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부인하는 구 정권 인사들

2017-04-28     제롬 외르토 | 현대마그레브연구소 연구원

튀니지 혁명 이후 붕괴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정권 인사들은 과거 자행됐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우리는 2011년 이후 튀니지 엘리트층 재구성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벤 알리 정권 당시의 총리, 장관, 의원, 도지사, 대사, 특별보좌관 등 50여 명의 구(舊)정권 인사들을 대상으로 심층적인 전기적 면접을 실시했다. 그 결과, 진실존엄위원회(TDC)가 주도하는 ‘전환기 정의’의 절차가 역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한편, 위원회가 진행하는 공청회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구 정권의 한 의원은 공청회가 튀니스 북쪽에 위치한 시디부사이드에서 열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청회 과정이 시디부사이드 연극 축제나 다름없다”고 비꼬기도 했다.(1)


“그런 일은 없었어, 있었지만 당신 생각과 달라, 
그런 일은 있었고 당신 생각도 맞지만 나는 상관없어”

각종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는 이들의 부정적인 태도는 실상 공청회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소수의 튀니지인 사이에 깊게 뿌리내린 다양한 측면의 부인(否認)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은 부인 행위에는 크게 세 가지 수사적 형태가 있다고 규정했는데, 실제로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세 가지 부인 행위를 찾아볼 수 있었다.(2) 우선 첫 번째는 문자적 부인(“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이고, 다음 두 번째는 해석적 부인(“그런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당신의 생각과는 다르다”)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함축적 부인(“그런 일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고 당신의 생각과도 일치하지만,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이다.

먼저,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문자적 부인’의 양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 정권에서 자행된 고문에 대해 한 전 총리는 “그에 관해 들어본 적은 있으나, 너무 과장된 내용이라 거의 믿지 않았다”며 자신은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경우에는 관련 문제를 다룬 국제앰네스티의 보고서도 자연히 편파적이고 공격적인 보고서라는 비판을 받게 되며, 보고서를 발표한 이들 역시 ‘외부세력’으로 치부된다. 또한 권력층 내 책임 범위에 선을 그어 상부로 정보가 제대로 보고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전 총리 역시 경찰 관행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단언했고, 내무부 내의 불투명성을 강조하면서 내무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대통령의 개인 권력뿐이었다고 설명했다. 폐쇄적 사회 내 범람하는 ‘풍문’들이 정보의 질을 훼손하고 불법 행위의 규모를 축소시켰다고 보기도 한다. 모하메드 간누치 전 총리(1992~2011)의 내각에 속했던 한 인사는 “나는 그 정도의 규모일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전혀, 전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는 바가 없다는 주장은 범죄행위들을 상대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피해자들이 과장한 것이겠는가. 벤 알리 정권의 집권당이었던 입헌민주연합(RCD, 현재 해산됨)의 한 임원은 TV공청회를 본 후 “수감자 앞에서 배우자를 성폭행했다는 증언은 납득할 수 없다”며 유대인 출신 반정부 인사 질베르 나카슈의 증언에 대해서도 “유대인은 성스러운 이들이기 때문에 튀니지에서는 이들에게 손도 댈 수 없다. 따라서 ‘유대인에게 손을 댔다’(원문 그대로 인용)는 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한 피상적 접근은 결국 복합적 형태의 ‘해석적 부인’으로 이어진다. 이는 드러내놓고 범죄사실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닌,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경우다. 한 전 장관이 “(튀니지 경찰이) 고문을 배운 것은 식민시대의 방식을 통해서였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인터뷰 대상자 중 1991년 1월 이후 지속적 탄압의 표적이 돼온 이슬람주의 정당 엔나흐다의 조직원들에게 고문이 자행된 사실에 대해 명백하게 옹호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지만,(3) 이슬람주의의 위협이 인권침해적인 탄압정책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보는 이들은 많았다. 누군가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고, “민주주의라는 훌륭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먼저 주위의 잡초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대상자들은 각자의 이력에 맞춘 ‘함축적 부인’을 통해 자신들의 책임을 상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구 정권의 행정부 내에서 아예 직위를 맡지 않았던 이들이나 비교적 힘이 약한 부처를 담당했던 이들은 자신들이 그 어떤 책임에 대해서도 결백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다. 책임자 중의 책임자, 즉 내무부 내 핵심 인사들도 벤 알리 전 대통령 하에서는 내무장관조차 비서실장 이상의 자율적 결정권을 얻지 못했으며, 국가안보분야 역시 대통령의 관할이었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구 정권의 부정적인 측면, 나아가 구 정권의 범죄행위에 대해 명백하게 시인하고 여러 잔혹행위를 암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지만, 이는 자신들에게 그것을 막을 만한 근본적인 힘이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구 정권 당시에도 내부적 비판을 지속해왔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과거를 영웅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범죄는 부정하고, 
성과는 자화자찬하는 엘리트들

과거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인터뷰이들 중 구 정권의 범죄행위에 직접 가담했을 법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다만 그들은 자기 확신은 강하고 자아비판적 성향은 약한 엘리트층의 사회적, 문화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혁명 이후 벤 알리 정권에 대한 튀니지 국내반응은 부정적인 입장이 지배적이지만, 엘리트층(고위관료, 특권기업가, 과거 정치인사 등)이나 혁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느끼는 일부 사회특권층의 경우는  다르다. 

과거에 대한 이들의 태도 중 놀라운 점은 구 정권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튀니지의 발전모델에 대한 엄중한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벤 알리 정권의 ‘경제적 성공’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4) 또한 경찰의 횡포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을지라도, 구 정권이 국가질서에 중점을 두고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등 명백한 성과를 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특히 정권이 붕괴된 2011년 이후부터 국가경제와 안보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만큼, 이들은 그 주장을 더욱 실질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이들은 정권의 ‘성과’에 대한 집단적 부모의식을 주장한다. 독립 이후 튀니지의 정치적, 행정적 인물들에 대한 예찬이 마치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악곡의 반복적인 주제선율)처럼 되풀이된다. 국가의 엘리트층이 과분할 만큼의 자격과 능력을 갖췄으며 공공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있다는 자화자찬은 실제로 혁명 이후 공공부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수사학적 태도다. ‘우리’를 강조하는 이들의 논지는 자신들이 지닌 기술 관료로서의 측면을 강조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한 전 장관은 “나는 기술 관료로서 가장 큰 정부부처를 담당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과거 자신의 개인이력을 ‘국가의 관료로 일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권력의 핵심부였던 지도층의 지위를 ‘공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체제 인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과거 부인은 튀니지 내 수많은 사회적 엘리트층 인사들에게서도 동일하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공청회를 속행하고 나아가 과거 인사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최소한 패를 다시 섞을 수는 있겠지만, 현재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과거부인 행위들은 특히 진실존엄위원회에겐 상당한 장애물이다. ‘구 인사들’은 정계에 재편입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전환기 정의 실현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고, 붕괴된 구 정권을 재평가하면서 역사의 기록에 압력을 가하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의 실현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과거 범죄행위의 진상을 밝히려는 이들에게는, 넘어야 할 거대한 과제가 남아있는 셈이다.  


글·제롬 외르토 Jérôme Heurtaux
현대마그레브연구소(IMRC) 소속 연구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파괴적 혁신>등이 있다.


(1) 이 공청회는 벤 알리 전 대통령의 부인인 레일라 벤 알리가 소유했던 시디부사이드의 ‘클럽 엘리사’에서 진행됐다. 지난 2월, 튀니지 법원은 궐석재판을 통해 이 장소와 얽힌 부정부패 문제를 토대로 벤 알리 부부에게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한 바 있다.
(2) Stanley Cohen, States of Denial. Knowing About Atrocities and Suffering, Polity Press, Cambridge, 2001.
(3) 1991년 2월 18일, 튀니스 도심에 위치한 집권당 당사 방화사건 이후 이들에 대한 억압은 확대됐다.
(4) cf. Béatrice Hibou, La Force de l’obéissance. Economie politique de la répression en Tunisie(복종의 힘: 튀니지 내 억압의 정치경제), La Découverte, Paris,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