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전 풍경, 정당의 몰락인가?

2017-03-31     알랑 포플라르 | 조사전문 기자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의 연임 포기는,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을 부여한 체제의 쇠약을 대통령의 실패만큼이나 여실히 보여준다. 예상보다 더 개방된 대선 게임에서 프랑스군 개입, 건강 보험의 미래(18면, 마르틴 뷜라르 기사 참조) 또는 문화 문제를 제쳐 두고 프랑수와 피용 공화당 후보의 파렴치한 행동에만 관심이 집중됐다. 그 어느 때보다 유럽 연합의 빗장 문제에 직면한(16면 세르주 알리미 기사 참조) 좌파는 이민 문제에 있어 매우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전통 정당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지만 선거 캠프 조직들은 자신들이 큰 소리로 외치는 ‘쇄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다음 기사 참고).  


드골 장군이 1940년 프랑스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한 의원내각제를 버리고 그의 측근들이 새롭게 구상한 제5공화국 체제에서 그가 규탄했던 ‘무기력한 무대 위의 모순적 장면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현재 정치의 붕괴는 정당 지도부의 힘겨루기 결과라기보다는 대통령 중심제의 영향으로 정당의 힘이 약화됐기 때문인 듯하다. 

사회당(PS) 제1서기 장크리스토프 캉바델리스와 2014~2016년 당시 민중운동연합(UMP, 2015년 공화당으로 명칭 변경) 당 대표였던 니콜라 사르코지가 50만 당원 확보를 약속하던 때가 먼 시절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대선 후보들이 자신을 지지하는 정당을 간신히 내세우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시민운동, 집회, 오픈 프라이머리 등 소속당을 교묘하게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들을 활용하고 있다.                       

환경보호론자들의 
‘정당을 넘어선 정치협동조합’

메스(Metz)역에서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어느 날, 한 카페에 모인 사회당 당원들은 대선 후보 예비 경선을 애타게 기다렸다고 말한다. 사회당 메스지역 총무 조제프 페라로는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은 분명히 우리 당원들의 위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전혀 이 사실을 인식하지 않았어요. 오래 전부터 당내 토론도 내부 방침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대선후보 예비선거로 당내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사회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브누아 아몽 전 장관 역시 “나는 당 지도부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나는 당파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와는 달리, 브누아 아몽 사회당 후보는 조직화된 사회운동에 기댈 수 없다. 사회당의 당원 연결망은 무너졌고 따라서 브누아 아몽의 예비 경선 승리가 입당 열풍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로베르트 미헬스의 정당 내부 과두정치에 대한 연구부터 시몬 베유의 풍자(1)까지 정당 제도에 대한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2010년 3월 22일 1968년 사회운동 기념일에 다니엘 콘벤디트 유럽의회 녹색당 그룹 공동대표는 일간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의 논단에서 환경보호론자들이 반(反)권위주의적 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정치협동조합’을 만들어, 정당 형태를 넘어서자고 제안했다. 콘벤디트 대표는 ‘기계적 정당도 기업적 정당도 아닌’ 정치협동조합이 정치 참여에 새로운 방향 제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정당 폐지를 위해!? 정당 없는 무국적자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을 낸 다니엘 콘벤디트 대표(2)는 ‘생각을 모아 사회의 다른 부분에 전달해 이런 생각을 풍요롭게 만드는 수분(受粉)식 조직’ 설립을 요구했다. 그가 주장하는 정치협동조합은 다공질 구조와 불규칙적인 정치 참여 형태에 더 많은 가치를 뒀다. 

 이렇게 상상해 낸 정치 형태는 이들의 성향을 일부 보여준다. “환경보호론자들은 ‘호모 아카데미쿠스(공부하는 인간)’입니다. 사회학자이자 클라마르(Clamart) 지역 당원인 바네사 제롬은 강조했습니다. 이는 활동가(당원)로서의, 그리고 이론가(학자)로서의 견해 사이에 거대한 순환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학력을 지닌 환경보호론자들은, 결국 당내 조직의 경직성을 고발한 셈이다. “이런 조직의 경직성은 활동가(당원) 각각을 실천없이 이론만 살아있는 공론가로 만들어버려, 조직 내 우민정치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탈리 에튀앙은 지적했다. (3)

혁신과 유동성을 앞세운 ‘앙 마르슈!’

다른 정치 동료들과 달리, 아몽 사회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콘벤디트 대표는 결국 엠마뉘엘 마크롱 후보와 ‘앙 마르슈!(En marche! 전진)’당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2016년 5월 국가상황을 다 같이 진단해보자는 목표로 각 가정 방문 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올랑드 행정부의 전 경제 장관 엠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시민운동’은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구축됐다. 시민운동의 지지자는 20만 명을 넘었다. 29세의 뤼도빅 망데스 모젤(Moselle)도 청년부 담당자는 “모젤 도에는 1,300명의 지지자들과 20여 개 위원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회당(PS)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플랫폼을 통해 후원금 모금이 가능하다. 2016년 12월 ‘앙 마르슈!’ 시민운동은 1만 3,500명의 후원자를 통해 360만 유로의 후원금을 모았다. 1인당 평균 후원액은 266유로로, 이는 장뤽 멜랑숑이 이끄는 ‘라 프랑스 앙수미즈(La France insoumise, 프랑스불복종)’가 모은 평균 1인당 후원액 23유로, 미국 민주당의 예비선거 기간 동안 버니 샌더스 예비 후보가 모은 평균 후원액 1인당 27달러의 10배가 넘는 금액이다.

마크롱 후보는 현대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는 도구로 디지털을 활용했다. ‘앙 마르슈!’ 지지자들의 말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은 ‘민첩’하고 ‘수평적’인 운영에 용이하며 정치에 멀어진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사회학자 아나이스 테비오는 디지털은 납세자 위주의 조직 논리를 더 강화시킨다고 평가한다. 이어 그는 “온라인 지지자들은 오프라인 지지자들보다 더 우월한 경제적‧문화적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디지털을 통해 입당의 장벽이 더 강해진 셈입니다”라고 설명한다. 

마크롱 후보의 사회운동에는 많은 기업 경영인들이 지도부 자리 (모젤 도에는 지역위원회 책임자 거의 절반이 현직 또는 전직 기업 경영인이다)를 차지하고 있다. 뤼도빅 망데스는 “다른 당과 다르게, ‘앙 마르슈!’에는 시앙스포(Sciences Po: 파리정치대학) 학생과 보좌관이 거의 없습니다”라고 평가한다. 환경정화 기업을 운영했던 전 기업인에게 이런 독특한 이력은 자신의 영향력을 되살리고 ‘고만고만한 부류’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

“기업인들은 전통적으로 정치조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선택이 자유로운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조직방향, 운영방식을 전수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힘에 보태지길 바랄 것이다. ‘Team ambiance’, ‘Helpers’, ‘Challenges’, ‘Benchmarking’, ‘Outputs’ 등의 기업 언어와 문화는 정치적으로 ‘앙 마르슈!’ 지지자들의 관계를 형성한다. ‘앙 마르슈!’의 ‘혁신’과 ‘유동성’을 자랑스럽게 설명한 후, 트위터에 “혁신하라. 너 자신을 믿어라. 깨트려라(Innove. Crois en toi. Bouscule)”라고 올린 뤼도빅 망데스는 “기자들은 우리를 벤처기업과 종종 비교합니다. 완전히 틀린 비교는 아닙니다. 우리 운동은 새롭고 역동적이며 젊습니다”라면서, “만약 기권표를 줄이고 싶다면 정당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지지자 활동 중 점점 많은 부분을 기업에 맡긴 여러 정당과 달리 기업의 도움을 받은 ‘앙 마르슈!’운동의 빠른 성장은 과거 당원 연결망 덕분이다. 사회당 연합 대부분이 동요했고 총선거 당시 사회당에 공천을 요청했던 유명 국회의원 상당수가 마크롱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사회당에서 입당 업무를 담당했던 전국사무처장도 탈당했다. 더 넓게, ‘앙 마르슈!’운동은 노련한 정치인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수와 바이루, 로베르 위, 프랑수와 드 뤼지 등 지지 세력과 자원이 없는 정치인들은 엠마뉘엘 마크롱 후보 주변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다.

피니스테르(Finistère)도의 사회당 하원 의원이자 ‘앙 마르슈!’ 사무국장인 리샤르 페랑 의원은 “현재 진짜 분열은 더 이상 좌파와 우파 간 분열이 아닌 보수와 진보 간 분열입니다”라고 평가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또는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처럼 마크롱 후보는 합의를 통해 중립된 민주주의를 추진하는 ‘제3의 길’을 프랑스에서도 열고자 한다. 하원 의회에서 마크롱 법안 설명자였던 페랑 의원은 “저는 18살에 사회당에 입당했고 여러 모임과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전히 노동자 계층, 철공소 주인이 있었습니다. 현재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는 동업조합 관계입니다. 공동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죠. 에밀 졸라의 소설 속에 그려지던 비참한 삶이 사라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기업 내 악덕 고용주가 여전히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계급 갈등은 중요하지 않게 됐습니다”라고 말한다.

기존 정당의 틀을 깨려는
 ‘라 프랑스 앙슈미즈’

 멜랑숑 후보는 이런 의견을 전혀 믿지 않는다. 검은 외투에 빨간색 넥타이를 하고 연단에 선 멜랑숑 후보는 투르쿠앙(Tourcoing) 시립극장에 다 들어갈 수 없었던 100여 명의 참석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권력자들은 항상 결정권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깊은 인상을 주고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노동계층이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실직에 대한 두려움, 급여를 못 탄다는 두려움 등등….” 올해 1월 초, 멜랑숑 대선 후보는 ‘라 프랑스 앙슈미즈(프랑스 불복종)’운동에서 ‘예고 없는’ 시민과의 만남을 기획했다. 몇 주 전, 오샹(Auchan) 그룹 소속 계산원이 계산대를 비울 수 없는 노동조건 때문에 일하다가 유산을 했다. 이 이야기와 함께 멜랑숑 후보는 연설에서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제게 에밀 졸라의 소설처럼 삶을 비참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삶을 비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에밀 졸라의 소설처럼 비참하게 된 것입니다.” 

 3월 중순 29만 서명인과 2,800개 지원그룹을 확보한 ‘라 프랑스 앙슈미즈’는 프랑스의 정치세력들 중 선두그룹에 속한다. 멜랑숑 후보는 유사성이 있는 ‘라 프랑스 앙슈미즈’와 ‘앙 마르슈!’ 간에 차별성을 두고자 했다. 그의 블로그에서 “플랫폼 사용을 전통적 정당 형태의 대안으로 정의 내린다면 그런 비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플랫폼이 사회와 대화하는 방식은 다릅니다”라고 말했다.(4) 페이스북 페이지와 구독자 23만여 명의 유튜브 채널을 가진 멜랑숑 후보는 이렇게 덧붙였다. “마크롱 선거 캠프의 시스템은 상당 부분 공식 매체에서부터 활동합니다. 저희는 새로운 미디어 채널을 적극 활용합니다.”

 플랫폼 중심 활동은 멜랑숑 후보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의 메커니즘을 관찰한 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는 ‘민중의 시대’로 돌아왔고 정당의 유용성도 중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의 대담집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모든 운동은 당시 시대의 의지를 표현한 인물에게 극단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는 정치 조직도, 소속 정당도 없이 선거에서 승리합니다. 결국 그가 중추적 역할을 영원히 행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혁명의 조직적 취약성입니다.”(5) 바로 타협해야 할 취약성이다. 좌파 전선(FG) 내부 모순에 대한 반격으로 탄생한 ‘라 프랑스 앙슈미즈’는 정당 간 카르텔과 다르다. 좌파 전선은 2005년 유럽헌법 반대 운동 당시 등장했던 독일의 좌파당, 그리스의 시리자당처럼 ‘벽 없는 정당’(6)인 ‘라 프랑스 앙슈미즈’ 설립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라 프랑스 앙슈미즈’는 계속해서 독자적인 힘으로 일어서는 데 실패했다. ‘라 프랑스 앙슈미즈’는 행정적으로 정당의 지위를 지니지만 기존 정당의 틀을 가지지 않는다. 멜랑숑 후보는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당원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당원증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어떤 당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라 프랑스 앙슈미즈’운동은 정당이 아닙니다”(7)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라 프랑스 앙슈미즈’는 가입자가 아닌 서명인을 모았고 당 회비가 아닌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현재 조직 내 정관도 결정 기관도 내부 분파도 없다. ‘라 프랑스 앙슈미즈’의 프로그램인 ‘공동의 미래’는 조직 구성원들의 기부금으로 잘 진행됐다. 하지만 이들에게 정치 노선과 전략 방향은 조직 내부에서 진행되는 토론이나 투표의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멜랑숑 후보는 여러 정당의 존재를 지우는 데 전념한다. 심지어 자신과 가까운 정당까지도 말이다. ‘인터내셔널(l’internationale)’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는 등 노동정당의 일부 속성도 버렸다. 그래도 여러 정당은 사회 운동을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한다. 에릭 코크렐 좌파 전선 조정관은 ‘라 프랑스 앙슈미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라 프랑스 앙슈미즈는 우리 정당 지지자들이 있는 지역에서 많이 활동합니다. 우리 당과 당의 인적, 물적 지원, 수십만 유로에 달하는 재정 지원이 없었더라면 라 프랑스 앙 슈미즈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회운동 지도부부터 지역 단위 지원 그룹까지 여러 당의 당원들이 지도부 업무 대부분을 맡았다. 그러나 ‘라 프랑스 앙슈미즈’ 내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볼 수 있다. 특정 조직에 가입하길 거부하는 신입이 ‘라 프랑스 앙 슈미즈’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많은 지지자들은 이런 자유로운 형태가 지도부에까지도 확대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로 발생할 당의 분열을 우려한다. 사회운동 안에 여러 당원이 섞이고 ‘좌파’의 의미를 재검토하는 이런 움직임은 이데올로기적, 조직적 와해라는 위험을 무릅쓴 것인 듯하다. 

우파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은 ‘성스 코망’

68혁명 이후, 사회운동은 정당과 다른 정치 방식을 창조할 수 있는 현장이 됐다. 이런 점을 잘 인지한 정당들은 개방적 이미지를 위해 사회운동 출신의 유명 인사들을 꾸준히 영입한다. 반대로 사회운동은 자신들의 이념을 알리기 위해 정당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파도 예외가 아니다.

 전통주의 단체 ‘성스 코망(SC: Sens commun)’ 대변인인 마들렌 드 제세는 “이것을 감시하든 안 하든 우리는 정치를 통해 한 배에 탔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태도가 가능합니다. 자신이 탄 배가 방향을 바꾸게 놔두거나, 그 배의 키를 다시 잡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2014년 ‘성스 코망’ 단체를 설립했다. ‘연방주의 노선을 전환’하기 위해 대중운동연합(UMP)에 입당한 ‘성스 코망’은 “좌파의 문화적 주도권을 멈추게 하기 위해” 공화당을 이용하려 한다. ‘성스 코망’ 설립자들은 모두 ‘라 마니프 푸르 투스(la Manif pour tous, 2012년 동성 결혼 반대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 출신으로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지 않고 주로 ‘주류 정당’에서 안주하는 보수 정당을 비난한다. 

 미국 공화당의 티파티(Tea Party)처럼 ‘성스 코망’은 전통주의자들과의 연합을 허용하면서 우파에 다시 활력을 불어 넣었다. 제세 대변인은 “우리가 진정한 지지자 세력입니다”라고 말한다. 9천명의 ‘성스 코망’ 지지자 대부분은 ‘여러 정당을 전전하며 경력을 쌓지 않은’, 즉 처음으로 가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행동주의와 구분된다. “우리는 공화당 당원보다 훨씬 젊고, 다른 우파 조직에서 찾기 힘든 2013년 사회운동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성스 코망’은 2016년 11월 예비 경선에서 프랑수와 피용의 승리를 위해 일했다. 여기에서 ‘성스 코망’은 그를 위해 파리 트로카데로 거리에서 3월 5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일을 맡으며 당내 유명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확보했다. 또한 ‘성스 코망’은 우파가 투표 장소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대중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 줬다.

 공화당 내부에서 ‘성스 코망’은 정치적‧재정적 독립성을 갖고 있으며 게다가 자신들의 지지자 조직을 보유하고 있다. 메스(Metz)의 어느 고급 식당 안쪽에 모인 20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성스 코망’의 그랑데스트(Grand-Est)지역 담당자인 막시밀리앙 에르츠는 “우리는 파리에서 끝나는 운동이 아닙니다. 현실과 다시 결합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 조직은 가능한 한 가장 단단하게 결집돼야 합니다. 낭시(Nancy)와 랭스(Reims)지역 다음으로 우리는 이곳에 팀을 꾸려야 합니다. 우리의 새로운 진출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변에 앉아 있던 피에르 드 솔리유는 최근 낭시 ‘성스 코망’의 멘토가 됐다. “저는 이 지역 ‘라 마니프 푸르 투스(la Manif pour tous)’ 책임자였습니다. 지방선거 당시, 시장 후보였던 로랑 에나르가 저를 찾아와 교육 분야 보좌관직을 맡아달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 저는 공화당 당원증과 ‘성스 코망’ 회원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테이블 주위에 모인 지지자 16명 다수는 ‘라 마니프 푸르 투스(la Manif pour tous)’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은 예비 경선을 위해 일했으며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같은 열망을 함께 공유한다. 피용 후보가 조사를 받기 석 달 전, 참석자들의 열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에르츠는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는 곧 실망할 것입니다. 확실합니다. 어쩔 수 없이 치욕을 감당해야 할 날이 올 것입니다. 확실해요.  가장이 큰 소리를 내면, 가족들 모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죠.” 우파 사회운동은 반(反)계몽주의자들의 철학을 이어받은 이념을 바탕으로 우파의 정치를 재편하는데 이미 성공했다.

우파도 좌파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국민 전선

  하지만 국민전선(FN)은 자신들의 정치를 사회운동에 맡기지 않을 것이다. <순결 또는 혼돈?(La Chasteté ou le Chaos?), Via Romana, 2016>의 저자이자 ‘테르 에 파미유 (Terre et Famille)’ 단체장인 스테파니 비뇽은 <불르바르 볼테르(Boulevard Voltaire)> 인터넷 언론 소속 기자 가브리엘 클루젤, ‘슈아지르 라 비(Choisir la vie)’단체 소속 세실 에델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연단에 나란히 앉은 이들은 국민전선과 가까운 단체 ‘주권, 정체성 그리고 자유(SIEL: Souveraineté, identité et liberté)’의 초청에 응했다. 잔 다르크 동상 아래에서 열린 저녁 행사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여성 애국자’의 용기를 찬양하기 위해 모였다.

 ‘SIEL’ 단체장 카림 우시크는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 단체는 젊은 당입니다. 2012년 마린 르펜 대표는 국민전선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우파 유권자를 끌어 모으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 원한다며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르펜은 우리에게 우파 유권자를 끌어오는 일을 맡겼습니다. 저희가 문지기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2016년 11월 ‘SIEL’은 ‘내부 민주주의 부재’를 비난하며 마린 르펜이 만든 ‘블루 마린’ 집회를 떠났고, 이후 우파 연합을 만들어 공화당과 국민전선의 거점 간 가교 역할을 자청했다.(8)
 하지만 우시크는 자신이 ‘평화 유지군’ 역할을 받아들여도, 우파 내부에는 다수파를 통합하는 문화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시드르를 마시며 말을 이어 갔다. “다수는 프랑스가 1789년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앙시앙 레짐’시대에 자신들의 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토론의 중심은 이슬람화입니다.” 이데올로기적 성공을 보여주는 표시는 많다. 예를 들면 ‘필립 드 빌리에, 에릭 자무르, 파트릭 뷔송 사설의 성공, 주간지 <발뢰르 악튀엘(Valeurs actuelles)>의 놀라운 발전과 특히 우파적 가치관이 프랑스에 세워졌음을 보여준 ‘마르슈 푸르 라 비(Marches pour la vie)’와 ‘라 마니프 푸르 투스(la Manif pour Tous)’의 영향력을 꼽을 수 있다.

 중앙 유럽국가에서 민족주의 우파의 성공을 모델 삼아 카림 우시크는 정치적 재편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국민 전선의 내부 모순이 부메랑이 돼 결국 자신들의 정치 전략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불행 내기’를 했다. “중앙 위원회에서 국회의원 80%는 민족주의 우파 대표입니다. 국민전선 지도부와 당원의 현실은 국민전선의 정치 노선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루이 알리오 국민전선 부대표는 “저는 국민전선이 좌파 또는 우파일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민전선은 우파도 좌파도 아닙니다. 어쩌면 더 자세히 말해, 저는 국민전선은 좌파이자 우파라고 말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1930년대 대독협력정책동조자의 지도자들(자크 도리오, 시몽 사비아니)이 만든 ‘우파도 좌파도 아닌(Ni droite ni gauche)’이라는 슬로건은 현재 우파 연합의 모든 시도를 무력화하고 좌파로 향한 시선을 거둬들이는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파브리스 앙젤만 아양주(Hayange) 시장은 “제가 노동자 투쟁(Lutte Ouvrière)에 있을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읽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사회당이었던 아양주 시장 자리를 빼앗기 위해 2014년 국민전선이 영입한 그는 복잡하지만 완벽한 인물이었다. 트로츠키주의 단체를 거친 뒤 노동총연맹(CGT)의 팀장을 맡았던 그는 반(反)자본주의신당(NPA) 당원증을 갖고 있었다. 결국 그는 국민전선에 입당했다. 

“아양주와 그 주변 마을에는 국민전선 당원이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을 외인부대 퇴역 군인인 느긋한 당원 한 분이 계셨습니다. 영원한 국민전선 후보였죠.” 국민전선에 대한 보도 프로에 자주 나온 앙젤만 시장은 노동운동에서 극우로 온 상징적 인물이다. 바로 극우가 열망한 새로운 옷이었다. 

  마린 르펜 대표는 ‘새롭게 변화된 개방적이며 효율적인 당’의 정치 조직을 촉구하며 여전히 짊어지기엔 무거운 국민전선 라벨을 버리려 애쓰고 있다. 1986년 총선거 당시 우파의 전향자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민족주의 집회’부터 2012년 5월 설립된 블루 마린 집회까지, 그리고 20년 전, 지지자들의 이데올로기 입장을 다듬기 위한 조직부터 현재 존재하는 조직까지, 모든 정치 조직과 집회의 목표는 권력 행사에 필요한 지도부가 아직 없는 조직을 재건하는 것이다.(9)

파벌에 의해 독점당한 국민전선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조직의 쇠퇴를 보여준다. 프랑스 헌법 4조는 “정당과 정치 단체는 선거에 협력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개인적 야망을 위해 선거 기계 역할을 하는 데 만족한다.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숫자를 기록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1990년 프랑스 정당 개수는 20개, 2016년에는 451개다.  


글·알랑 포플라르Allan Popelard
조사전문 기자

번역·윤여연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로베르 미셸의 <정당. 민주주의의 과두정치 경향에 대한 에세이Les Partis politiques. Essai sur les tendances oligarchiques des démocraties>, 플라마리옹 출판, 파리, 1914년. / 시몬느 베유의 <정당 폐지에 대한 단평Note sur la suppression générale des partis politiques>, 클리마 출판, 파리, 2006년 출간(1쇄: 1940년). / 도시에 “Prendre parti(정당의 시대는 끝났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1월호. 
(2) 다니엘 콘벤디트, <정당 폐지를 위해!? 정당 없는 무국적자에 대한 고찰 Pour supprimer les partis politiques!? Réflexion d’un apatride sans parti>, 앙디젠 출판, 몽펠리에, 2013년.
(3) 나탈리 에튀앙, <행동주의의 변화Les évolutions du militantisme>, université d’été du Parti communiste français, 2010년 8월.
(4) 장뤽 멜랑숑, <3월 18일 새로운 길을 열다L’événement du 18 mars ouvre un chemin>, 민중시대(L’Ère du peuple), 2017년 3월 4일 http://melenchon.fr
(5) 장뤽 멜랑숑, <불복종에의 선택Le Choix de l’insoumission>,  <마크 앙데벨과의 인터뷰Entretienbiographique avec Marc Endeweld>, 쇠이유 출판, 파리, 2016년.
(6) 위의 책 참조.
(7) 장뤽 멜랑숑, 2017년 2월 15일 스트라스부르.
(8) Valérie Igounet, <프랑스인 먼저, 연설의 전염성과 슬로건: 국민 전선Les Français d’abord. Slogans et viralité du discours Front national(1972~2017)>, 앙퀼트 출판, 파리, 2017년.
(9) Alexandre Dézé, <새로운 전략?Une nouvelle stratégie?>, dans Sylvain Crépon, Alexandre Dézé et Nonna Mayer(sous la dir. de), <국민 전선의 가식. 정당의 사회학Les Faux-semblants du Front national. Sociologie d’un parti politique>, 시앙스포(파리 정치대학) 프레스, 파리,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