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받는 중국의 로커들

2017-03-02     레오 드부아지송 기자
팝이나 록을 선호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유럽이나 미국 밴드의 음반을 은밀하게 거래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중국 로커들이 가장 주목받고 있으며, 세계무대에서 공연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대단히 창의적인 이 중국 로커들은 시장에서 기쁨을 발견했지만, 여전히 검열을 받는 신세다.
 
2016년 9월 30일, 중국 록의 대부 최건(추이젠, 崔健)은 베이징 공인체육장에서 3만 명의 팬들을 대상으로 현대사의 교훈이 담긴 콘서트를 개최했다. 조선족 출신의 최건이 1989년 학생운동의 주제곡이자 자신의 히트곡 ‘일무소유(一无所有,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다른 시대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사진이 스테이지 백그라운드에 등장했다. 빨간 별이 달린 캡모자를 쓰고, 기타를 들고서 천안문 광장에 선 최건의 모습이었다. 록은 문화와 사회 전반과 함께 지난 30년 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헤비메탈이 밀수품처럼 취급되던 1980년대부터 디지털 혁명이 일어난 2000년대 사이에, 록은 대중적인 오버그라운드와 폐쇄적인 언더그라운드 사이를 떠돌았다. 메탈 장르는 1990년 초 블랙팬서나 코브라, 당조(唐朝) 등의 그룹에 힘입어 아주 짧은 황금기를 맛봤다. 1991년 대만의 매직스톤 레이블에서 나온 당조의 앨범 <몽회당조(夢回唐朝)>는 수백만 장이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나치게 회고적인 메시지가 더는 청년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중국 청년층의 관심사는 부자가 되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소비를 하며 가라오케에서 노래하는 게 전부였다. 서구권에서는 펑크 문화운동이 붐을 일으킨 덕분에 여러 매체가 많은 이득을 봤던 반면, 중국 록밴드들은 보급망이 없는 데다 자본의 중간지대에 갇힌 채 점점 더 폐쇄적으로 변했다. 음반시장의 풍경은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록 음반을 취입하는 레코드사는 스크림레코드 하나였고, 문화부의 감독을 받는 공식 레이블은 정부에 아양을 떨거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앨범만 한정적으로 내줬다.
사실, 수백만 명의 중국 청년들이 데이비드 보위, 건즈앤로지즈, 너바나, 비틀즈 등을 접하게 된 것은 유럽과 미국에서 팔다 남은 수 톤의 CD가 중국 암시장에서 판매된 덕분이었다. 소위 ‘다쿠(구멍 났다는 뜻. 떨이처분된 재고음반을 말함-역주)’라 불리는 이 CD들은 새로운 대중의 취향을 형성했고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선사하며 소명의식을 자극했다. 새로운 창조성의 중심지 베이징에서는 1997년 오래된 인쇄소에 문을 연 셴 리휘 대표의 ‘모던스카이 레코드’ 등의 레이블이 속속들이 생겨났다. 이 레이블들은 곧 ‘뉴팬츠’ 같은 밴드를 탄생시키면서 한층 세련된 록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비상식적인 부동산 시세, 형편없는 행정정책과 경찰당국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의 공연장 리스트는 제법 관록이 충실해졌다. 오늘날에는 런던이나 파리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스쿨, 템플, 우공이산, DDC, 프루티스페이스 같은 주요 라이브하우스는 매주 펑크, 포스트락, 노이즈, 포크, 메탈 밴드들을 맞이해 점점 더 전문적이 되어가는 대중 앞에서 공연을 선보인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2010년대가 바로 중국의 ‘1자녀 세대’가 경제활동의 주역이 된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온라인데이터와 디지털 생산수단, 소셜네트워크의 컨버전스와 중간급 도시의 라이브하우스 발전이라는 결실을 향유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음반산업계의 다양화에 아주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베이징에서는 무수한 밴드들이 강한 개성을 뽐내며 록, 사이키델릭, 일렉트로닉 등의 장르를 중심으로 실험적인 음악을 하고 있다. 노바허트, 퀸시빅샤크, 추이완, 카식카스 등은 록마니아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밴드다. 몽골음악의 영향을 받은 항가이나 다왕강 같은 밴드는 민족의 전통음악을 쇄신하거나 중국의 대중음악을 창의적인 포크음악과 결합시키는 퓨전의 길을 택했다. 이런 밴드들 대부분은 인디신에서 1위를 다투는 두 레이블 모던스카이나 메이비마스와 계약을 맺거나, 셀프 프로듀싱을 선호한다.(1)
이 서브컬처신의 발달에는 라오위(Laowai, 외국인을 가리키는 속어)들이 하나의 역할을 했다. 이 외국인 출신의 라이브하우스 사장들이나 에이전트들, 뮤지션들은 영미유럽과 중국 사이에서 가교 담당을 맡았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청두, 우한에서는 메탈리카나 퍼블릭이미지리미티드 같은 록의 거장뿐 아니라, 보다 전문화되고 마니악한 취향인 JC 사탄 같은 그룹의 투어공연까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중국 록신 자체가 해외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베이징에서 이삼 년 전부터 각국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록 페스티벌 혹은 컨벤션 논의가 다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이런 교류의 네트워크 덕분에, 이제 수많은 중국 밴드들은 중국정부의 개입이나 후원이 전혀 없이도 영국의 글래스톤베리나 렌의 트랜스 뮤지컬 같은 전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있다.
 
이념적 민감성과 시장의 요구 사이에서
 
중국에는 검열의 위협이 콘서트 취소나 행정상 폐업 조치 같은 형태로 늘 존재하는 만큼, 민감한 주제를 비판하는 뮤지션은 드물다. 베이징의 유명 라이브하우스 스쿨바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리우 페이(그는 빨간 글씨로 ‘Bad education’이라는 슬로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여기서 공연하는 펑크록 밴드들조차 진정 사회참여적인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밴드들은 정부의 부패보다는 정크푸드와 맥주에 관해 떠들어댈 뿐이다. 하지만, 일부 선동적 성향의 뮤지션은 오늘날 차이니즈 드림에 생겨난 균열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떠들썩한 뮤지션은 1970년생의 줘샤오쩌우(左小祖咒)일 것이다. 줘샤오쩌우는 무게감 있는 가사 덕분에 종종 ‘중국의 레너드 코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해, 강탈, 무단체포 등과 같은 주제에 관한 견해를 종종 피력하며, 약 2백만 명이 팔로우하는 그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은 이미 검열로 막혔던 이력이 있다. 이제 베이징에서는 젊은 랩퍼 MC다비드가 선보이는 신랄한 즉흥랩과 함축적인 가사가 연일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고 있다. MC다비드는 건강한 중국이 일당독재의 통제와 마주해 보이는 위선을 랩을 통해 비판하고, 중국민이 빠져 있는 소비지향적 건망증을 논한다. MC다비드의 최근 앨범 제목은 <모욕당한 인간의 음욕과 흉터>다.
2000년대 중반부터 록음악시장의 활기는 각종 페스티벌의 급성장(종종 날림으로 계획된다는 등의 단점은 접어놓고)과 음원시장의 디지털화 및 모바일화, 그리고 이 새로운 산업을 향한 전방위적 투자가 맞물리며 절정에 달했다. 이러한 눈부신 발전과정에서 가장 괄목할 사례가 바로 모던스카이 페스티벌이다. 모던스카이 페스티벌은 팝 장르에도 문을 열어 젊은 중상류층을 강력한(화려한) 후원의 타깃으로 삼았는데, 페스티벌을 마친 후에는 전국 투어뿐 아니라 뉴욕, 헬싱키 투어까지 진행한다. 셴 리휘 모던스카이 대표가 내세운 ‘수직적 통합’이라는 장대한 계획은 순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듯하다. ‘수직적 통합’이란 페스티벌 참가자의 경험을 온라인 음원 소비자의 경험과 융합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한 상하이 기업을 출처로 한 1천3백만 위안(약 21억 7천만 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투자금으로 무장한 이 ‘음악계의 마윈(전자상거래업계의 거대기업 알리바바 그룹회장이자 중국 유명 억만장자의 이름)’은 영국의 유명 페스티벌 ‘리버풀 사운드시티’에 투자한 참이며, 콘서트 티켓팅, 온라인 액세스, 스트리밍을 포괄하는 앱을 론칭했고 약 30개 팀의 아티스트 목록을 보유하고 있다.(2)
이 새로운 분야에 자본이 빠르게 투입되자, 그로 인한 명암이 뚜렷해졌다. 과거에 비해 콘서트, 프로모션, 후원금 등 뮤지션들의 기회는 무수히 늘어났지만, IT산업 출신이 주류인 새로운 투자자들은 제대로 된 예술 생태계의 형성보다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따라가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미디 페스티벌의 유양 기획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음반산업 관계자들은 무엇보다도 투자에 제일 힘을 쏟는 한편, 아티스트들이 조종당하는 사례는 훨씬 더 많아졌다. 음반회사와 비인간적인 노예계약을 맺어 음반 저작권과 판권을 기업에 평생 넘기는 것이다. 한편 기업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예술적 행보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자본화시킬 콘텐츠로밖에 보지 않는다. 인디신에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보면, 2010년대의 중국은 인터넷 버블로 수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했던 1990년대의 미국과 많이 닮아 있다. 중국의 일부 스타트업은 텐센트(위챗과 QQ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온라인 게임으로 유명한 IT기업)나 알리바바 같은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여타 수많은 플랫폼(쿠거, 넷이즈, Letv 등)이 이 거대플랫폼과 공존하면서 어마어마한 내수시장(7억의 네티즌 중 90%가 스마트폰 사용자다)의 일부를 차지하고자 혈투를 벌이며 더 다양한 음악 파생서비스를 선보인다. 이 디지털 전쟁의 장점은 라이센스 제품의 구매를 장려하는 전략을 앞세우는 동시에 정부 지침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식으로 저작권 보호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기업들은 국내외 주요 레이블의 카탈로그 독점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데, 이는 소규모 레이블의 보급망 확대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밴드들의 상황은 중국에서나 서양에서나 거의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록음악은 서구 록음악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색채의 음악들 가운데서 하나의 콘텐츠를 표방하지만, 인지도를 높일 수단을 갖추고 있다. 중국의 음악산업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높은 편은 아니며(2014년 전 세계 21위), 여전히 경제적 모델을 찾는 중이다. 네티즌은 여전히 무료로 음악을 듣는 편을 선호하며, 인디 뮤지션들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으로부터 그 어떤 보수도 지불받지 못하고 있다. 인리앙 Letv 대표에 따르면, 디지털음원시장의 수익성이 높아지려면 아직도 5년은 더 있어야 한다. 불법 콘텐츠 네트워크를 제거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할 ‘완전품’을 구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음악은 동영상과 영화, 그 외 여타 상호적 경험들 가운데 하나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니 중국의 음원시장은 상당히 유망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특히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취임 이후로는 행사 취소와 검열 같은 일들이 일시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현실로 일어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사회주의적 가치’라 부르는 것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데, 무엇보다도 록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2015년에는 특히 가장 기대되던 페스티벌인 미디 페스티벌과 모던스카이 페스티벌이 베이징에서 취소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지방에서 열렸다. 국가안정성에 위험이 된다고 판정된 일부 곡은 음원 플랫폼에서 아예 삭제됐으며, 여기에는 미국 힙합음악이 대거 포함됐고 대만 대중가요 역시 포함됐다.
중국 정부는 선전정책을 꾸준히 펼치고 있지만, 개방과 인터넷 시대의 중국밖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젊은 뮤지션들에게 사회주의적 가치란 너무나 요원해 보인다. 중국에서 록을 한다는 것은 여전히 특별한 일이며, 이곳에서 뮤지션들은 이념적 민감성과 시장의 요구 사이에서 약삭빠르게 행동해야만 한다.  
 
 
글·레오 드부아지송 Léo de Boisgisson  
기자, 중국에서 문화행사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번역·박나리 
연세대 불문학과 및 국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세금혁명> 등이 있다.
 
(1) 다음의 링크에서 들어볼 수 있다. Car sickcars, https://carsickcars.bandcamp.com; Dawanggang, https://soundcloud.com/dawanggang-yuzhe; Hanggai, https://hanggai.bandcamp.com; Chuiwan, https://chui-wan.bandcamp.com/releases
(2) 참조: Bienvenue dans l’empire Modern Sky(모던스카이 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Asialyst.com, 2015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