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살 곳을 빼앗긴 사람들

2017-03-02     호세 안토니오 가르시아 시몬
이야기는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다. “건설이 마무리 단계야. 남은 것은 시장경제에 따라 돌아갈 거야. 전문가들을 모은다고? 지금이 공산주의 소련인 줄 알아? 소련은 사라진 지 10년이 넘었다고!” 배경은 2000년대 중반 러시아. 부패한 정부가 한창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다. 크로스노야르스크 지역의 시베리아 남쪽에서 1970년대 추진됐다가 중단된 수력발전소 건설 계획이 갑자기 재개됐다. 댐을 건설해 넓은 땅에 물을 공급하자는 계획이다. 땅은 곧 국민이다. 1971년에 태어나 크로스노야르스크에 익숙한 작가 로만 센트치네가 소설에서 순식간에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비극적 이야기를 담아낸다. 센트치네는 전작 <흑과 백>(2013)(1)에서 이미 ‘과도기’를 겪는 시베리아를 다뤘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공무원들이 들이닥쳐 주민들에게 건설계획을 통보한다. 모든 일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다. 신속한 인구조사, 미완성 아파트의 정신없는 분양. 노령에, 수도 많지 않은 주민들이 저항해봐야 궁지에 몰릴 뿐이다. 반항에 대해서는 협박과 폭력 행위가 이어진다. 마피아와 다름없는 방법을 사용하는 부패한 정부는 현대 러시아문학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다. 센트치네의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이든 주민 일부는 이미 건설계획이 추진되다가 중단되는 일을 많이 겪었기에, 이번 계획도 막판에 중단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앙가라의 보구차니 댐 건설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이 소설은 이제 곧 터전을 잃게 될 사람들을 도우려는 기자, 나이든 농부들, 이장, 제재소 혹은 조립공장 소유주들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로 인해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센트치네는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고통, 도시에 정착하면서 겪는 충격, 머리 아픈 문제들을 되짚어 간다. 마을에 널브러진 시신들은 어떻게 할까? 무덤을 그대로 버리고 가야 할까? 쫓겨난 사람들은 분노하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무엇 하나 명확한 것이 없어서 항의조차 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저 국가를 위해 평생 일한 자신들이 동물처럼 울타리에 갇힌다는 현실에 상처 받을 뿐이다. 정부가 무지막지하게 공사계획을 밀어 붙이는데도, 언젠가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도 있다. 소련의 유산은 지워지지 않았다. 한 때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이 강요됐지만 이제는 정부가 민영화 되고 있다. 결국 공장은 누구의 것인가? 여기 모든 것은 누구의 것인가?
센트치네는 소설 <홍수 지대>를 발랑틴 라스푸틴에게 헌사 한다고 밝혔다. 라스푸틴은 <섬에게 전하는 이별 인사>에서 댐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섬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센트치네의 소설 <홍수 지대>는 곧 물속에 잠길 지역과 보통 사람들의 깨어진 꿈을 그려낸다. 
 
 
글·호세 안토니오 가르시아 시몬 José Antonio Garcia Simon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1) 장아르노 데랭(Jean-Arnault Dérens), ‘시베리아에서의 추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