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꿈꾸는 위험한 21세기 자유주의

2017-03-02     조디 커밍스 캐나다 요크대 교수
   
▲ <저스틴 트뤼도>, 2017 - 하이디 블럼스테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아마도 현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일 것이다. 적어도 언론 보도를 보면 그렇다. 그는 ‘뜨겁도록 섹시한 남자(Smoking Hot Syrupy Fox)’(1)로 불리기도 하고, 뜬금없이 캐나다 관련 ‘특별 보도’를 싣고자 하는 <뉴욕타임스>의 타깃 온라인 광고에 대문짝만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여기에 프랑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쿠리에 앵테르나쇼날>은 그를 ‘올해의 남자’로 선정했고, <르 푸앙(Le Point)>은 한술 더 떠 독자들에게 니체를 환기시키며 “젊은 쥐스탱은 정치계의 새로운 슈퍼맨”이라고 언급했다. 마린 르펜(2)의 급부상, 올랑드 대통령의 린든 존슨식 실패(1965년 존슨 미대통령이 주도한 ‘위대한 사회’ 건설 정책-역주)와 비애감, 그리고 중도 좌파와 극우세력의 권모술수 등으로 점철된 프랑스에서 쥐스탱 트뤼도와 같이 젊고 잘생긴 정치인에 목말라하는 현상은 충분히 자연스럽다. 세계적인 록그룹 U2의 보노(Bono)나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지닌 글로벌한 매력, 여기에 그의 아버지가 추진하던 ‘공식적인’ 캐나다 문화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며 포크록 가수 조니 미첼, 소설가 모데카이 리클러 등이 지닌 캐나다인 특유의 소탈함까지 겸비한 트뤼도는 구세주처럼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특히 그는 다양성을 갖춘 내각 구성으로 언론의 칭찬세례를 받았는데, 트뤼도 내각은 남녀 성비가 동일하고 장관 상당수가 유색인종이다. 그가 임명한 ‘상남자’ 스타일의 국방장관 하지트 사잔은 시크교도 캐나다인으로, 전직 밴쿠버 경찰이었다가 이후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 언론은 사잔에 대해 “다양성의 훌륭한 본보기”라고 보도해왔다. 그러나 사잔 장관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첩보기관과 함께 일할 당시 캐나다가 억류하고 있던 전쟁 포로들을 아프간 당국에 넘긴 책임을 안고 있으며 이 전쟁 포로들(대부분 잘못된 타이밍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을 인도받은 아프간 당국이 포로들을 고문하고 성폭행한 사실은 다수의 언론보도에서 누락됐다. 사잔이 다문화판 ‘제임스 본드’생활을 했을 당시, 캐나다 정보국이 미국의 이례적인 용의자 인도 프로그램에 참여 및 협조했던 경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언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언론은 사잔의 유명한 턱수염, 그리고 그가 집착하는 시크교도 정체성이 새로운 캐나다의 이념인 ‘포용방식(Sunny Ways)’(3)의 핵심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다. 총선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둔 직후, 트뤼도는 다양성을 예찬하는 자신감 가득한 연설을 통해 ‘포용 방식’을 언급했는데, 르펜의 부상과 테레사 메이의 우편향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캐나다 이남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버젓이 당선된 상황을 고려할 때 그의 연설이 시사하는 바는 더욱 커 보인다. 인생을 즐기는 사교가였던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아들로, 준수한 외모에 나이도 비교적 젊은 트뤼도가 애매모호한 반(反)긴축정책 공약에 다양성 및 마리화나에 대한 찬성 입장을 가미해 당선된 점은 트럼프나 르펜과 같은 인사들이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상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 어떤 잣대로도 좌파로 볼 수 없는 트뤼도는 전통적으로 노동운동 정당인 신민주당(NDP)의 좌익세력에 어필했다. 이와 더불어 캐나다의 노동조합 관료들과 일반 회원들은 점점 ‘제 3의 길’을 걷는 NDP에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고 트뤼도의 진영으로 옮겨갔다.

철저히 반노동조합 체제를 견지했던 스티븐 하퍼 총리(2006~2015, 보수당) 집권시절에는 맥을 못 추다가 이제야 활동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노동계 지도자들은 트뤼도가 단체교섭권 추진을 허락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노동자들의 벗’이라 부른다. 캐나다 노동총연맹(CLC)의 하산 유세프회장은 “노동 운동에 낙관적 분위기가 일고 있다. 특히 연금확대는 노동자들에게 크나큰 승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업이라는 무기의 부활 필요성은 강조하지 않은 채 석면 금지를 위해 트뤼도 정부의 온정에 호소하는 유세프 회장은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듯 하다. 지난 2016년 여름, 캐나다우편노동조합(CUPW)이 파업 일보 직전까지 갔을 당시, 트뤼도 정부가 이전의 보수 및 진보 정부들과는 달리 노동자들에게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점은 실제로 조합에 도움은 됐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휴가 시즌 파업의 가능성이 가시화 될 때까지 ‘끝까지 기다렸기 때문에’ 도움이 된 것이었다. 유세프 회장은 좌파 주도의 CUPW가 취한 위와 같은 훌륭한 전략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합법적인 단체교섭이 트뤼도 총리와 그의 정부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운용을 허용한 덕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는 캐나다 노동계층의 기대치가 상당히 낮아졌음을 보여준다. 유세프 회장이 트뤼도 총리를 극찬하고 있던 그 때, 과거 그가 속했던 노동조합은 ‘빅 3’ 자동차 회사인 포드, GM 및 크라이슬러-피아트를 상대로 모호한 투자 약조의 대가로 양허적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특히 민간부문의 노조관료들, ‘진보적 경쟁력(Progressive Competitiveness)’(4)을 전폭적으로 믿는 자들은 트뤼도에 대해 야단법석을 떨며 유니포(UNIFOR)(5) 대회에 그를 초대했는데, 이곳에서 흥미롭게도 트뤼도는 동독 국기와 닮은 ‘젊은 노동자’ 로고가 있는 무대에 올라 연설을 했다. 노동계 지도자들은 트뤼도가 자동차 업계 및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보장해 줄 것을 희망했다. 동시에 진보를 달성하거나 점차 약화돼가는 그들 내부의 복지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캐나다가 계속해서 ‘경쟁력 있는’ 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경쟁력 있는’ 자유무역은 트뤼도 총리의 주요 이념이자 그의 외교정책의 핵심이다. 곧 있을 캐나다-EU 포괄적무역협정(CETA) 협상과 관련해, 이 협정이 캐나다와 유럽 노동자들에게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들은 놀랍게도 잠자코 있다. ‘존경할만한’ 경제학자들조차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지금, 트뤼도 총리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로서 공식 석상에서 외로이 옛적 휘그주의식(영국 최초의 근대적 정당인 휘그당이 주창한 자유주의사상-역주) 주장을 펴고 있다.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포스트 모던적인 존 스튜어트 밀 사상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보호주의와 경제 민족주의의 확산이 불러올 역행적 결과들에 대해 경고함으로써 트뤼도는, 그의 21세기 자유주의 틀 안에서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이든 독재주의 국가이든, 그리고 공산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상관없이, 다양성과 세계주의에 대한 그의 관심 및 열정과 같은 맥락의 글로벌 자유무역 정책을 옹호할것 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가 고전적 진보 매체들, 그 중에서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사랑을 받는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북쪽으로 이동하는 자유. 세계에 본보기가 되고 있는 캐나다(Liberty moves north. Canada’s example to the world)’(<이코노미스트> 2016년 10월 29일자).

트뤼도는 캐나다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엘렌 마이크신스 우드가 자본주의의 사회적 소유 관계(6)의 특징인 정치와 경제의 공식적 분리(또는 차별화)(7)라고 말한 개념에 입각해, 자신이 국제 인권의 가치를 진실로 믿고 이를 실제로 전파하고 있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전례 없는 무기 거래를 진행 중이다. 캐나다는 중동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무기 거래 국가다. 실제로 캐나다는 국내법들을 수정함으로써 자국의 군수 및 중공업 업체들이 사우디에 수출하는 무기가 사우디 시민들뿐만 아니라 예멘과 바레인 국민들을 살상하는데 쓰일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의 무기 수출관련 법들은 해당 무기들을 자국 시민들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었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악법이었다. 기존 법들은 무기 판매 이전에 반드시 ‘폭넓은 협의’를 거칠 것을 명시했으나, 현재의 법은 모호한 언어를 사용해 “협의를 거칠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셜리스트 워커(Socialist Worker)>의 존 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기존 법규는 캐나다의 무기 수출이 캐나다, 캐나다의 동맹국, 또는 기타 국가 내지 국민안보를 위협하는 데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새로이 트뤼도가 승인한 표현은 이러한 ‘핵심’ 부분은 누락시키고, ‘캐나다, 캐나다 동맹국 또는 민간인들의 안보’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중국 공산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중국 자본주의를 예찬한다는 측면에서도 그의 아버지의 족적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의 CEO 마윈은 트뤼도를 “캐나다의 미래”라고 칭했다. 트뤼도뿐만 아니라 그의 형제들도 중국 사회, 특히 중국의 일부 반민주주의적 요소들을 찬양하는 말들을 해왔다.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는 “양 측을 경쟁시켜 중간에서 득을 얻는” 방법으로 냉전에 대처했고, 고인이 된 피델 카스트로 및 마오쩌둥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캐나다 경제를 강건하고 상대적으로 평등한 복지 자본주의 사회로 능숙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헤겔 철학을 바탕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양상은 캐나다 내의 민관 협동조합 조직들과 ‘공산주의’ 국영 기업들 간의 긴밀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까지 이어졌다. 캐나다 <글로브앤드메일(Globe and Mail)>지의 로버트 파이프와 스티븐 체이스 기자는 자유당 기금모금행사에 대해 “5월 19일 행사에 참석한 인원 중 적어도 세 명은 중국 국영기관의 고위 기관원들이었다”고 보도했다. 영향력 있는 중국-캐나다 기업 커뮤니티가 참석한 이 기금모금 만찬은 트뤼도가 ‘외국돈’을 받는다는 점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데, 야당에서는 트뤼도와 중국과의 우호관계에 대해 일종의 ‘황화론’(8)적인 어조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것이 캐나다 외교 정책의 본질이라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현재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새로운 보호무역주의 리더십 하에 폐기를 앞두고 있고, 민주당의 포퓰리스트 진영이 영향력을 얻고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동아시아 지역 내 미국의 패권이 몰락하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가들은 중국의 패권주의 야심에 굴복해 TPP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주도의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에 가입하고 있다. 국제적 마인드를 가진 캐나다 자본주의 계급층이라면 트럼프가 초기부터 중국에 호전적 자세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는 세계정세 향방에 대한 감을 잡고 캐나다가 어서 RCEP에 동참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트뤼도의 정치가 트럼프의 정책과 아무리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캐나다 화석연료 업계로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기각한 키스톤(Keystone) XL 송유관(9) 및 기타 송유관 프로젝트들을 찬성하는 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에 크게 안도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앞서 언급한 사우디와의 무기 거래, 이스라엘과 맺은 ‘도시 간’ 파트너십, 아르헨티나 마크리 대통령과의 특별한 유대관계를 볼 때 트뤼도 총리의 캐나다는 자본주의 국제주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캐나다는 나토의 동유럽 작전에 수백 명의 군대를 파병함으로써 푸틴의 러시아 국경 주변 전시조직체제에 앞장을 서고 있는데, 이는 하퍼 전 총리의 반러시아 외교정책의 연장이자 피에르 트뤼도의 친러시아 정책으로부터 명백히 벗어난 것이다.

트뤼도 총리가 ‘진보적’ 후보자로 당선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는 어떻게 이 모든 상황들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분적으로는 지정학적인 국제 문제 및 경제 문제를 “국내적인” 통치 문제와 교묘히 분리하는 트뤼도의 능력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트뤼도 정부 내 일부 요소들이 선의를 가진 반인종주의적 면모를 띠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들은 가부장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퍼 전 총리가 캐나다의 식민주의 역사 존재 자체를 부정한 이후, 원주민들을 돕겠다는 정부가 들어선 것 자체만으로도 상황이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뤼도 총리는 계속해서 원주민들의 영토를 식민지화 하고 있고, 실제로 이를 더 강화해왔다. 그러나 여러 질문들과 화해 프로세스들에 대해 그가 몇 마디 진보적인 용어들을 쓴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 심지어 일부 원주민들이 감동하기에는 충분했는데, 트뤼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소외시켰고, 식민주의적 행동을 해왔다…이로써 캐나다에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대대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바로 원주민들이다.” 

그러나 온갖 바른 말들로 구성된 트뤼도의 표현을 보면, 그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원주민들 및 다수의 진보성향 캐나다인들이 캐나다와 겹치는 국가(Nations)로 간주하는 것들을 캐나다가 계속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런 국가들은 페리 앤더슨이 말한 ‘단편화된 주권(Parcellized Sovereignty)’의 현대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10) 과거에 영국인 및 프랑스인 정착민들과 원주민 국가들 간에 두 줄의 조가비 구슬 벨트(11)로 조약을 맺는 행위가 의미했던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이제 개개인 대 국가의 관계로 대체되고 있다. 분명 원주민들은 아시아인들 또는 유대인들과 같이 소수민족 및 다문화 유권자 그룹이 될 권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캐나다 국가나 국민들은 원주민들을 국가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러한 면에서 “북쪽 주민들을 돕는 일”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이 문제는 그들만의 ‘정통’을 유지하고 있는 원주민들의 특수성에 대해 진보성향 캐나다인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집착이기도 하다. 트뤼도 정부는 북쪽 지역 배핀 아일랜드의 클라이드 강 주변에 사는 원주민 이누이트족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2015년 10월, 선거 이전에 열린 ‘원주민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타운홀 미팅에서 트뤼도는 원주민들이 송유관 개발 프로젝트를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환경보호주의자들과 원주민 유권자들을 염두에 둔 수사법에 불과하다. 클라이드 강 주변의 이누이트족들은 수년간, 찾아내기 어려운 원유와 가스를 탐사하는 ‘탄성파탐사’를 반대해왔는데, 이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식량 공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이에 따라 지역사회 거버넌스 조직들은 이러한 환경파괴적인 지구물리 탐사의 승인을 강력히 반대 및 거부해왔고, 탐사가 승인되면 그 다음 수순은 바로 송유관 건설(아마도 그린란드를 경유해서 북극을 통하는 경로)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물론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는 유엔원주민권리선언(UNDRIP)에도 배치된다.

“국가들은 원주민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입법 또는 행정 조치를 채택 및 시행하기 전에 원주민들의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사전 동의를 얻기 위해 그들의 대표 기관을 통해 관련 원주민들과 성실하게 논의하고 협력해야 한다.”

원주민 문제 전문가인 워렌 버나우어(<캐나디언 디멘션(Canadian Dimension)> 2016년 11월호)에 따르면, 캐나다의 국가에너지위원회는 탄성파탐사(법원에 이의를 제기해놓은 상태)가 위에 언급된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사전 동의’ 조항을 조금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밝혔다. 물론 캐나다 천연자원부 장관은 놀랄 만큼 뻔뻔스럽게 자유당 정부가 UNDRIP의 ‘캐나다 버전’을 작성중이라고 언급했다. 오랫동안 원주민 활동가로 일해 온 러스 디아블로가 말하듯, 이러한 태도야 말로 그간 진보정부들이 원주민들에 대해 ‘대중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들’을 늘어놓고 뒤에서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식민정책을 계속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트뤼도 총리 부임 후 캐나다의 외교정책도 계속해서 또 다른 ‘정착자 식민주의’를 충실히 지원하고 있는데, 이번 대상 지역은 팔레스타인이다. 일부에서는 이전의 보수 정권에서 취했던 극우 시오니즘과 비교하여 트뤼도 정부에 들어 있었던 관료 인사이동,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대해 ‘공평한’ 입장으로 눈에 띄게 노선을 변경한 것을 주목해왔으나, 실제로는 그 어떤 정책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향후에 가해질 비난을 감추기 위해 트뤼도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그들의 지지자들, 특히 불매운동, ‘투자 철회 및 제재조치(BDS)’ 운동(12)에 대한 비난을 옹호해왔다. 2016년 2월, 보수당은 BDS를 규탄하는 법안을 상정하면서 이스라엘을 ‘악마 취급하고 비합법화’하는 BDS 운동은 반유태주의나 다름없다는 점을 암시했다. 물러나는 톰 멀케어(Tom Mulcair) NDP 당수가 BDS 운동 규탄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자유당원들은 트뤼도의 지휘아래 해당 법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지지했다. 그 결과 특히 교육자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미시소거의 한 교사는 팔레스타인 연대 캠페인에 오랜 기간 몸담았다는 이유로 교사직을 정지당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트뤼도를 흠모할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애매모호하게 반신자유주의, 반긴축정책 캠페인을 벌였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수백만 캐나다인들은 마리화나의 오락적 사용을 합법화하려는 트뤼도의 (일관성 없고 모순된) 계획을 이유로 그를 존경하고, 실제로 마리화나를 싸는 종이 포장지에 트뤼도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벗이자 캐나다의 오랜 동맹자(이며 외국인직접투자의 수혜자)였던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하자, 트뤼도는 미안한 기색 없이 성명을 발표하면서, 카스트로를 ‘전설적인 혁명가’로 부르고 심지어 ‘사령관’이라는 그의 별칭까지 사용했다. 캐나다 및 전 세계 수많은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민간 언론들은 트뤼도의 애도 성명에 대해 빨갱이 사냥을 시작했고, 트뤼도보다 좌편향된 것으로 생각되는 일부 무늬만 사회주의자인 자들까지도 이에 합세했다. 그러나 트뤼도가 그의 ‘가족의 친구’였던 카스트로를 애도한다고 해서 그가 카스트로의 평등주의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가 자산의 민영화 문제에 있어서 트뤼도는 보수주의자들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면모를 보였는데, 크레딧 스위스 은행 간부들과 공항 민영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토론토 스타(Toronto Star)>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2016년 11월 14일자). 

“NDP의 재정 비평가인 가이 캐론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최상의 측면을 이용하는 민관 인프라 은행을 통해서, 결국 민간 투자자들이 도로, 교량, 병원 및 기타 인프라의 약 80%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또한 트뤼도는 자신들의 비용절감 논리를 따르면 납세자들에게 더 많은 비용이 전가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민관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그렇다. 자유무역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아직도 일부는 자유무역 옹호자인 트뤼도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트럼프나 ‘우향우’하고 있는 테레사 메이, 당선가능성이 높아지는 프랑스의 르펜, 모디, 푸틴 등등의 인물들을 보며 캐나다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글로벌 정치세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현 시류 속에 트뤼도 및 그 밖의 다른 이들의 위험성이 존재하는 부분이다. 정치 스펙트럼이 기존의 좌파/중도/우파의 프레임에서 ‘세계주의vs국수주의’라는 새로운 틀로 탈바꿈하고 있는 시점에서 트뤼도 총리는 전자의 신규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다. 오바마에 버금가는 카리스마와 호감도 덕분에 그는 비난을 면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클린턴의 제3의 길과 크레티앙(캐나다 전총리, 1993~2003, 보수당)의 ‘신자유주의’를 통합한 트뤼도 및 그의 좌파 진보주의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사회 운동, 노동자 운동, 그리고 원주민 운동 등이 트뤼도와 하퍼 전총리, 클린턴과 트럼프, 올랑드(프랑스 대통령)과 르펜(프랑스 극우정치인) 모두에 도전하는 반헤게모니적 세력으로 제도화하지 못한 것에 있다. 트럼프와 트뤼도는 같은 동전의 다른 면과 마찬가지다. 이제는 아예 통화를 바꿀 때다!   


글·조디 커밍스 Jordy Cummings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요크 대학교(York University)에서 비즈니스와 사회를 가르치고 있으며, 사회주의자이자 노동조합원으로도 활발히 활동중이다.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E! Online의 2015년 10월 21일 기사
관련기사:http://www.eonline.com/news/708291/canada-s-new-prime-minister-justin-trudeau-is-a-smoking-hot-syrupy-fox-see-twitter-go-nuts
(2) Marion Anne Perrine Le Pen. 프랑스 정치인으로 극우파정당 국민전선(FN)의 대표.
(3) 총선 승리 후 연설에서 트뤼도 총리는 과거 윌프리드 로리에(Wilfrid Laurier) 총리가 채택했던 Sunny Ways를 언급했다. 로리에 총리는 당시에 있었던 갈등상황에 대해 이솝우화의 햇님과 바람 이야기에 상황을 빗대어 표현하며 바람이 아닌 햇님의 방식을 취하겠다고 말했고 실제 큰 효과를 거뒀다. 참고사이트:https://www.liberal.ca/the-sunny-way/
(4) 신자유주의적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안인 라인 자본주의(Rhine Capitalism)의 핵심적 개념으로 노동 참여적 노사관계가 생산력 향상과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이론. (출처: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정성진 교수, http://jbreview.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0&no=221)
(5) 캐나다 최대의 민간 부문 노동조합
(6) 참고자료: http://www.versobooks.com/blogs/2345-charles-post-the-separation-of-the-economic-and-the-political-under-capitalism-capital-centric-marxism-and-the-capitalist-state
(7) 참고 자료: http://www.versobooks.com/blogs/2302-ellen-meiksins-wood-the-separation-of-the-economic-and-the-political-in-capitalism
(8) 황인종이 서구 백인을 위협할 것이라는 이론.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D%99%94%EB%A1%A0
(9) 오일샌드 생산지 캐나다 알버타 주와 정유시설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를 1800km 길이의 송유관으로 연결해 원유를 운반하는 프로젝트.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11월 송유관 건설 최종 거절했으나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이를 승인하겠다고 함. 출처:https://news.kotra.or.kr/user/globalBbs/kotranews/5/globalBbsDataView.do?setIdx=244&dataIdx=153934
(10)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페리 앤더슨은 중세시대 봉건사회에는 주권이 중앙으로 통합되지 않고 봉건 영주들에게 분산돼 있는 단편화된(parcellized)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참고논문: 영토적, 경제적 거버넌스로서의 신봉건주의(neofeudalism), 김태환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참고자료:https://ko.wikipedia.org/wiki/%ED%8E%98%EB%A6%AC_%EC%95%A4%EB%8D%94%EC%8A%A8
(11) 과거 유럽 정착자들과 북아메리카 원주민들 간에 조약을 맺을 때, 흰 색 바탕에 두 줄의 보라색 평행선이 있는 조가비 구슬 벨트를 이용했다. (참고: https://briarpatchmagazine.com/articles/view/a-short-introduction-to-the-two-row-wampum) 
(12)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책임을 묻는 취지에서 이스라엘 제품 불매, 이스라엘과의 교류 및 투자 중단, 제재 부과를 하자는 국제적인 운동이다. 참고: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