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강변에 패인 한국인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2017-03-31     최주연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기자

 

파리의 센 강만큼 화가들의 영감으로 작용한 것도 드물다. 센 강은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브 카유보트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 빈번하게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루브르 미술관, 에펠탑, 콩코드 광장, 노트르담 대성당이 이 강을 둘러싸며 도시의 시적인 우아함을 완성시킨다. 이쯤 되면 그 강물에 특별한 무엇이 흐르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런데 너무도 이국적인 센 강, 그리고 파리, 프랑스가 과거부터 우리나라와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다. 19세기 말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현지인을 사귀고 모임을 만들며 프랑스 요리까지 능했던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하고, 도전하며 변화를 이끌어냈다. 파리는 독립운동의 거점이었고 한국인은 그 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프랑스 속 한국인의 역사를 파리에서 교포신문 <파리지성>과 갤러리를 운영하는 정락석씨가 1884년부터 현재까지 모아 꼼꼼하게 기록했다. <K-파리지앙>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고군분투한 한인들을 ‘집대성’한 책이다.  ‘센 강에는 슬픔이 고이지 않는다. 흐르는 것은 모두 사랑이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창조', ‘도전', ‘변화' 등 3개의 파트와 재불한인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부록으로 구성됐다. 

제 1파트 ‘창조’ 편에서는 백건우, 정명훈, 이성자, 백영수 등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제 2파트 ‘도전’ 편에서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에서 사업·직업적으로 성공한 한인들을 소개한다. 요리사 조만기, 현대기아차의 임덕정,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이 곧 국력'이라는 박병률 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제 3파트 ‘변화’편에서는 한국인들의 프랑스 정착 역사를 조명한다. 최초의 프랑스 외교관부터 입양인, 독립운동가와 현대의 한류열풍, 파리바게뜨 진출까지, 그리고 현존하는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와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한 ‘직지 대모’ 박병선 박사에 주목한다. 제 4파트인 부록은 독자들을 위한 ‘보너스’ 코너다. 재불한인 연표와 최신 재불한인현황은 예비 프랑스 유학생을 비롯해 프랑스 살이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게 했다.

<K-파리지앙>은 과거와 현재의 재불한인들을 흥미롭게 묶고 있다. 이야기는 퍽 생생하며 재미있다. 문체는 전혀 지루하지 않으며, 실제 인물을 만나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과거의 그 이가 그랬듯, 현재의 그 이도 센 강변을 밟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가 보고, 듣고, 맡고, 들은 파리의 풍경은 그를 창조하게끔, 도전하게끔, 변화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에게 어느새 이 나라, 이 도시는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다.  

<K-파리지앙>(정락석, 파리지성, 2017)    

글·최주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