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 로건 댐, 대립의 댐 되나
2017-03-31 레지 장테 | 언론인
세상에서 가장 높은 댐, 로건 댐의 공사가 지난 10월 재개됐다. 이 댐은 기술적·재정적 도전인 동시에 타지키스탄의 국가적 이념과 발전에 있어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아랄 해 유역의 경제 및 환경을 위협하며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한편 로건 댐 건설에 가장 완강하게 반대했던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최근 타계하면서 중앙아시아의 수자원 협력 관계에도 변화가 예측된다.
봉우리마다 눈으로 뒤덮인 산맥이 한없이 길게 뻗어있다. 고도 7천 미터가 넘는 정상에서는 별이 손에 닿을 듯하다. 카자흐스탄의 평야지대에서 출발해 타지키스탄으로 들어서는 비행기에서는 끝없이 늘어선 산들이 지평선을 가리고 자리 잡은 모습들을 보게 된다. 톈산 산맥과 알라이 산에 이어 파미르 고원의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여름에는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는 빙하호수 위로 눈 덮인 산 정상이 비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계곡 사이에 감춰진 마을에는 작은 흙집들이 모여 있고, 수십 킬로미터까지 이어지는 얼어붙은 강물을 위협하듯 빙탑(氷塔)들이 이 마을을 굽어 내려다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바로 이곳에 평균 고도 3천 미터가 넘는 나라, 타지키스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린과 베이지가 어우러진 파스텔톤 고원 위로 곧 흰 산봉우리들과 가파른 계곡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내 비행기는 두샨베로 하강하기 시작한다.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두샨베의 뜻은 ‘월요일’, 매주 월요일 이곳에서 장이 열렸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슬레이트 지붕들과 곳곳이 녹이 슨 폐공장의 모습들이 이 나라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타지키스탄은 옛 소비에트연방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타지키스탄의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천 달러 미만이며(러시아 9,100달러, 프랑스 3만 6,200달러), 2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약 1/3 낮은 수준이다.(1)
두샨베의 공향에 내리면 곧바로 타지키스탄의 자긍심과 야망의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 타지크어(키릴문자를 사용하는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영어로 병기된 간판에는 “타지키스탄 빙하, 중앙아시아의 주요 수원(水源)”이라는 내용이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아랄 해 유역의 전체 유량 중 69%가 타지키스탄에 속해 있으며, 이는 수력발전을 통해 약 5,270억 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지만 그 중 실제로 타지키스탄이 활용하는 것은 5%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슬로건의 배경에는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이 모든 관심을 쏟아 붓고 있는 한 건설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바흐슈 강에 설치된 세상에서 가장 높은 댐인 ‘로건 댐’ 건설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바흐슈는 아무다리야 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로, 아무다리야 강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사막지대를 지나 이제는 점차 사막화돼가고 있는 아랄 해로 이어진다.
라흐몬 대통령은 로건 댐 건설이 단순한 기술적 업적 이상으로 ‘국가적 이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초기 계획에 따르면 로건 댐의 높이는 335m, 전력생산량은 3,600메가와트로 예상되고 있다(이는 프랑스 뷔제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4대가 생산하는 전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로건 댐은 1959년 처음 계획이 수립돼 1982년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전 공정의 약 2/3가 완성됐던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공사는 전면 중지됐고, 1993년 5월에는 대홍수로 인해 주요설비가 쓸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거대한 공사규모가 모든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이 댐의 건설이 이웃 강대국인 우즈베키스탄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세계 2위 면화 수출국인 우즈베키스탄으로서는 현재 중앙아시아 대부분 지역에 물을 대고 있는 강의 물줄기를 끌어가버릴 이 댐의 건설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상황이 바뀌었다. 처음 공사를 시작했던 20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로건 댐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해온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9월 2일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동쪽으로 1백여 킬로미터, 로건 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파이자바드 시는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길가에 서있는 간판 속 대통령 사진에는 열매가 풍성한 과수원이 배경으로 나와 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이 지역 농가들은 전부 메말라있었다. 공사현장들도 대부분 방치된 상태다. 일부 소기업들이 황무지에 공사설비를 보관하거나 작업장을 세워둔 게 전부다. 건설 분야는 활기찬 편으로, 거리 곳곳에서 공사 중인 주택들을 볼 수 있었다. 지붕창과 발코니, PVC섀시 창문이 딸린 이 집들은 해외로 나간 노동자들의 남은 가족이 약 2만 5천 유로를 들여서 짓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재정이 부족해 완공까지 몇 년씩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는 이런 집들을 ‘영국식 전원주택’이라 부르지만, 이곳의 생활과 영국 시골의 전원생활은 전혀 무관하니 이 말에 현혹되면 곤란하다.
파이자바드를 빠져나가는 길목, 그늘 아래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기계 주위에 모여 중국산 철판들을 부지런히 자르고 찍어, 슬레이트 지붕을 만들고 있었다. 이곳의 사장은 40대의 잠셰드.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일 년 중 6개월만 사장 일을 하고 있다며, “일 년 중 절반은 전기 사용이 용이하지 않다. 기껏해야 하루에 5~6시간 밖에 쓸 수 없다. 나를 비롯해 우리 직원들이 러시아에서 일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타지키스탄 출신 ‘가슈타르바이터(러시아에서 일하는 외국인 초청 노동자를 말함)’들은 백만여 명. 그들은 대부분 매월 몇 백 유로를 본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에 나가있는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임금은 2000년대 말 기준 타지키스탄 전체 GDP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데, 이는 세계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2) 한편, 잠셰드는 불안해하고 있다. 2013년 이후 러시아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거주 조건을 까다롭게 규제한 것이다. 노동 허가증 발급규정이 바뀌었고, 러시아의 언어, 역사, 법 등에 대한 유료 심사시험 과정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2016년 타지키스탄 본국으로 송금된 금액(달러기준)은 2013년 대비 75%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러시아 측의 통계에 의하면, 이러한 변화로 인해 현재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타지키스탄 일용직 노동자의 수는 약 1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건 댐에 거는 타지키스탄 국민들의 열망
결국 모든 이들의 이목이 다시금 로건 댐 건설 프로젝트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잠셰드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타지키스탄에 있어 이 댐은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타지키스탄 국민들에게 있어 물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곧 타지키스탄이 현대국가의 반열에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제정러시아의 변두리 지방이었던 타지키스탄은 1929년 타지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면서 산악지형에서의 식량생산을 버리고 중공업을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세웠다. 1960년대에 이르러 소비에트 연방은 로건 댐, 누렉 댐, 상투다 댐 등 세 개의 대규모 댐 시설을 건설하기로 고안했다. 이에 누렉 댐은 1972년, 상투다 댐은 2008년에 완공됐다. 로건 댐에서 약 70km 상류에 위치한 누렉 댐은 높이 300m로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은 댐으로 꼽히며, 전력생산량은 3천 메가와트에 달한다. 한편 누렉 댐은 투르순조다 시에 알루미늄 공장이 들어온 것과 같은 시기에 완공됐다. 이 알루미늄 공장은 ‘소비에트 국가’의 실현을 꿈꾸는 열정적인 젊은 세대들의 힘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이 두 프로젝트는 현대국가인 타지키스탄의 척추를 세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약속을 이뤄주지 못했다.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탈코(Talco)사의 공장은 타지키스탄 전체 전력 생산량의 40%를 잡아먹는다.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두 곳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전력공급이 제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타지키스탄의 경제적 무기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에너지 부족은 뇌물수수를 가져왔다. 소기업들은 뇌물로 인해 예산에 부담을 느끼는 반면, 전력 공급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데 힘을 쓸 수 있는 에너지 분야 행정 공무원 및 지역 책임자들은 비싼 값에 결재 서명을 팔아넘기고 있다. 이 상황에서 820만 명의 타지키스탄 국민들이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서 로건 댐 건설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이러한 기대는 사문(死文)에 지나지 않는다. 타지키스탄은 발전을 향해 가는 길목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아우 나라’인 타지키스탄이 알라이 산과 파미르 고원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통제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세 곳의 댐 건설은 본래 타지키스탄의 산업화를 도모하면서 동시에 아무다리야 강 유역의 관개 면적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다른 소비에트 공화국에까지 넓히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댐 방류 역시 전력 공급 뿐 아니라 농경지 관개수 공급도 함께 계산해 진행될 예정이었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개발계획에 따라 중앙아시아 전역,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 면화산업이 발달하면서, 목화밭 관개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물을 공급하는 대신 타지키스탄은 난방을 위한 다른 에너지,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 생산된 가스를 공급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공화국인 중앙아시아의 5개국 간의 에너지 공조 관계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각국의 독립과 함께 점차 무너져갔다. 결국 2009년에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공동전력 공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수자원관리 전문가인 카이 베거리히는 “이 지역의 패권이 소비에트 연방의 손에 있을 때에는 강 상류의 댐 저수량 증가는 곧 보다 풍부한 관개수 확보로 이어졌다. 하지만 로건 댐의 경우처럼 오늘날 새로운 댐 건설에 대한 논의는 (하류에 있는 국가들에게) 일종의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3)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 가장 협상이 어려운 부분은 다름 아닌 댐의 규모다. 하상(河床)에서부터의 제방높이가 높아질수록 저수지를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도 늘어난다. 최종 결정된 댐 높이 기준으로 로건 댐 저수지를 채우는 데는 7~12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335m 높이의 로건 댐을 통해 타지키스탄은 강 유량에 대한 더 큰 통제권을 지니게 될 것이다. 한편 우즈베키스탄은 타지키스탄이 겨울에 댐을 방류해 피해를 입게 될까 염려하고 있다.
댐을 둘러싼
타지크-우즈벡-러시아의 삼각관계
2013년 2월, 우즈베키스탄의 갈리나 사이도바 경제부 장관은 타지키스탄 측에 한 통의 서한을 보냈다. 타지키스탄이 각국에 일정량의 수자원 공급을 의무화하는 유일한 수자원 관련 지역협약(누쿠스 선언,1995)을 위반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또한 사이도바 장관은 로건 댐이 위치한 곳이 지진과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이고, 강 유량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수자원 관리 체계를 통한 관개수요 충족 보장을 위협한다고 지적하며 규탄하고 나섰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이처럼 로건 댐에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들은 정당한 부분도 있는 한편,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다. 카이 베거리히는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 “기존의 지역협약을 재논의 할 생각은 없이 더 많은 수자원을 요구하기만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아랄 해가 사막화되면서, 주로 면화를 집중생산하는 일모작 농경지에 물을 대는 현재의 수자원 운영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타지키스탄의 정치학자 파르비즈 물로조노프는 “협력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댐 방류량을 공동으로 제어하고, 공동투자를 통해 수익을 분배할 수도 있다.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협력해야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은 타지키스탄과 접경해있다는 점을 이용해 로건 댐 건설을 막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실제로 댐 건설에 필요한 설비를 운송하는 철도를 일정기간 봉쇄하거나, 타지키스탄으로의 가스운송을 중단하기도 했다. 타지키스탄 측에서도 로건 댐 건설을 재개하기 위해 여러 차례 위협을 가하다가 국제사회의 지원부족으로 한 발 물러서야 했다. 예를 들어 2008년 라흐몬 대통령이 공사 재개를 알리며 강행 돌파를 시도했으나,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국제안보지원군(ISAF)(4)의 핵심 지원국인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간의 긴장고조가 ‘물 전쟁’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 서방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이에 타지키스탄 대통령은 우선 러시아에 의존하기로 결정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의 권력의 핵심이었던 러시아에 다시 손 내밀기가 망설여졌지만, 댐 건설에 투자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러시아도 이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게 되면서(좌측 박스기사 참조) 타지키스탄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2010년, 타지키스탄 정부는 국민들에게 댐 건설을 위한 주식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라흐몬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로건 댐은 양심을 지닌 모든 이들, 충직하고 성실한 모든 시민으로서의 의무”라고 선포했다. 목표액은 14억 달러였으나, 국민들로부터 반강제적으로 걷어 들인 돈은 1억 8,400만 달러에 그쳤다.
잠셰드는 “사실 우리는 주식을 살 형편이 못 된다. 하지만 지역 권력층은 열과 성을 다하는 듯하다. 라흐몬 대통령에게 충성심과 애국심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국민을 통한 재원조달에 눈을 떼지 않는 한편, 로건 댐의 타당성, 위험성, 사회적·환경적 영향 조사를 위해 재정을 지원한 세계은행의 보고서로 활력을 얻었다. 타지키스탄 정부는 로건 댐 건설에 해외 투자를 받으려면 이러한 평가결과가 필수 선결 조건이라고 판단했고, 세계은행은 ‘국가적 이념’을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타지키스탄의 열망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2014년 9월, 신중한 결과를 내놓는 것으로 알려진 세계은행의 평가 보고서가 발표됐다. 보고서에는 “이와 같은 조정사항 및 권장사항을 따른다는 조건 하에 제시된 모든 버전의 로건 댐 건설 계획은 국제적 안전규범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건설 및 가동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타지키스탄 정부에 유쾌한 놀라움을 선사했다.(5) 우즈베키스탄 측은 2013년 2월 사이도바 경제부 장관의 서한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세계은행이 이 문제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확언했다.
하지만 해외 투자자들은 여전히 로건 댐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다. 특히 로건 댐 건설이 대통령 일가의 주머니만 채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두샨베의 모 국제금융기관 고위급 간부는 “해외에 알려진 사건들로 드러난 것처럼 그들은 이미 탈코(Talco, 타지키스탄의 알루미늄 회사)의 수익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탈코는 여러 복합적인 수단을 통해 그들에게 배당금을 확보해주는 대신 바르키토직(타지키스탄 국영 전력회사)에 전기요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고 밝혔다.
타지키스탄 대통령과 최악의 관계를 유지해왔던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현재, 두 국가 간의 상황은 어떻게 변화할까? 카리모프 대통령의 장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타지키스탄 측은 지난 12월 4일 선출된 샤프카트 마르지요예프 대통령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한 바 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라흐몬 대통령은 바흐슈 강의 흐름을 바꾸는 공사현장을 찾아 불도저의 운전대를 직접 잡았다. 로건 댐 건설공사 재개 의사를 공식 표명한 것이다. 게다가 몇 달 전 이탈리아 건설사 살리니 임프레질로(Salini Impregilo)와 39억 달러 규모의 계약도 체결한 참이었다. 그 중 1단계 건설 계약금인 19억 5천만 달러를 지급하기 위해 국가예산을 쏟아붓기도 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측에서는 별다른 반대의사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마침내 타협점을 찾았을지 모른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글·레지 장테 Régis Genté
언론인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어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등이 있다.
(1) 2015년 기준 1인당 GDP(미국 달러 현재가), 세계은행 발표
(2) Marie Coiffare, <Les déterminants et impacts macroéconomiques des transferts de fonds des migrants: une analyse du cas des pays fortement dépendants(해외노동자 송금의 거시경제학적 역할 및 효과: 의존적 국가 사례의 분석)>, 경제학 박사학위논문, University of Grenoble, 2011.
(3) Kai Wegerich, ‘Hydro-hegemony in the Amu Darya Basin’, <Water Policy>, vol.10, no.2, London, 2008.
(4) 2001년부터 2014년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이끈 연합 군대
(5) ‘Techno-Economic Assessment Study for hydroelectric construction project’, World Bank, Washington D.C., 2014.9.1.
박스기사 1
‘형님 나라’ 우즈베키스탄과의 갈등
타지키스탄은 1924년 이후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산하 자치공화국으로 속해 있다가 1929년 타지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태어났다. 영국의 외교관이자 역사학자인 폴 베르뉴는 “이러한 변화는 타지크인과 그들의 페르시아어를 인정하지 않는 범투르크 민족주의의 배경 하에 이뤄진 것이며, 타지키스탄의 형성은 민족주의의 결과가 아닌, 탄생의 시기가 왔기에 이뤄진 것”(1)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민족적 정체성을 특별히 인식하지 못했던 타지크인들이 자신들이 볼셰비즘의 민족주의에 끌려온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소비에트 국가들 간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우즈벡인과의 구분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한편 우즈베키스탄의 입장에서는 민족적 구분과 강조를 무시하며 구획 획정에 의해 그들의 영토 일부가 잘려나가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정치학자 파르비즈 물로조노프는 “우즈베키스탄은 여전히 ‘대(大)우즈베키스탄’을 꿈꾸고 있으며, 타지키스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타지키스탄 지도층은 독립 후 자신들의 민족주의적 정당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이것은 이들이 로건 수력발전 댐을 건설하려는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형님 나라’ 우즈베키스탄이 댐 건설에 20년 넘게 반대해 온 것도 타지키스탄의 결심을 굳히는 역할을 했다. 로건 댐은 타지키스탄의 국가적 명예가 달린 일이 됐다. 세계 최고수준의 댐 높이는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결정된 것이었지만(바흐슈 강의 대량 침전물이 댐의 사용기간을 단축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 베르나오 루오 전 중앙아시아 국제공무원은 “로건 댐의 건설은 상상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최상급 표현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질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2)
(1) Paul Bergne, <The Birth of Tajikistan: National Identity and the Origins of the Republic>, I.B.Tauris, 2007, p.103.
(2) Bernard Roualut, ‘L’eau, source de tensions régionales en Asie centrale. Au travers de l’exemple du projet du barrage de Rogoun(중앙아시아 지역 긴장의 원인인 물, 로건 댐 건설의 사례를 중심으로)’, 석사연구논문, IEP Toulouse, 2010.
박스기사 2
러시아의 외교적 지렛대
러시아는 여러 버전의 로건 댐 건설 계획 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이 불리하게 여기는 가장 높은 버전(335m)의 건설 계획을 오랫동안 지지했다. 이처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공화국 중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약 3천만 명, 타지키스탄은 8백만 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200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타지키스탄에 20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고, 그 결과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관계는 악화됐다. 러시아 정부는 보리스 옐친 정권 당시 억만장자의 자리에 오른 올레크 데리파스카 회장의 알루미늄 기업인 루살(Rusal)을 통해 지원금을 채우려 했다. 실제로 많은 러시아 기업들은 기업 운영에 있어 국세청이나 부패방지위원회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정부의 사회·외교 정책에 대한 재정지원은 물론 다방면의 협력을 제공하는데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루살 역시 로건 댐 완공, 투르순조다 시의 알루미늄 정련 공장 재건축, 알루미늄 공장 신축에 투자하도록 요청을 받았다. 루살은 그 대신 댐의 관리권 지분을 요구하고, 알루미늄 공장에는 자본 참여만 하겠다고 주장했다. 당시 타지키스탄은 국내 생산의 20%, 수출의 60%를 러시아에 넘겨야만 하는, ‘독이 든 사과’를 받아든 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타지키스탄 정부가 직접 나서서 러시아의 제안을 거절할 필요가 없어졌다. 2005년 5월 13일, 우즈베키스탄 페르나가 계곡에서 ‘안디잔 학살’이 일어났고,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강행한 것이다. 공식 발표에서는 그에 따른 사망자 수가 187명이라고 밝혔지만, 여러 비정부기구(NGO)들은 실제로 수백 명 이상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카리모프 대통령은 미국이 반란을 부추겼다고 비난하며 다시 한 번 러시아와 밀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더 이상 로건 댐 건설 지원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을 위협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러시아의 압박이 줄어들면서 로건 댐 건설 계획 또한 줄어들었다. 이 사업에서 별다른 경제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었던 루살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로건 댐 건설은 2007년 중단이 확정됐다. 공식적으로는 로건 댐 및 알루미늄 공장 건설에 있어서 루살과 지분 범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다시 러시아와 거리를 유지한 채 미국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2013년에는 수도 타슈켄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표 사무소를 개설하는 데에 동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9월 2일 카리모프 대통령이 별세하면서 새롭게 취임한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비교적 친러 성향을 보이고 있어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