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진영을 X레이로 분석한다면
2017-03-31 브뤼노 아마블 | 경제학자
프랑스는 기이한 민주주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지난 35년 간 집권 정당은 서민층의 기대에 반하는 경제정책을 추구해왔지만, 정작 서민층은 유권자층의 과반수라는 점이다. 오늘날 좌·우파 간 이념의 구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블루칼라나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여망을 보면 분명 좌파 사회진영의 존재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정치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몇몇 현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후보나 정당이 ‘반체제’를 자처하는 현상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의 경제부 장관을 지낸 에마뉘엘 마크롱, 니콜라 사르코지 정권의 총리를 지낸 프랑수아 피용이다. 그들은 정계를 향한 국민의 불신을 피하겠다며 별안간 체제 반항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말하자면 과거 몇몇 후보자에게 성공의 영광을 안겨준 전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가령 1995년 자크 시라크는 이런 전술 덕분에 에두아르 발라뒤르 퇴임 총리를 상대로 대선에 승리했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본인이 참여한 정부와 ‘단절’을 선언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덕분에 두 우파 후보는 1981년 이래 집권당은 무조건 필패한다는 선거 징크스를 깼다.
반체제 선언보다는 조금 덜 요란하지만 어쨌든 정치 위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현상도 있다. 사회경제모델 등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 그 정책을 주도하는 정치연대세력, 그리고 그 정치연대세력을 지지하는 넉넉한 수의 지지세력. 바로 이 세 가지가 고루 삼박자를 이루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현상이다. 1981년까지 프랑스 제5공화국은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룬 훌륭한 삼위일체의 본보기가 돼왔다. 먼저 사회복지국가모델에 입각한 성장경제정책을 주축으로 다양한 연대세력이 결집했다. 가령 과반수 이상의 민간부문에서 일하는 간부급 노동자와 중간직업군(회사의 중간관리자층과 교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직군), 그리고 일반 노동자의 과반수 이하가 한 데 결집해 탄탄한 지지기반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것은 드골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연대라는 정치세력으로 대표됐다.(1)
1992년 위기 발생 전까지 이탈리아도 이런 삼위일체의 훌륭한 표본이 돼왔다. 산업근대화에 기초한 경제모델을 주축으로, 북동부 및 중부의 중소기업과 대기업, 그리고 그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 금융 부문 종사자 그리고 불로소득층 등 다양한 계층이 서로 연대세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기독민주주의’라는 주류 정치세력으로 대표됐다. 프랑스는 지난 40년 간 별다른 소득 없이 이런 삼위일체를 열심히 추구해왔다.
따라서 정치 위기는 곧 주류 사회진영의 부재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사회진영이란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일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집단들의 총합을 의미한다. 대개 사회진영은 정치인들이 그들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정책을 선택하는 전술을 쓸 때도 형성되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현실적’인 정책의 선을 규정하는 식으로 유권자의 기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전략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1975~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에는 두 가지 사회경제모델에 입각한 두 가지 상반된 정치 전략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1970년대 초 위기 이후, 제5공화국의 시작과 함께 집권 우파 연합은 레몽 바르가 주축이 돼 신자유주의로의 전향을 꾀했고, 긴축정책을 시행했으며, 동시에 1975년 자크 시라크의 경제 부양책이 실패로 돌아가기 전까지 기존에 주력하던 국가 개입 정책에서 선회했다. 당시 우파는 부유층과 개인사업자, 수공업자, 상인, 그리고 농민층의 다수로 구성된 사회진영을 주된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동시에 종교적 신념에 의해서나 혹은 질서와 안정의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우파 성향을 띠는 소수의 서민층, 블루칼라 노동자, 제3부문에 종사하는 화이트칼라노동자 역시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지지자들을 멀어지게 한 ‘집권 좌파’의 실책
한편 프랑스공산당(PCF), 사회당(PS), 급진좌파 등으로 이뤄진 좌파 연합세력도 1972년부터는 서로 연합해서, 그리고 1977년 좌파연합이 분열된 이후로는 각자 정당별로, 경제모델의 변화를 추구했다. 낙관적인 유권자는 이 정책을 사회주의로의 전환으로 해석했고, 한층 조심스러운 유권자는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제도에 기초한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실현으로 이해했다. 1978년 파리정치대학 프랑스정치연구소(CEVIPOF)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이런 정책은 과반수 이상의 서민층(공장 일반노동자의 60%, 작업반장의 56%)과 공공부문 종사자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1981년 대선 2차 결선 투표에서도 블루칼라 노동자의 72%,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62%는 프랑수아 미테랑 후보를 지지했다. 자신의 지지기반이 탄탄하다고 확신한 미테랑은 “민주주의를 통해 표출된 프랑스 정치세력의 다수가 마침내 사회세력의 다수와 일치하는 시대가 왔다”고 공언했다.(2)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2012년, ‘집권 좌파’는 처음에 표방하던 야심찬 개혁의지를 포기하며 기존의 전통적인 지지기반과 급격히 멀어졌다. 1982~1983년 집권좌파가 실시한 긴축정책은 그들을 지지하는 사회진영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사회당(PS)을 주축으로 ‘집권좌파’가 추진하려는 경제정책은 그들을 지지하는 기반세력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그런 현상은 곧 좌파의 정치적 위기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회당 세력은 당을 지지하는 사회진영을 ‘쇄신’하는 것만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012년 파리정치대학 유럽학연구소(CEE-SCIENCES PO)가 실시한 프랑스 유권자 분석에 따르면, 사회당(PS)에서 극좌파에 이르기까지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블루칼라노동자의 지지율은 45%로 과반수를 채 넘기지 못했다. 1978년 60%에 달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편 좌파를 지지하는 서비스부문 종사자의 지지율도 1978년 46%에서 2012년 35%로 감소했다. 반면 고학력자(민간부문이나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간부급 노동자)의 지지율은 확연히 증가했다. 1978년 18%에 그쳤던 경영진이나 간부급 노동자의 좌파 정당 지지율은 2012년 무려 43%로 치솟았다. 마찬가지로 민간부문의 간부급 노동자의 좌파 지지율도 1978년 29%에서 2012년 45%로 증가했다. 그러나 ‘집권좌파’에 실망한 서민층은 선거에 불참했을 뿐, 많은 이들이 우려하던 것처럼 우파나 극우파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가령 프랑스여론조사기간 입소스(IPSOS)가 실시한 2015년 지방선거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전선(FN)의 노동자 지지율은 43%에 육박했지만, 실상 노동자층의 기권율이 61%에 육박하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인 수치에 불과했다.
가장 체계적인 통계분석(3)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공공연히 이야기되고 있지는 않지만 매우 중대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좌파 성향의 사회진영이 2012년에도 여전히 존재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국립통계청(INSEE)의 사회직업 분류를 통해 식별된 여러 계층이 분명 좌파 정책이 추구하는 정책을 지향했다. 가령 2012년 국영화와 같은 해묵은 정책을 지지하는 여론이 과반수를 넘겼고,(4) 그 정책을 두고 두 가지 세력이 양립했다. 가령 공공부문의 임금노동자는 이 정책을 강력히 지지했고, 고학력층은 반대했다. 사르코지의 연금개혁이나 부가가치세 인상 혹은 양극화해소정책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그와 유사하게 여론이 이분화됐다. 요컨대 오늘날 좌우파의 ‘낡은’ 구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경제정책에 대한 호불호가 사회직업적 부류에 따라 좌우파의 대립을 초래했다.
좀 더 일반화하자면, 2012년 경제정책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사회집단이 갈리는 양립 현상은 1978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던 것이다. 가령 1978년이나 2012년이나 저소득층은 재분배정책에 찬성하는 반면, 고소득층은 이 정책에 반대했다. 또한 고소득층과 개인사업자, 수공업자, 상인은 사르코지 정권의 연금개혁에는 호의적인 반면, 공공부문 확대에는 반감을 보였다. 기존의 노동계약 제도를 근속연수에 따라 보호 수준을 조금 높여주는 이른바 ‘단일계약’으로 대체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고소득·고연령·고학력층(간부급 노동자와 경영진층의 60%가 찬성)은 찬성하는 반면, 서민층(블루 및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52%가 반대)은 반대했다. 이처럼 2012년 분명 좌파적인 정책을 여망하는 좌파 진영과 그와 상반된 정책을 여망하는 우파 진영은 잠재적인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나 유사점은 거기까지였다. 왜냐하면 우파와 좌파의 정치적 연대세력이 각자의 사회지지 기반세력과 맺고 있는 관계는 오늘날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파는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유권자(개인사업자, 임원직)의 여망과, 그런 정책에 두려움을 느끼는 유권자(민간부문의 중간직업군)의 여망 간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우파 연대세력이 끊임없이 겪는 문제는 이처럼 서로 상반된 갈망 사이에서 좀 더 중재된 정책을 찾아내는 데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프랑수아 피용은 지금까지 그 어떤 우파 정당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표방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부르주아 진영’을 결집하려는 마크롱
1982~1983년 이후로 ‘집권 좌파’는 자신들이 집권하기까지 지지기반이 돼준 사회진영의 여망에서 등을 돌려버렸다. 따라서 사회당(PS)이 이끄는 좌파 정치연합세력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의 근간을 지지해줄 새로운 대안 유권자층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가령 유럽통합과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그리고 이를 조금 완화해줄 ‘적극적인’ 사회복지정책 혹은(그리고) 탈긴축 거시경제정책이 한 데 결합된 자신들의 새로운 정책을 지지해줄 새로운 지지기반이 필요했다. 가령 그런 정책을 지지해줄 만한 세력으로는 다소 소득과 학력 수준이 높은 집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처럼 고소득, 고학력 집단이 구성하는 부류를 일컬어 이른바 ‘부르주아 진영’이라고 부른다. 사실상 ‘부르주아 진영’은 주로 과거 좌파진영에 속했던 간부급 공공부문 종사자, 그리고 대개 우파진영에 속하는 간부급 민간부문 종사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위와 같은 정치적 전술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사회당(PS) 내 우파 성향을 지닌 일부 정치인들이 다소 성공률은 미미하지만 수차례 그와 같은 전술을 널리 활용해왔다. 가령 자크 들로르는 1985년 ‘모든 진영의 지혜로운 현자들’(5)에게 정권교체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경제정책을 세우기 위해 서로 뜻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1993년 총선 패배 이후 사회당(PS) 당수가 된 미셸 로카르도 이른바 ‘정치적 빅뱅’을 통해 전통적인 사회당(PS)-공산당(PCF)간의 연대를 대신할 대안을 모색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전술을 쓰는 인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가 바로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언제나 새로움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우파도 좌파도 아닌’ 후보라는 상당히 구태의연한 전술에 기대고 있다. 사실 그가 젊은 시절 썼던 글, 가령 ‘아탈리 보고서’(6) 등을 읽어보거나, 혹은 마크롱법으로 대변되는 장관시절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무엇인지를 단박에 깨달을 수 있다. 유럽통합, 민영화, 노동시장 ‘자유화’ 등에 우호적인 그의 경제정책이 지닌 경향들은 이른바 ‘부르주아 진영’을 결집하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 이른바 ‘부르주아 진영’은 대개 고학력의 부유한 사회집단으로 구성되지만,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소수세력일 뿐이라는 점이다. 사실 좀 더 현실적인 전략은 그들 외에 지원군이 돼줄 만한 또 다른 집단을 함께 결집할 좀 더 중재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가령 그들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기초하므로, 과거 좌파진영의 과반수 이상은 반감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들이 지원군으로 기대할 수 있는 세력은 아마도 ‘중간직업군(회사의 중간관리자층과 교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직군)’이나 독립사업자와 같은 우파진영의 일부 부류일 것이다.
그러나 우파는 내적 모순으로 가득 찬 해법을 선택했다. ‘구조개혁’에 우호적인 과거 좌파진영에 속한 일부 집단들과 결집하기 위해 이 정책에 반감을 지닌 계층을 정치적 소수세력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정치적 다수세력으로 삼으려는 집단은 사회적으로는 언제나 소수 세력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글·브뤼노 아마블 Bruno Amable
경제학자. 저서로 스테파노 팔롱바리니와 공동 저술한 <L'Illusion du bloc bourgeois(‘부르주아 진영의 환상)>(Raison d'agir, Paris, 2017년 5월 출간 예정)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Bruno Amable, Elvire Guillaud, Stefano Palombarini, <L'Economie politique du néolibéralisme(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 rue d'Ulm, Paris, 2012년.
(2) 1981년 5월 21일자 연설
(3) Bruno Amable, <Structural Crisis and Institutional Change in Modern Capitalism. French Capitalisme in Trans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and New York, 2017년 3월 출간. 관련 통계는 파리정치대학 프랑스정치연구소(CEVIPOF)가 실시한 프랑스 유권자 관련 조사 결과임.
(4) 국영화 정책에 대해 35%는 부정적, 51%는 긍정적 의견을 표명했다.
(5) Philippe Alexandre, Jacques Delors, <En sortir ou pas(탈출인가 아닌가)>, Grasset, Paris, 1985년.
(6) 마크롱은 ‘아탈리 위원회’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프랑스성장자유화위원회의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고, 2008년 1월 본 보고서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