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한 민주주의자와 한 공산주의자
정치적으로 상반된 길을 택한 두 레바논 사람이 각자 책을 통해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해준다. 자신들이 겪은 경험, 사생활과 정치생활의 고백이 주된 이야기다. 이 두 작품은 레바논의 복잡한 상황을 좀더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카림 므루에(2)는 시아파 지도자를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두었다. 그런데 므루에는 코란을 공부하고도 청소년 시절부터 마르크시즘을 신봉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공산주의 지도자였던 므루에는 레바논의 정치권 인사와 외국 지도층(공산주의자든 아니든)을 여럿 알고 있다. 탈당을 한 그는 저자로서 계속 활동하면서 평생 유토피아를 추구하며 교훈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가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마르크스는 선지자가 아니며 <자본론>은 성스러운 책이 아니다.”
회상록 형식으로 된 튀에니와 므루에의 책들에서는 씁쓸함이 느껴진다. 튀에니는 개인적으로 당한 비극을 너무나 담담하게 전개해서인지 오히려 읽기가 힘들다. 튀에니는 아내와 세 아이(딸 하나, 아들 둘)를 연이어 잃었고, <나하르>의 편집장이던 장남 게브랑은 2005년 12월 폭탄테러 때 저 세상으로 갔다. 반시리아 입장을 고수한 게브랑을 응징하려는 자들의 소행이었다. 튀에니는 아들의 관 앞에서 연설하며 용서를 강조했다.
튀에니의 불행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튀에니는 1975∼89년에 일어난 내전에 충격을 받았다.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실종되고 다쳤다. 튀에니는 전쟁 자체에 반대한다. 한편 므루에는 종파별 안배주의가 오히려 외국의 간섭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므루에는 두 가지 자기비판을 하고 있다. 우선, 공산당은 종파별 안배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을 과소평가했다고 비판했다. 저자 자신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레지스탕스를 무조건 지지하며 오류를 범했다고 인정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팔레스타인 국민 일부를 자극해 잘못된 행동을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바논 공산당은 쓸데없는 전투에 에너지를 소비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튀에니와 므루에는 한 가지에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스라엘 지배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국제기구를 통해서, 또 한 사람은 저항운동을 통해서 말이다. 일단 애국주의자인 두 사람은 레바논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고 종파를 초월해 모든 시민이 아랍다운 문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두 사람은 이슬람권과 기독교 간의 대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또한 반항적이다. 완강한 민주주의자인 튀에니는 <나하르>를 진정한 정부 견제 신문으로 만들었다. 정부의 독단과 부패를 비판하는 신문으로 만든 것이다. <나하르>는 경제든 금융이든 그 모든 부정행위에 반대하고 내전 때 시리아군에 사무실을 점거당했던 일을 포함해 모든 공격 행위에 반대한다. 그 결과 좋은 집안 출신인 튀에니는 감옥에서 젊은 날을 보내기도 했다.
므루에는 옛 소련의 간섭에 대항해 자신의 공산당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그는 정책의 흐름을 바꿔 옛 소련의 눈총을 사게 된 당의 임원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1968년의 일이었다. 므루에,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하는 임원들은 우파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를 신봉하지 않는 좌파하고도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신중하기는 해도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 개입한 러시아 군대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고 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므루에는 새로운 공산당 지도자와 정책 방향에도 미지근한 태도를 취한다. 아마도 협력이 깨질까봐 그런 것 같다.
글•에리크 룰로 Eric Rouleau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각주>
(1) 가상 튀에니, <증오와 복수를 묻다>, 파리, Albin Michel, 2009.
(2) 카림 므루에, <유토피아의 반세기>, 파리, Téraèdre,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