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세상의 끝에서 만난 대형 쇼핑몰

2017-03-02     조르지 라자레브스키 다큐멘터리 감독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때로는 이 세상의 끝자락에 대한 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머나먼 곳, 잘 보존된 은밀한 곳, 태고의 순수함을 생생히 간직한 곳. 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한 티에라델푸에고 섬이 바로 그런 곳이다. 타지에 대한 환상을 간직한 이들에게 이와 같은 매력을 선사한다. 그런데 그 환상을 따라 이곳에 온 사람들은, 드넓은 이 섬의 한복판에서 자신들의 일상에서 익숙한 것들로 가득한 대형 쇼핑몰을 만나게 된다.


“조나 프랑카, 전 세계 최고 제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세요!” 마젤란 해협의 연안 곳곳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광풍이 휘몰아치기로 유명한 이 지역에, 집집마다 똑같은 라디오 방송이 들려온다. “연간 방문객 9백만 명, 매출액 3억 달러 달성! 지금 방문하세요!” 로고송 사이로 이어지는 광고문구들은 모두 조나 프랑카(Zona Franca, 스페인어로 ‘자유무역지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젤란 해협 연안, 칠레 파타고니아 남부 도시 푼타아레나스에 자리 잡은 이 대형 쇼핑몰은 도시명칭의 뜻 그대로, 모래 곶(Sandy point) 위에 위치하고 있다. 항구도시이기도 한 푼타아레나스는 파나마 운하가 건설되기 전인 20세기 초반까지는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오가는 선박들이 혼 곶의 풍랑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로 향하는 빌딩만한 거대 여객선들이 일탈을 꿈꾸는 수천 명의 여행자들을 잠시 쏟아내는 기항지에 그치고 있다.

‘세상의 끝(El fin del mundo)’이라는 푼타아레나스의 별명은 그 자체가 일탈의 꿈을 자극하는 일종의 브랜드이자 라벨이다. 이 이름은 맥주, 커피, 레스토랑, 관광코스 등 곳곳에 붙여져 있으며, 심지어 이곳을 지나는 9번국도 일부는 ‘세상의 끝 길’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푼타아레나스를 방문한 이들에게 이곳이 바로 세상의 끄트머리, ‘아무도 손대지 않은 땅’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매일의 일상과 연결된 탯줄이 끊어졌다는 것을, 여기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헛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꿈을 꾸는 여행자들은 이내 관광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파타고니아 최대 쇼핑몰인 조나 프랑카에서 쇼핑을 안 하면, 푼타아레나스에 들렀다 말할 수 없죠!”(1)

죄수를 가두던 곳에 이제는 물품을 가둔다

결국 조나 프랑카를 방문한 이들은 세상의 중심이 세상의 끄트머리에 콘크리트 복도, 창고형 진열대, 자동차 쇼룸, 최신형 LCD TV가 가득한 진열장, 면세 주류들, 호마이카 목재 가구, 야생의 불편함을 모조리 해소시키는 각종 캠핑장비 등을 아낌없이 채워 넣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극히 현대적인 파타고니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1977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 당시 세워진 조나 프랑카는 마젤란 지역 주지사였던 닐로 플러디 장군에 의해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닐로 플러디 장군은 1973년 11월 이른바 ‘과격무장단체 숙청작전’에 참여하는 등 각종 인권단체에서는 악명 높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어 피노체트 정권에서 경제부를 맡았던 호세 피녜라 전 장관과 그가 속한 시카고학파(2)의 추진 하에 푼타아레나스는 일종의 세계화 실험장이 됐다. 석유, 물, 통신, 항공수송 등을 담당하는 공기업들이 파격적인 금액으로 민간에 넘어갔고, 마침내 북쪽으로 3천 킬로미터 떨어진 수도 산티아고와 연결된, 육로도 없었던 이 칠레 최남단에서도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강력한 이웃 국가인 아르헨티나가 근방의 비글 해협 섬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을 때 칠레 정부는 주민들의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조나 프랑카가 이 지역 발전을 위한 선봉부대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러한 개발 정책은 한 세기 전 오나 족, 알라칼루프 족, 야간 족 등 원주민들을 말살시켰던 식민화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곳에는 바다의 물보라를 맞고 부식된 창고들이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고 늘어서있다. 꿈을 이어가려는 듯 이 창고에는 주기적으로 강렬한 색상의 페인트가 칠해진다. 한편 조나 프랑카는 쉬지 않고 증가하는 연간 매출액을 내세우고 있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월마트 그룹이 같은 도시에 ‘피오네로’라는 경쟁 쇼핑몰을 세우면서 타격을 받기도 했다.

조나 프랑카의 24시간 감시를 담당하는 경비업체 세쿠리타스 소속 직원 파트리시아 레보예도는 이곳을 매일 순찰한다. 해가 지고 물품을 가득 실은 카트의 바퀴 소리가 멈추면 레보예도는 철조망과 초소가 딸린 출입문들을 잠그기 위해 부지런히 쇼핑몰 복도를 오간다. 철조망 안에 각종 제품들을 가둬두는 것이다. 결국 이 도시의 전반적인 풍경은 1848년 처음 생기던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과거 푼타아레나스는 장기간동안 수감자들을 묶어두는 ‘죄수 유형지(Penal colony)’ 역할을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주를 감행하던 탈옥수들은 결국 얼어 죽곤 했다. 그러다가 1877년, 간수에 대한 보조금이 폐지되자 수감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빈곤에 시달리던 간수들이 거센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이곳은 ‘죄수 유형지’에서 국가가 도시를 형성해 통치권 구축을 도모하는 ‘개발의 땅’으로 변모했다.

최근의 시위에서도 그 반향을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칠레 정부가 이 지역의 가스요금에 대한 보조금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하자 지역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거리마다 수백 개의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전 지역이 마비됐고, 약 일주일동안 관광객들의 발까지 묶이고 말았다. 결국 정부가 결정을 취하하고 4명의 장관이 사임을 한 후에야 시위는 끝났다. 피노체트 군사독재 반대 시위 이래로 이토록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매섭도록 추운 이 지역에서는 근방에서 캐내는 가스가 여전히 생명과 직결되는 공공재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나 이곳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혹독한 기후와 지리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마젤란 해협 전역을 거느리려는 칠레의 국가적 이상의 주도자이자 개척자로 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결국 2014년,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이곳에 대한 가스 보조금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빈부격차는 여전히 극심하다. 칠레 사회는 10여 개의 주요 가문들이 쥐고 있는데, 2030년까지의 조나 프랑카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들 중 하나인 피셔 가문이다. 피셔 그룹은 특히 부동산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칠레 전역은 물론 페루, 중앙아메리카, 남아프리카 등지에서 다수의 쇼핑몰과 카지노도 운영하고 있다(실제로 조나 프랑카에서 멀지 않은 카지노 ‘드림스’도 피셔 그룹의 소유다). 한편 피셔 가는 푸치 가의 연어양식 전문기업인 아쿠아칠레(Aquachile)의 지분도 상당 부분 소유하고 있는데, 아쿠아칠레의 양식활동은 푼타아레나스의 북쪽에 위치한 칠로에 섬의 심해 생태계 파괴 등 수많은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과거의 영광 뒤에 남은 칠레 국민들의 삶

반면 대부분의 칠레 국민들은 생계를 위해 온갖 부업을 병행하며 살고 있다. 레보예도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가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15세 때로, 고등학교 교복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면서 학업을 접어야 했던 그녀는 현재 경비일을 하며 매월 250달러를 벌고 있다. 이는 네 명의 아이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녀는 경비실에 앉아 조나 프랑카 북쪽 출입구를 감시하면서도, 계속 구인광고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 구인광고는 중장비 운전연수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 이를 통해 대규모 탄광 ‘미나 리에스고’에 취직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북쪽에 위치한 이 탄광은 룩시치 가문이 환경운동가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근 개광한 곳이다. 레보예도는 “광산이야말로 칠레의 돈줄이죠. 수익이 가장 많이 남으니까요”라고 말하며 다른 직업, 다른 삶을 꿈꾸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레보예도의 뒤로 보이는 마젤란 해협의 검푸른 물 위에는 여객선들이 조용히 불빛을 번쩍이며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바다 위 표류물들을 피해 우수아이아로 향하는 이 배는 탐험을 꿈꾸는 열정적인 여행객들을 남극 빙해로 데려가고 있다. 지상에서는 관광버스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토지 구획용 울타리를 따라 달려가고 있다. 관광버스 탑승객들은 바깥 풍경을 스마트폰으로 찍느라 바빠, 그들 앞에 펼쳐진 기나긴 철조망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 땅의 개발역사가 담겨 있다. 순수함을 간직한 세상으로의 일탈을 약속하는 관광산업이나, 소비의 즐거움이라는 꿈을 심어주는 조나 프랑카 이전에도, 이 지역에는 빠르게 나타나 빠르게 사라져간 수많은 개척자들의 환상과 엘도라도가 존재했던 것이다.
 

1945년에는 마젤란 해협 너머 티에라델푸에고 섬의 보케론 산 북쪽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많은 희망이 샘솟았다. 그러나 석유 붐은 오래가지 않았다. 석유 발견과 함께 갑자기 형성된 도시 세로 솜브레로에는 영화관, 수영장, 놀이공원이 세워졌고 당시 칠레 내에서 가장 결혼을 많이 하는 지역으로 손꼽혔었다. 하지만, 이제는 메마른 언덕 위 적막한 마을이 돼버려, 석유 시추 기술자 동상과 과거 사용했던 석유 시추기 일부만이 남아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뒤이어 발견된 가스층 개발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가스 매장량은 점점 고갈돼가고 있으며 이제는 하층토를 오염시키는 수압파쇄법을 통해 더 깊은 곳을 탐색하는 수밖에 남지 않았다.

이른바 ‘검은 금광’으로 불리는 가스 개발 붐 이전에는 ‘흰 금광’ 시대도 존재했다. 19세기 말 브라운 메넨데스 가문이 소유한 기업 SETF(Sociedad Explotadora de Tierra del Fuego)사에 전성기를 가져다준 양모 산업이 그것이다. ‘대형 게’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SETF는 양떼 목축을 전문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파타고니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방해물을 하나씩 제거해가며 힘을 불려간 이 기업은 마침내 3백만 헥타르의 토지를 차지했는데, 이는 영국 영토의 1/4에 해당되는 규모다.

SETF는 이미 인적 및 물적 자원의 유통을 조직화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르고 있었다. 처음 마젤란 해협을 찾았던 최초의 항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통행의 교차점 및 분기점에 대한 통제권 확보를 중요시했다. 결국 유럽에서 들여온 막대한 양의 철조망으로 토지를 구획했고, 이로써 토지에 대한 강박도 해결하고 통행의 통제권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특히 원주민, 노동조합, 경쟁기업 등의 방해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칠레의 주요 가문들에게 있어 전국적으로 세력을 확장한다는 것은, 법으로든 무력으로든(이 둘은 대체로 함께 가기는 하지만), 과거 개척자들의 물결을 제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처음 이 지역을 찾았던 최초의 개척자들은 1880년대 초 티에라델푸에고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이곳에 밀려들었던 빈곤층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티에라델푸에고 북부의 바케다논 산맥에 몇 명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들의 삶은 전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금 사냥꾼인 가스파르 헤이셀은 매일 양손에 곡괭이를 쥐고 다른 사람의 땅을 파내고 있다. 그나마도 산티아고에 살고 있는 땅 주인이 이 지역에 사는 가우초(목동)에게 토지 관리를 일임하고 있는데, 그가 헤이셀을 눈감아주고 있는 덕분이다. 헤이셀은 돌을 골라내고 곡괭이질을 해 강줄기 바닥을 파내려가고 있다. 이런 그의 일과는 벌써 30년째 계속돼왔다. 수입은 적고 일은 고되지만, 그는 30km 떨어진 포르베니르에서 연어 포장일을 하고 있는 공장 근로자들이나, 자신의 작은 오두막 앞길을 보수하는 노동자들보다는 자신의 상황이 낫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여행객들이 들르기도 한다. 헤이셀이 직접 세운 ‘금 사냥꾼의 집’이라는 푯말 앞에 멈춰선 여행객들은 몇 페소를 내고 금을 캐는 광부의 삶을 몇 발짝 따라 가보기도 한다. 헤이셀도 관광 붐의 덕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곳은 우수아이아로 가는 길에서도 한참 떨어진 탓에 찾아오는 자동차나 버스도 흔치 않다. 그래서 그는 계속 사금질을 한다. 그리고 나무 난로 한편에 서서 그렇게 얻은 작은 금조각들의 무게를 조심스럽게 달아본다. 겨울이 와 이곳에 눈과 얼음이 뒤덮이면, 배를 타고 해협 너머 푼타아레나스로 건너가 금을 팔 것이다.

그 때를 기다리는 헤이셀을 현대사회와 연결해주고 있는 것은 그의 작은 라디오뿐이다. 오늘의 뉴스와 금 시세, 그리고 조나 프랑카의 세일 소식을 전하는 낭랑한 목소리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글·조르지 라자레브스키 Georgi Lazarevski
다큐멘터리 감독, 대표작으로 <조나 프랑카(Zona Franca,2016)>가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등이 있다.

(1) ‘Punta Arenas Tax-Free Area’, www.interpatagonia.com
(2) 밀턴 프리드먼(1912~2006)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경제학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