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 보이지 않는 공해

2017-03-31     올리비에 카샤르 | 낭시 대학교 법학과 교수

산업사회는 시각 또는 후각으로 감지되는 공해를 발생시킨다. 반면, 정보사회가 일으키는 전파공해는 시각으로도, 후각으로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휴대폰 등 통신기기나 전자 설비 및 장비의 과용으로 인한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관련 대책과 규제 마련에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대인이 전파를 활용한 것은 어제 오늘 시작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전파를 활용한 기술의 규모와 그 보급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새로운 기술 시대로 들어섰다. 전자기 스펙트럼(1)이 완전히 포화상태에 이를 만큼 마구잡이로 전파 남용을 부추기는 새로운 기술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파를 과용하는 것은 한정된 천연자원을 남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전파를 과용하면 일정 지점, 일정 주파수 대역에서 물리적 법칙에 따라 간섭현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부는 통신 사업자에게 주파수를 배분해주고 일정 수입을 챙겨간다. 말하자면 무선통신과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바야흐로 전파 이용이 경제적, 재정적,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 새로운 시장에서는 적어도 사업 초기에는 사업자가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관례로 여긴다. 가령 유럽연합은 인터넷상거래에 관한 EU 지침에 따라, 인터넷서비스제공자나 웹호스팅서비스제공자가 콘텐츠 전송에 대한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해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은 전파에 사람들을 마구 노출시키는 사업자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휴대폰의 잦은 사용도 직업병의 원인

국제암연구소(IARC)(2)는 고주파의 전자기파(전화, Wi-Fi 및 블루투스 전파 연결 등)를 ‘발암가능물질(2B 그룹)’(3)로 분류했다. 이에 휴대폰 사용과 발암 가능성의 연관관계를 면밀히 관찰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그와 관련해 다수의 대규모 연구가 진행 중이다. 가령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자파 장시간 노출과 일부 암 발병 사이에는 잠재적인 유관성이 존재한다. 특히 휴대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을 상대로 실시한 11개 장기 역학조사에서 그런 결과가 나타났다.(4) 또한, 두 가지 법원 판결에 주목해볼 만하다. 독일연방행정법원(5)과 이탈리아 파기원(대법원)(6)은 레이더 기사와 휴대폰 사용이 잦은 한 기업 간부에게 각기 전자파 노출에 따른 직업병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밖에도 과거 고압전류의 저자기파에 대한 장기간 노출과 악성종양의 발병 사이에 유관성이 있음을 지적한 여러 연구가 존재한다.(7) 한편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2년 극저주파를 ‘발암가능물질’(2B 그룹)로 지정했다.(8)

이미 세계보건기구(WHO)가 작성한 국제질병분류에 등재된 다중화학물질과민증(MCS)(상당량의 오염화학물질에 접촉하거나 미량의 유해 화학물질에 장기간 접촉한 후 다른 곳에서 매우 미량의 오염화학물질에 재접촉했을 경우 두통이나 메슥거림, 알레르기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심각한 반응을 나타내는 불쾌한 증상-역주)과 마찬가지로, 전자파과민증(EHS)(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는 증상-역주)이란 신종 질병이 등장했다. 장기간 전자파에 심하게 노출된 경우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자파과민증은 발병 이후 적은 양의 전자파 노출에도 인체를 취약하게 한다.(9) 도미니크 벨폼 교수는 전자파과민증 진단을 위해, 환자에 대한 문진 외에, 생물학적 표지, 의학영상 등의 진단도구를 만들어냈다.(10)

현재까지 보건당국은 전자파과민증과 전자파 노출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 증상이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까지는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전자파과민증에 관심을 가지는 국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 오늘날 시민들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한층 투명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좀 더 활발하게 환경보건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길 희망하고 있다. 

합의를 방해하는 세 가지 장애물

그러나 현재로서는 세 가지 장애물이 전자파의 유해성과 관련한 합의 도출을 가로막고 있다. 첫째, 유관과학 분야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전자파 연구가 물리학의 영역에 속한다면,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각종 의학(신경학과, 내과, 면역학과, 유전학과, 후성학과 등)과 생물학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연구원 간 국제네트워크 결성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가령 현재 주기적으로 연구 보고서를 발표 중인 ‘바이오이니셔티브’ 워킹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두 번째 장애물은 과학적 입증 단계를 넘어서지 못할 때의 어려움이다. 사실 전자파 노출과 질병의 유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독성학이나 생물학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무선통신망이 확대되고 통신기기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은 최근의 일이어서, 아직까지는 장기간 노출에 따른 연구가 많이 미흡한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애물은 이른바 ‘기초’ 과학계의 얼굴을 먹칠하는 이익충돌의 문제다. 프랑스나 해외 연구진의 일부는 정보사회에서 활동 중인 여러 대형 통신사업자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연구원들이 직접적으로 연구결과를 왜곡할 우려 외에도, 가설 제시 단계에서 주관적 관점을 개입시키거나, 편향된 연구방법을 선택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결과를 왜곡할 우려가 충분히 존재한다. 가령 장기간 노출의 생물학적 영향에 관한 연구가 현재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방증한다. 사실상 장기간 노출이 인체조직에 미치는 발열효과(현재로서는 그 영향이 매우 미미한 것으로 여겨진다)의 경우와 달리, 장기간 노출에 따른 생물학적 영향의 경우 그 잠재적 위험성이 더 심각하다. 사실상 과학 연구가 항상 순수한 연구나 공익을 목적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각종 이익집단은 항시 과학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며 그들의 연구를 자신의 목적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일부 국가기관이 실시한 연구는 그 적합성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 국가직속기구들은 그들이 내세우는 전문성과 달리, 그에 합당한 다채로운 연구 인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단지 전자파의 무해성을 입증해주는 연구와 유해성을 입증해주는 연구가 각각 얼마나 되는지 정량화하는 것만으로는 과학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위정자들이 정책을 수립하는 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이익충돌의 의혹에서 자유로운, 해당 주제를 직접 연구 중인 연구원들이 정부의 정책수립을 목적으로 양질의 연구를 수행하는 쪽이 훨씬 바람직하다.

프랑스에서는 전자기파 피해 등 신종공해의 경우, 처음에는 환경법으로, 이어 2005년부터는 환경헌장 제5조에 의해 헌법규정으로 한층 격상시켜, 이른바 사전예방원칙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전예방원칙을 둘러싼 공격이 끊이질 않고 있다. 대부분은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해야 할 집단적 피해 발생 위험을 의도적으로 책임배상법의 소관에 속하는 일부개인피해로 간주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당국이 사전예방원칙을 잘 지키는지 면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일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 국가가 나서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사실 전자기파와 관련해 노출허용 기준치를 규정하는 과정에는 매우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2002년 5월 3일, 대선 1차 투표를 마치고 2차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전자파 노출기준에 관한 법령이 도입됐다. 당시 이 법령은 환경운동가인 이브 코셰 국토개발환경부 장관을 건너뛰고 모든 협의 과정을 생략한 채 (총리 직속으로-역주) 도입됐다. 더욱이 새 법규는 기존의 낡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구속력 없는 기술 규제를 답습했다. 장기적 노출에 따른 생물학적 영향은 무시한 채 단기 노출에 따른 발열효과만을 고려한 법안이었다. 사실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적어도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이 법안에 규정된 허용기준치는 관련자들과의 협의과정을 거친 공공보건정책을 근거로 삼지 않고, 오로지 산업계의 요구만을 반영한 것이었다. 즉 20년 전에도 이미 문제가 많았던 기준치를 채택하며 사업자들에게 너무나도 관대한 면책특권을 보장해준 것이다. 

게다가 법령의 소극성이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 어떻게 사전예방원칙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행정부가 일찌감치 팔을 걷어붙이고 노출허용치를 새로 정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인가? 둘째, 최종 판단자인 법원은 무엇 때문에 논란이 많은 기준치를 용인한 것일까? 다른 나라들처럼 좀 더 시민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로랑스 아베이법 채택, 그러나 갈 길이 멀다

2015년 2월 9일 디지털망 확대보다는 전자파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에 방점을 찍는 일명 ‘로랑스 아베이 법’이 채택됐다. 이제 ARCEP(프랑스통신규제당국)은 “환경과 시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며 과거 통신부분 공정거래규제기구의 위상을 탈피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더욱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프랑스 국립주파수관리청(ANFR)도 ‘이상지역’, 즉 “전국 표준 수준을 초과하는 저자기파 노출지역”을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작업은 일종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아무리 비정상적으로 전자공해가 높은 지역도 기존 허용치보다 항상 낮은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수두룩하다.

먼저 현 ‘디지털 공화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앙집권적이다. 일례로, 사전예방원칙을 근거로 한 기지국 설치 심사를 정부당국 산하의 특수경찰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최고행정재판소의 판례도 본래 시장 소관이던 심사 권한을 상당 부분 침해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사실상 지방분권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아베이 법은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 지역차원의 협의절차를 재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16년 8월 11일자 시행령 제2016-1106호에 따라 전원 도지사가 임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도 단위 협의기구를 운영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일반 시민이 아닌, 노동자 대상 규제도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고주파 전자기파의 경우 허용기준치는 일반 시민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치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사실상 노동자는 일반 시민보다 전자파 노출의 위험에 대해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있으며, 안전구역설정이나 표지판 설치 등으로 더 많은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각종 소송 사태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더욱이 노동자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직장 내 의료진 역시 전자기파 위험에 관한 연구나 전자파민감증과 같은 신종 질환의 진단 등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이제 노사파트너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매우 역설적인 문제는, 자유주의 경제 사회에서 소비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선택의 자유, 소유자의 권리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지금 모든 가구에 ‘링키’ 등의 스마트미터를 강제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조치는 다분히 법률에 위배된다. 전자기파를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개인정보 수집 등 새로운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장치를 더 이상 단순한 계측기로만 보기는 힘들다. 각 시나 서비스 이용자들은 원한다면 이 같은 배급 및 소비 방식에 대해 반기를 들 법적 논거가 충분하다. 사실 자유화의 미덕 중 하나는 바로 공급의 다양화가 아니던가?

전자기파 규제는 단순히 사회적 문제인 것만이 아니라, 환경법, 에너지법, 통신법과도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는 전자기파와 관련한 공적 토론에 시민단체, 노사파트너, 지역주민의 적극적 참여가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물론 법률전문가의 참여도 빼놓을 수 없다! 더 이상은 통신 서비스 저하, 기술 후퇴라는 낡은 레퍼토리를 들이밀어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결국엔 좀 더 철저하고 안전한 규제야말로 기술 발전을 자극하는 강력한 촉진제가 될 것이다.  


글·올리비에 카샤르 Olivier Cachard
낭시 대학교 법학과 교수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신호(음성, 영상, 데이터) 전송에 사용되는 전파. 가시광선보다 주파수가 낮다(주파수는 0Hz~300GHz, 파장은 1mm~무한대). 여러 주파수 대역으로 구분된다. 가령 항공 통신에 이용되는 단파(고주파), FM 라디오 방송이나 선박 통신에 이용되는 미터파(초단파), GSM 전화 통신이나 Wi-Fi에 이용되는 데시미터파(극초단파) 등으로 구분된다.
(2)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리옹에 소재한 세계보건기구 산하 연구소.
(3) ‘Non-ironizing radiation, part 2: Radiofrequency electromagnetic fields’, <IARC Monographs on the Evaluation of Carcinogenic Risks to Humans>, 제102권, 리옹, 2013년.
(4) ‘Celle phones and brain tumors: A review including the long-term epidemiologic data’, <Surgery Neurology>, 제72권, 제3호, 암스테르담, 2009년 9월.
(5) 독일연방행정법원, 라이프치히, 2014년 4월 10일 판결
(6) 이탈리아 파기원, 로마, 2012년 10월 10일 판결.
(7) ‘Childhood cancer in relation to distance from high voltage power lines in England and Wales, a case-control study’, <The British Medical Journal>, 런던, 2005년 6월.
(8) ‘Non-ironizing radiation, part 1: Static and Extremely Low Frequency(ELF) Electric and Magnetic Fields’, <IARC Monographs on the Evaluation of Carcinogenic Risks to Humans>, 제80권, 2002년.
(9) 도미니크 벨폼, <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리고 건강하게 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레리앙키리베르 출판사, 파리, 2016년.
(10) 도미니크 벨폼, 크리스틴 캉파냑, 필립 이리가레, ‘Reliable disease biomarkers characterizing and identifying electrohypersensitivity and multiple chemical sesitivity as two etiopathogenic aspects of a unique pathological disorder’, <Environmental Health>, 제30권, 제4호, 런던,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