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사프리크’의 재구성

2017-04-28     올리비에 피오 | 기자

지난 수십 년 동안 프랑스 정부의 지원 하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평탄하게 세력을 넓히던 프랑스 기업들은 오늘날 중국, 인도, 터키와 경쟁하게 됐다. 이에 따라 프랑스 기업들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국가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과감하게 개척 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과연 프랑스는 ‘오랜 친구’였던 독재정권들과의 은밀한 결탁을 완전히 끊어버렸을까?


2012년 가을, 프랑코포니 정상회담이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에서 개최됐다. 당시 막 대통령이 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일부 아프리카 정상들, 특히 정상회담 주빈국인 콩고의 대통령 조제프 카빌라와 유난히 거리를 두는 듯했다. 민주주의적 원칙을 무시하는 정상들에게는 어떤 호의도 보이지 않겠다는 암묵적 표현이었다. 대선운동 기간 동안 올랑드 대통령은 “평등, 신뢰, 연대에 기초한 관계”를 제안하면서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 프랑스-아프리카 간의 은밀한 관계)를 끊겠다”고 약속했었다. 

한 번도 지켜지지 않은 ‘단절’의 약속

2017년 1월 대통령 임기 말에 바마코에서 열린 아프리카-프랑스 정상 회담에 참석한 올랑드 대통령은 60여 명의 아프리카 대표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은 그 자리에 없었다. 올랑드 대통령과 함께 바마코를 방문한 피에르 가타즈 프랑스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아프리카 시장 개척을 위해 동행한 60여 명의 기업인들의 안내를 맡았다.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은 사헬을, 전진당(En marche!)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알제리를 방문했고, 국민전선(FN)의 마린 르 펜은 1차 투표 전에 아프리카 대륙을 언급했다. 몇 개월 전부터 이어진 프랑스 대선 주자들과 아프리카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는 프랑사프리크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다. 사실 1970년대 말부터 프랑스의 모든 대통령들은 말로만 프랑사프리크의 단절을 외쳤을 뿐 실천에 옮긴 적은 없었다.

1955년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었던 ‘프랑스-아프리카’라는 표현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프랑사프리크’라는 줄임말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러나 1998년에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랑수아-자비에 베르샤브가 자신의 저서에서 이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서 처음 사용했고, 이것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1) 특히 경제 분야에서 프랑스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고받는 은밀한 거래를 일컫는 이 표현은, 남남협력이 활성화되고 중국의 아프리카 시장 공략이 본격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2005년에서 2015년 사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프랑스의 시장 점유율은 7%에서 4%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반면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8%에서 22%로 껑충 뛰어올랐다.(2) 2008년 이후 프랑스는 아프리카 프랑화 지역의 최대무역국 자리를 빼앗겼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가 차지하는 무역 비중은 1985년 34%였던 것이 2005년에는 23.2%로 감소했고, 2015년에는 11.4%에 그쳤다.(3)

수입(2015년 98억 유로)과 수출(123억 유로) 모두에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남미와 함께 프랑스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다. 투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4)와 ‘아프리카 경제전망’ 연간보고서(5)에 의하면, 아프리카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000년에서 2015년 사이, 연간 92억 달러에서 600억 달러로 증가해(2015년 전 세계에서 이뤄진 FDI는 1조 4천억 달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FDI에 있어서 프랑스는 상위권에 속하지 못했다. 프랑스는 2013년 FDI 유량(Flow) 20억 달러로 영국과 미국, 심지어 이탈리아에도 밀려 (그나마) 4위에 머물렀다. FDI 저량(Stock)은 2010년까지는 1위였으나, 2012년 580억 달러로 3위로 밀려났다. 1위와 2위는 미국(610억 달러)과 영국(590억 달러)이 각각 차지했다.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과 안정적인 세력권을 형성하던 프랑스는 오늘날 중국, 인도, 터키, 모로코라는 경쟁자들과 맞닥뜨렸다.(6) 그러나 현 상황을, 이 국가들의 선전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2000년부터 아프리카 40여 개 나라에 20억 달러를 투자해온 ‘Emerging Capital Partners’의 공동 CEO인 뱅상 르 게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00년대 중반, 일부 프랑스 그룹들은 아프리카 자산을 매각하고 중국, 인도, 남미와 같은 신흥시장들에 대한 투자를 늘렸습니다. 당시에는 아프리카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아프리카는 기록적인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프랑스 투자자들이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기업들의 부진은 상대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프랑스 그룹 자회사들의 아프리카 내 실적과 자본 투자는 프랑스 아프리카투자자협의회(CIAN)의 통계에 포함되지 않고, 외국인직접투자(Inward FDI)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2010년대 초부터 많은 프랑스 기업들이 예전에는 거의, 또는 아예 진출하지 않았던 영미권과 포르투갈어권 아프리카 국가들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국고가 분석한 통계에는 마그레브와 이집트를 제외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지역만이 고려된다. 오늘날 프랑스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적인 지역들(프랑화 지역, 프랑스어권 국가) 외의 지역들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2000년부터 아프리카 시장은 해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CIAN의 위임 회장이자 볼로레(Bolloré) 그룹의 아프리카 총괄직을 지낸 에티엔 지로는 말한다. “또한 시장점유율로는 프랑스가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프랑스와 아프리카 간의 무역량과 FDI는 절대적인 액수로 보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FDI의 효과는 사실 FDI의 수혜국 입장에서도 상대적이다. FDI는 해외기업들로부터 받는 원조와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투자다. 유입되는 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본국으로 보내지는 수익’도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수혜국의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FDI 투자금이 주변국들로 흘러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오랑주를 비롯한 프랑스 기업들의 역습

새로운 프랑스 팽창주의의 주역들은 다음과 같다. JC 데코(JC Decaux)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Continental Outdoor Media를 인수했고, 다논(Danone)은 가나의 Fan Milf, 케냐의 Brookside Dairy 지분을 매입하고 2015년 ‘아프리카 부서’를 신설했으며, 악사(Axa)는 나이지리아의 보험회사 ‘Mansard’를 인수했다. 라파르주(Lafarge)는 동부 및 남부 아프리카에 투자를 했고, 까르푸(Carrefour)는 케냐와 코트디부아르에 대형 슈퍼마켓을 개점했으며, 로레알(L'Oréal)은 미국에 있던 흑인 피부·모발 연구소를 요하네스버그로 옮겼다. 토탈(Total) 역시 2014년 앙골라에 해상유전개발회사 CLOV FPSO를 세웠고, 아프리카 포르투갈어권의 강대국인 모잠비크에도 진출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익숙한 볼로레(Bolloré), 부이그(Bouygues), 토탈(Total), 빈치(Vinci), 라파르주(Lafarge), 아레바(Areva)와 같은 기업들 뿐 아니라 새로운 기업들도 아프리카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랑주(Orange), 아코르 호텔(Accor Hô̂tels), 베올리아(Veolia), 까르푸(Carrefour) 등이 그것이다. 중산층의 증가(잠재 소비자 1억 5천만~3억 명)(7)와 도시화의 가속화(연간 4%)는 신규 수요를 만들어내고, 높은 수익성이 보장된 ‘니치 마켓’, 즉 도시 서비스(건설, 교통, 하수처리, 쓰레기 처리, 전력 생산), 휴대폰, 전자상거래, 명품(샴페인, 화장품 등) 시장의 성장을 촉진한다. 2017년 1월 CIAN의 연간 보고서에는 “역동성과 혁신의 새로운 중심지” 아프리카 도시에 대한 투자를 권유하는 내용이 실렸다. 프랑스의 경우 자동차 분야의 인기는 떨어졌지만 그 공백을 항만(볼로레), 재생에너지 등 다른 분야들이 채우고 있다.
프랑스의 이동통신업체 오랑주(Orange)의 약진이 그 예다. 오랑주 그룹은 1959년부터 아프리카에 서비스를 제공해온 PTT(Postes et télécommunications)의 ‘오래된 자회사’임을 강조한다. 프랑스 대기업 오랑주의 아프리카 탐험은 회사명이 프랑스 텔레콤(France Télécom)이던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1997년 코트디부아르와 세네갈에 진출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들인 오랑주는 2010년부터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 오랑주 그룹은 아프리카에서 1억 1천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고(2004년 640만 명) 매출액은 50억 유로에 이른다(2004년 15억 유로). 또한, 직접고용 노동자 수는 2만 1천 명, 선불카드 판매자(다른 이동통신업체와 공동고용)는 70만 명에 달한다. 이런 오랑주의 행보는 아프리카에 진출한 프랑스 기업들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현재 아프리카 21개국에서 활동 중인 오랑주는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과 전통적인 분야들(에너지, 농업 등)의 ‘디지털화 과정’에 주목하면서 “아프리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리더가 되겠다”는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10년 간 아프리카 내 프랑스 기업들의 활동 양상은 국가, 지역, 그리고 분야 면에서도 급격하게 변화했다. 프랑스 세력권의 중심지이자 아프리카 최고의 경제성장률(2012년 이후 연평균 8.5%)을 자랑하는 코트디부아르에서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중국은 댐을, 터키는 교통수단을, 한국은 발전소를 건설했다. 그리고 모로코는 금융서비스와 부동산 시장을 장악했다. 심지어 독일까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아프리카 플랜’을 앞세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태다. 그 결과 프랑스의 코트디부아르 시장점유율은 1995년과 2010년 사이에 28%에서 11%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11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의 측근인 알라산 드라만 와타라가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프랑스 기업들은 반격의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금융(BNP Paribas, Société générale, Axa, Allianz France), 정유(Total), 보험(Axa), 전기 및 물(ECP), 건설(Bouygues, Fayat, Vinci, Veolia), 산업(Air liquide), 농업 및 기타(Castel, Michelin, Compagnie fruitière, Bel, Danone), 교통(Bolloré, Egis, Air France), 호텔(Accor), 유통(Carrefour, CFAO), 이동통신 및 시청각(Orange, Bolloré)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로 이뤄진 프랑스 부대의 공격이 시작됐다. 프랑스의 FDI 저량은 26억 유로로 코트디부아르 전체 FDI 저량인 70억 유로의 39%를 차지하며, 덕분에 프랑스는 2015년 이후 계속해서 코트디부아르의 최대 투자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약 700여 개의 프랑스 기업들이 코트디부아르에 진출해 있다(자회사 200여 개 포함). 프랑스 국고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 국가 수입의 50% 가량이 프랑스 기업들의 세금, 부가가치세, 공공서비스 사용료, 법인세 납부 등을 통해 채워진다고 한다. 프랑스 기업들의 누적 매출액은 코트디부아르 GDP의 30%에 달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에 재투자를 결정한 프랑스 기업들의 경영방식은 과연 바뀌었을까? 몇몇 경영인들에 의하면 특별대우나 클리엔텔리즘, 은밀한 자금지원 등이 공공연하게 이뤄졌었던 과거의 프랑사프리크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아프리카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수도들이 ‘경제 파트너의 다양화’를 외치면서 이런 변화는 더욱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나이지리아, 케냐, 가봉, 모로코 등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어제의 ‘친구’ 프랑스와 아시아 및 남미 강대국들을 경쟁시킴으로서 자신들이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8) 

“이제는 프랑스가 아프리카의 유일한 교역국도, 파트너도 아니라는 사실은 사업에 있어서 많은 부분들을 바꿔 놓았습니다.” 지로는 이렇게 인정하고, 오랑주의 아프리카 및 중동 사업부 부사장인 브뤼네 메틀링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프랑스와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이 역사의 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공통된 역사를 빌미로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이어, 게누가 다음과 같이 상황을 정리했다. “오늘날, 프랑스 기업이라는 것이 아프리카에서 불리한 조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꼭 유리한 조건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특혜나 특권을 받을 만한 부분도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 간의 관계 변화는 때로는 구조적인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프랑화 지역’은 아프리카 14개국의 프랑스에 대한 의존성을 지속시키고 있다. 프랑화 지역에서는 세파프랑(franc CFA)이 통화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유로화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14개 회원국들이 프랑스 은행 측에 준비통화의 일부를 납부하게 하는, 일종의 아프리카통화 보호제도다. 세파프랑에 반대하는 아프리카의 경제학자들은 2017년 1월 7일과 2월 11일에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들은 세파프랑을 프랑스가 강제한 ‘제재’이며 아프리카 성장의 장애물이라는 주장을 펼쳤다.(9)

농업 분야의 경우, 2000년 EU와 ACP(아프리카, 카리브해, 태평양지역) 국가들 간에 체결된 코토누 협정에 따라 프랑스는 경제협력협정(EPA)에 서명했다.(10) 이는 1970년대에 ACP 국가들과 EC(유럽공동체)가 체결한 로메협정의 후속으로, 2035년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럽으로부터 수입하는 물품들에 부과되는 관세를 약 80%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세네갈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는 EPA가 ‘경제 죽이기 협정’이라고 주장하는 ‘EPA 반대’ 시위가 열렸다. 한편, 나폴레옹 법전(Napoleonic Code)을 바탕으로 작성됐고 2008년 비즈니스 세계의 새로운 니즈에 맞추어 수정된 아프리카비즈니스사법조화기구(OHADA, 1993년 창설, 17개 회원국)의 법적 기준에 의하면,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기업인들은 항상 동일한 법률용어(Legal language)를 사용해야 한다.

‘프랑사프리크’는 
단절이 아닌 진화를 겪고 있다

프랑스 기업들은 더 이상 아프리카 시장으로의 ‘자동’ 접근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게 됐지만 여전히 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프랑사프리크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 중이다. 프랑수아 미테랑의 임기가 끝난 뒤(1981~1995) 엘리제궁의 ‘아프리카 부서’는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역사의 영향을 덜 받은 젊은 고문관들을 영입했고, ‘실용주의’의 색채가 짙어졌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프리카와 관련된 주요 현안들을 빠짐없이 숙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부와 민간 출신의 전문가들이 골고루 모인 집단이라는 본래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됐다.

엘리제궁에서 열린 프랑스 및 아프리카 수장들의 정상회담에서 2013년 만들어진 ‘아프리카프랑스 재단(fondation Africafrance)’은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및 아프리카 기업들 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동반성장을 위해서’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재단은 프랑스 기업들이 아프리카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15년에는 일부 대형 계약의 자금조달비용을 낮추기 위해 수출은행을 만들기도 했다. 2016년 4월에 가타즈가 설명했듯, 오늘날 프랑스 기업들이 경쟁 투자자들에게 맞서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럿이 힘을 모아 사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네트워크 외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민간 주체들, 즉 투자회사, 스타트업, 자문관, 전문 사무소,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 등으로 이뤄진 네트워크들도 많이 생겨났다. 또한 아프리카 진출 1세대들은 대부분 엔지니어들과 기업인들이었는데, 최근에는 프랑스 출신의 유명 변호사들도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프랑수아 메이어, 피에르 아익, 장-폴 브누아, 에릭 뒤퐁-모레티, 피에르-올리비에 쉬르, 장-피에르 베르시니 캉팽쉬는 현재 아프리카의 재계와 정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 됐다.

세법 전문가인 클로드 뒤몽 베기는 가봉 대통령궁의 전속 변호사로서 2013년부터 알리 봉고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에어 가봉에서 오랫동안 자문관으로 일했던 베기는 2000년대 초 샤를 드골 공항의 도로에 서있던 에어 가봉의 보잉 747을 급습해 체불됐던 변호사 수임료를 받아내기도 했다.(11) 프랑스에서 장관직을 지낸 후 현재 아프리카의 로비스트로 활동 중인 이들도 여러 명 있다. 장-루이 보를루(아프리카를 위한 에너지 재단 설립자), 제라르 롱게(Sea Invest 자문관), 미쉘 루생(볼로레 그룹 경영진에 오랫동안 참여), 피에르-앙드레 윌체르(Necotrans 자문관), 도미니크 페르벵(부이그 그룹 자회사인 Colas 자문관), 에르베 드 샤레트와 장-마리 보켈이 여기에 속한다. 베냉 출신의 프랑스 사업가로 2015~2016년 베냉의 총리직을 지냈던 리오넬 진수도 있다.

이처럼 과거 ‘아프리카통(通)’(12)으로 불렸던 이들은 현재 풍족하고 평온한 은퇴 후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영향 네트워크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프랑사프리크도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한 프랑스 기업의 수가 최대치에 이른 현 상황(2015년 4만개)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5년 말 토탈, 카스텔(Castel), 오랑주, 라파르주, 빈치, 부이그, 테크닙(Technip) 등 프랑스의 14개 다국적 기업들은 아프리카의 top70 기업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매출액 순서대로 나열한 것). 이 대기업들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프랑사프리크의 흔적들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 대사관의 전 자문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은 모두 각각 인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기업들에게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국가들과 그 세력권은 이미 옛날 이야기입니다. 자원을 개발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전략지정학자, 형법학자, 세법 전문가, 법률가들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은 이 다국적 기업들은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최근 토탈 그룹에 관한 책을 내놓은 몬트리올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 알랭 드노는 프랑스의 거대 정유회사 토탈이 사용한 ‘법의 타락’ 메커니즘을 면밀하게 분석한다.(13) 토탈의 무기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알랭 드노 교수는 “원유 가격의 동결과 시장 나눠먹기, 인종차별주의적 정부와의 결탁, 독재자와 정치인들의 부패, 군사적 개입을 통한 영토 정복, 조세천국으로의 자금 은닉, 인류 건강을 위협할 수준의 광범위한 오염 야기 등이다”라고 대답한다.

볼로레 그룹도 아프리카에 진출해 선전하고 있는 프랑스 기업들 중 하나다.(14) 아프리카 46개국에 250개의 자회사와 2만 5천 명의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는 ‘Bolloré Africa Logistics’는, 아프리카에 진출한 지 30년도 되지 않아 아프리카 최대의 물류 통합 네트워크 업체이자, 항만운송 분야의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볼로레 그룹은 몇몇 국가들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카메룬에서는 볼로레 그룹의 영토 독점 의혹을 제기한 바스타마그 사이트(www.bastamag.net)를 대상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2011년에 기니는 볼로레 그룹에게 갑작스럽게 코나크리 항구의 경영 일부를 맡겼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 이후, 기니 정부는 2015년부터 차량, 트럭, 광산개발장비 등을 운반하는 ‘로-로(Ro-Ro)’ 선들은 모두 볼로레 그룹이 관리하는 터미널에서 하역하도록 했다. 프랑스 출신의 기업인으로 몇 개의 회사(Getma Guinée, AMA Guinée)를 경영하고 있던 장-자크 그르니에가 당시 네덜란드 대통령의 아프리카 고문관이었던 엘렌 르 갈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항만 서비스의 독점을 통해 과도한 항만이용비를 취하려는 이 행동 때문에, 아프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이 독점 시스템을 지향하는 프랑스 기업들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됐습니다.”(15)   


글·올리비에 피오 Olivier Pio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François-Xavier Verschave, La Françafrique. Le plus long scandale de la République(프랑사프리카,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스캔들), Stock, 파리, 1998년
(2) <Les entreprises françaises et l’Afrique(프랑스 기업들과 아프리카)>, 프랑스 아프리카투자자협의회(CIAN) 연간 보고서, 파리, 2017년
(3) <Les échanges commerciaux de la France avec l’Afrique subsaharienne en 2015(2015년 프랑스와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간의 무역)>, Direction générale du Trésor(프랑스 국고 총국), 파리, 2016년 4월
(4) <Rapport 2016 sur l’investissement dans le monde(전세계 투자에 관한 2016년 보고서)>,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 컨퍼런스, 제네바, 2015년 12월
(5) 아프리카개발은행(AD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센터, 유엔개발계획(UNDP)의 2014년, 2015년, 2016년 연간 보고서 
(6) 안세실 로베르, ‘Trafic d’influences en Afrique(아프리카에서의 권력 남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월호
(7) 2016년 6월 보스톤 컨설팅 그룹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아프리카 소비자의 수는 2020년 11억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8) Cf. Antoine Glaser, AfricaFrance. Quand les dirigeants africains deviennent les maîtres du jeu(아프리카프랑스. 아프리카 국가수반들이 게임 마스터가 될 때), Fayard, 파리, 2014년
(9) 사누 음바예, ‘혼란에 빠진 아프리카의 프랑화 사용국가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4년 12월호
(10) Cf. Jacques Berthelot, ‘Accords de partenariats économiques: Le jeu des multinationales’(경제협력협정: 대기업들 간의 게임)>, Billets d’Afrique, n° 260, Survie, 파리, 2016년 9월
(11) Cf. <Les dix avocats qui défendent-et confessent!-les présidents africains(아프리카 대통령들을 옹호하고 이들의 죄를 알리는 10명의 변호사들)>, La Lettre du continent, 파리, 2016년 7월 5일, www.africaintelligence.fr
(12) Cf. Antoine Glaser & Stephen J. Smith, Ces messieurs Afrique. Le Paris-Village du continent noir(아프리카의 신사들, 아프리카 대륙의 파리), Calmann-Lévy, 파리, 1994년
(13) 알랭 드노, De quoi Total est-il la somme? Multinationales et perversion du droit(토탈의 정체는 무엇인가? 다국적기업들과 법의 타락), Rue de l’Échiquier, 파리, 2017년
(14) 토마 델통브, ‘아프리카 황제 행세하는 프랑스 기업의 일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09년 5월호
(15) La Lettre du continent에서 인용, 2015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