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쿠르드 ‘그린라인’
자원 둘러싼 잿빛 무한 분쟁

2010-03-05     주스트 힐터만

 아랍 민족과 이라크 쿠르드 민족의 적대적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두 민족 간의 적대감은 1차 세계대전 종결과 오스만제국의 붕괴 이후 쿠르드족이 보장받았던 독립 약속(비록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정부의 약세를 틈타 쿠르드 민족의 무장활동은 다시 확장됐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가 완전히 통제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막대한 양의 원유 수출과 해외 기업과의 원유 개발 계약 체결을 바탕으로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쿠르드족 지도부와 이라크 정부 사이에 피할 수 없는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든가, 아니면 참혹한 혈투로 이어질 다음 내전을 준비하든가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대부분의 이라크인이 보기에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분쟁’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단순한 종파 간 갈등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종교적 영향력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의도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아랍과 쿠르드 간 분쟁’이라는 표현도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라크인의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사실 바그다드 지역에서 아랍과 쿠르드족 간의 결혼은 드문 일이 아니다. 또한 공동체와 혈연관계가 얽혀 있어, 상당수가 이라크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일부 도시 지역에만 국한돼 있다. 터키와 이란의 국경을 이루는 북쪽 협곡과 쿠르디스탄의 산악지역으로 갈수록 이라크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강력한 쿠르드 민족주의가 나타난다. 쿠르드 민족주의는 이라크의 단일 공동체라는 이념 뒤에 숨어 있는 이라크 민족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또한 오스만제국 붕괴 이후 수립된 체제의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민족 정체성과 국가를 단일한 것으로 보는,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볼 수 있는 ‘민족국가’를 내세운다.
 현재 분쟁의 관심은 ‘쿠르드계 이라크’와 아랍계가 대부분인 나머지 지역 간의 경계 수립에 집중돼 있다. 쿠르드족의 주장을 채택한다면, 경계는 티그리스계곡을 지나 바그다드와 이라크 북동 지역 사이에 위치한 함린산맥을 따라 갈릴 것이다. 이와 달리 아랍 민족의 말을 따른다면, 경계선은 기존 이라크 정치인들이 그어놓은 선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도후크, 아르빌, 술라이마니야의 쿠르드 거주 지역을 나머지 지역과 분리하는 행정 경계선이다.

제논 물대기식 경계선
 기존 경계는 1960년대 말 연합세력을 잃고 점차 뒤처지고 있던 바트당과 중앙정부의 약세를 쿠르드가 적극적으로 이용한 데서 기인한다. 1970년 정부와 무스타파 바르자니가 이끄는 쿠르드 정파는 쿠르드족이 다수를 이루는 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한다. 비록 바르자니는 당시 이라크 정부가 법률로써 쿠르드 자치권을 규정하는 방안을 거부했지만, 쿠르드 민족의 자치권과 행정 경계는 어느 정도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다.(1)
 1991년 사담 후세인 정권은 1년 전 침공한 쿠웨이트로부터 축출된다. 그해 봄 일어난 쿠르드 반란에 이라크는 군대를 투입하나, 미국과 동맹국들의 항의에 부딪혀 그린라인이라 불리는 방어선으로 물러난다. 그린라인은 1970년 협정에 의해 성립된 자치 지역 경계를 이루는 지역을 일부 포함했다. 이 행정 경계선은 1990년대 내내 유지됐으며, 쿠르드족의 경계 확장 시도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후에도 합법적인 경계로서 2004년 임시헌법과 2005년 신헌법에서 인정됐다. 하지만 2005년 헌법은 그린라인 이북의 모든 ‘분쟁 지역’의 지위가 2007년 말 치러질 국민투표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될 것이라 규정했다.
 그러나 국민투표는 실시되지 않았고, 쿠르드 지도자들은 그린라인의 정당성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동안 그린라인이 표시된 지도를 썼는데도 그린라인이 지나는 경계 지역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지 지리와 역사를 잘 모르는 미군으로 하여금 그린라인이 다른 지역을 지난다고 믿게끔 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이라크군과 ‘페슈메르가’라 불리는 쿠르드 무장세력 간의 새로운 경계는 ‘트리거 라인’(Trigger Line)이라 명명됐다. 그린라인 이남에 위치한 트리거 라인은 분쟁 지역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는데, 갈등이 극심한 키르쿠크 지역 일부도 여기 속해 있다.(2)
 신규 경계선에 포함된 지역 중 갈등이 특히 첨예한 지역은 독립국가 수립을 추구하는 쿠르드족이 탐낼 만한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한 곳이다. 독립국가이건 자치구이건 간에 어떤 형태로든 쿠르디스탄의 재건을 허용할 리 없는 이라크 정부 또한 이를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새로운 경계를 그린라인으로 선전하는 쿠르드 정치 지도자들은 쿠르드 지역의 자원 매장량 통계치에 키르쿠크의 석유 매장량을 포함시켰고, 이를 통해 쿠르드가 가진 자원량을 단번에 몇 배로 늘렸다.
 이라크 정부와 쿠르드 정파가 각자 계획하는 과업의 성공은 양자 간의 권력관계 정립에 달려 있다. 쿠르드 정파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를 활용해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이라크의 아랍화와 이로 인한 쿠르드 박해, 제르미안이라 불리는 키르쿠크 동부 산악 지역 주민 학살 같은 1980년대의 쿠르드 민족 학살 등을 생각하면, 이들의 동기는 충분히 이해된다.(3) 황무지로 강제이주를 당한 쿠르드 민족과 이란의 난민촌으로 도피했던 쿠르드인이 고향을 찾아 돌아오려는 것이다. 그들의 땅을 되찾고 잃어버린 집을 다시 세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승자가 없는 게임에서 민족 학살에 대한 대응은 역으로 또 다른 민족 말살을 낳고 있다. 이미 상당수 아랍 사람들이 이를 ‘쿠르드 민족화’라고 지칭하고 있다. 바트당 집권하에서 키르쿠크와 다른 영토분쟁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사람들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봐왔듯이, 권력의 희생양이 된 이곳 사람들도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갖고 있고, 따라서 이라크 어느 지역에서건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아랍 출신 식민지 주민의 후손과 키르쿠크에서 나고 자라서 다른 지역에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이 없는 세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4)

조화롭게 모여살던 그 시절
 키르쿠크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주민들은 다양한 민족이 조화롭게 모여 살던 1930∼58년의 시기를 그리운 추억으로 여긴다. 이러한 다민족 다원주의의 시기는 1958년 이라크 혁명과 함께 아랍화가 진행되면서 끝이 났다. 쿠르드 민족은 이전 바트당 시절 그들이 당한 박해와 비교했을 때, 현재 갈등 지역 내 아랍 민족과 소수민족이 받는 처우는 나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법치와 헌법이 정한 범위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으려는 것뿐이며, 이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가져온 현실적인 결과는 그들이 당했던 박해를 되풀이하는 것과 다름없다. 투표권을 일부 민족에게 사유화하고, 강제이주를 실시하는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07년 이라크지원단(United Nations Assistance Mission for Iraq)을 구성해 이라크 내 분쟁 지역에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지원단은 상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와 이에 따른 해결책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보고서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나, 주요 관련 인사에게는 전달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유엔의 제시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나, 올해 3월 치러질 총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향후 분쟁 지역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상이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상호 합의를 이끌어낼 역할은 총선 뒤 구성될 미래의 이라크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다. 이는 까다롭고 시간도 촉박한 임무이다. 당장 미군 철수는 미국 정부의 영향력 감소를 가져올 것이고, 내전이 발발할 경우 유엔도 이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
 쿠르디스탄과 이라크 나머지 지역 간 경계 설정을 둘러싼 갈등은 새로운 국가의 불안정한 근간을 뒤흔들 것이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 이라크 정부는 과거에 그래왔듯, 쿠르드민 거주 지역을 통제하고 무장세력을 산악 지역으로 쫓아낼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은 다시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한편 쿠르드족은 2003년 이후 얻어낸 성과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쿠르드 민족이 대다수인 갈등 지역을 사실상 통치함으로써 크나큰 자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향후 지역 정세가 격변하면서 국경의 변화를 가져올 만한 여건이 조성되면, 쿠르드 독립국가를 수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없는 민족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 만한 그런 기회 말이다.

글•주스트 힐터만 Joost R. Hiltermann
인터내셔널크라이시스그룹 브뤼셀지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사업부 부국장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각주>
(1) 데이비드 맥도웰이 쓴 <쿠르드 민족 근대사>(I. B. Tauris·런던·2000)는 쿠르드 역사에 관한 훌륭한 참고 문헌이다. 일화식으로 구성된 조너선 랜달의 <용서는 없다, 나의 쿠르기스탄 이야기>(Farrar, Straus and Giroux·뉴욕·1997)는 분쟁의 역사적 배경을 잘 서술하고 있다. 프랑스어판으로 된 추천할 만한 참고 문헌으로는 크리스 쿠체라의 <쿠르드의 숙원 혹은 독립이라는 허망한 꿈>(Bayard·파리·1997)이 있다.
(2) 인터내셔널크라이시스그룹, <이라크와 쿠르드, 트리거라인이 가져온 갈등>(브뤼셀·2008년 7월)을 참고할 것, www.crisisgroup.org.
(3)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이라크의 인종학살: 쿠르드에 자행된 안팔 작전>, New Haven, 예일대 출판부, 1995.
(4) 인터내셔널크라이시스그룹, <이라크와 쿠르드: 키르쿠크 위기의 해결을 위해>, 브뤼셀, 2007년 4월 www.crisisgroup.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