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무엇이 인간인가
2017-02-01 최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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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가 세상에 나와 감각이 트이고 걷기 시작한다. 순전히 감각과 충동에만 몸을 움직이던 아이는 좀 더 섬세한 자극들을 받아들이고, 어느 날 반짝이는 물건 앞에 서게 된다. 신기하게도 오른쪽 몸뚱이를 움직이면 앞에 반짝이는 그것에 나타난 상(像)도 움직이고 왼쪽 몸뚱이를 움직이면 그것도 움직인다. 움직임을 반복하다가 깨닫는다. “아, 저것은 나구나.”
인지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한 이래로 인류는 ‘나’ 그리고 ‘나’가 속한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모든 학문이 인간과 결부돼 있다. 철학은 물론, 문학, 사회학, 그리고 과학도 결국,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추론됐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발달됐다(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상상력으로 시작됐다).
인류에게 가장 큰 관심은 결국 인간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논쟁했으며,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인간 본성을 통시적‧전체적으로 고찰한 책, 번역서가 아닌 국내 서적이 출간됐다.
<인간 본성의 역사>는 저자 홍일립이 약 5년 간의 칩거 끝에 완성한 책이다. 공자, 맹자, 순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동서양의 주요한 사상가부터 마키아벨리와 데카르트, 홉스 등 서양 근대 초기와 계몽기의 독창적인 철학자, 마르크스와 다윈, 프로이트 등의 근현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이끈 선구자, 그리고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등 현대의 정치·사회 관련 이슈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학자까지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들을 고집스럽게 집대성했다.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각 주장들의 한계를 살펴보고 종합적인 평가와 저자의 통찰이 담긴 생각을 밝힌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이 장대한 ‘여행’을 마친 독자는 인류의 켜켜이 쌓인 생각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시안(詩眼)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인간, 그리고 ‘나’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진짜 여행은 그때부터 시작되며, 이 길고도 유구한 논쟁에 당신도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인간 본성의 역사>(홍일립, 에피파니, 2017)
글·최주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