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우파의 화려한 귀환

2017-03-02     크리스토프 방튀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에콰도르에서는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좌파 후보가 대선 1차 투표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럼에도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는 최근 우파의 돌풍이 거세기만 하다. 우파는 때때로 민주주의 제도를 적극 활용해가며 무대에 복귀하기도 한다. 민주주의 제도를 유린하기 위해 열을 올리던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라틴 우파의 전략적 변신을 이끈 주인공 중 한 사람을 만나보자.


라틴아메리카의 우파 세력이 다시금 화려한 귀환에 나서고 있다. 때로는 브라질(1)처럼 사법제도나 언론을 이용해서, 또 때로는 베네수엘라처럼 주변 국가들과의 긴장전략에 기대서 말이다. 하지만, 항상 이런 식으로만 우파가 무대에 복귀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10년 간 좌파가 집권해온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는 기업 총수 출신의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대선을 통해 당당히 국가수반으로 선출됐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저 경제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 원자재 수요가 감소하면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재분배정책의 연료를 모두 소진했다. 그 바람에 실업과 인플레이션, 빈곤이 심화됐고 빈부격차가 증가했다. 한동안 상당한 진보를 이루어온 라틴아메리카에는 어느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각국 정부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다시 재조정했다. 다음으로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각종 부정부패 스캔들로 민심의 분노도 극에 달했다. 하지만 우파는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과정에서, 오로지 ‘정적을 향한 국민의 반감’이라는, 잘 익은 과실을 따먹는 수준에만 머무른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진보주의 세력이 과거 권력행사에만 매몰된 채 전략적 성찰에 소홀하고, 새로운 지정학적 변화와 좌파 승리에 따른 효과를 고려해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면, 일부 우파는 좌파가 심어둔 씨앗을 잘 활용할 방법을 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우파는 신자유주의의 실패, 미국에 대한 굴종, 독재와 탄압이 판을 치던 시절의 권위주의 정치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참신한 정책을 확립하고 새로운 홍보전략을 구상했다. 특히 네 가지 테마를 중점적으로 공략했다. 첫째, 진보주의 시대가 확립한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 정부와 사회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고 약속한다. 가령 후견주의, ‘포퓰리즘’, 개인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간주되는 국가 ‘개입주의’ 등을 종식하고, 마약밀매와 치안부재 해결에 전력을 기울인다. 셋째, 좌파가 조장한 사회적 양극분열 현상을 극복하고 국가통합에 매진한다. 넷째, 젊은 피 수혈과 시민사회 출신의 인재 등용 등으로 정치계의 인력 쇄신에 힘을 쏟는다. 요컨대 기존의 정치·정당·조합 시스템에서 양성된 인력을 기업·비정부기구(NGO) 출신의 인사들로 교체한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우파가 부활하기까지는 사실상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컨설턴트’들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가령 마케팅, 정량조사, 정성조사, 개인심리, 집단심리, 사회학, 홍보기술, 그리고 특히 이념적 성찰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정통한 컨설턴트들의 조언이 든든한 무기가 됐다. 일례로 아르헨티나의 경우에도 우파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한 전문컨설턴트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특별자문관, 하이메 두란 바르바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정치 컨설턴트로서 종사한 35년 간의 인생에 대해 매우 열정적으로 풀어놓았다.

본래 하이메 두란 바르바는 유럽 내에서는 그다지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새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상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인물로 부상했다. 바르바는 건설·자동차 분야에서 활약하는 한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의 피가 흐르는 거물급 사업가의 아들, 마크리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바르바는 마크리가 2004년 정치에 입문해 1년 후 첫 초선 의원으로 당선되기까지 홍보팀을 진두지휘하며 모든 선거캠페인 구상을 주도했다. 그러다 2007~2015년 마크리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으로 재임하자, 바르바는 마크리 시장을 보필하며 막후 실력자로 널리 활약했다. 마크리에게 시장 재임기간은 바르바의 표현대로 2015년 대선전을 향한 ‘시험대’와도 같았다. 결국 기업가 출신 마크리가 아르헨티나 대통령궁인 카사로사다 입성에 성공했고, 바르바는 순식간에 라틴아메리카 지역 내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에콰도르 출신의 쾌활한 70대, 하이메 두란 바르바의 인기는 유명 서점가 코리엔테스 대로를 한 번 거닐어보면 금세 실감할 수 있다. ‘마크리즘’의 산파로서, ‘스타 카운셀러’, 혹은 ‘구루’라고 칭송되는 그의 책들이 모든 서점의 진열창과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황태자의 자문관으로 활동하는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국내 독자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는 것과 달리, 바르바의 책은 날개를 달고 팔려나가고 있었다.

‘인포르메 콘피덴시알(‘비밀보고서’라는 뜻)’의 창업주 바르바는 온종일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위해서만 일하지는 않는다. 그는 2005년 자신이 창당을 주도했던 공화주의제안당(PRO)의 선거운동도 담당하고 있고, 아르헨티나 정부의 자문역할도 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우파의 숨은 실력자로 활약해온 바르바는 사실상 라틴아메리카 내 신자유주의 경제모델 도입(‘워싱턴 컨센서스’-역주)에 팔을 걷어붙였던 수많은 인물들과도 인연이 깊다. 가령 비센테 폭스와 펠리페 칼데론(멕시코, 우파), 안타나스 모쿠스(콜롬비아, 녹색당), 마리나 시우바(브라질, 녹색당,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 하밀 마후아드(보수주의 성향의 전 에콰도르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아르헨티나, 페론주의 우파), 블랑카 오벨라르(파라과이, 우파) 등이 대표적인 예다.

하이메 두란 바르바는 1980년대 이후 줄곧 아르헨티나(1970년대 초 아르헨티나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던 중 우연히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게 된다)에서 살아왔지만, 에콰도르에 대해서만큼은 언제나 각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 가령 그는, 라파엘 코레아 전 에콰도르 대통령의 친밀한 적(코레아 전 대통령은 바르바에 대해 곧잘 ‘정치용병’(2)이라고 표현했다)으로서 2006년 대선전에서 그를 상대로 고배를 마신 ‘바나나 재벌’, 알바로 노보아를 위해 일했다. 또한 코레아의 ‘시민혁명’에 반대하는 두 명의 정치인도 보필했다. 그들이 바로 과야킬 시의 시장, 하이메 네보트와 에콰도로의 수도 키토 시의 시장, 모리시오 로다스다. 바르바는 2014년 시장 선거에서 로다스 후보의 선거운동을 책임졌다. 그리고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재임에 도전한 아우구스토 바레라 후보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하이메 두란 바르바는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보기 드물게, 북미식 교육을 받은 컨설턴트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3) 가령 그는 “우리의 본업은 정치학이 아닌, 응용정치”라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다닌다. 그렇다면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과학적 방식의 접근법이다. 한 마디로 ‘조사와 연구에 의한 정치’를 뜻한다. 체계적이면서 동시에 체계화된 정치. 그런 정치를 추구하는 목적은 단 하나,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다. 즉, 바르바는 “일정 부류를 조사 대상으로 삼아, 누가 우리를 위해 투표 할 것인지, 그 이유와 배경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시민들을 상대로 세계를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겠다고? 아니, 그런 일은 시간 낭비다. 진정한 전략가라면 그런 일은 쿨하게 좌파 이상주의자들에게나 양보하는 것이 낫다. 전략가란 자고로 ‘정치적 신념’에 대해 성찰하기보다는, 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자기 당이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그 생각만 하면 되는 이들이니까.

이런 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도구가 바로 ‘정성조사’다. 그리고 이런 정성조사의 핵심 무기가 바로 ‘타깃층’ 공략이다. 가령 정성조사란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소수의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심도 있고 지속적으로 조사를 실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사회적 위상을 기준으로 8~10명의 표본을 심혈을 기울여 선별한 뒤, 그들의 취향, 욕구, 인생의 우선순위 등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정치적 대상물(후보, 적, 정치 메시지, 정당 등)’을 바라보는 그들의 반응이나 감정 변화 등을 평가한다. 

“일단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알아내면, 그 다음은 후보자를 유권자와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세계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이라고 말하며, 바르바는 거실 벽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벽에는 옛날 지도들이 잔뜩 걸려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시대 이후로 과거의 대제국들이 세계를 바라보던 관점이 고스란히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자신의 현실을 바탕으로 주변 세계를 이해하곤 했다. 항상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2005년, 우리는 조사대상자들을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민 중 일부, 즉 45세 이상 남성들이 일정한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만성적으로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나는 수명 증가, 다른 하나는 끝없이 젊음을 숭배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우리는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신문 구인공고에서 남성 인력을 찾을 때 항상 50세 이하로 연령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르바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새로운 선거 캠페인을 구상했다. 가령 다음과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을 제작했다. “여러분의 나이가 45세 이상이라고요? 그렇다면 마크리가 여러분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겁니다.” 반도네온이 연주하는 아르헨티나 전통음악의 선율에 맞추어, 지그문트 프로이트, 아이작 뉴턴, 토머스 에디슨, 파블로 피카소, 마더 테레사, 루이 파스퇴르의 얼굴이 담긴 흑백사진이 하나씩 화면 위를 지나갔다. 모두 45세가 넘어서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이다. 한편 그는 새로운 정책에 입각해 후보자의 공약도 구상했다. 가령 45~60세 노동자를 일정비율 이상 고용하는 기업에 대해 두 가지의 종류의 세금감면 혜택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르바는 거듭 강조했다. 정치 컨설팅은 광고와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그와는 질적으로 다른 일종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우리는 꼬박 2~3년에 걸쳐 매일 같이 후보자의 캠페인을 준비하고, 초기전략을 구상하는 일에 매달린다. 그리고 이후로도 오래도록 끊임없이 전략을 수정하고 개선한다.”

민주주의와 시장, 개인과 소비자의 공존을 주장하는 다원민주주의의 신봉자, 하이메 두란 바르바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즉 유권자와 유권자를 대표하는 정치인 간에 점점 거리감이 커지는 현상을 극복하려면, 정치 기능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더 이상 부질없이 “집단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상적 가치로서의 역할”만 하지 말고, “현실에 대한 사랑, 구체적인 일상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더 나아가 인간의 생각, 욕구, 일상을 바탕으로 정치적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바르바는 ‘그람시’적인 용어(물론 일부 좌파 포퓰리즘 이론가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할 테지만)(4)를 이용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란 열정이나 감정, 원한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합리성과 정책의 문제에 가깝다. 그런 것들이 유권자를 움직이는 동인이다.”  
하이메 두란 바르바는 현 시대에선 더 이상 원대한 이상, 좌-우파의 구분, 계급투쟁 등이 정치적 결집의 동기가 아니라면서, 자신이 표방하는 자유주의 비전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하나의 부류로서의 민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민중을 그런 식으로 하나로 포괄해버리는 관점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사회의 구조가 완전하게 구축돼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각자 친민중 또는 반민중의 입장 중 하나의 입장밖에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한시적으로 권력 쟁취를 위해, 우연성에 의해 일시적으로 결집하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바르바는 정치활동을 이렇게 정의했다. “동맹을 결성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동맹을 활기찬 상태로 유지하면서, 상대 동맹의 힘은 약화시키는 것.”

하지만 그것은 사상이 빠진 정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이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새로운 역사의 단계로 진입했다. 이제는 정치가 지금 한창 탄생 중인 새로운 종류의 사회의 일원과 그들이 지닌 가치관을 한 데 통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르바에 의하면, 좌파가 잉태한 사회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생명이 꺼져버린 사산아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좌파는 원자재 호재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면 할수록, 점점 유권자를 소비와 중산층이 누리는 유토피아의 세계로 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정책이 다 떨어져버렸다. 그래서 유권자가 등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역설적 현상은 좌파에게 치명타를 날렸다. 따라서 최근 몇 년 동안 좌파가 권력을 행사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것은 미래의 패배를 앞당기는 것에 가까웠다.”

하이메 두란 바르바는 두 권의 저서(5)에서 이러한 분석을 지난 40년의 세월까지 확대해 설명했다. 바르바에 의하면, 지난 40년의 세월은 라틴아메리카 지역민이 정치활동을 기획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즉 인구가 증가하고, 유권자 참여가 확대됐다(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투표가 의무화됐다).(6) 또한 도시개발이 심화됐고 기술혁명에 힘입어 개인의 자율성이 높아지고 교육의 기회가 늘어났으며, 수직적인 전통적 사회관계가 와해되면서(가정, 종교, 가부장제, 후견주의), ‘새로운 종류의 유권자층’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에 따라 행동하고 기존의 엘리트나 권위에 저항하는,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적이며, 일정한 정보력을 갖춘 소비자로서의 유권자. 바로 그런 종류의 유권자가 오늘날 ‘중산층과 그 이하 계층’의 핵심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바르바에 의하면 선거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들 유권자는 모두 5개 부류로 분류해볼 수 있다. 즉 ‘강성한 유권자(우리 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유권자)’, ‘유연한 유권자(상대후보에 호감은 있지만 그다지 열렬히 지지하지는 않는 유권자)’, ‘가망성 있는 유권자(상대후보를 지지하지만 우리 후보에게도 호감을 표시하는 유권자)’, ‘어려운 유권자(우리 후보나 우리 정책에 반대하는 유권자)’, ‘가망성이 전혀 없는 유권자(우리 후보에 확실한 반감을 가진 유권자)’, 이렇게 5개 부류다. 두란 바르바는 “우리는 각종 조사와 통계 도구를 기반으로 ‘유연한 유권자’와 ‘가망성 있는 유권자’ 집단의 성향을 바로바로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이 부류의 집단은 “정치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다소 부족하지만, 머리는 똑똑한 합리적인 유권자로 간주된다. 우리는 이 집단의 욕구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들은 무엇을 싫어하는가? 그들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다.” 전략가 두란 바르바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는 보다 참신한 정책을 구상하며, 이들 신흥 중산층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지도자를 배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바로 그런 일에 공헌해왔다.” 바르바는 약간 우쭐해하며 이야기를 끝마쳤다.
인터뷰가 끝난 뒤, 우리의 인터뷰이는 마크리 후보를 비롯해 예전에 담당했던 여러 후보들을 위해 제작한 선거홍보용 비디오 샘플을 여러 개 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바로 우리 후보자들을 승리로 이끈 최대 공신”이라고 말했다. 그 중 한 비디오를 틀자 후보자 마크리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화창한 아침 콘셉시온델우루과이(엔트레리오스 주)에서 단추를 풀어헤친 셔츠 차림으로 화면에 등장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 애기 아빠 니콜라스와 마당 한 쪽에 놓인 탁자에 나란히 앉은 후보자는 하얀색 바탕에 꽃무늬가 새겨진 식탁보 위에 차려진 마테차를 함께 마시며 여느 가정의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해보였다. 미래의 대통령이 젊은 아기 아빠와 격의 없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시도했다.

“자네는 우리가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먼저 정치지도자가 질문을 던졌다. “부디 그러기를 희망하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게 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해주길 원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말이지.” 하지만 별안간 니콜라스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한다. 그러다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대답한다. “미안하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군.” 두 남자 사이에 오랫동안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여느 선거홍보 동영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다. 잠시 후 아기의 눈을 그윽하게 내려다보던 아기 아빠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마크리가 젊은 아기 아빠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위로한다. “걱정하지 말게.” 마침내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카피 문구가 떠오른다. “우리는 변화를 믿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우리시오와 니콜라스는 서로를 포옹한다.

바르바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진짜 중요한 질문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유권자가 잠자리에 들면서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사회주의? 아니다! 그건 바로 안락한 삶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과 가족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의 말대로 ‘소소한 일상의 유토피아’를 만들어가야 하는 세상이 열린 것은 아닌지. 한 마디로 유권자를 유혹하면서도 기득권층을 보호해주는 그런 유토피아 말이다.  


글·크리스토프 방튀라 Christophe Ventura
특파원. 저서로는 <대륙의 기상,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국가들의 지정학>(Armand colin, Paris, 2014)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Laurent Delcourt, ‘Printemps trompeur au Brésil(브라질의 가짜 봄, 반부패 운동을 가장한 쿠데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5월, 한국어판 2016년 6월.
(2) ‘Correa pide a Rodas explicaciones sobre Durán Barba’, <La República>, 2016년 3월 26일.
(3) Serge Halimi, ‘Faiseurs d'élections made in USA(미국산 선거메이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9년 8월.
(4) Razmig Keucheyan, Renaud Lambert, ‘Ernesto Laclau, inspirateur de Podemos(포데모스당에 영감을 불어넣어준 라클라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9월, 한국어판 2015년 10월.
(5) Jaime Durán Barba, Santiago Nieto, <Mujer, Sexualidad, Internet y Política. Los nuevos electores latinoamericanos>, Fondo de Cultura Económica, Mexico, 2006년 ; El arte de ganar. Cómo usar el ataque en campañas electorales exitosas, Editorial Sudamericana SA, Buenos Aires, 2010년.
(6)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