적인), 보케(흐릿한). 이를 가리켜 ‘망친 사진’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신세대 사진작가들이 과거사로 이미지가 훼손된 사회가 가식적인 윤리를 내세워 만든 단정한 미학을 강하게 거부하고, 본능과 자연스러움,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선호하게 된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
격동의 시기인 1968년. 본질, 형식 등 모든 것이 도마 위에 오른다. 전위 잡지 <프로보크 Provoke>(9)는 자유분방한 사진작가들의 시선을 3회에 걸쳐 다룬다. 잡지를 창간한 두 사진작가 타쿠마 나카히라와 코지 타키, 그리고 유타카 타카나시, 토마츠 쇼메이, 모리야마(1969년 합류)는 미국의 제국주의(일본의 미군기지, 베트남 전쟁)를 비판하는 사회와 대학의 목소리를 사진에 담는다. 이들은 자신의 분노와 불편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로버트 카파, 로버트 프랭크, 게리 위노그랜드, 윌리엄 클라인 같은 작가들의 사진예술에 시선을 던질 정도다. 미국의 사진계를 이끌고 모리야마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독특한 사진예술은 이 외에도 많다. 뿐만 아니라 원자 폭탄의 충격 이후 사진예술을 언제나 사로잡는 소재도 있다. 원자 폭탄의 파편으로 새까맣게 타버린 모습들에서 어떻게 빛과 엄청난 열을 발산하는 파괴적인 바람을 보지 않을 것인가? 에이코 호소에와 긴밀한 관계이면서 부토(일본의 전통예술인 가부키와 노, 그리고 현대무용이 만나 탄생한 아방가르드한 무용의 한 장르)를 창시한 히지카타 타츠미(1926~1986)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히치카타 타츠미의 부토는 검게 탄 상처 입은 육체들을 무용으로 표현한다. ‘아레, 부레, 보케’로 표현되는 사진 예술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를 투영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스냅사진만 찍습니다. 미리 구상한 사진은 절대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도 없습니다. 다만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사진 예술에서 양은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죠.”
그는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15년 만에 무려 3천 장이 넘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나 불안정해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마치 실을 뽑듯 가차 없이 자세히 풀어내야 할 현실을 이미지로 한 땀 한 땀 꿰매듯 픽셀을 쌓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어릴 때는 한 곳에 오래 머물러 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이사를 다녔죠. 아버지는 보험 중개인이었습니다. 일본어로 ‘고향’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일본문화와 미국문화가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태어났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파편화된 시각만이 저의 현실입니다. 일본에서는 모든 것이 늘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9월 2일, 모리야마는 일곱 살이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20년 만에 도쿄는 또 한 번 잿더미가 된다. 이 시기는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사진은 사라진 현실을 복사한 것에 불과하지만 당시의 현실을 표현하는 완벽한 자료이기도 하다.
“사진은 맥락이나 주체, 방법에 따라 끝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계속 관찰합니다. 사진이 저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진을 보존할 것입니다. 어떤 사진도 추려내지 않을 겁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실제 모습을 담는 것이라면, 모리야마의 사진은 실제에 픽션을 가미한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모리야마는 망설이지 않고 컬러사진을 흑백사진으로 바꾼 다음 그 사진을 다른 사진들과 연결하고 합친다. 소재, 형태, 색체가 뒤섞여 모호한 의미를 표현한다. 실제 장면을 찍은 것이지만 소재가 된 현실을 초월한 사진들이다.
서로 묘하게 겹쳐지는 대형 사진 두 장이 있다. 버려진 담배꽁초의 사진과 움츠리고 있는 노숙자의 사진이다. 두 사진은 상호작용에 따라 ‘소외’라는 공통된 모습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담배꽁초는 인간에 가까운 느낌을 주고 노숙자는 사물에 가가운 느낌을 준다.
“시간 혹은 공간의 관계보다는 입자, 대조, 형태와 소재의 연결을 통해 추상적인 느낌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내면의 세계, 즉 도쿄 혹은 다른 도시의 거리를 걸으면서 보이는 것,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의 걸음에는 목적지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 걸음은 언제나 세상의 흐름보다 앞선다.
글·필리프 파토 셀레리에 Philippe Pataud Célérier
언론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비롯한 다양한 언론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모리야마의 공식 사이트
(2) <Daido Tokyo(다이도 도쿄)>, 다이도 모리야마 카르티에 현대 예술 재단, 파리, 2016년, 2016년 2월 6일에서 6월 5일까지 열린 전시회 '다이도 도쿄'의 도록. www.fondatin.cartier.com
(3) Daido Moriyama, <Mémoires d'un chien(어느 개의 회고록)>, 1984년에 2쇄 발행, Editions Delpire, 파리, 2016년
(4) <Une brève histoire des lignes>(선의 간략 역사), Tim Ingold, Zone Sensible, 브뤼셀, 2011년
(5) <Guide psychogéographique de Paris>(파리의 심리지리학 가이드>, Guy Debord, Permild & Rosengreen, 코펜하겐, 1957년 5월
(6) <Japon: A photo Theater>, Muromachi Shobo, 도쿄, 1968년 / <Farewell phtography>, Daido Moriyama, Shashinhyoronsha, 도쿄, 1972년
(7) <Araki>, 기메 미술관, 파리, 2016년 4월 13일~9월 5일. 일본 사진을 특집으로 다룬 잡지 <Insensée>(파리)의 특별호도 참고할 것
(8) <Daido Tokyo> 도록(카르티에 재단, 파리, 2016년)의 서문 일부 내용
(9) <Provoke / Between Protest and Performance / Photography in Japan 1960~1975>, Steidl과 Le Bal의 공동 출간, Le Bal에서 개최된 동명의 전시회 도록 2016년도 판(2016년 9월 14일~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