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를 상품화한 디지털 악덕업자들
2017-03-31 예브게니 모로조프 | 언론인
과거의 백만장자들은 적어도 솔직하기는 했다. 지구상의 자원을 보호하기보다 강탈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는 속내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헨리 포드, 앤드류 카네기, 존 록펠러와 같은 산업시대의 ‘악덕 자본가들’은 자신의 재산 일부를 자선 사업에 할애했다. 다만 둘의 구분을 명확히 했다. 석유와 철강은 돈을 벌어다주는 존재이며, 교육과 예술은 돈을 써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이들의 이름을 딴 재단은 중립적이지도 않았고 정치와 무관하지도 않았다. 진행된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미국의 외교 정책과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경향에 일치했다. 이들 프로젝트의 저변에 깔린 민주주의나 경제성장이론을 통해 우리는 문명의 당위성을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이런 재단들 중 일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캠페인을 벌여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인도의 산아제한정책에 대한 록펠러 재단의 지원은 신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1)
그러나 세계 최대기업 10개 중 5개가 신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기업인 시대가 도래하자, 우리는 사업과 자선의 경계를 알 수 없게 돼버렸다. 교육, 건강, 교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는 오늘날의 디지털 기업들은 이전 세기의 산업기업들이 누리지 못했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바로, 비영리 활동에 투자를 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최신기술로 무장된 제품들(데이터, 화면, 센서 등으로 겹겹이 포장된 ‘희망’적인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치료자로서의 페이스북
2015년 10월, 페이스북의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은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다. 자신들의 재산을 전 세계 모든 이들과 공유하겠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유한책임회사다(자선단체로서는 흔하지 않은 형태다). 저커버그 부부는 30억 달러를 투자해 현존하는 모든 질병을 퇴치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최근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감세 혜택 덕분에 페이스북의 금전등록기가 가득 차면서, 마크 저커버그는 이 프로젝트를 더욱 잘 실행할 수 있게 됐다. 페이스북은 영국에서 2억 1,070만 파운드의 매출을 올렸지만, 세금은 매출액의 2%에 불과한 417만 파운드만 납부했다(그나마 2014년에 비하면 1천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게다가 1,100만 파운드의 세금 공제까지 받게 돼, 추후 납부할 세액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가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2)
사실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에 대한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가 사용하는 ‘박애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 이 프로젝트들은 박애와는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포드나 록펠러의 숭배자라서가 아니라, 이들이 만든 자선기업들은 정치적 의도가 무엇이었든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악덕 자본가들’에 대해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질병을 퇴치하겠다는 저커버그의 약속에 대해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 분야에서 저커버그의 행위를 살펴볼 수는 있다. 저커버그는 뉴저지 학교들에게 1억 달러를 개인적으로 기부했고(아직 그 효과는 미미하다),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는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는 기업들에 투자했다.
교육자로서의 페이스북
또한,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는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본부를 두고 프로그래머 육성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안델라에 거액을 투자했다. 투자 형태는 구글이 투자신탁회사인 GV를 통해 투자를 하는 방식과 이베이 창업자가 설립한 오미다이어 네트워크(Omidyar Network)가 투자를 하는 방식과 동일했다. 몇 주 뒤, 안델라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 사직하고 결제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을 세웠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저커버그의 투자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임에 분명하다.
수익에 대한 갈증인가, 아니면 돕고자 하는 진실된 마음인가? 저커버그의 진짜 동기를 모르겠다면, 굳이 찾아낼 필요는 없다. 모호함은 이미 계산된 것이니까. 포드와 카네기가 벌인 자선활동들의 목적이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잘못들을 속죄하기 위함이었다면, 저커버그와 오미다이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이 탐욕스러운 자본주의가 훌륭한 일을 해낼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는 학생들에게 과학과 수학을 가르치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인도 기업 BYJU에도 투자했다. 물론 투자 동기는 고상했다. 그러나 저커버그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이 기업이 개인 맞춤형 교육, 즉 사용자들에 대한 엄청난 양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전문으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개인 맞춤형 서비스에 대한 저커버그의 애정은 그가 투자한 또 다른 교육 프로젝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바로 서밋 베이스캠프(Summit Basecamp) 기업이 개발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다. 2013년 저커버그가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학교를 방문한 후, 서밋 베이스캠프에는 20명의 페이스북 직원들이 배치돼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1백 개 이상의 학교에서 2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학생들의 부모들은 서밋 베이스캠프가 약속했던 대로 어떤 개인정보도 유출되지 않는다고 믿고 싶겠지만, 왓츠앱(WhatsApp)의 설립자들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을 보고도 이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2014년 왓츠앱이 페이스북에게 인수될 당시 왓츠앱 관련자들은 개인정보의 보호를 호언장담했지만, 지난해 여름 이들은 왓츠앱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페이스북에 넘겼음을 시인했다.(3)
실리콘 밸리의 거물인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 로렌 파월 잡스의 뒤를 이어, 마크 저커버그 역시 알트스쿨(AltSchool)에 투자했다. 알트스쿨은 구글 출신의 임원이 설립한 스타트업으로 개인맞춤형 교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테일러식 교육 방식에 충실할 수 있도록 알트스쿨의 교실에는 교육 과정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분석하고 제거하기 위해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된다. 알트스쿨은 좀 더 많은 학교들에게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라이센스를 판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라진 시인들
대부분의 경우, 오늘날의 가짜 박애주의는 수익창출을 위한 우회적인 수단에 불과하며, 색다른 형태의 개인맞춤형 기술에 열광하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고 기업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인재들을 양산해낼 뿐이다. 이는 다국적 컨설팅 회사나 IT 대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알트스쿨에 관한 <더 뉴요커>의 한 기사에 따르면, 알트스쿨의 학생들은 <일리아드(Illiad)>를 읽으며 스프레드시트를 펼쳐놓고 ‘Colère(화)’의 유의어가 몇 번 나오는지 기록한다고 한다. 이런 학교에서는 뛰어난 계산전문가가 배출될 수는 있겠지만, 시인은 아마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 IT 업계의 엘리트들은 또한 차터 스쿨(Charter School)(4)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차터 스쿨이란 공적 자금을 지원받아 민간이 교육을 주도하는 학교로, 교육 분야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오랜 노력의 결실이다. 미래에는 빌 게이츠 등이 개인정보를 무기삼아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강탈해간 이들과 공감하면서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지지는 말자. 사실 거대 IT기업들이 얼마나 적은 액수의 세금을 냈는지를 보면 공공 분야의 발전이 더딘 것은 당연하다. 또한 IT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개발하고 습득한 신기술을 바탕으로 민간 분야를 계속해서 발전시킴으로써, 대중들이 낡고 답답한 공공 분야보다 유연한 민간 분야를 자연스럽게 선호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박애주의와 투기가 구분되지 않는 현 상황을 즐길 것이 아니라 걱정해야 한다. 인류 구원을 소리 높여 외치는 실리콘 밸리에 맞서서, 누가 우리를 실리콘밸리로부터 구원해줄 것인지를 자문해야 한다.
글·예브게니 모로조프 Evgeny Morozov
벨라루스 출신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기술이 사회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To save everything, click here. Technologie, solutionism, and the urge to fix problems that don’t exist>(Allen Lane, London, 2013)의 저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Howard Zinn, ‘Au temps des barons voleurs(악덕 자본가들의 시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2년 9월호
(2) 브누와 브레빌, ‘영미의 자선 중시와 프랑스의 자선 외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4년 12월호
(3) 피에르 랭베르, ‘개인정보, 이제는 정치적 사안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6년 9월호
(4) 공공 보조금과 민간 기부금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무료학교. 교사진과 교육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학업 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라 지원금의 액수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