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혁명 100주년 특별전: 혁명과 영화

2017-03-02     홍상우 경상대 러시아학과 교수

2017년 2월 28일부터 3월 1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러시아혁명 100주년 특별전: 혁명과 영화'가 열린다. 이 행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이 공동주최한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또는 홍보하기 전에 여담을 들려주고 싶다. 필자는 지금 이 글을 세계최대 영화 아카이브 중 하나인 ‘러시아고스필르모폰드'에서 쓰고 있다. 이곳에서도 러시아혁명 100주년 기념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에서 상영될 <나는 스무살이다>의 감독 마를렌 후치예프가 지금 막 자신의 또 다른 작품 <5월이 있었다>에 얽힌 이야기를 고스필르모폰드 주상영관에서 했다.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 지구상에서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제는 단 두 곳,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와 한국의 서울에서만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오늘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시작된 이 특별전은 의미 깊은 행사다. 모스크바 근교에 위치한 이곳 고스필르모폰드에서 만난 일본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러시아혁명 100주년 관련 행사가 다양하게 예정돼 있지만, 정작 영화관련 행사는 기획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기술적으로 고전 영화들을 필름으로 상영할 수 있는 상영관 자체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35mm 필름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도 일종의 문화유산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름 상영이 가능한 서울아트시네마라는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모스크바와 서울에서 같은 주제로 특별전을 하지만, 행사의 개념은 다르다. 서울의 특별전은 러시아혁명에 대한 고전 작품들을 주로 선별했다. 이것은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런 종류의 특별전이나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최 측은 러시아혁명에 대한 최근 영화들을 추가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프로그램에 신선함을 불어 넣었다. 상영작 목록을 살펴보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획을 맡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의 이지연 교수와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전문성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반면 러시아 고스필르모폰드는 혁신을 선택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전혁명 영화에서 탈피해 새로 복원된 영화들, 다큐멘터리, 또는 러시아혁명에 대한 외국 영화들을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한국과 러시아의 10월 혁명에 대한 사고의 공유를 실감하지 못하고, 물리적 거리가 상당한 두 곳에서 같은 주제로 열리고 있는 특별전의 경계에 서있는 듯한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필자는 러시아 영화사에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한 페이지가 열리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그럼, 이 글의 주제인 서울에서 열리는 러시아혁명 100주년 특별전으로 되돌아가보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이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서 인류의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으며, 특히 영화라는 장르는 러시아혁명의 과정 속에서 발전하게 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본 기획이 출발했다.

러시아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 이번 영화제의 일차적 목적이지만, 러시아혁명이 단순히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 20세기를 뒤흔든 역사적 전환점으로서 일종의 미학적인 경험이자 문화적 사건이었음을 생각해 보는 것 또한 본 영화제의 주된 목적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과 <10월>,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 마를렌 후치예프의 해빙기 대표작 <나는 스무살이다> 등 고전 걸작들과, 현대 러시아 영화 주요작가 중 한 사람인 알렉세이 표도르첸코의 <혁명의 천사들>, 그리고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바실리 숙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과 러시아국립영화학교(VGIK)에서 수학했으며, 70~80년대 소비에트 러시아 영화사를 빛낸 알렉산더 미타의 은퇴작 <샤갈 말레비치>등을 상영한다. 지면 관계상 두 작품만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영원한 고전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에서 새삼 눈여겨봐야 할 점은 ‘구원’의 상징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수병 바쿨린추크가 이른바 ‘내적독백’을 통해서 깨닫는 순간이다. 바쿨린추크가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 올리는 짧은 순간 머리 속에 떠올리는 구명대도, 러시아 황제의 문장도, 성직자의 십자가도 구원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장면은 앞으로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오뎃사 계단’의 몽타주 장면은 수없이 언급됐으므로 이 자리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알렉세이 표도르첸코 감독의 영화 <혁명의 천사들>은 2015년도에 러시아 최고 권위의 영화제인 ‘키노타브르(KINOTAVR)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평론가협회 상을 받은 작품이다. 혁명이라는 주제를 떠나서도 이 영화는 2015년도 러시아 영화 최고걸작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므로 필수관람목록에 포함해도 좋을 것이다. 이 작품은 193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과 지방의 이교도 문화를 접목시키기 위해 오프 지역 타이가로 떠났던 예술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34년 한트이와 네네츠의 주술사들은 새로운 전통을 수용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떠난 활동가들 중에는 작곡가, 조각가, 연극 연출가, 구성주의 건축가, 영화감독과 그룹 지도자인 폴리나가 포함돼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폴리나가 주도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 그룹이 그들의 예술을 한트이와 네메츠에게 전파하려는 것이 영화의 주된 서사이지만, 여기서 이 그룹의 가장 큰 욕망은 ‘하늘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 욕망은 이들이 타려고 하는 열기구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하늘을 소유하거나 정복하려는 욕망은 소비에트 러시아 영화 역사에서 꾸준히 묘사됐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다. 영화의 제목과 내용은 혁명가들의 치열한 삶과 그들의 이룰 수 없는 꿈을 나타내고 있다. 폴리나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혁명가들이 실제 ‘천사'도 아니며, 그들이 ‘하늘'을 정복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 인물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순간적으로 다큐멘터리가 되는데, 결국 이 작품은 낡은 것을 혁파하고 새로운 것을 도입하려는 세력과 전통과 규범을 지키려는 세력의 대립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이끌어내고 있다.
한편 주최 측에서는 일부 작품 상영 후에 연구자들의 강의도 준비해 러시아혁명기의 역사와 문학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관객들에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개막작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무성영화 <전함 포템킨>은 피아니스트 강현주의 역동적인 연주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무성영화의 본래적 상영방식에 따라 마련된 이번 연주상영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말 그대로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쉽게 다시 오지 않을 행사이자 기회인 만큼, 요즘 말로 ‘강추'하는 프로그램이다.  


글·홍상우
경상대 러시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