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프로젝트’, 멕시코에 패닉을 초래하다

2017-03-31     제임스 M. 사이퍼 | 사카테카스자치대학교 경제학 교&

미국은 멕시코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 다만 멕시코와 관련된 무역협정에 대한 재협상을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멕시코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1980년대 초부터 멕시코는 자국 경제를 미국경제에 맞춰왔다. 리오그란데 강 북부로 180도 기수를 돌린다고 해서 과연 리오그란데 강 남부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있었을까? 


윌버 로스 미 신임 상무장관은 미국은 “수십 년 전부터 지속된 통상전쟁 때문에 무역적자를 기록했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1) 억만장자 윌버 로스는 상무장관 인준청문회에서 1993년 미국-멕시코-캐나다 간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한 재협상을 통해 이런 적자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밝힌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그 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무역적자가 크게 확대됐다고 보고 있다. 2016년 미국의 무역적자는 5천억 달러에 달했으며, 대멕시코 무역적자는 그 중 12%에 해당된다. 

하지만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는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으로 임명된 경제학자 피터 나바로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내정된 로버트 라이시저에게 미국의 무역정책을 대폭 수정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절차가 예기치 않게 지연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백악관은 3월 말부터 90일간의 논의기간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리적 전환’, 즉 멕시코에 설립된 생산시설들을 미국으로 이전시켜서 경제 재산업화를 최대한 빨리 시작하겠다는 백악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2) 

멕시코 노동자들은 
미국 제품을 살 돈이 없다

로스 미 상무장관은 2017년 3월 3일 멕시코 지도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백악관이 멕시코가 핵심수출장려전략으로 선택한 임금상승 억제전략을 직접 비판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로스 상무장관은 예전부터 미국의 최저임금인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멕시코에는 최저임금인상을 요구했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원래 의도는 멕시코와 미국 간 생활수준 격차를 줄여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 상황은 그렇지 않으며, 멕시코의 최저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어 보면, 다양한 연구결과가 멕시코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생산성 면에서 유사한 수준이지만 그 임금은 미국 임금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로스 상무장관은 “이 점은 값싼 노동력을 찾기 위해 기업주들이 언제든 멕시코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멕시코 노동자들이 미국에서 제조된 제품을 구매할 여력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3) 즉 멕시코에서 임금이 상승한다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점차 해소될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로스 상무장관은 ‘원산지 규정’을 강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원산지 규정에 의하면, 어떤 기업의 활동이 북미자유무역협정에 포함돼 있지 않을 경우 그 기업은 멕시코에서 생산 활동을 할 수 없다. 이미 일부 미국기업을 포함해 삼성, 포드, 크라이슬러 등의 많은 기업들이 멕시코에서 공장건설 계획을 포기했다. 멕시코의 정치인들은 과거 자신들이 자국에 강요했던 경제적 의존성의 후폭풍을 이제 자신들이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북미자유무역협정과 북미 투자자들에게 멕시코 시장(단, 석유 산업 제외) 개방을 허용한 외국인투자법이 체결된 이후, 미국의 다국적기업은 신속하게 이웃국가인 멕시코를 장악했다. 멕시코의 엘리트들은 이 현상을 열렬히 환호했다.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1994~2000)은 멕시코의 생산시설을 미국의 필요에 맞게 재구성하면서, ‘세계화 공포’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 용어는 자유무역이 멕시코인들의 번영을 보장하고 성장을 촉진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의심하던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 세디요 대통령은 멕시코의 현대적 발전을 위해 세계경제와 밀접한 통합을 주장한, 이른바 ‘네오시엔티피코스’(4)로 불리던 자신의 측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디요 정권과 그 이전의 카를로스 살리나스(1988~1994) 정권은 멕시코 경제를 수출중심으로 재편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멕시코에서 수출중심전략이 나오게 된 것은 이때가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권(1876~1880, 1884~1911)에서였다. 디아스 정권은 광물 및 농산품 수출에 주력했고, 세디요 정권과 살리나스 정권은 멕시코를 가공품 수출국으로 변화시켰다. 살리나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은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및 미주개발은행의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가 단체와 소수 엘리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멕시코를 탈바꿈시켰다.

멕시코 산업의 발전은 
멕시코의 부와는 무관하다

1960년대 ‘마킬라도라(Maquiladoras; 미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폭넓은 면세혜택을 누리며 비숙련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조립공장)’의 설립을 허용하는 각종 법이 제정됐다. 살리나 정권 이전에는 이런 종류의 법이 드물었다. 1981~2000년 마킬라도라에서 조립된 제품의 수출은 연간 16%씩 증가했지만, 마킬라도라와 무관한 제조업 부문의 연간 성장률은 13%에 그쳤다. 2004년부터 제조업 부문의 전체상품 수출 중 80%와 외국으로 판매된 전체상품 중 90%가 미국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이 통계수치들은 왜곡된 것으로 드러났다. 멕시코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멕시코는 부유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멕시코의 가공수출액 중 42%는 미국에서 수입한 부품 및 중간재의 수출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의 투자가 넘쳐나지만 멕시코는 여전히 수동적인 입장이다. 기술개발은 전혀 되지 않고, 멕시코내 공급자로서 가치를 높이도록 국내 공장이나 관리자의 직업훈련에 투자하고자 하는 멕시코 기업이나 소수 엘리트도 드물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정치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멕시코의 사명은 ‘덤핑’이었다. 노동·환경·조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경제영역이 서서히 등장했다. 하나는 저가 수출과 관련된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구매력이 없는 내수 시장이었다. 엄청난 보조금 혜택을 받는 미국 농가는 북미자유무역협정 덕분에 콩, 쌀, 옥수수 등 멕시코의 전통적인 먹거리 시장에 대거 진출할 수 있었다. 반면에 1930년대 산업화 정책 하에 생겨난 멕시코의 중소기업들은 모든 것을 빼앗겼다. 이들 기업은 1986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북미자유무역협정 및 이후 GATT 체제를 대체하기 위해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서 멕시코로 물밀듯이 밀려온 외국의 경쟁자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멕시코 산업은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고, 그 결과 몰락했다.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바대로, 시골 출신의 수많은 멕시코인들이 멕시코를 떠났다. 2000~2005년 매년 40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향했다. 2009년 미국 내 멕시코 이민자 수는 이미 1천2백만 명을 넘어섰다. 가공수출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은 제조업, 농업 및 대규모 유통 부문에서의 일자리 감소로 ‘상쇄’됐다. 몇 년 만에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인 월마트는 멕시코에서 가장 큰 사기업이 됐다. 이렇게 이원화된 경제 상황에서 1988~2005년 평균임금은 1981년 평균임금의 60~70% 수준을 넘지 못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이 발표되고(2001년 가입) 중국이 미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되자, 멕시코의 수출 모델은 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과 2016년 사이에 재화 및 서비스 수출 증가는 평균 4.1%로 후퇴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율은 평균 2%에 머물렀고, 인구증가율은 연간 약 1.4%였다. 이런 상황에서 증가된 부가 만일 평등하게 재분배됐다 하더라도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부의 재분배는 실상 평등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2012년 제도혁명당(PRI)은 12년 만에 멕시코 집권 여당의 자리를 되찾았고,(5) 언론에서는 “멕시코가 과거와 조우하다!”라고 예고했다. 제도혁명당은 특히 노동시장에 대해 새로운 규제완화와 국영석유기업인 페멕스의 민영화를 추진했다.(6) 이런 조치가 이뤄진 후 초반에는 반짝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고, 부패와 부실경영으로 경제는 타격을 받았다. 멕시코의 석유 판매로 석유가 과잉생산 됐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멕시코의 시대’를 칭찬했던 소수 엘리트들은 상황이 국민들에게 좋지 않을 때는 보통 침묵했지만, 2016년부터는 이들도 엔리케 페나 네이토 대통령의 실패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네이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의존성의 덫’ 앞에 놓인 멕시코 엘리트들
 
엘리트들은 좌절을 겪었고, 작디작은 정치적인 물결 앞에서도 속수무책이 됐다. 게다가,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 물결은 쓰나미로 변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멕시코 엘리트들에게 편안한 삶을 보장해왔었다. 하지만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두고 “이제까지 체결된 협정 중 최악”이라고 표현했다. 정권을 잡고 있는 정치가들은 두려움에 빠졌고, 모든 이들이 덤핑 정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 중에서도 살리나스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던 페드로 아스페의 측근인 루이스 비데가흐레이 카소 외무부 장관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현 정부에서도 페드로 아스페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멕시코에게 있어서 불황은 위협적이다. 불황을 겪게 되면,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은 멕시코 경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 여러 번 자동차 산업에 대해 3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대략 20%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언급했다. 국내총생산 중 28%를 미국 수출에서 얻고 있는 멕시코에게 있어서는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멕시코의 기업가들이 ‘비용’을 줄이면서 이런 조치를 어떻게 상쇄시키려고 할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스페인의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가 지적한 것처럼, 이미 멕시코 북부에서는 임금이 “중국의 임금보다 5~7% 낮다”.(7) 멕시코는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을 자국을 압박하는 경제적 의존성을 탈피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만, ‘메이드 인 멕시코’ 제품을 발전시키겠다는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약속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수요를 끌어올리기에는 멕시코에서는 빈곤 문제가 심각할뿐더러, 비공식 경제의 비중이 크고 임금은 낮다. 또한 국내 신용시스템은 무능하고 한계가 많아, 정치가들이 어떤 계획을 발표하더라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현 시점에서 이렇다 할 계획도 없는 상태다. 

현재 미국 국가기관 내부에서 벌어지는 대립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본인이 내세운 통상정책 관련계획에 대한 재검토를 강요할 수 없는 상황에서, 멕시코 엘리트들은 ‘의존성의 덫’에 다시금 걸려들지도 모른다.  


글·제임스 M. 사이퍼 James M. Cypher 
사카테카스자치대학교 경제학 교수. 저서로 <Mexico’s Economic Dilemma>(라울 델가도 와이즈와 함께 공동 저술)와 <The Developmental Failure of Neoliberalism>(Rowman & Littlefield, Lanham (미국), 2010)가 있다.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Sec. Ross on Nafta, China, and border adjustment tax’, Bloomberg.com, 2017년 3월 8일.
(2) ‘Canada will have to “make concessions” in Tafta renegotiations : U.S. Commerce Secretary’, The Globe and Mail, Toronto, 2017년 3월 8일.
(3) Chris Isidore, ‘Wilbur Ross wants a higher minimum wage - in Mexico’, CNN Money, 2017년 3월 3일.
(4) Científicos; 1876년부터 멕시코를 통치하다가 1911년 민중봉기로 인해 축출된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권 당시에 멕시코를 현대적 국가로 탈바꿈시키고자 애쓰던 대통령의 측근들 중 고학력의 젊은이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외국투자자들을 환영했고, 그들의 재산권을 확실히 보장했다. <불황의 경제학>(폴 그루그먼, 세종서적, 2009)에서 인용(역주).
(5) “Au Mexique, retour de la ‘dictature parfaite’?(멕시코, ‘완벽한 독재’의 귀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블로그, 2012년 7월 4일, www.monde-diplomatique.fr
(6) John Mill Ackerman, “Le Mexique privatise son prétrole(멕시코, 석유회사를 국영화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3월호
(7) ‘La retórica proteccionista de Trump pone en alerta Ciudad Juárez’, El País, Madrid, 2017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