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에 담긴 극우의 욕망과 좌절

2017-03-31     황상민 | 심리상담가

박근혜 씨에게 내려질 헌재의 대통령 탄핵 심판을 기다리는 동안, 이 나라 사람들은 태극기로 자신의 정체를 내세우는 친박, 자칭 ‘보수’단체들의 희한한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스스로를 ‘애국시민’이라 칭하고 박근혜 씨를 탄핵한 국회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빨갱이 세력으로 매도했다. 대다수 집회 참가자들은 중년 이상의 ‘어르신’들로, 기독교 성격의 군중집회에 참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가장 낯선 광경은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펼쳐졌다는 것이다. 


태극기는 분명 대한민국을 상징하고, 많은 이들이 태극기를 통해 나라 사랑, 애국심을 표현한다. 하지만 박근혜 씨의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에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나온 행위는, 그 자체로 이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또 이 나라에서 애국심을 발휘한다는 그 분들의 어떤 마음이 성조기를 내세우게 하는 것일까?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기를 꺼려하는 한국 언론은 이런 사건을 보도할 때에도, 자신들의 생각이나 관점보다는 국내 외국인의 평을 듣고자 한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칠레인 ‘셀레스테 바르가스’는 “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성조기를 드느냐. 내정문제에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거냐”며 되묻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온 ‘욥’이라는 사람은 “태극기를 든 한국 민족주의자들은 애국심이 강할 텐데, 성조기는 왜 흔드는 거냐.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고 싶은 거냐. 미친 것 같다”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집단주의 속에서 불태우는 
개인주의적 욕망

미국 식민지도 아닌 한국 사람들이 애국심을 내세우면서 성조기를 내세우는 행위는,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에게도 분명 희한하게 비쳤을 것이다. 박근혜 씨의 탄핵을 부정하는 자칭 ‘애국 보수’ 시민들의 주장들은 한국인들의 마음 속 깊이 숨겨진 다양한 욕망을 잘 나타낸다. 예를 들면, ‘국민저항 총궐기 운동본부(국민저항본부)’라는 조직에 의해 이뤄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탄핵무효”, “빨갱이는 죽어라” 등의 구호도 외쳤다. 놀랍게도 이들은 군사독재 시절을 지겹게 겪었을 50대 이상이다. 국가위기, 비상사태와 같은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이들은 군사 쿠데타를 연상시키는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구호도 외쳤다. 심지어 이들은 대한민국 지도자들에 대해 “계엄령 선포하여 빨갱이 죽여라”, “간첩 수괴 문재인, 박지원, 박원순을 처단해야 한다”, “종북 세력을 척결 못하면 애국시민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다”, “김대중, 노무현에게 역사의 낙인을 찍고 부관참시하자”는 등의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언급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애국자’임을 자부하는 이들이 자랑스럽게 내뱉는 주장들은 모두 내란음모에 가까운 선동이다. ‘애국’이라는 신념으로 자신들이 느끼는 국내의 위기와 혼란에 대한 해법이다. 여기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한국사회에서 무난하게 잘 살려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그것은 바로 “괜찮으면서도 잘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다. 

한국인의 심리를 연구하는 한 심리학자는 한국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속한 집단과 더불어 자신만의 뚜렷한 무엇을 찾는 이중적인 마음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집단주의를 추구하는 한편, 그 집단 속에서 개인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는 설명이다. 자유민주주의 속의 대한민국에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개인은 ‘개인주의적’인 모습과 ‘집단주의적인’ 믿음의 합작물이다. 다음과 같은 믿음은 개인주의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서 잘 찾을 수 있다.

- 결혼은 여필종부가 아니라 파트너십의 관계다.
- 나와 가족이 재미있게 사는 것이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 우리 가족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 나의 주요 목표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다.
- 돈을 버는 목적은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이다.
- 향후 5년 이내에 내가 이뤄야 할 일에 대한 나름의 계획이 있다.
- 남과 다른 나만의 개성이 매우 중요하다.
-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 주변 사람이 잘되는 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다.

반면, ‘집단주의적인 한국인’의 삶은 1960~1970년대의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빈곤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했다고 믿는 50대 이상의 연배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진, 다음과 같은 삶에 대한 믿음이다.  

- 가문은 반드시 아들이 이어야 한다.
- 자식 혼사를 위해 부모는 최대한 희생해야 한다.
- 여자는 고이 자라서 시집 잘 가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 모임에 갈 때는 짝퉁이라도 명품 한 개는 들거나 걸친다.
- 온라인에서 내 의견을 과격하게 표현해본 적이 있다.
- 미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계의 경찰이다.
-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을 하는 것이 편하다.
- 명품은 나를 우월하게 보이도록 한다.
- 중요한 결정은 당연히 가장이 한다.

‘구원자’이자 ‘주인’인 
미국을 향해 흔드는 성조기

개인주의적인 한국인에게 애국은 태극기로 충분하다. 하지만, 집단주의적 삶에 충실한 한국인에게 제대로 된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한 미국이다. 대한민국의 종주국이자 우방, 혈맹인 미국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한 구세주이다. 따라서, 이 나라와 이 사회가 위험하다고 느낄 때, 태극기와 더불어 성조기를 흔든다. 일제 강점기 36년 후 다시 36년 동안 박정희 독재정권이 끝날 때까지 이 사회에서 성장했던 사람들이 가진 이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다. 

일제 식민지 36년, 해방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36년, 그리고 민주화 36년이라는 세 번의 36년이 반복되는 동안, 이 나라 국민들은 독립된 국가의 민주시민이 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성조기는 ‘북한의 위협’에서 우리를 구원할 존재이자, ‘자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적 가치의 상징이 된 것이다. 독재의 시대가 끝난 후,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점차  ‘보수-진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프레임은 우리가 보는 세상을 가뒀다.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했던 민주화 세대가 학습했던 대표적인 적은 ‘일제’ 또는 ‘일제 잔재’였다. 하지만,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냈던 세대들에게 주된 적은 북한의 독재권력이었다. 박정희 시대의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말이나 비판을 하면, 그들을 ‘종북’이나 ‘빨갱이’로 퉁 쳐버렸다. 반독재 투쟁을 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적을 ‘일제 잔재’로 몰았다. ‘빨갱이’와 ‘일제 앞잡이’는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편리한 프레임이었다. 이것은 때에 따라 ‘보수-진보’로 구분됐다.  

‘보수-진보’의 프레임은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을 필요 없이 적을 규정하기 위한 편리한 수단이다. 심지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조차 ‘있는 그대로의 사실’ 여부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또는 ‘믿고 싶은 것’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아주 중요한 싸움의 기술이다. 자신이나 타인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는 순간 혼란이나 문제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잘 모를수록 이런 이념적 프레임은 유용하다. 적을 쉽게 규정하고 공격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정체를 애매모호하게 하면서 어떤 공격으로부터 피해 나갈 수 있다. 심지어, 나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기도 편리하다. 

자신의 정체나 정당성이 없는 사람들에게 미국은 단순히 이 나라를 구원해 준 자유민주주의 우방이 아니다. 성조기의 나라 미국은 구원자다. 과거, 이 나라에서 상대방을 '진보 대 보수'의 구도로 공격하던 사람들에게 ‘박근혜’ 씨의 탄핵은 적에 의한 음모일 뿐이다. 맞서 싸워야 한다. 그 적은 무조건 ‘빨갱이’, ‘종북좌파’여야 한다. 그래야, 마치 한국전쟁처럼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나온 것이다. 마치 십자가를 내세우면 예수님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마음과 같다. 자신이 마주한 문제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구원자에게 호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인이 아닌 노예의 마음을 표현인 것이다. 노예의 분명한 특권은 자기 삶의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로 보면 돈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더러는 많은 돈을 축적하면 자신이 주인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들에게 ‘좌파’ 또는 ‘진보’란 자신의 이익을 빼앗아 가는 ‘적’에 불과한 것이다.  

글·황상민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하버드대 심리학 석·박사. 하버드대 사이언스 센터와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했으며, 현재 심리전문 연구와 상담을 하는 기관인 위즈덤센터의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일반인을 위한 심리상담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 <사이버 공간에 또다른 내가 있다>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