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기업의 부적절한 동거
중앙대 ‘구조개악’의 현장

2010-03-05     최철웅

  언론 장악, 비판 세력에 대한 사보타주, 권위주의적 리더십, 시장가치를 앞세운 민주주의의 파괴…. 현 정권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2008년 기업 재단이 새롭게 들어온 이후 중앙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처음 두산그룹이 새로운 재단으로 영입되었을 때만 해도 우려보다는 학교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컸다. 이전 재단은 사실상 대학에 대한 투자를 포기한 ‘식물재단’으로 몇 년간 재단 전입금이 법정 최소액인 1천 원인 상태였다. 그동안 쌓아온 전통에 기대어 평판을 유지해나가긴 했지만 입시 결과를 비롯해 각종 대학평가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던 ‘암흑의 시기’였다. 따라서 삼성의 지원을 받아 발돋움한 성균관대처럼 이제 중앙대도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명문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교수 길들이기와 학생 홍위병들
 기업 재단이 들어오자마자 빼든 것은 역시 구조조정의 칼날이었다. 학내 구성원의 기대감과 고통 분담 의지를 지지 삼아 새 재단은 교수연봉제와 교직원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일부 교수는 ‘교수 길들이기’라며 저항의 의지를 밝혔으나, 결국 투쟁 동력을 이어가지 못한 채 굴복하고 말았다. 교수들이 철밥통을 지키려 든다는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교수들의 입지를 좁히는 데 한몫했다. 교직원들은 고용 상태가 불안정해지고 업무 부담이 과중해졌지만 저항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학생들은 교직원들을 방만하고 태만한 집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고, 교직원들의 사소한 행정 실수마저 나태함의 표현으로 간주해 거세게 비난했다.
 구조조정의 직접적 대상이 된 교수와 직원들이 속병을 앓는 동안 학생들은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개혁의 흐름을 적극 반겼다. 새 재단은 야구장 입장 할인, 계열사 음식점 할인 등 기업 재단만이 제공할 수 있는 소소한 혜택을 제공했고, 학생들은 무엇보다 학교 이미지 개선이 대학 입시 결과의 상승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했다. 교수와 직원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서 요구되었고, 기업식 학교 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시대착오적인 운동권의 선동으로 비난받았다. 그들에게 기업식 구조조정이 과연 대학의 연구 역량과 교육 능력을 높여줄 것인지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어차피 입시 결과로 대학 순위가 매겨지는 현실에서, 학교 이미지가 개선되어 입시 성적만 높아지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용성 이사장은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고 공공연히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 재단은 학생들의 현실주의적 욕망과 적절하게 공명하는 한편, 그것을 적극 활용했다. 새 재단은 학내 여론 관리에 공을 들였는데, 그 일환으로 홍보실과 공식 커뮤니티 ‘중앙인’을 개설했다. 학교 측은 ‘중앙인’을 통해 주요 공지사항을 전달하며, 학생들이 학교 행정에 불만을 제기하면 담당자가 즉각 조치를 취해 경과를 보고한다. 어느 교직원은 학생의 민원 제기로 상임이사에게 불려가 호통을 들었다고 하며, 최근에는 수강 신청과 관련해 실수를 한 교직원이 학생들의 여론에 밀려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일개 자유게시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학내 여론의 유일한 창구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총학 등 학내 대의기구의 여론 형성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포퓰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또한 대학 서열과 학교 순위에 민감한 학생들이 ‘중앙인’을 적극 활용하면서 기업 재단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들은 일종의 ‘홍위병’ 역할을 자처하면서 이사장과 기업 재단을 지지하는 데 열정을 바치고 있다. 학교 측은 이들의 여론을 유일한 여론인 양 간주함으로써 교묘하게 여론의 흐름을 조장한다. 학교에 옹호적인 게시물에는 친절하게 답변과 조치를 취하지만, 학교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면 무시하거나 삭제해버리는 식이다.
 
 ‘톱다운’ 방식의 구조조정 강행
 최근 거센 논란이 일고 있는 학과 통폐합 논의는 구조조정의 제2막이라 할 수 있다. 학교 측은 안성의 제2캠퍼스를 서울 근교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유사학과의 통폐합과 정원 조정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제1막이 비교적 재단의 입맛에 맞게 진행되었다면, 현재진행형인 제2막은 적잖은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논란의 시발점이 된 것은 2009년 10월 모 일간지의 기사였다. 중앙대가 유사학과를 통폐합하고 경영대를 집중 육성하는 ‘메가톤급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학과 통폐합과 캠퍼스 이전은 학생들에게 민감한 문제다. 자신이 속한 학과가 없어지거나, 다른 캠퍼스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누가 남고 누가 옮겨갈 것인가를 두고 추측과 공방이 난무했다. 이토록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학교 측이 아닌 외부 언론을 통해 소식을 들은 것도 구성원들을 동요시켰다. 앞으로도 학교 측이 공론화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학교 측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무마했지만, ‘톱다운’ 방식의 구조조정은 이후 노골적으로 추진된다.
 첫 기사가 나간 후 두 달여가 지난 200 9년 12월 29일 학교 측은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를 40개로 줄이고, 10개 단과대학을 5개 계열로 묶어 각 계열에 인사와 예산의 전권을 쥐는 책임부총장을 두며, 행정을 전담하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도록 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숫자의 논리로만 보면 학과 수를 절반 가까이 줄인 혁신적인 안이었다. 그러나 외부 컨설팅 업체까지 동원해 작성했다는 구조조정안은 정작 내부를 들여다보면 허술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통폐합 또는 육성의 운명을 가르는 기준이 된 학과평가지표에 문제가 제기되었다. 연구 성과나 역량이 아니라 취업률에 가장 높은 가중치를 두고 학과를 평가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들이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학내 자체 평가에서 우수학과로 선정된 학과가 이번 평가에서는 통폐합 대상이 되고, 정치외교학과같이 종합대학의 근간이 되는 학과가 폐과 대상이 되었다. 반면 대내외적으로 우수한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든 경영학과가 집중육성 학과로 선정되었다. 이로 인해 특정 학과가 높은 점수가 나오도록 평가 기준을 조절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취업률을 지표 삼아 기초학문 분야에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준 것도 논란이 되었다.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취업률만 높은 전문대학으로 키우려 한다는 비판이었다.
 학내 구성원들을 더욱 우려스럽게 한 것은 구조조정의 내용을 떠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학교 측의 태도와 방식이었다. 원래 구조조정 관련 태스크포스는 본부 측 인사들로 구성된 본부위원회와 평교수들로부터 선임된 계열위원회가 있었으며, 각 위원회가 각자의 안을 만든 후 상호 협의를 통해 최종적인 안을 만들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그런데 12월 29일에 발표된 안이 바로 본부위원회의 안이었다. 본부위원회가 자신들의 안을 마치 공식적 안인 양 일방적으로 공개해버린 것이다. 계열위원회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발했으나, 학교 측은 심심한 사과를 표시하는 것으로 논란을 마무리지었다. 이로 인해 기층 학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계열위원회가 사실상 학교본부의 ‘알리바이용’이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학교 운영에서 이런 식의 일방적이고 기만적인 태도는 이후 전면화되었다. 기업의 대학 지배를 비판하는 기고글과 총장의 행태를 조롱하는 만화를 실어 강제 수거당했던 교지 <중앙문화>의 예산이 지난 1월 전면 삭감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예산 절감이 이유였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보복 조치였다. 총학생회 주최로 매년 열리던 신입생 새터도 전면 폐지되었다. 총학생회는 즉각 항의 집회를 열고 총장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면담을 마치고 나온 후 총학생회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면담 이틀 전에 총장은 신입생 가정으로 통신문을 보내 안전상의 이유로 새터를 폐지했으며, 총학생회가 새터를 요구하고 있지만 부모 차원에서 자녀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해놓았던 것이다. 총학생회는 학교가 구조조정과 관련해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없애려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방학 기간에 학생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업 지배의 본질과 경쟁의 내면화
 잠시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했던 대학과 기업의 동거는 이내 불편한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대의 사례를 보면 대학의 기업화가 가진 문제점은 시장 중심의 가치관보다 운영 방식에 대한 화해할 수 없는 차이에서 더욱 크게 비롯되었다.
 한국 재벌기업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기업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는 극히 폐쇄적인 상명하달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오너가 결정하면 관료조직이 일사불란하게 그것을 처리한다. 오너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밑으로부터 의사를 수렴해 기업 운영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장 상황의 변동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는 기업에는 효율적인 구조일지 몰라도, 장기적인 학문의 전략과 비전을 가지고 지식을 생산하는 대학의 본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박용성 이사장은 “기업이라면 며칠이면 끝냈을 구조조정을 대학이라 몇 달씩 참고 있는 것”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지만, 대학이 기업이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학은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실천하는 공간이지, 취업을 위해 무한 경쟁하는 시장판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현실은 다소 비관적이다. 많은 학생들이 민주주의적 가치보다 대학 순위의 상승을 더욱 염원하며, 전통과 품위 있는 대학보다 취업률 높은 대학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예산에서 등록금 의존율이 60%를 넘는 상황에서 스스로 주인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이념을 떠나 현실 논리로도 납득할 수 없다. 기업 재단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가 되겠다면, 외국의 기업대학처럼 오히려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녀야 계산이 맞는다. 그러한 현실 논리마저 무너뜨리는 것이 경쟁의 압력과 탈락에 대한 공포이다. 어찌됐건 좋은 학점을 받아 취업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감,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복불복 게임에서 부르짖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 시대의 정언명법.
 경쟁은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세금을 걷어 상수도를 정화하면 비용이 덜 들지만, 각자가 생수를 사먹겠다고 결심하면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쟁의 압력을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이해관계가 얽힌 개인들이 연대해 집단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중앙대에서도 그동안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학생, 교수, 교직원들이 모여 연대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대의 구조조정은 향후 한국 대학 변화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것이다.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연대해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글•최철웅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에서 대중문화론을 강의하며, 계간 <문화과학> <오늘의 문예비평> 등에 문화분석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