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부패 정치인들
2017-03-31 다비드 가르시아 | 언론인
2016년 10월 13일, ‘중도·우파’ 간 통합 경선 후보자 7명이 TV 토론회에 출연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날 다양한 토론주제 중에서도 화두로 오른 것은 ‘정치 지도자의 청렴성’이다. 사실 이런 주제가 등장할 만도 한 것이 범죄전력이 있거나 끝없는 소송전에 휘말린 정치인이 계속 장기 재임하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누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진실이든 추정이든)은 그들이 모든 죄에서 면책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는 한편, ‘모두가 부패한’ 이 시대에 극우파가 번성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이날 TV 토론에 출연한 브뤼느 르메르 후보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공약 한 가지를 소개했다.
“보통 공직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범죄경력조회서를 제출하도록 요구받는다. 대체, 지역이나 전국 단위 선거 출마자들에게도 똑같은 요구를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다. 범죄경력 검증은 그저 투명한 후보, 모범적인 후보에 대한 요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은 결코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으려는 수단이 아니며,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다.”(1)
그러나 전 농업장관만은 확실히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은 듯 보인다. 과거 그는 당선이 유력시되던 상대후보 알랭 쥐페에게 날카로운 칼끝을 겨눴다. 알랭 쥐페는 2004년 12월 파리 시청 유령 고용 사건에 휘말려 부당이득 취득 혐의로 기소됐다. 전직 장관 출신인 쥐페는 징역 14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한편, 1년 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반면 니콜라 사르코지는 여러 번 기소당하고도 유권자 앞에 다시 섰다.
장노엘 게리니, 파트릭 발카니, 알랭 카리뇽…. 사실 온갖 심각한 의혹에도 끈질기게 자리를 지키는 의원은 한두 명이 아니다. 전 예산장관(게다가 세금징수를 책임지는) 제롬 카위자크가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탈세를 자행한 사실을 시인한 후,(2) 정치인의 ‘모범성’ 문제가 다시금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다수 시민들은 범죄전력이 있는 공직자에게는 영원히 피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3) 애초 공직자 투명성 관련 법안에는 각 부의 장·차관, 비서실장, 선출직 임명자에 대한 피선거권 박탈형을 신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고위법관 출신의 장루이 나다가 2015년 1월 ‘공직자 신뢰 회복’을 목적으로 작성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규정은 국회법사위원장이 제출한 수정안에 의해 폐기처리”됐다.(4)
카위자크 사건이 발생한 뒤 3년이 지난 2016년 12월, 프랑스 정부는 투명성 강화와 부패 척결을 위해 새로운 법안을 채택했다.(5) 일명 ‘사팽2’로 불리는 이 법안의 창시자인 사팽 재정경제장관이 모던한 분위기가 풍기는 확 트인 사무실에서 반갑게 취재진을 맞아줬다. 세느강변의 베르시에 소재한 재정경제부 청사 꼭대기층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센느 강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사팽 장관이 입을 열었다. “형벌을 무조건적으로 일괄 규정하는 것은 법관이 개인별로 형벌을 선고해야 한다는 사법적 원칙에 위배된다. 최악질 범죄자의 경우에도 무조건적으로 종신형을 선고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러니 한 번의 전과로 영원히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법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
나달 보고서는 위헌성이라는 장애물을 피해가기 위해, 법관이 개인별로 형벌을 선고하는 원칙은 고수하되, 피선거권 박탈을 의무 부가형(주형에 부가해 과할 수 있는 형벌-역주)으로 제정하는 방안에 대해 제안했다. “형법이 법관에게 의무화하고 있는 것은 개인별로 형벌을 선고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반면 복역 기간을 정하거나, 나아가 정당한 이유를 들어 형을 면제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법관의 자유에 속한다. 사팽2 법도 그런 생각을 담아 제정됐다.” 멘느대학 사법학 부교수 장마리 브리강이 분석했다.
그러나 이 규정만으로 과연 그동안 청렴성이 부족한 정치지도자들을 정치무대에서 쫓아내는 데 소극적이었던 법관들의 태도를 확연히 바꿀 수 있을까? 사팽2 법이 발효되기 전까지, 법관은 보통 자세한 판결 근거를 명시하지 않고도 피선거권 박탈형을 적용할지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해 선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 결과 2013년 청렴성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149명 가운데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받은 이는 단 2명에 그쳤다.(6)
가령 재산 신고 누락 혐의로 기소된 전 프랑스어권 담당 장관 야미나 벙귀귀도 1심 재판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을 면제받았다. 2015년 9월 23이 파리 경범죄법원은 “야미나 벙귀귀의 깨끗한 전과기록, 기존의 직업·정치 경력, 비록 늦기는 했지만 수정 신고서를 제출한 사실 등을 정상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사실상 기존에 다른 좀 더 평범한 ‘직업·정치 경력’을 가진 피고에 비하면 상당히 관대한 판결이라 볼 수 있었다. 결국 파리 항소법원은 최종적으로 벙귀귀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와 벌금형, 1년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했다.(7)
한편 전직 재무장관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사업가 베르나르 타피가 아디다스를 매각하는 과정에 부당한 혜택을 주는 등 업무상의 ‘과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공직자 과실을 전담하는 프랑스 특별법원 공화국법정(CJR)으로부터 피선거권 박탈만은 면제받았다. 사실상 장관에 대한 재판은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특별법원이 관할하고 있다.
사팽은 “내가 이름 붙인, ‘모두가 부패했다. 우리 시장만 빼고’ 신드롬은 상당히 충격적”(8)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의원들이 흔히 부정부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자기 지역구의 의원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유죄판결을 받은 의원도 일단 형기만 마치고 나면, 같은 진영 내에 충분히 다른 후보가 있음에도 다시 선거에 출마해 의원직에 복귀하곤 한다. 각 시의 시장도 개인적 과실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여전히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곤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희한한 ‘신드롬’의 수혜를 받는 대상이 비단 국회의원, 장관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원도 포함된다. 그러나 흔히 모범적인 경제국으로 칭송받는 독일은 1년 이상 징역형의 경우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한편, 5년 간 모든 공직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글·다비드 가르시아 David Garcia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1) 2016년 12월 7일, 대통령, 상·하원 선거의 입후보자는 전과기록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의무화한 국가조직법안이 프랑스 하원에 상정됐다.
(2) 2016년 12월 8일, 파리 경범죄법원은 카위자크에게 징역형 3년과 5년의 피선거권 박탈형을 선고했다. 카위자크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3) 오피니언웨이가 Powefoule.org를 위해 실시한 한 여론조사(2014년 11월 24일)에 의하면, 조사대상자의 73%는 탈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의원들에게서 영원히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부패 혐의의 경우에는 84%, 공금횡령의 경우에는 85%가 영구적 피선거권 박탈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4) ‘공직자 신뢰 회복’, 2015년 1월 7일 제출된 공직자의 모범성에 관한 대통령 보고 문서.
(5) 2016년 12월 9일 법(사팽2)은 부정부패 예방, 경제생활 및 공공절차의 투명성과 관련한 1993년 1월 29일자 법(사팽1)을 폐기·대체했다.
(6) 공직생활투명성고등기구
(7) 2016년 9월 27일 판결. 벙귀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8)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홈페이지에 인터뷰 내용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