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의 모래성은 계속 무너진다
[Spécial] 국가 부도의 위기
투기자본, 두바이월드 노리고 채권 헐값 매입
공식 공공부채 800억 달러… 실제론 2배 예상
어제, 또다시 치부를 드러낸 두바이는 투기와 극단주의가 넘쳐나는 땅이었다. 하지만 두바이도 세계화의 이면에 숨은 위험과 지역 내에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07년과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두바이를 비켜가는 것같이 보였다. 두바이의 불빛은 화려했고, 대형 사업이 줄을 이었으며, 국내 펀드는 앞다퉈 해외 은행에 투자했다.(1) 또한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2008년 10월, 에마르사가 추진 중인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두바이 건설이 한창인 가운데, 두바이는 버즈두바이를 능가하는 또 다른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높이 1km가 넘는 이 바벨탑은 국영 부동산 개발기업인 나크힐사가 추진하고 있으며, 270ha에 이르는 신도시 내 ‘신 두바이의 심장부’가 될 예정이다. 주변 시설을 포함해, 총 공사 비용이 1600억 달러에 이르며, 이 중 초고층 빌딩 건설비만 450억 달러라고 알려져 있다.
세계 모범으로 칭송받던 ‘황제 경영’
두바이는 성공적인 개발 사례일 뿐 아니라, 세계에 국가 개발의 모범으로 꼽혀왔다. 발전 초기 두바이는 항구가 있고,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를 잇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는 것 말고는 가진 게 거의 없었다. 협소한 땅과 인적 자원 및 에너지원의 부재로 두바이는 일찍부터 석유 고갈 이후의 시대를 준비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두바이도 민주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경제 발전과 기업 활동 장려에는 적극적이었다.
1985년 완공된 제벨알리의 거대한 항만시설과 자유무역지대는 두바이를 지역 무역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두바이는 인프라와 도로, 항공, 해운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국제금융이 투자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인터넷, 대중매체, 의료 서비스, 비정부기구 등에서 다양한 투자를 벌였고, 유리한 여건의 특화단지가 조성되었다.(2) 또한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이민자가 국민의 90%를 차지했다. 하지만 건설과 같은 일부 직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거의 노예와 같은 노동 환경에서 일했다.
경영 전략의 대가로 손꼽히는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지난 1월 ‘에미리트연방의 경쟁력’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위해 두바이를 찾았다. 셰이크 모하마드는 장관들과 350명에 달하는 고위 공무원을 데리고 첫 줄에 앉아 있었다. 신세대 통신매체 및 네트워크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과 강연에 대한 실시간 의견 교환을 위해 네 번도 넘게 트위터를 전송했다.(5)
두바이 모델은 언론의 집중적 관심을 유발했고,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도 그중 한 명으로, 다른 아랍국가 역시 두바이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바이는 군사력 증강이나 테러 조직 지원, 군주의 횡포가 아닌 수익 중심 모델, 사유재산제 신장, 서비스산업 촉진을 통한 탈원유 경제 발전 실현,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기업 장려를 통해 미래를 준비했다. 두바이는 자살 테러가 아닌 경제 발전을 통해 아랍 세계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 결과 두바이 국민도 전쟁이나 폭력이 아닌 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되었다.”(6)
프리드먼도 극찬했던 두바이 모델
실제로, 두바이 모델을 따르는 국가들도 생겨났다. 바레인·카타르·아부다비는 자유무역지대를 만드는 한편 가격경쟁을 통해 지역 내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투자 유치를 위해 교육과 문화적 혜택을 늘리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지역 내 일류 박물관과 유명 대학들의 유치 경쟁도 활발해졌다.(7) 이러한 경쟁 속에서 두바이는 더욱 속도를 높이기로 결심했다. 두바이처럼 소비와 유흥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려는 주변 에미리트(토호국)들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두바이가 차별화를 위해 택한 전략은 초고층화와 초대형화, 초호화 등 극단주의적 개발 방식이었다. 여기저기 궁전 같은 호화 건물을 짓는 것도 그중 하나로, 두바이는 7성급 호텔을 건설했다.
마치 기네스북 기록이라도 세우려는 듯, 엄청난 규모와 막대한 비용의 사업이 줄지어 공표되었다. 두바이는 앞으로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급 도시국가이며, 세계 제1의 관광지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세계 최대 규모의 상업단지, 아쿠아리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스키장, 냉방시설을 갖춘 해변, 영구 회전하는 마천루 등 모든 것이 전례 없는 규모였다. 빌딩 역시 세계 최고층이었다. 파라오 시대 대규모 건축을 연상시키는 다른 사업도 연이어 추진되었다. 이런 사업은 규모에서 모든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지만, 인적 자원이나 환경, 금융 측면에 가져올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일례로 디즈니랜드 2배에 달하는 크기의 테마파크인 두바이랜드는 공원 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건설 중이다. 또한 세계 8번째 불가사의라고도 불리는 팜아일랜드는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을 조성하고 그 위에 호화 주거·위락 시설을 갖춘 종합 관광레저 타운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뿐만 아니라, ‘더 월드는 300개의 인공섬으로 세계지도를 형상화해 각각의 인공섬 내에 호텔과 별장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태양과 달 등 태양계 시스템을 본뜬 ‘더 유니버스’도 계획하고 있다.
거품 붕괴 늦추려 했으나…
야심이 지나친 것일까, 아니면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인 것일까? 확실히 두바이는 거품경제로 치닫고 있었고, 정부는 거품 붕괴를 늦추기 위해 애썼다.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나 브래드 피트 같은 유명인이 초호화 관광단지 내 별장을 구입하도록 해 이들을 홍보 대상으로 활용했다. 주택을 구입하는 외국인에게는 체류증을 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도 허사였다. 공급과잉 시장에서 수요는 점점 하락했다. 2008년 7월 배럴당 147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원유 가격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반값으로 하락했다. 직원 수를 몇 배로 늘렸던 다국적기업들은 현지 직원을 급속히 줄였다. 이전에는 서로 두바이에 별장을 사려고 경쟁하던 외국인들도 별장 구입을 망설이게 되었다. 즉, 부동산 시장은 폭락하기 시작했고, 이미 위험 노출 정도가 컸던 금융기관들도 이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두바이에 2009년은 가장 끔찍한 악몽의 해였다.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경제위기의 불안을 막아보려 했지만, 대중은 더는 속지 않았다. 한때 크레인이 바쁘게 움직이던 도시에는 반쯤 짓다 만 고층 빌딩과 미분양된 건물이 즐비하다. 1월 14일 나크힐사는 초고층 빌딩 건축 공사의 시공 연기를 발표했다. 이러한 소식이 잇따랐고, 이는 곧 일자리 감소를 의미했다. 2월 16일, 두바이 정부는 국부펀드 투자회사인 두바이그룹과 두바이인터내셔널캐피털의 합병을 고려했고, 고위직 간부들의 구조조정도 검토 중이었다. 2월 22일,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채권 200억 달러 중 100억 달러를 두바이가 발행한 국채로 인수하며 두바이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정부는 시장이 정상화되는 것처럼 보이려 애썼지만, 2009년 11월 25일 시장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세계 3위 항만 운영사인 DP월드와 나크힐을 포함해 10개 국영기업으로 이루어진 두바이월드가 채무 상환 6개월 유예를 요청한 것이다. 시장을 지나친 공포로 몰아넣으면 안 된다는 역사의 가르침에 맞게, 두바이월드의 소식은 이슬람권의 알아드하 축제와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에 맞물려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허사였다. 35억 달러에 달하는 나크힐사의 이슬람채권(수쿡)이 곧 만기가 된다. 채무불이행 가능성은 세계경제가 공황 상태로 빠질 수 있다는 공포를 자아냈다. 두바이가 채무지불 유예를 선언하고 며칠 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두바이 기업들에 대한 신용평가등급을 하향 조정했고, 투자자들의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 아랍에미리트중앙은행은 금융시장에 유동성 공급 조치를 취했다. 두바이월드는 100여 명의 채무자들과 협상을 벌이고, 그룹 자회사들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8) 11월 30일, 나크힐사는 자사가 발행한 채권의 거래 중지를 요청했다. 이슬람채권은 다른 채권과 달리, 소유자에게 회사 자산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특징이 있다.(9) 탐욕스러운 금융투자자들이 이를 노리고 두바이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들은 두바이월드 부채를 헐값에 매입했다. 이들은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두바이월드를 구제하거나 두바이월드가 디폴트에 이를 때 자산소유권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두바이 금융위기는 금융 시스템의 불투명성을 전면에 드러냈다. 두바이월드는 100% 정부 소유이나 두바이 정부는 590억 달러에 이르는 두바이월드의 채무보증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모호한 책임성은 공공부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으로 두바이의 공공부채는 800억 달러로 알려졌으나, 국제은행들은 규모가 이보다 2배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두바이는 지금까지 훌륭한 거버넌스에 대해 말은 많았지만, 정작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버즈두바이라는 이름도 빼앗겨
나크힐의 채권 만기일 당일인 2009년 12월 14일 아침 아부다비는 100억 달러의 자금 지원을 통해 두바이월드를 살렸다. 관련 보도 발표에는 지원금이 무상인지 차관인지가 명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금 덕택에 두바이월드는 이슬람채권에 따른 채무 상환이 가능해졌고,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했다. “지원금은 2010년 4월 30일까지 두바이월드의 이자 지불과 경영 비용으로 사용되는 한편, 두바이월드는 지불유예 요청에 따른 채무 협상을 예정대로 성공리에 마무리한다”는 조건이었다.
지원을 조건으로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얻어낸 정치적·상업적 이득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월 4일 세계 최고층 빌딩인 버즈두바이(828m)의 준공 당시, 버즈두바이는 버즈할리파로 이름을 변경했다. 아부다비의 통치자이자 아랍에미리트연방 대통령인 셰이크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글•이브라힘 워드 Ibrahim Warde
주요 저서로 <두려움의 대가: 테러와의 금융 전쟁 뒤에 감춰진 진실>(I. B. Tauris·Londres·2007) 등이 있다.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포식자인가, 구원자인가, 사기꾼인가? 다국적기업들의 곁을 지키는 국부펀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5월.
(2) 아미르 레흐만, <Dubai & Co., Global Strategies for Doing Business in the Gulf States>, McGraw Hill, 컬럼버스(오하이오), 2007.
(3) 그는 <나의 비전: 완벽을 향한 과제들>이라는 제목의 책도 출간했다.
(4) 이언 파커, ‘사막의 신기루‘, <뉴요커>, 뉴욕, 2005년 10월 17일.
(5) http://twitter.com/HHSHKMOHD.
(6) 토머스 프리드먼, ‘두바이와 바보들’, <뉴욕타임스>, 2006년 3월 15일.
(7) 아크람 벨카이드, ‘친환경적인 걸프만의 그늘 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8월.
(8) 로빈 위글스워스, 아누샤 사쿠이, 시미언 커, ‘두바이 디폴트보증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다’, <파이낸셜 타임스>, 런던, 2010년 2월 15일.
(9) 이브라힘 워드, ‘Islamic Finance in the Global Economy’, 에든버러대 출판부, 2010년 개정판. ‘이슬람 금융체계의 패러독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1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