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백악관에 비친 세계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존 매케인과 버락 오바마 두 상원의원은 미국의 국제 상황에 대한 평가를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이 일련의 강력한 외부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부시 행정부는 이들 위협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왔다고 평가하고, 과거의 실패한 정책을 수정하기 위해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사람의 연설을 들어보면 그들이 조지 W. 부시의 정책과 대립각을 세운 후보들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두 사람 사이에 커다란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수많은 외부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매케인 상원의원은 예전의 구(舊) 소련을 비난했던 용어를 들먹이면서, 러시아가 촉발할 위협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에 반해 오바마 의원은 핵 테러리즘, 생물전 그리고 기후 변화와 같은 현존 위험성에 초점을 맞춘다.
두 후보, 성장 과정부터 대조적
또한 나토동맹 부활에 대한 두 사람의 주장을 살펴보면 매케인 의원은 나토를 이끌 미국의 역사적 사명에 대해 말하는 반면, 오바마는 유럽의 지지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미국이 더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뉘앙스나 웅변 이상의 많은 차이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서로 대조되는 두 대선 후보의 배경과 개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군인 가정에서 성장한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국 군대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강한 연민을 고백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1958~1981년까지 24년 동안 미 해군 조종사로 복무했으며, 베트남 북쪽 공산정권 하에서 전쟁포로로 6년 동안 억류된 적이 있다. 오바마 의원은 편모 슬하의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시카고에 정착하기 전에 인도네시아 등 여러 지역으로 이사를 다녔다. 그는 종종 자신의 가장 중요한 청소년기 경험으로, 시카고 남부 지역 빈민촌에서 활동한 시민 운동가 경험을 들곤 한다.
그러나 현재는 매케인과 오바마 모두 미국 정치의 주류에 착근했으며, 따라서 보편적으로 수용될 만한 각각의 정치적 담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두 사람 모두 중동의 테러리즘을 패퇴시키고 이란의 핵무장을 부인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군사 문제에 대한 전망과 직관에선 분명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매케인'패권주의', 오바마'이상주의'
매케인 의원은 부상하는 러시아를 미국 안보에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하고, 미국이 처음 지배했던 형태의 나토의 부활을 이런 위협에 대한 적절한 대처로 여기고 있다. 이는 냉전시대 초기, 그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미국 군대와 맺었던 인연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국제 문제에 대한 그의 접근과 그가 던져주는 이미지는 종종 소련을 봉쇄하고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려 했던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등의 언행과 닮았다. 2007년 매케인은 한 기고문에서 "발틱해부터 흑해까지 이어진 나토의 결속은 해체될 수 없으며, 나토의 문은 자유의 방어에 헌신하는 모든 민주 국가들에 열려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오바마 의원의 전망과 크게 대조적이다. 오바마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열정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카고 남부 외곽의 어려운 환경에서 경험한 시민 운동가로서의 삶에 영향을 받았을 오바마의 성향은 가능하면 대립을 피하고 공동 목표를 둘러싼 의견 일치를 구하는 것이다. 더욱이 냉전 이후 세대인 점을 고려하면 그가 소련의 붕괴 이후 제기되어 왔던 테러리즘, 생물전, AIDS의 전세계적 확산, 지구 온난화 등과 같은 다양한 위험들을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러한 차이는 매케인, 오바마 두 사람의 모든 외교 정책 이슈들을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그루지야와 러시아 간에 전투가 발발할 때까지만 해도 두드러져 보였던 두 후보 사이의 이 같은 철학적 차이는, 이라크와 이란에 대한 의견 불일치에서 보듯 모호하기 짝이 없다.
중동·아프간 문제 '방법론적 차이'
이라크 전쟁과 그 해결책이 미국의 정치 환경을 지배해왔기 때문에 올해 미국 대선은 이 한 가지 이슈에 의해 형성될 것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이라크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매케인과 오바마 사이의 불일치는 잘 알려져 있고 중요한 것이다. 즉, 매케인은 지속적인 미군의 주둔을 지지하는 반면, 오바마는 신속한 미군의 철수를 지지한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 사이의 불일치는 그들의 많은 철학적 차이들의 극히 일부 측면만을 보여주는 셈이다.
매케인 상원의원의 경우, 이라크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전선이며, 이라크 지배의 실패는 국제적 테러리즘의 전세계적 확산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바마 상원의원은 테러전의 핵심적 전선은 이라크가 아니며, 결코 그럴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테러전의 성공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와 싸우는 것에 달려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만약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오바마는 이라크로부터 대부분의 미군 전투 병력을 철수시키는 반면, 아프칸-파키스탄 국경 지대에 있는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은신처를 포위하고 파괴하기 위해 아프간에 미군을 증파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또 부시 행정부가 최근 전술로 채택한 파키스탄 내의 알카에다 목표 지점에 대한 미군의 공격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분명히 중요한 것이지만, 전세계적 테러전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론적 차이일 뿐, 근본적인 정책 차이는 아니다. 이란 이슬람 정부의 핵개발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의견에서도 동일한 그림이 분명하게 그려진다. 이 문제에 대해 크게 다른 의견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두 후보는 공통적으로 핵을 무장한 이란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경제적 제재가 이란의 암묵적 동의를 보장하기 위한 선호된 수단이고, 제재가 실패한다면 군사적 행동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바마 의원은 핵개발 프로그램의 중지를 목표로 한 미국과 이란의 직접 협상을 지지하며, 매케인 의원은 그러한 회담을 반대한다. 여기서 역시 그들의 차이는 근본적이라기보다 전술적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오바마 '동등한 협력과 협상' vs 매케인 '확고한 리더십과 제압'
두 대선 후보, 이란·이라크·그루지야 등 세계 문제 극명한 시각차
그루지야 사태,'극명한 철학적 간극'
그러나 그루지야와 코카서스에서의 이견은 한층 심각한 긴장감을 노출시켰다. 오바마 의원은 그루지야 전투에 대한 자신의 초기 논평에서 양측에 의한 제재를 요구하며, 협상을 지지했다. 오바마는 지난 8월 8일 "모든 당사자들은 그루지야의 안정을 위해 직접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공표했다. 그 후 그는 그루지야에 대한 부당한 침공에 대해 모스크바 당국을 비난하면서 러시아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등 자신의 입장을 강화했다. 그러나 다시 그가 지지했던 해결 방안은 뿌리 깊은 그의 '본성'에 부합하는 '중재와 협상'이었다.
매케인의 반응은 예전처럼 어떤 중재회담이나 협상은 없다는 훨씬 더 호전적인 '본성'에 따른 것이었다. 대신 그는 8월 7일 남오세아티아에 대한 그루지야의 침공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채, 러시아에 대해 그루지야를 부당하게 침공했다고 맹비난하면서,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를 주장했다.
그러나 오바마와 크게 다른 매케인의 반응엔 한층 넓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오바마의 경우, 그루지야 전투가 초래한 미국-러시아 관계의 손상은 러시아가 자신들의 적대적 행위에서 발을 뺀다면 회복될 수 있는 것이었다. 8월 11일 오바마는 "분명히 밝히지만 우리는 러시아 정부와의 협력적 연대와 러시아 국민과의 우정을 쌓아가는 미래를 모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매케인으로부터 그런 미래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미래의 과제는 러시아를 고립과 봉쇄를 통해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래의 최우선 과제는 러시아를 G-8 그룹에서 축출하고, 러시아 주변의 친서방 국가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나토에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를 합류시키는 노력을 가속화하고, 혹여 그들을 러시아가 공격할 때 미국과 유럽의 군사적 지원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매케인이 이 모든 것에 함축된 군사적 의미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제안이 중요한 군사적 요건을 수반한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다. 따라서 8월11일 매케인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 정부 및 다른 관련 국가들과 함께 그들 국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두고 즉각 협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매케인은 또 "현재 그루지야 영해를 통제하기 위해 수많은 러시아 흑해 주둔 함대들이 우크라이나 크리미아 지역의 러시아 기지에 정박해있다"며 "이는 특히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더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흑해에 장기간 구축해 온 러시아 해군 기지를 반대하기 위해 미국과 나토의 군사적 조치 가능성을 언급한 것임은 분명하다. 매케인은 또 바쿠-츠빌리시-세이한 송유관의 안전 보장을 위해 미국이 취할 조치를 언급하였다. 이 조치는 궁극적으로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과 그 지역의 다른 국가들에 미군을 배치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케인'냉전 회상',오바마'미래 지향'
이런 매케인의 태도는 미국의 유럽과의 관계에서도 함축된 의미를 지닌다. 이 대목에서 특히 두 대선후보간의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오바마 상원의원은 종종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의한 미국-유럽관계에 가해진 손상에 관해 언급하고, 한층 동등한 관계를 맺는 일에 헌신할 것임을 강력히 표방하고 있다.
매케인은 부시 행정부 시절의 일방주의로 인해 미국-유럽관계에 가해진 손상에 대해 관심이 덜 하지만, 역시 협력적 자세를 갖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우월감을 감추지 못한다. 지난 8월 26일 그는 오바마 의원의 그루지야 위기에 대한 대처방식을 비판하면서, "일관되고 확고한 미국의 리더십에 의해 위대한 민주국가들이 함께 결속했기 때문에 서구 세계가 냉전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는 "러시아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제압하기 위해 '확고한 미국의 리더십' 하에서 서구 민주 국가들은 다시 결속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코카서스 지역에서 전투가 발발하기에 앞서, 두 후보를 구분하는 가장 큰 이슈는 테러전의 주요 전장이 이라크냐 아프간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카서스 지역의 갈등은 두 대선 후보의 외교정책의 차이를 또 다른 의미에서 한층 분명하게 했다.
오바마는 21세기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을 정의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지구 환경이 유발하는 위험에 미래지향적으로 대처하길 원한다. 반면에 매케인은 냉전 시대의 결정적 순간과 미국·소련의 경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로 돌아가 이를 회상하고 있다. 이 같은 양자의 차이에 대한 관측은, 누구든 대통령이 됐을 때 일상적 제반 문제에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가를 추측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 또한 그들의 외교 노선이 지구촌 모든 이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번역 | 김희철 hckim666@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