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가 부추기는 공포의 이민담론

2017-04-28     브누아 브레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서로 대립시키려는 보수파의 전략은 수많은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이민을 중대한 문제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은 우파에는 행운이겠지만, 좌파에는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지뢰밭 위를 걷게 만들었다.

이민문제로 대선의 주요후보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이민 거부를 무기로 삼는 진영과, 이민이란 주제를 당혹스러워하는 진영이다. 말이 많은 첫 번째 부류들은, 실업에서 테러까지, 공공 재정 위기에서 주택 부족까지, 불안전한 치안에서 몇몇 학급의 과다인원까지, 모든 종류의 문제를 외국인 탓으로 돌렸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책으로 첫 번째 부류 후보들은 급진적 조치들을 권장했다. 국민전선(FN)의 마린 르 펜은 속지주의의 폐기, 솅겐조약(유럽연합 회원국들 간에 체결된 국경개방조약-역주)에서의 탈퇴, 프랑스인 우선주의 수립, 불법적 상황에 처한 외국인 추방의 체계화를 주장한다. 우파인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은 가족재결합 원칙들을 엄격히 강화하고, 프랑스에 들어온 지 2년이 넘어야 사회보조금을 지급받게 하고, 이민자들의 국가의료지원혜택을 폐기하거나 출신국가별로 이민자들의 연간 쿼터제를 의회에서 통과시킬 것을 약속했다. 출신국가별 연간 이민쿼터정책 제정은 1945년 11월 2일 법령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원칙들과 어긋난다. 이 법령은 외국인들의 동화 능력이 그들의 출신 국가가 아닌, 개인적 특성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공약 경쟁에 직면해, 당혹해하는 후보들의 진영은 모호하고 때로는 일관성 없는 제안들을 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신교도 주간지 <레포름(Réformes)>과의 인터뷰에서 중도 ‘전진당(En Marche)’ 후보 엠마뉘엘 마크롱은 “이민은 경제적·문화적·사회적 관점에서 하나의 기회로 볼 수 있다”라고 선언했다.(1) 그런데 이 노선은 그의 대선 후보 정강에 들어있지 않다. 그는, 특히 우파가 폐기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엄격히 관리하겠다고 약속한 보호권(droit d’aile)을 상기시키며, 보호권 각하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원래의 출신국가들로 “지체 없이 송환할 것”을 예고하면서도, 이민과 연관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냥 방치하고 있다. 

장 뤽 멜랑숑과 브누아 아몽은 더 이상 명백한 태도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좌파전선 후보 멜랑숑은, 기후난민과 정치난민의 경우에만 한정해, “이민의 원인들을 없애기 위해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당 후보인 아몽은, 프랑스가 난민들에게 더 이상 연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을 유감스러워하면서 마뉘엘 발스 정부의 이민정책을 자주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로그램은 발스의 노선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다시 말해 유럽공동체 회원국 출신이 아닌 외국인들에게 지역선거에서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결코 지켜지지 않았던 사회당의 한결같은 약속을 하는 것 외에는, 그 윤곽이나 부여 방법이 결정되지 않은 ‘인도주의 비자’의 창설을 제안하는데 그치고 있다. 우파 담론의 핵심에 있는 경제적 이민자들과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이런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에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까지, 영국의 ‘브렉시트’ 옹호자들에서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까지, 스위스의 중도민주연합(UDC)에서 벨기에의 ‘새플러미시 연대(N-VA)’까지, 프랑스의 국민전선에서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is)’까지, 대부분의 서구국가에서 외국인의 이민에 반대하는 정당들과 그 지도자들은 몇 년 전부터 순풍을 받고 있다. 이들 모두가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서민 유권자들 덕택이다. 프랑스에서는 FN이 ‘불안정한 지역들’을 사로잡고 있는데,(2) 이 지역들에는 저학력 청년들이 많고 실업율과 빈곤율이 매우 높다. 영국에서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주로 세계화와 탈공업화에 의해 심각하게 충격을 받은 지역들에 살고있고,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하고 역동적인 대도시에 살고 있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대규모 이민’에 대해 반대의사를 드러냈던 2014년 2월의 스위스 국민투표 역시 시골과 도시 사이의 간극을 보여줬다. 트럼프는, 동부와 서부 해안의 상류층들과 소수자들에 에게 배척받았지만, 백인 서민 계층에서 승리했다.

이민에 대해 너무 우호적인 프로그램 때문에 서민 유권자들을 언짢게 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멜랑숑을 사로잡았던 듯하다. 이전 대통령 선거에서 멜랑숑은 명시적으로 거주의 자유를 옹호하자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모든 개방조치들의 목록을 가지고 출마했다. 10년짜리 단수 체류증 복원, 2002년 이후 우파가 통과시킨 모든 법률의 폐기, 신분증 없는 사람들의 합법화, 불법 외국인 센터들의 폐쇄, 불법체류에 대한 불기소 처분 등이 그 목록에 들어 있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그의 강령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단언돼 있다.

“이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 혐오, 이주민 색출 작업이 우리 공화국을 훼손한다. 우리가 이런 행위들을 그만 둬야 한다. 전 세계에서 이주의 물결이 증가하고 있다. 거기에는 다양한 동기들이 뒤섞여 있다. 프랑스는 이주의 물결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주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인적·물적 기여도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2017년 노선이 바뀌었다. 멜랑숑은 더 이상 외국인들을 환대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주하는 것은 항상 떠나는 사람에게 고통이다. 최우선적인 일은 각자 자기 집에서 살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새 강령의 59번째 항목이 설명한다. 그러기 위해 후보자는 다름 아닌 “지역 경제를 파괴하는 무역 협정과 전쟁을 멈출 것을, 그리고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울 것”을 제안한다. 이런 기본강령의 변화가 진보진영을 분열시켰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국경개방을 옹호하는데, 멜량숑은 현재 국경개방에 반대하고 있다.(3) ‘반자본주의 신당’(NPA)의 저명인사 올리비에 브장스노(Olivier Besancenot)는 “주권주의, 국경, 국가라는 이념을 더 공고히 하려는 일부 급진좌파”를 규탄한다. 반면에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을 지지하는 유럽 녹색당 대변인 쥘리엥 베이우(Julien Bayou)는 좌파전선 후보 멜랑숑이 “FN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고 비난한다.
모두 공통적으로 난민과 경제 이주민 사이의 구분을 거부하는 ‘이주민 정보·지지 그룹’(Gisti), ‘유럽이민단체’(Migreurop), ‘국경 없는 교육네트워크’ 혹은 기독교 단체들인 ‘시마드’(Cimade), ‘가톨릭 구호 단체’(Secours Catholique)들과 같은 수많은 행동파 단체들과 ‘반자본주의 신당’이 옹호하는 자유이동이라는 대의명분은 폐쇄정책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경험을 근거로 삼고 있다. 유럽연합국경관리청(Frontex), 국경통제, 터키 혹은 튀니지와의 하청협정 등 그 어느 것도 이주민들이 유럽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로 인해 이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불법노동자가 되고, 특히 이주민들이 모든 종류의 착취에 대해 저항할 수 없게 된다. 거주의 자유는 외국인들에게 합법적으로 최고의 노동조건을 요구하게 허락해 줄 것이고, 결과적으로 외국인들에게 급여감축 압력을 넣을 수 없게 할 것이다. NPA는 자신들의 논거를 보완하기 위해 이민이 가져다주는 ‘경제적으로 유익한’ 특성을 내세운다.(4) 비록 혁명적인 당의 입장에서는 그 논거가 놀랍지만, 수많은 연구들은 사실상 이민이 국가나 기업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학자들인 자비에 쇼이닉키와 리오넬 로고가 연구를 수행하고, 일간지 <레제코(Les Echos)>와 2012년 공동으로 출간한 연구서에 의하면, 이민자들이 확실히 긍정적으로 예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부분 젊고 건강한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사회적 급부보다 더 많은 세금과 분담금을 지불하고 있다.(5)

<피가로> 경제 코너의 찬양을 받은 보고서에서, 맥킨지 연구소는 “이민자들이 전 세계 부의 거의 10%를 생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특히 외국인 노동력이 기업들에게 매우 큰 혜택을 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평가했다. 월간지 <캐피탈>은 2015년 3월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주민 노동자들의 첫 번째 장점은 유연성이다. 두 번째 장점은 힘든 업무를 잘 참아낸다는 것이며, 세 번째 장점은 현지인들이 경멸하는 일들을 주저하지 않고 해낸다는 점이다. 이주민 노동자들의 이런 장점들을 흡족스러워하는 1차 기업들은 청소업체들이다. 사무실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데 프랑스어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 뿌리 깊게 불평등한 만큼 이민은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국경개방을 혁명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주의 착취를 지지하지 않는다. 거주의 자유에 대한 이들의 구상은 민족국가들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런 세계를 위해 기획된 것이다. 이런 전망은 갈등관계에 있는 현 상태를 무시하고 있다. “저항과 국제적 연대감에 의해 배양된 새로운 인식이 국경의 이쪽저쪽에서 젊은이들, 서민계층들, 피부색깔·언어·국가가 다른 노동자들 간에 형성되고 있다”라고 2016년 10월 NPA의 강령에 예고됐다.(6) 더구나 이런 전망은 절대적 급진성의 수사학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이민자들과 함께하고, 경찰 그리고 국가 및 국가정책에 협력하는 모든 사람들과 의견을 달리한다. 우리는 국가가 부여하길 거부한 것을 소유하고 점령할 권리를 옹호한다.”(7) 이런 수사학은 선거 때 우파를 도와줄 듯하다.

투표에서 사회당을 추월하기를 원하는 멜랑숑은 이제 주저 없이 경제이민을 문제 삼는다. 그는 3월 11일, <프랑스 2>에서 “현재로서는 그러고 싶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난민들을 환대해야 한다는 자신의 마음을 재확인한 후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현재 프랑스에 있으나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이 노동계약서를 갖고 있고, 일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분담금을 내고 있다면, 나는 이들 모두에게 신분증명서를 내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들어보세요.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당신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조국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오늘날 경제이민자들은 매년 프랑스에 도착하는 외국인들 중에서 소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가족재결합 명목으로 입국이 허가된 사람들, 정치적 망명자들, 국제 교환학생들의 수보다 훨씬 적다. 그런데 51년의 제네바 난민 협약이나 가족 재결합과 연관된 1953년의 유럽 인권협약과 같은 몇 개의 국제협정을 재검토하지 않는 한, 대다수를 차지하는 다른 할당 인원들을 줄이기는 어렵다. 멜랑숑도 국제협약들의 재검토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이민의 감소는 이주 흐름에 아주 제한적인 영향만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경제이민의 수를 감소시켜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모든 불법노동자들과 보호권 각하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추방하라는 우파의 주장과 구별되면서도, 방임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지니게 될 것이다. 멜랑숑은 경제이민과 실업 간에 연관성이 있다는 사고를 암묵적으로 퍼뜨리는데, 이런 사고는 역사적으로나 국제적 비교를 통해 살펴봐도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1930년대 초반 프랑스는 일자리 부족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면서 외국인들을 대량 추방했다. 캐나다 같은 국가들은 경제이민자들이 많았지만 실업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노동계약서를 소지한 불법노동자들만을 합법화시켜주는 것은, 바로 신분증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노동을 다시 하게 만들기 때문에, 위태로운 조치가 될 우려가 있다.

출발지 국가의 부의 증대로 이민의 원인을 타파해보려는 계획은 단기적으로 ‘이민의 과도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원칙과 부딪히게 된다. 유아 사망률 감소와 인구의 청년화를 용이하게 해주는 생활수준의 향상, 노동력을 덜어주는 생산성의 증가, 수입의 증가가 주민들의 이민을 막지 못한다. 이런 요인들은 이민을 희망하는 이들의 저수지를 증대시킨다. 즉, 이런 요인들에 의해 이민에 따른 부담을 감당할 사람들이 늘어난다. 세계은행에 의해 만들어진 모델에 의하면, 구매력 평가에 의한 국민들의 연간 수입이 600달러(에티오피아)에서 7,500달러(콜롬비아나 알바니아) 사이에 위치할 때, 수입의 증가는 이민을 촉진한다. 일단 이 한계를 넘어서면 효과가 뒤바뀐다. 수입이 연간 2%씩 성장한다는 전제 하에,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니제르와 부룬디는 130년 이상이, 캄보디아는 6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8)

브장스노는 멜랑숑의 새로운 태도에서 ‘급진좌파로의 회귀’를 보고 있다. 좌파전선 후보자 멜랑숑은 브장스노에게 ‘자신의 운동단체의 전통’ 내에서 운신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어떤 면에서는 두 사람 말이 다 옳다.

19세기 말 대불황이(1873-1896) 프랑스를 강타했을 때, 좌파는 이민에 대해 일관성 있고 통일된 담론을 내놓았다. 좌파는, 외국인 노동력을 고용주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기술하는 이론적인 비판과, 이런 고용주에 대항해 프랑스 노동자들과 이민자들 사이에 동맹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에 대한 실재적 분석을 조합한 담론을 개진했다. “빈곤 때문에 자신들의 국가에서 떠나야 했고, 패거리 두목들에게 지배받고 대부분 착취당했던 벨기에·일·이탈리아·스페인 노동자들은 이민 온 국가의 언어도, 물가도, 관습도 모른 채 고용주가 제시하는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현지 노동자들이 거부하는 임금을 받고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고 1883년 노동당 프로그램에 쥘 게드와 폴 라파르그가 작성했다. 비록 이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야기하는 국가적 위험과 노동자의 빈곤을” 한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국경폐쇄를 주장하지 않았다.

“고용주들의 파렴치하고 반애국주의적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프랑스 노동자들은 외국인들이 경찰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야 하고, 고용주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프랑스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함으로써’ 고용주들의 탐욕으로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9)

이론적이고 실재적인 이 노선이 1910~1920년대 성장기 몇 십 년 동안 그리고 ‘영광의 30년(1945~1975)’ 동안 좌파 주요정당들의 노선이었다. 위기의 시기가 오자 분열이 생겨났다. 실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1930년대 초, 외국인들의 추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져 갔다. 프랑스인 우선주의를 요구하는 청원서들과 편지들이 의원들에게 보내졌다. 1931년 11월 사회주의자 폴 라마디에가 이민을 중지하고 기업 당 외국인 비율을 10%로 제한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다. 그때 공산당 의원인 자크 도리오는 이 법안에 반대한다. 도리오는 ‘외국인 혐오조치들’과 ‘자본에 직면해 노동자들을 분리시킬 목적을 가진 국가주의 정책’을 비난한다. 자기 당을 옹호하기 위해 사회당 리더인 레옹 블룸은 “노동계층의 이익을 가장 잘 배려한 일시적 조치들”이라 하고, “현실의 어려움들과 모순들”을 상기시킨다.(10)

1970년대 발생한 위기로 인해 새로운 내분이 벌어진다. 1981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공산주의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민을 문제 삼는다. <뤼마니테(L’Humanité)> 기자 클로드 카반은 1980년 12월 30일 자 신문에 “구매력 감소, 실업, 치안불안에 기인한 어려움들 때문에 악화된 모든 불균형이 프랑스인들과 이민자들이 함께 사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라고 쓰면서 프랑스 공산당(PCF)이 이끌고 있는 대도시 교외지역들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문화적 문제들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981년 1월 6일, 공산당 서기장 조르주 마르셰가 역사적 사건이 될 담론을 발표한다. “공식적 이민과 불법적 이민을 중지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에 프랑스인들과 이민자들을 합해 거의 200만 명의 실업자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이민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러자 사회주의자들은 예전에 공산주의자들이 택했던 태도를 다시 취한다. “우리는 노동계급 전체에서 이민 온 주민들을 따로 분리해 낼 수 없다. 당원 모두가 인터내셔널리즘과 계급전선의 기본원칙들을 지켜내려고 결집해야 한다.” 이런 노선 주장은 1980년 12월 19일 주간지 <뤼니테(L’Unité)>에 발표된 당 강령에서 확인된다.(11)

멜랑숑과 브장스노는 이처럼 둘 다 진보주의 운동의 전통 속에 속해 있으면서도, 최선의 선택과 최악의 선택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멜랑숑은 이민이 특히 서민계층에게 제기하는 어려움들을 고려해 보려고 하지만, 정원초과와 추방이라는 수사학에 스스로 얽매여 들고 있다. 브장스노는 인터내셔널리즘을 충실히 지키고 있지만, 긴축정책과 세계화로 힘을 잃고, 우파의 희생양 찾기 전략에 쉽게 넘어갈 서민층과 중산층의 바람과는 차이가 나는 이데올로기 해석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결점들은, 이민에 대한 사회적 해석을 통해 ‘서민의 정당’으로 변신해 보려는 FN에게 이용당했다. <주변부 프랑스>의 저자인 지리학자 크리스토프 기이위를 따르고 있는 연대기 작가 에릭 자무르처럼, FN은 본인들과는 상관없는 이민에 호의적인 고학력의  ‘도시 엘리트들’을, 일자리·공공주택·탁아소 자리를 얻기 위해 외국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서민들’과 대립시키고, 이들 서민들에게 ‘프랑스인 우선주의’를 약속한다. “타인과의 관계 문제를 구체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바로 서민 계층인 것이다”라고 크리스토프 기이위는 쓰고 있다.(12)

이 분석은 다양한 뉘앙스를 자아낸다. 고용시장이 아주 확실히 분할돼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을 대규모로 채용하는 영역들은(청소, 건물, 식당) 프랑스 노동자들이 거의 탐을 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도시도 아주 확실히 분할돼 있기 때문에, 거대 도시들의 교외에서 아파트나 탁아소 자리를 얻기 위해서 이민자들은 흔히 또 다른 이민자들과 경쟁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경쟁이 부분적으로는 상상에 의한 것이고, 대중 담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거의 한 명의 외국인도 만날 수 없는 지역들에서 FN이 놀라운 성적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계층이 이민문제를 외부의 막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은 사실이다.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이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 졸업자들이나 기자들의 일자리를 뺏어갈 수는 없다. 파견노동자들이 고위 간부들이나 예술가들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부자동네 주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외국인 노동자 센터가 설립되는 것을 볼 우려는 더욱 없다.

그러나 이민문제와 연관해 계층 간에 사회적 격차가 나는 것을 꼭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격차는 흔히 법률, 도시 정책, 정치적 결정에 의해 생겨난다. 이런 요인들이 프랑스 노동자들과 이민자들을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상위계층들을 외부 경쟁에서 보호해 주고 있다. 불법 노동은 고용조건의 악화에 기여한다. 그런데 불법노동은, 노동 감시가 와해되고 고용주들이 제제를 받을 우려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번성하게 된다. 1996년 12월 16일자 유럽연합지침서가 없었다면 파견노동자가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 경제가 호황이던, 이른바 ‘영광의  30년(1945~1975)’ 시대의 조상들과는 달리, 지금 시대의 수많은 이민자들은 대학 학위와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동시대의 이민자들이 전문성 낮은 일자리를 찾아서 오는 것은, 프랑스어 교육정책 그리고 졸업장에 대한 법적 동등자격 인정 시스템이 부재하고, 몇몇 직업들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13)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면 외국인들이 쉽게 석공이나 점원이 될 수 있고, 또 건축가·공증인·증권 중개인의 직업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대도시 교외의 공산당 시장들은 한때 “공권력이 체계적으로 새로운 이민자들을 자신들의 도시들로 몰아낸다”는 사실을 한탄하면서, “파리 지역의 여러 코뮌에 이민노동자들을 적절하게 배분해 달라”고 요청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행정구역도 계속해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명시했다.(14) 오늘날 이민노동자 센터는 대부분 서민구역에 설치돼 있는데, 이 사실에 대해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우파는 이민문제가 정치토론에 등장할 때마다 즐거워한다. 우파는 공포의 담론과 억압조치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충분했고 현재에도 그렇다. 그러나 좌파가 모호하고 모순된 프로그램들만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명확한 대안 제시와 일관성 있는 분석을 위해 좌파는, 미디어와 ‘시사프로그램’이 좌파의 얼굴에 내던지는 문제들과 부딪혀 싸우면서 이데올로기 전투에 참여해야만 한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고광식
파리 8대학 언어학박사로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르몽드 세계사 3> 등의 역서가 있다.


(1) ‘Migrants, politique migratoire et intégration : le constat d’Emmanuel Macron(이주민들, 이민정책과 통합: 엠마뉘엘 마크롱의 보고서)’, <Réformes>, Paris, 2 mars 2017.
(2) Hervé Le Bras, Le Pari du FN(국민전선의 도박), Autrement, Paris, 2015. 
(3) ‘Je n’ai jamais été pour la liberté d’installation, je ne vais pas commencer aujourd’hui(나는 결코 거주의 자유를 찬성한 적이 없었고, 지금 그것을 시작하려 하지 않는다).’ <르몽드> 2016년 8월 24일 인터뷰.
(4) Denis Godard, ‘Politique migratoire : Y a pas d’arrangement…(이민정책: 정돈이 돼있지 않다’, <L’Anticapitaliste(반자본주의자)>, Montreuil-sous-Bois, 24 novembre 2016.
(5) Xavier Chojnicki et Lionel Ragot, ‘L’immigration coûte cher à la France. Qu’en pensent les économistes?(이민 때문에 프랑스가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Eyrolles - Les Échos Éditions, coll. ‘On entend dire que…’, Paris, 2012.
(6) Isabelle Ufferte, ‘À travers la mondialisation de la révolte émerge une nouvelle conscience de classe…(반항의 세계화를 통해 새로운 계층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Démocratie révolutionnaire>, 26 octobre 2016, www.npa-dr.org.
(7)  L'Anticapitaliste(<반자본주의자>), 24 novembre 2016.
(8) Michael A. Clemens, ‘Does development reduce migration?’, <Discussion Paper> n° 359,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Washington, DC, octobre 2014.
(9) Jules Guesde et Paul Lafargue, ‘Le Programme du Parti ouvrier, son histoire, ses considérants et ses articles(노동당의 프로그램, 노동당의 역사, 노동당의 정강 전문과 조항)’, Henry Oriol Éditeur, Paris, 1883.
(10) Cités dans Claudine Pierre, ‘Les socialistes, les communistes et la protection de la main-d’œuvre française (1931-1932)(사회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프랑스 노동자에 대한 보호)’, <Revue européenne des migrations internationales(유럽국제이민잡지)>, vol. 15, n° 3, Poitiers, 1999.
(11) Cité dans Olivier Milza, ‘La gauche, la crise et l’immigration. Années 1930 – années 1980 (좌파, 위기와 이민. 1930년대-1980년대)’, <Vingtième siècle(20세기)>, vol. 7, n° 1, Paris, juillet-septembre 1985.
(12) Christophe Guilluy, ‘La France périphérique. Comment on a sacrifié les classes populaires(어떻게 사람들이 서민계층을 희생시켰는가)’, Flammarion, coll. ‘Champs actuel’, Paris, 2014.
(13) Cf. ‘Les ressources scolaires des immigrés(이민자들의 학력자원)’, dans  (sous la dir. de), Trajectoires et origines. Enquête sur la diversité des populations en France(여정과 출신국. 프랑스 국민들의 다양성에 대한 설문조사), Institut national des études démographiques (INED, 국립인구연구소), coll. ‘Grandes enquêtes’, Paris, 2016.
(14) ‘Déclaration des maires communistes de la région parisienne et des députés de Paris(파리 의원들과 파리 주변지역 공산당 시장들의 선언)’, octobre 1969.


박스기사 1

이민관련 통계

2015년 1월 1일,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거주인구의 11%에 해당하는 730만 명은 적어도 외국 국적의 이민자 부모가 있었다. 이들 중 45%는 유럽출신이고 42%는 마그레브나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출신이며, 9%는 아시아, 4%는 아메리카-오세아니아 출신이다. 당시 프랑스는 유럽연합 출신이 아닌 280만 명의 외국인이 거주했다. 외무부에 의하면 170만 명의 프랑스인이 2015년 프랑스 밖에서 작성된 프랑스인 명부에 등록돼 있었고, 그 중 37%가 유럽연합에 살았다. 합산하면 이주한 프랑스인 수는 200~300만 명일 것이다.

2016년 체류증 발급건수
22만7,550건(2010년 19만6,535건에 비해 15.7% 증가)

2016년 체류증 발급동기
1. 가족: 8만 8,010건(2010년 8만 3,182건에 비해 5.8% 증가), 이 중 4만 8,725건은 프랑스인 가족들에게 발급됨.
2. 학업: 7만 250건(2010년 6만 5,281건에 비해 7.6% 증가)
3. 경제: 2만 2,575건(2010년 1만 8,280건에 비해 23.5% 증가)
4. 인도주의(난민, 피난처, 추가 보호, 아픈 외국인): 3만 2,285건(2010년 1만 8,220건에 비해 77% 증가)
5. 그 밖에(방문객, 미성년 외국인, 퇴역군인, 은퇴자 등): 1만 4,430건(2010년 1만1,572건에 비해 24.6% 증가)

불법상황에 처한 외국인의 격리
2016년 불법상황에 처한 1만 2,961명의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국가로 강제 송환됐다(2010년 1만 1,700명). ‘보조금을 지원 받고 출국당해 격리’된 외국인 수는 3,468명에 달했다(2010년 1만 2,034명). 마지막으로 자발적으로 출국해 격리된 외국인 수는 8,278명이었고, 6년 전에는 4,292명이었다.

피난처 요청
2016년 피난처 요청 8만 5,244건이 ‘프랑스 난민·무국적자 보호청’(Ofpra)에 접수됐고, 2010년에는 5만 2,762건이 접수됐다. 이중 2만 6,451건의 요청이 긍정적인 대답을, Ofpra 혹은 ‘국가 피난권리법원’(CNDA)에서 얻었으며, 2010년에는 1만 377건이었다.

출처: ‘이민 온 부모로부터 프랑스에서 탄생한 사람’, 국립통계경제연구소 보고서, 1634호, 2017년 2월 8일: ‘체류허가-체류증서’, ‘피난처 요청’과 ‘2016년 불법상황에 처한 외국인의 격리’, 내무부, 프랑스 외국인관리청(DGEF), 2017년 1월 16일.


박스기사 2

이민에 대한 인용구

“부르주아 언론이 품고 있는 적대감”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가 알기로는 일자리 없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일자리가 있고 일하면서 살아가게 허용해주는 급여가 있는 한, 어떤 노동자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추방을 요구하려 하지 않는다.” 
-폴 라파르그, ‘외국인 노동자들’, <르소시알리스트>, 1887년 7월 9일.

“당은 수많은 이민자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한다. 우리는 이민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이익이 프랑스 프롤레타리아의 이익과 공통된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고, 그래야 프랑스 프롤레타리아가 이민 노동자들과 연대하게 된다.
우리는, 이민 노동자들과 프랑스 노동자들의 절대적 평등을 위해 투쟁하면서, 그리고 이민자들의 개별적 이익을(프랑스어 무료학교, 손쉬운 귀화) 옹호하면서,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당은 또한, 계층이동·하루 8시간 노동·프랑스에서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보호 등을 위해 당이 이끄는 모든 캠페인에서 이민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호소해야 한다. 당은, 몇몇 조항들이 이민을 촉진하는 점을 고려해, 몇몇 국제협약을 적용시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당은, 계급조직들의 영향력을 저지하기 위해 이민사회에서 활동하는 반대편 인사들 및 단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당은 끈기와 에너지를 가지고 보호권 획득을 위해, 그리고 추방과 억압에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 당은, 프랑스 프롤레타리아 계층에서 외국인 혐오증을 박살내야 하고, 전면적이고 효과적인 연대감을 이민 노동자와 함께 가져야 한다. 부르주아 언론이 교묘하게 품고 있고, 우리의 노동조합 조직들에도 침투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은 적극적으로 격퇴돼야 한다.”
-프랑스공산당 제 5차 전국대회에서 채택된 이민 강령, 1926년 6월 20-26일.

“북아프리카 노동자 문제가 현재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북아프리카인의 합법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 ‘노동총연맹(CGT)’은, 이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은 활동을 벌였던 파리지역 노동조합 연합의 북아프리카 위원회와 관계를 맺고서, 여러 가지 요구사항들을 작성하는데 전념했다.”
1. 알제리에 거주하는 알제리 노동자 자녀들을 위해 알제리 노동자들에게 가족수당을 부여한다.
2. 휴가 후 프랑스로 돌아오는 북아프리카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행정적 어려움을 제거하고, 북아프리카 노동자들을 위해 유료휴가법을 수정한다(2년마다 휴가를 2배로 늘림).
3. 북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모든 병원을 개방한다.
4. 진정한 파시스트정책의 본거지이며 경찰과 관련된 번거로운 일들이 발생하는 파리의 르콩트(Lecomte)가(街)에 설치된 ‘취업알선 특별 사무소’를 폐지 혹은 재편한다.
-‘북아프리카의 노동력’, <대중의 목소리>(CGT의 기관지), 213호, 1938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