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가짜친구’들

2017-03-02     릴리앙 마티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원

[Spécial · 페미니즘의 지난한 전쟁]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1만 5천여 명의 미국 섬유산업 여성노동자들이 러트거스 광장에 모여 10시간 노동제와 작업환경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답보상태이며,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현실이다. 탄핵정국으로 인해 세계 여성의 날이 주목받지 못하는 가운데 본지가 페미니즘을 새삼스럽게 주제로 삼은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본의 횡포로 인해 여성의 삶이 각박해졌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성性 호객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법률이 폐지된 이후, 성매매 여성들은 더 이상 경찰의 검문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성 매수자들만 처벌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매매 종사자들을 한층 더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새로운 법안은 오히려 억압의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사회 문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다뤄지게 됐다.

페미니즘의 주요 성과 중 하나는, 과거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성매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 것이다. 이제 ‘수요’ 측인 남성의 성생활에 있어 성매매 여성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더 이상 가볍거나 평범한 일이 아닌, 일탈행위다. ‘공급자’ 측, 즉 성매매 여성에 대한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행실이 나쁜 여자’라는 도덕적 비난은 연민 어린 시각에 묻혔다. 성매매 여성들은 이제 “풍기문란을 조장하고 사람들에게 성병을 퍼뜨리는 존재”보다는 피해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이지만 불안정하고 모순적이다. 불안정한 이유는, 1994년 형법 처벌에서 폐지된 성 호객행위를 2003년에 다시 범죄로 규정한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내무부 장관의 결정에서 보았듯이 언제나 번복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0년부터 프랑스가 실시한 지원 접근방식과는 모순되게 억압의 논리가 적용됐다(음성적인 성매매, 불안정과 불안전, 성병 노출, 매춘업자에 대한 의존관계 증가 등). 이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바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모순적인 이유는 성매매 폐지 운동1에서 그리는 현대 성매매의 이미지가 해방을 가져오기보다는, 성매매 여성들의 기대와 관심사, 현실적인 필요성과 괴리가 있는 정책을 정당화하면서 사회의 참상을 묘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의회에서 가결한 ‘성매매 방지 보강’ 법은 이러한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 법은 프랑스 페미니즘의 여러 분파 및 성매매 폐지를 주장하는 주요단체들이 캠페인을 벌이며 추진했고, 의회의 우파와 좌파가 함께 구상했으며, 현실과 동떨어진 평가를 담은 의회 보고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법은 근본적으로 성매매 종사자들에 대한 오만한 발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2003년에 범죄로 다시 규정했던 성 호객행위를 폐지함으로써 억압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한다고 할지라도 피해자의 취약한 지위는 불평등한 관계를 형성할 뿐이다.

이 법의 발안자들은 수동성, 의존성, 맹신 게다가 정신이상이 성매매 여성들이 지니는 가장 대표적인 특성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끈질기게 반복하는 논거는, 성매매의 시작이 어린 시절에 겪은 성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외상성 신경증)에서 발생하거나, 성매매 행위가 실제 자신과 성매매를 하는 인격을 분리하는 일종의 정신분열인 ‘몸과 정신의 분리’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확인 불가한 수치를 가지고 성매매를 하는 이민여성 대부분이 인신매매 조직에 붙잡힌 것이라고 주장하며, 외국인 성매매 여성들을 허황된 약속과 번지르르한 말에 금방 속아 넘어가는 아둔한 젊은 여자로 묘사하고 있다.2

2016년 ‘성매매 방지법’의 목적은 의식을 가진 자율적 주체로서의 삶을 빼앗긴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매매 방지법은 페미니즘의 측면에서 탐구한 것이 아니라, 퍼터널리즘Paternalisme(정부나 조직이 구성원에 대해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모델에 따라 보호 및 규제하는 체계)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에 따라, 불법체류자 신분인 외국인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매 중단과 국외추방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에 직면해있다. 성매매 여성들의 수입원을 박탈해,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강요가 가능한 이유는 새로운 법이 ‘성매매 종사자와 성관계를 하거나 받아들이는’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1,500유로(재범의 경우 3,750유로)의 벌금 부과를 핵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 매수자들을 이런 방식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를 분석해보면, 다소 허술해 보인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성매매 수요의 감소를 가져올지는 몰라도, 성매매 자체를 근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아마도 성매매 활동을 경찰이 없는, 더욱 고립된 공간(교외, 인터넷 등)으로 밀어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성매매 여성들은 각종 위험에 노출되며 사회복지서비스에 접근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3

또한, 성매매가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법의 발안자들을 볼 때 성매매를 단순한 벌금으로 처벌하는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성매매가 ‘돈을 지불하는 강간’으로 여겨져야 한다면, 성매매를 왜 성폭행처럼 장기구금을 하는 중죄나 경범죄로 다루지 않는 것일까? 이 법에는 형벌의 관점에서만 사회문제를 보려는, 완전히 신자유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4 1960년 합의된 법적 근간은 성매매를 사회적 노동 행위로 인정하기에 부적합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경찰이 나서서 우선 처벌부터 하는 정책 실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성 매수자들에 대한 처벌에 앞장선 스웨덴 정책의 사례에서 이미 볼 수 있으며 스웨덴 경찰은 사회복지 분야보다 4배 더 높은 재정지원을 받았다.5

폭력성과 가혹행위는 성 판매자보다는 성 매수자와 대부분 연관이 있다. 폭력 행사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보호하는 것이다. 성매매를 ‘귀양’ 보낸다고 해서 성매매 자체를 근절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성매매 여성이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고립된 장소에서 착취나 폭력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개 불법 체류자 신분인 이민여성들은 경찰과의 접촉을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국외추방을 담당하는 기관에 가해자를 고소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또한 위협, 착취, 폭력은 매춘업자와 연관이 깊다. 이런 행위를 고소하고 엄벌하는 것은 당연하며 필수적이다. 하지만 고발과 처벌에 앞서, 매춘업자들의 사업이 번창하는 환경을 살펴봐야 한다. 성매매를 하는 이민여성들은 어둠의 경로를 빌리는 것 외에는 이민을 위한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밀입국 브로커에게 터무니없는 빚을 지게 된다. 그리고 이 여성들이 유럽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이들의 출신국가가 최소한의 삶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바네사 시모니, 존 데이비스 그리고 플로랑스 레비와 마릴렌 리베가 각각 나이지리아, 알바니아, 중국 여성에 대해 프랑스에서 진행한 연구를 살펴보자.6 이 연구는 국경을 넘기 위해 브로커에게 의존한 여성들이 겪는 수많은 억압과 구속, 착취를 상세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 연구는 불법체류자 신분 때문에 벼랑 끝의 선택을 하는 여성들의 일상(특히 주택, 안전, 의료 접근성)에도 주목한다.

성매매는 남성 우월주의의 가장 노골적인 형태이며, 경제 · 사회관계의 가장 극단적인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성매매의 원인은 바로 경제 · 문화적으로 가장 빈곤한 국민들(특히 여성)이 겪는 노동시장의 폐쇄성에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성적인 용도를 위해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것은, 특히 불법체류자의 경우 신분 탓에 법의 보호를 받는 경제활동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대체 생활수단이 없을 때, 국가기관, 성 매수자, 매춘업자에 의한 가난, 결핍, 폭력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거나 강압에 의한 성매매를 하게 되는 것이다.


글·릴리앙 마티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에서 여성 문제의 다양한 쟁점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성매매, 무엇이 문제인가?(Prostitution, quel est le problème?)』(Textuel, coll. Petite encyclopèdie critique, Paris, 2016) 등이 있다.

번역·이하임 haimleee@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성매매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를 지칭하며 프랑스 내 주요단체로는 Mouvement du Nid, Fondation Scelles 등이 있다.
2 Milena Jakšić, La traite des êtres humains en France(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 CNRS Éditions, Paris, 2016.
3 Jane Scoular and Teela Sanders, Regulating Sex/Work: From Crime Control to Neo‒Liberalism?, Wiley‒Blackwell, Hoboken (USA), 2010.
4 급진적 페미니스트와 종교적 우파 사이의 의외의 일치점에 주목한 미국의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번스틴은 이러한 과정을 연구했다. ‘Carceral politics as gender justice? The “traffic in women” and neoliberal circuits of crime, sex, and rights’, Theory and Society, n° 41‒3, Springer, New York, 2012.,
5 Ola Florin, ‘A particular kind of violence: Swedish social policy puzzles of a multi‒purpose criminal law’, Sexual Research and Social Policy, n°9‒3, Springer, 2012.
6 Vanessa Simoni, ‘Territoires et enjeux de pouvoir de la traite à des fins d’exploitation sexuelle: le cas de Paris(성착취를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의 영향력 문제와 영역: 파리의 사례)’, Hérodote, n°136, La Découverte, Paris, 2010년 1/4분기; John Davies, ‘My Name Is Not Natasha’. How Albanian Women in France Use Trafficking to Overcome Social Exclusion, Amsterdam University Press, 2009; Florence Lévy, Marilène Lieber, ‘La sexualité comme ressource migratoire. Les Chinoises du Nord à Paris(이민의 수단, 성. 파리 북부의 중국 여성들)’, Revue française de sociologie, n°50‒4, Presses de Science Po, Pari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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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리그

 


2010년 프랑스에서 선수 자격을 가진 여성은 37%였으나, 1962년에는 17%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포츠 분야에 여성이 진출하면서 성차별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운동경기와는 거리가 먼 여러 스포츠 연맹에서 많은 여성선수들이 임금 등에서 너무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선수자격을 보유한 여성이 4% 미만인 복싱이 전형적인 예다. 여덟 번이나 세계 챔피언에 오른 안소피 마티스 선수는 대중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010~2015년 TV뉴스의 ‘스포츠’ 소식에서 여성선수들의 경기 결과에는 6%만 할애했기 때문이다. 여성선수들의 경기해설에 대체로 익숙하지 않던 (92%가 남자인) 스포츠 기자들은 여성선수에게 적합한 표현 사용에 자주 어려움을 겪었다. 한 해설자는 2006년 여성복싱 세계 챔피언 결승전에서 “여성복싱에 대해 알려드리자면, 여성선수들은 남성선수들과 똑같이 훈련하고 남성들과 함께 훈련합니다”라고 말했다.
남성선수들과 똑같이? 그렇지도 않다. 여성복서는 세계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남성복서의 1/10에 불과한 보상을 받는다. 안소피 마티스 선수는 2016년 7월 10일, 프랑스 퀼튀르 방송에서 “세계 챔피언전 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최저생계비(RMI)와 실업급여로 생활해야 했다. 최고선수에게 주어지는 후원계약을 한 번도 맺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성 축구선수들의 경우 2007년이 돼서야 첫 프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