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여성할당제’

2017-03-02     마리옹 라비에 오트-알자스대학 교수

이사회에 여성할당제를 두는 것에 대해, 몇몇 경영인협회들은 직원들의 이익을 더 잘 대변할 수 있을 것이고, 기업의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여성의 능력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착화하고 일부 특권층 여성에게만 혜택을 제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기업들 중 실제로 여성 경영인이 있는 곳은 드물지만(직원 10명 이상의 기업 경영인 중 15%) 여성 경영인이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기업들은 많다. 여성경영인협회처럼 몇몇 유서 깊은 협회들 외에는, ‘여성 경영인’이 있는 조직들 중 대부분이 2000년 6월 제정된 ‘정치에서의 남녀평등법’ 이후 만들어졌다. 여성경영인협회는 1945년에 설립된 단체로, 설립자인 이본느 푸아냥은 1945년 여성 최초로 프랑스 상공회의소 회장직에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남성들이 재계의 의사결정기관을 장악하다시피 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2008년부터 여성경영인 할당제의 도입을 추진해왔다. 이 안건은 모젤 지역 UMP(대중운동연합, 우파인 공화당으로 당명 변경) 소속 의원인 마리‒조 짐머만에 의해 국회에 제출됐다. 그리고 3년 후, 의사결정기관들 내부에서 여성의 비율을 높이고 또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일명 ‘코페‒짐머만Cope‒Zimmermann’법이 가결됐다. 이 법에 따라 직원 500명 이상, 매출액 5천만 유로 이상 기업에서 8명 이상의 이사회를 둘 경우 여성의 비율을 2014년까지 20%, 2017년까지 40%로 올리게 됐다. 이사회가 8명 이하의 이사들로 구성될 경우, 남성과 여성의 수가 2명 이상 차이 나면 안 된다. 2014년 8월에는 이를 직원 250명 이상 기업들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새로운 법이 제정돼, 이 기업들 또한 2020년까지 이사회 내 여성의 비율을 40%로 올려야 한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이 ‘역차별’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치 ‘정치에서의 남녀평등법’의 적용 범위를 넓힐 방법이 드디어 발견된 듯 환영받았다.

그러나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며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여기에는 유명 여성 경영인들도 포함된다). 이 세 가지는 ‘정치에서의 남녀평등법’과 관련해 이미 등장했던 쟁점들인데,1 첫 번째는 능력이 아닌 오로지 성별에 따라 특정 직책에 오르는 경우에 대한 우려이고, 두 번째는 여성 경영인들의 수 자체가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는 이 법안의 비효율성이다.

여성은 높은 성과를 위한 수단이자 부가적 가치!

아르테미스의 CEO이자 가장 화려한 이력을 지닌 여성 경영인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파트리샤 바르비제는(2008년에만 에어프랑스‒KLM, 부이그/TF1, 토탈Total S.A.을 거침) “강제적 남녀평등”을 비판하면서 이 법이 공포된 후에도 계속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성별이나 소속에 기반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선택은 그 사람의 능력과 인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L’Express, 2010년 1월 14일) BNP 파리바의 프랑스 지점 책임자인 마리‒플레르 카포방코 역시 같은 의견이다. “나는 여성할당제에 찬성하지 않는다. 강제적으로 남녀의 비율을 정하는 것은 각자의 자질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기 때문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직책에 오른 몇몇 경우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L'Agefi Hebdo,2 2009년 12월 17일) 베르나데트 시라크의 LVMH 이사회 입성이나, 플로랑스 워트의 2010년 에르메스 이사회 참여도 이런 우려를 키웠다. 여성 경영인들은 로비활동과 더불어 1970년대 미국에서 사용됐던 수단과 접근법을 내세워 여성할당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남녀가 혼합된’ 경영진들을 보유한 회사들이 더 높은 성과를 냈음을 보여주는 연구들을 진행하고 또 그 결과를 널리 홍보한다. 이 회사들의 성과는 상업적 측면(예를 들어, 여성 경영진이 있는 회사는 고객들의 기대를 더 잘 예측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회사의 이미지), 경제적 측면에서도 측정됐다. ‘여성적’ 특성이 ‘남성적’ 경영방식을 보완해준다는 믿음에 기초해, 경영진의 여성화는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기 때문에 여성의 경영진 합류가 활성화돼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량경제학에 비춰 보면, 여성할당제는 정의롭다기보다는 ‘사업성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법률위원회가 2009년 1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여성은 기업에 있어서 “높은 성과를 위한 수단”이자 “부가적인 가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할당제 장려 정책을 도입하거나 논의 중인 다른 유럽 국가들(노르웨이, 스페인,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그리스, 핀란드)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2008년 극심한 경제위기로 파산 직전까지 갔었던 아이슬란드의 경우 ‘남성적’ 경제위기에 대한 규탄작업이 한창이다.3 국영은행들의 수장 자리에는 두 명의 여성이 최종적으로 임명됐다. 노르웨이는 2003년 국영 및 민간 대기업의 감시위원회에 세계 최초로 40%의 여성할당제를 도입한 국가로, 이 법의 발제자이자 보수파 장관인 안스가 가브리엘슨은 “다양성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L’Express, 2010년 1월 14일).4

위기대처방식 또한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원칙을 전제했을 때, 경영진의 대부분이 남성인 상황에서 위기가 발생했다면, 그 위험은 여성 경영진의 비율이 높았다면 피할 수 있었을까? 이는 여성할당제의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다. 여성할당제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명분을 홍보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위기’라는 특수 상황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비바 위텐버그‒콕스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위기”라는 표현을 썼다(Les Echos, 2009년 3월 6일). 도빌 여성 포럼의 설립자인 오드 드 튀앙은 〈르피가로〉에 칼럼을 기고했다. ‘위기: 남성들이여, 우리 없이는 안 될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녀는 위기야말로 거버넌스를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했다. “이사회에 여성들이 많았다면 위기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여성들의 이사회 진입을 막는 것은 관점의 다양성에서 비롯되는 중용과 균형의 자연스러운 원칙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것이다(Le Figaro, 2008년 10월 17일). 또한 “리먼 브러더스가 리먼 시스터즈였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농담도 큰 인기를 끌어, 2009년 3월과 2012년 12월 사이에 프랑스 언론에서 35회나 인용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과학 전문가인 존 코티스와 조 허버트는 테스토스테론과 위기 대처 능력 간의 상관관계를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 표본은, 고작 10명이었다.5


여성들이 고위직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남녀에 관한 고정관념은 깨지기는커녕 오히려 재생산되고 있다.

이사회 내 여성할당제에 관한 법이 통과되면서 프랑스 대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EU 국가들 중 가장 높아졌다. CAC 40 등록기업들의 여성 비율은 3배나 늘어나, 2009년 10%에서 2015년에는 34%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 결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으며, 크게 세 가지 요소들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첫 번째로, 여성 비율의 증가세가 오히려 주춤해졌다. 남녀평등 고등위원회와 직업적 남녀평등 최고위원회가 작성한 평가 보고서에 의하면, 이 법과 관련된 수백 개의 기업들에서 현재 1,300개의 자리가 공석인 상태로 여성들을 기다린다. 적임자가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큰 어려움은 여성 임원을 들이기 위해 아무 잘못도 없는 남성 임원에게 위원회 탈퇴를 요구하는 일”이라고 프랑스 국립직업기술원CNAM의 연구원 3명은 설명했다(Les Echos, 2016년 9월 21일). 이 보고서는 또한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다양한 편법행위들을 경계한다. 예를 들어 법의 적용을 피하고자 경영관리기구가 없는 기업형태로 바꾼다거나, 위원회의 위원 수를 줄여 여성의 비율이 통계적으로 높아지도록 만든다거나,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비공식 모임을 늘리는 등의 행위들이다.

두 번째로, 여성 비율의 전반적인 증가는 여전히 심각한 각종 불평등을 덮어버렸다. 우선 기업들 간의 불평등이 있다. 이 법의 적용 범위에 포함되는 기업들 중 중간 규모의 비상장 기업들의 경우 위원회 내 여성 비율이 14%에 불과하다. 또한 직책 간의 불평등도 있다. 여성 임원이 늘어났다고 해도 이들에게 남성 임원과 동일한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2014년 6월에는 CAC 40 등록기업들의 임원회의에서 여성의 비율이 10.3%였고, 프랑스 증권시장을 대표하는 120개사SBF 120의 임원회의에서는 12.1%였다. 게다가 이사회라는 특수 조직 내의 여성 비율에만 집착하다 보니, 더 상위에 위치하고 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원회에는 여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예를 들어, 차기 이사들을 임명하는 임명 위원회나 급여결정 위원회에는 여성이 거의 없다. 반면 감사위원회, 윤리위원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위원회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Les Echos, 2014년 2월 11일). 결국 남녀평등법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정계에서나 재계에서나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여성적’인 분야의 직책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다.6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고위직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남녀에 관한 고정관념은 깨지기는커녕, 역설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세 번째로, 이 법은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높은 회사들이 양성평등에 우호적인 정책들을 더 많이 마련하고 실행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여성들이 고위직에 있는 것이 회사 경영방식을 어떻게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여성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회사의 이익추구 방식에 과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미국 엘리트층에서의 여성, 급진적인 소수파, 동성애자의 위치에 대해 리처드 츠바이겐하프트와 윌리엄 돔호프가 실시한 연구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7 여성이라는 점과 ‘소수파’라는 것이 특정 권익을 대변하는 하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는 있지만, 일단 상위 계층에 입성하는 이들은 사회적 인맥(학위, 경력, 출신 등)으로 선택받은 경우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관행이나 채용방식을 뒤흔들기보다는 순응적인 태도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시스템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들은 엘리트층의 ‘개방성’을 대변하는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계층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할당제는 양성평등 홍보의 정치적 술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 법의 명칭이 무색하게도, 여성할당제에 찬성하는 경영인들에게조차 직업적 남녀평등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남녀 혼합이 기업에 가져다주는 이득에 모든 관심이 쏠리면서, 경제적 문제는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서 여성할당제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남녀 불혼합의) 원인이 아닌 혼합의 ‘결과’만을 고려하는 가운데, 유리천장이 생기는 이유를 분석하는 과정은 오히려 배제됐다. 여성경영인협회 측은 오히려 사회적 위계의 상위 계층을 위한, 상위 계층에 의한 양성평등을 주장한다. 입법자는 ‘사회적 상위 계층에 의한 평등’을 ‘모두를 위한 평등’을 실현하는 시작점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역사학자 쥬느비에브 프레스는, 상위 계층으로부터의 평등은 일부 특권층의 이득에만 부합하는 ‘홍보용 페미니즘’에 그칠 우려가 있다고 강조한다.

글·마리옹 라비에| 오트‒알자스 대학(Universite de Haute‒Alsace) 사회학과 부교수

1 Cf. Laure Bereni, La Bataille de la parité. Mobilisations pour la féminisation du pouvoir(여성할당제 논쟁. 권력의 여성화를 위한 움직임), Economica, Paris, 2015.
2 프랑수아 피노 그룹의 홀딩사인 아르테미스(Artémis) 소유의 경제금융언론그룹.
3 Philippe Descamps 필립 데스캉, ‘Des Pirates à l’assaut de l’Islande 아이슬란드 민심을 사로잡은 해적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 한국어판 2016년 10월호.
4 Réjane Sénac, L’Invention de la diversité(다양성의 발견),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2012.
5 John Coates&Joe Herbert, ‘Endogenous steroids and financial risk taking on a London trading floor’, Proceeding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n.105, 워싱턴, DC, 2008.
6 Catherine Achin&Sandrine Lévêque, La parité sous contrôle. Egalité des sexes et clôture du champ politique(여성할당제 제한. 양성평등과 정계의 벽),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n. 204, Seuil, Paris, 2014년 9월.
7 Richard L. Zweigenhaft&William G. Domhoff, Diversity in the
Power Elite, How it Happened, Why it Matters, Rowman&Little
field Publishers, 랜햄(미국), 2008[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