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전횡’에 눈감는 독일

2017-03-02     한스 쿤드나니 저술가
2016년 3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연합(EU)을 대표해 터키와 난민협정을 체결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협정은 브로커의 도움을 주로 받아 배를 타고 에게 해를 건너오는 이민자들을 터키가 막도록 규정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복잡하고 기발하며 교묘한 실행계획이 있었고, 그 일환으로 에게 해 해상정찰을 강화하는 한편, 협정서명 이후 그리스에 도착하는 망명자들을 터키에 수용하기로 했다. 대신 그리스 섬 지역에서 시리아 난민 한 명을 터키로 돌려보낼 때마다 유럽연합은 터키 난민촌에 살고 있는 시리아인 한 명을 유럽에 재정착시키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유럽연합은 터키에 거주하는 270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60억 유로를 지원하고, 터키의 EU 가입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터키 당국에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인 터키 국민들의 유럽 무비자 입국을 실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협정이 체결되자 이를 두고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이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인권유린 의혹을 받고 있는 터키로 유럽이 난민을 추방한다면 이는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정은 현재까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스 섬 지역에 도착한 난민의 수가 2016년 3월 2만 6,971명에서 6월 1,554명으로 감소했고, 에게 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3월에는 45명에 달했으나 6월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이것을 터키와 체결한 협정의 결과가 아니라 발칸 루트 폐쇄에 따른 효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1) 그러는 가운데, 지중해에서는 익사자가 증가했다. 2016년 1월부터 10월까지 지중해에서 죽거나 실종된 난민의 수는 3,740명에 달하는 것으로 유엔난민기구(UNHCR)는 추산한다. 이로써 2016년은 ‘최근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해'를 기록했다.(2)
EU와 터키가 난민협정을 체결한 시점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독재를 강화한 시기와 맞물린다. 협정 체결 이전부터 에르도안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하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 지난 5월에는 메르켈 총리와 협정을 성사시킨 자신의 잠재적인 정적,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를 몰아냈다. 또한 7월 쿠데타 미수 사건 후에는 사상가 펫훌라흐 귈렌의 추종자들을 위시한 반대파 인사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이와 동시에 터키는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군사개입을 강화했다. 독일 정부는 난민사태 해결을 위해 터키와 협력해야 했으나, 이런 동반자 관계에 점점 의존하면서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으며, 양국 관계의 미래도 상당히 불확실해졌다.
독일과 터키의 관계는 그 역사가 길다. 시작은 19세기 말 독일제국(1871~1918)과 오스만제국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제국은 전략적 측면에서 상호보완적이었으며 각자의 행보가 거의 정반대였던 덕분에 공생할 수 있었다. 1871년 국가를 수립한 독일은 인류학자 헬무트 플레스너로부터 ‘뒤늦은 국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유럽 중앙부의 떠오르는 세력으로서 영국, 프랑스와 겨루고 있었다. 반면 터키는 ‘유럽의 병자’로 불리며 국력이 쇠퇴하고 있었으나, 1969년 완공된 수에즈 운하를 운영하는 등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1896년, 황제 빌헬름 2세는 유럽 밖으로 나아가는 식민주의 정책을 독일제국에 실시했다. 훗날 총리가 된 베른하르트 폰 뷜로우의 표현을 빌자면 ‘양지 바른 곳'을 차지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때까지 세력이 대륙에 국한돼있던 독일은 이렇게 세계무대 진출을 모색했고, 이런 상황에서 터키는 독일에 각별한 중요성을 띠게 된다. 일례로 빌헬름 2세가 베를린과 콘스탄티노플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터키에 부설권을 요청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구간을 시작으로 이후 베를린에서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노선이 구축된다. 이전에는 독일의 산업 부흥에 필요한 원료를 해상으로 운송했지만 신설 철도노선을 이용하게 되면서 수송시간이 단축됐다. 이에 따라 중동 내 영향권 간의 균형에도 변화가 생겼다. 영국의 세력이 약화되고 독일이 부상한 것이다. 독일은 영국해군의 해상봉쇄에도 끄떡없게 됐고, 터키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파트너이자 유럽으로 진입하는 제1관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로써, 이른바 ‘동방문제'와 ‘독일문제'는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3)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두 제국은 1914년 8월 2일 비밀 협정을 체결하면서 관계를 공고히 했다. 독일 장교들은 터키군의 현대화와 조직정비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독일은 1915년 갈리폴리에 상륙하려던 연합군 세력을 물리치는 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지도자들은 전쟁 중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학살의 공모자가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두 제국은 사라지고 공화정이 등장한다. 그런데 1923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수립한 공화국은 지금까지 유지된 반면 바이마르 공화국은 금세 파멸로 치달았다. 신생 중부유럽국가인 독일연방공화국은 유럽 대륙의 다른 강대국들에 비해 적은 수의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다시금 터키로 눈을 돌렸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의 재건을 위해 과거 식민지에서 인력을 동원한 것과 달리 독일은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부유럽에서 노동력을 수입해왔다. 그리고 1961년부터는 터키에서 노동력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독일로 건너온 터키 이민자의 수는 1969년 1백만 명에 달했으며 이중 상당수가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터키 이민자들은 온전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기보다는, ‘초청노동자’로 간주됐다. 이는 그들이 독일의 과거 식민지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2001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적녹연정’이 부분 개정되기 전까지 독일 시민권법은 혈연관계를 근간으로 삼고 있었다.(4) 한편 터키 정부도 이들 ‘초청노동자’들을 이민자들이라기보다 해외에 거주하는 터키인들로 여겼다. 이들의 2~3세대까지도 독일 국적을 쉽게 취득할 수 없었고 따라서 투표권도 행사할 수 없었다. 
독일에 터키 출신자들이 대거 거주하다보니(2010년 현재 350만 명) 두 나라의 유대관계는 각별히 공고해졌다. 이러한 관계가 악화된 것은 2000년대 중반 독일이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반대하면서부터다. 이슬람이 과연 유럽적 가치와 양립할 수 있을지, 그리고 터키처럼 거대한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할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에 대해 독일은 염려했고, 이에 따른 반감이 우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급기야 2004년 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을 이끌던 메르켈은 터키에 EU 가입 대신 ‘특별한 동반자관계’를 맺자고 제안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 비춰보건대 오늘날 두 나라는 과거와 같은 전략적 연대관계를 다시 맺고 싶어 하는 듯하다. 사실 지금 양국의 상황은 20세기 초와 놀랄 만큼 닮아있다. 지금도 역시 독일이 유럽의 중앙에 위치해있다는 사실(독일의 주도권은 다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과 터키가 중동에서 구사하는 지정학적 전략으로 인해 두 나라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둘 중 현재 부상하는 세력은 바로 터키다. 현재 8천만 명인 터키 인구는 2050년이면 9천5백만 명으로 늘어나 7천2백만~7천6백만 사이인 독일 인구를 앞지를 것으로 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독일 당국은 난민협정 유지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그런데 많은 협정지지자들은 유럽연합이 비자 자유화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 터키가 협정을 어기고 난민들이 그리스 해안까지 가도록 방치할지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럽의회는 터키가 반(反)테러법(5)을 완화하지 않는 한 비자 자유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미 쿠데타 이전부터 반테러법을 개정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이처럼 아슬아슬한 균형관계에도 불구하고 독일지도자들은 협정이 지켜질 것이라 확신한다. 난민들의 유럽행을 막는 편이 터키의 이익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비자 자유화를 관철시키려는 터키의 의지가 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달리 유럽 내 포퓰리즘을 부추길 의사가 없는 실용주의자라 생각한다.   
터키가 협정을 준수한다고 해도 이는 독일 정부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재를 묵인하는 셈이 된다. 난민사태 이전에는 독일 정부가 터키 정부에 가하는 압력 때문에 양국 간 마찰이 빚어지곤 했다. 그러던 독일이 이제 인종문제 해결보다 난민유입 해소에 더 강력한 의지를 보이게 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독단적인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점점 입을 다물었으며, 지난 5월 독일연방의회를 통과한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규탄 결의안과도 거리를 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의안 통과 후 여러 달 동안 터키는 독일연방군이 주둔 중인 인지를릭 공군기지를 방문하려는 독일의원들에게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제는 사실상 터키 정부가 독일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기준을 따르도록 하는 형국이다. 일례로 2016년 4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을 모독한 독일 코미디언 얀 뵈머만을 기소할 것을 요구하자 메르켈 총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터키는 펫훌라흐 귈렌 지지 단체가 운영하는 고등학교들을 폐쇄시키려 들기까지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터키가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동시에 터키도 독일에 의존하고 있다. 독일은 터키의 주요 수출시장이며 중국에 이은 두 번째 수입 파트너다. 게다가 터키는 국가안보를 위해 서방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 내 부상하는 러시아의 세력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2015년 11월 터키는 자국 영공을 침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군용기를 격추해 외교문제를 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터키 당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차원의 협의를 요구했는데, 그 근거가 된 것은 “어느 한 회원국의 영토보전, 정치적 독립성, 또는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회원국의 의견이 있을 때마다 전체 회원국들이 협의한다”고 규정한 조약 헌장 제4조였다. 러시아와 터키의 관계는 2016년 9월 양국이 가스관 건설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서 개선됐지만 여전히 긴장 상태다. 터키 외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에르도안 대통령도 범대서양 동맹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고 인정했다. 2013년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자 독일, 미국, 네덜란드는 터키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했다가 2015년 이를 철수했다.  
좋든 나쁘든 독일과 터키는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까지 양국의 이해관계는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분쟁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수개월에 걸쳐 두 나라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됐다. 터키 사법당국의 테러용의자 송환 요구에 독일이 불응할 기색을 보이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일이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2016년 11월 터키를 방문한 독일 외무부장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는 독일이 터키의 EU 가입 협상을 재개할 작정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렇지만 터키의 사형제 부활 계획으로 인해 양국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으며 이것이 난민협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협상이 파기된다면 두 나라는 서로에게 해로운 조치를 취할 위험이 존재한다.  


글·한스 쿤드나니 Hans Kundnani, 
아스트리드 지바르트 Astrid Ziebarth
전자는 <The Paradox of German Power>(Hurst, London, 2014)의 주요 저자이며, 후자는 독일마셜재단의 '이민과 사회' 프로그램 총책임자다.

번역·최서연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Top-10 nationalities of Mediterranean sea arrivals>, Haut-Commissariat des Nations unies pour les réfugiés, http://data.unhcr.org; Missing Migrants Project, https://missingmigrants.iom.int
(2) Haut-Commissariat des Nations unies pour les réfugiés, <Mediterranean death toll soars, 2016 is deadliest year yet>, Genève, 25 octobre 2016.
(3) Question posée par l’unification d’une puissance trop grande pour respecter l’équilibre européen des nations et trop faible pour imposer son hégémonie.
(4) Benoît Bréville, ‘당신이 중국인이 될 수 없는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월.
(5) 터키의 반테러법에서 논란이 되는 조항은 8조 1항으로, ‘터키의 통합을 해할 목적을 가진 모든 선전물과 집회, 모임, 시위는 본래의 의도나 사상, 수단과 관계없이 모두 금지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U는 터키의 반테러법이 인권탄압적 성격이 짙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터키는 반정부 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와의 지속적인 교전을 이유로 테러법 개정을 거부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