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중심제에 대한 터키의 집착

2017-04-28     장 마르쿠 | 그르노블대 교수

터키의 현행 헌법은 1980년 군부 쿠데타를 거치면서 1982년 제정됐다. 이 헌법은 군부에 국가체제를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어 논란의 대상이 돼왔고, 이는 수차례의 개정 내용과 신헌법 초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주의 보수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정권을 잡으면서부터 헌법에 대한 논란은 그 성격이 변하고 있다.

2000년대 초, 터키는 유럽연합 가입 논의가 시작되면서부터 기본적인 자유 존중에 대한 유럽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다. 또한 군부가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해 군부 간섭의 매개체가 됐던 국가안전보장회의(MGK)의 구성과 역할도 2001년 10월 개정을 통해 개편했다. 이듬해인 2002년, 집권을 시작한 정의개발당은 여세를 몰아 터키 사법기관이 유럽인권보호조약(ECHR)을 보다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2004년 개정을 통해서는 남녀평등을 강화하고 사형제를 폐지했다. 이런 진보적인 조치들에 더해 민법과 형법 개정 및 법적 절차의 탈군부화(군사법원의 권한을 제한하고, 경우에 따라 군부도 보통법에 복종하도록 함)가 이뤄졌다. 이슬람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정의개발당 정부지만 뜻밖에도 터키 정치제도 전반을 자유화하고 나선 것이다.

2007년 의회가 해산된 이후, 조기총선에서 정의개발당은 압승을 거두면서 전체 의석의 2/3를 차지했고, 덕분에 단독적으로 첫 제도개혁을 시행할 수 있었다. 기존의 케말주의 체제(주로 군부, 고등법원, 학계 등에 의해 형성)는 에르도안 당시 총리가 의회 간선제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것을 막아왔다. 이에 정의개발당은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선출방식도 직접보통선거로 바꾸는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를 통해 가결시켰다. 그 후로도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전통적인 의원내각제 형태가 유지됐지만, 당시 대통령직을 맡았던 압둘라 귈 전 대통령의 역할은 결정자에 그쳤고, 실질적인 권한은 에르도안 당시 총리에게 집중돼 있었다. 2010년, 헌법재판소와 판사검사최고위원회(HSYK)를 중심으로 사법권력구조를 재편하는 새로운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 총선에서는 정의개발당이 세 번째 승리를 거두며 집권을 이어갔다. 반면 기소, 직무정지 등으로 언론의 자유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정의개발당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신헌법 제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 현행 헌법이 쿠데타를 통해 제정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돼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도 터키 정부는 대통령중심제를 중심으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정의개발당의 주장을 구체화시키는 수준이 아닌, 개인적인 정치적 미래를 확보하려는 에르도안 당시 총리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 진다. 총리직을 이미 세 번 연임(정의개발당의 당규에 의하면, 의원직 연임은 최대 3회로 제한돼 있다)한 그에게 이런 개혁은 권력 유지는 물론, 나아가 국가 체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해당 개헌안은 결국 의회 통과에 실패했지만, 2014년 대선에서 당선된 에르도안 대통령은 방향을 바꿔 사실상의 준(準)대통령제를 수립했다. 전직 대통령들처럼 빛 좋은 개살구가 되기 싫었던 그는 각료회의 주재권 행사 등 효력을 잃은 권한들을 되살리고 아흐메트 다부토글루 당시 총리의 정치를 감독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여전히 대통령중심제 수립이었다. 2011년 총선 결과 정의개발당이 야당과 논의 없이 개헌을 진행할 수 있는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5년 6월 총선을 통해 다시 단독 권한을 얻어 국민투표로 개헌안을 가결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총선 결과, 정의개발당은 다수당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단독 권한은커녕 2002년 이래로 놓치지 않았던 절대다수당의 자리를 잃어 독단적인 정치마저 어렵게 됐다. 정부가 쿠르드족과의 평화협정을 중단하면서 쿠르드족 유권자들의 표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평화협정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지지기반 중 일부 극단적인 민족주의 세력의 표마저 잃고 말았던 것이다.

대통령중심제 주장이 총선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본 다부토글루 총리는 대통령제에 대한 목소리를 낮췄고, 마침내 정의개발당은 2015년 11월에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절대다수당의 자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개헌을 위한 단독권한을 얻을 만큼의 의석수는 결국 확보할 수 없었다. 한편 에르도안 대통령은 재빠르게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다시 전통적인 의원내각제 체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대통령이 쥐게 된 최고 권력은 펫훌라흐 귈렌이 주도한 이슬람주의 사회운동과의 갈등을 비롯한 여러 내부적 문제의 해결과, 정의개발당에 대한 근본적 개편으로 이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의개발당 지도층 내 세대교체를 교묘하게 도왔고, 결국 2016년 5월, 다부토글루 총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충복이나 다름없는 비날리 이을드름에게 총리직을 넘겨줘야 했다. 새 총리로 이을드름 총리를 지명한 것은 특히 전임 총리가 적극 지지하지 않았던 대통령제 개혁을 성공시키려는 전략이었다.

2016년 7월 15일, 쿠데타 시도가 일어나고 안보적 긴장도가 고조된 상황은 대통령 권력의 강화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정의개발당은 민족주의행동당(MHP)이 최소한의 개헌안을 지지하게끔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다. 2016년 12월, 터키 의회는 총리직을 없애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18개 조항의 개헌안을 채택했다. 이 개헌안에 따르면 대통령은 비상사태에서 강력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고, 장관, 부대통령 등의 고위직을 임명할 수 있으며, 의회해산도 간편화됐다. 오는 4월 16일 국민투표에 부쳐지게 될 이 개헌안이 사법권력구조(헌법재판소, 판사검사최고위원회 등)를 다시 한 번 개편하려고 하는 만큼 야당, 비정부 언론, 인권보호단체 등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 모든 것이 긴장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터키의 언론 상황은 최근 수십 년 간 심각하게 악화됐다. 인권단체의 발표에 의하면, 2016년 말 당국에 의해 수감된 터키 언론인의 수가 80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재 전 세계에 수감돼있는 언론인 중 1/3에 해당된다.(1) 또한 2016년 쿠데타 시도 이후 유례없는 숙청 바람이 불어 특히 교육, 사법, 경찰, 외교 관련 공직자들이 대거 숙청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 ‘국가 안의 국가’ 역할을 해온 군부마저도 이제는 국가제도의 엄격한 지배하에 놓여있다. 국가의 균형이 유지되기에는 현 정권에 비해 대항권력의 힘이 너무 무력한 것이 아닐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다원주의도 위협을 받고 있다. 대학 내 히잡 착용금지 문제를 놓고 이미 정의개발당과 손을 잡은 적 있는 민족주의행동당은 사실상 더 이상 야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민족주의행동당도 초기에는 대통령중심제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으나, 데블레트 바흐첼리 당대표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내부적 반대세력을 제거하는데 정부의 도움을 받은 후로는 결정적인지지 세력으로 둔갑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민족주의행동당의 기반인 극우세력이나 심지어 그들에게 표를 던졌던 일부 유권자들마저도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한편 야당에서는 쿠르드계 급진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당 지도층과 의원들 일부는 기소되거나 수감돼 있는 상태다. 케말주의 정당인 공화인민당(CHP) 역시 지탄을 받고 있으며 영향권 밖에서는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조합, 비정부기구, 언론 등의 비국가주체들의 활동은 지속되고 있지만,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이어지고 있는 탄압조치들 때문에 손발이 묶여있는 상황이다. 현재 분명한 대항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주체들은 변호사협회, 대학교, 여성단체 등이다. 특히 여성단체는 최근 정부의 법안이 강제결혼을 독려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법안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반면 언론의 경우 도안미디어그룹을 중심으로 여러 반정부 언론사들이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자체검열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잦은 외압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에르도안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통령중심제는 정의개발당의 집권 초기 업적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의 전제주의적 정권에 다름 아닌 것이다.  

글·장 마르쿠 Jean Marcou
그르노블정치대학 중동지중해학 석사과정 담당교수, 프랑스아나톨리아연구소(IFEA) 객원연구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등이 있다.

(1) 언론인보호위원회(CPJ)가 2016년 12월 1일 기준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수감 언론인 수는 259명이며, 그 중 81명이 터키 언론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https://cpj.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