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과 테스토스테론

2017-04-28     이자벨 콜레 | 스위스 제네바대학 교수

말레이시아를 제외하고, 컴퓨터공학은 여전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남성적’인 직업이다. 프랑스의 경우 1980년대 초에 잠시 여성 비율이 증가했으나, 이후 30년간 감소세가 지속됐다. 이런 불균형은, 이 직업에 대한 심각한 고정관념 때문에 컴퓨터공학과를 지원하는 여성이 적은 데서 비롯된다.

 
컴퓨터공학은 남성적 직업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이 말을 한다면, 분명 웃음을 살 것이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소재한 컴퓨터공학·정보기술대학을 보면, 학장, 학부장이 모두 여성이다. 페낭의 경우에도 컴퓨터공학과 전체 학생 중 65%가 여성이다. 교수 10명 중 8명이 여성이며, 학장도 마찬가지로 여성이다. 마즐리자 오트만 학부장은 컴퓨터공학이 남성적 학문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고 말했다.(1) “공학이나 지질학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컴퓨터공학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컴퓨터공학은 강한 육체적 힘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제3의 공간에서 작업이 이뤄지므로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1980년대부터 컴퓨터가 
남성적 영역이 된 이유
 
그러나 말레이시아 이외의 국가에서 컴퓨터공학은 상당히 ‘남성적’인 영역이다. 프랑스의 경우, 컴퓨터공학은 이공계 학과 중 유일하게 여학생 등록률이 크게 감소한 학과다. 공과대 전공별 성비를 살펴보면, 컴퓨터공학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여학생 비율이 높아졌다.(2) 그러나 컴퓨터공학과의 여학생 비율은 1983년 20%가 최대였으며, 이후 감소세에 접어들어 20년 후에는 결국 초기 수준으로 되돌아갔다(1970년도 여학생 입학률은 9%였다. 2000년에는 11%였고, 현재까지도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프랑스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독일, 영국, 미국도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상 이 기간 동안 컴퓨터공학과를 지원한 전체 여학생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학기가 시작되면 남학생들이 컴퓨터공학과에 우르르 몰려든 것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여성은 컴퓨터 공학을 싫어할까?’가 아니라 ‘1980년대 초부터 왜 유독 남성이 컴퓨터 전공에 열광했을까?’다. 
 
1970년대 컴퓨터의 주된 역할은 정보처리였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여성 비중이 높은 서비스산업과 연관이 깊었다. 그리고 당시 젊은 여성 과학자가 보기에 컴퓨터공학자는 꽤 괜찮은 직업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청소년이 있는 가정을 중심으로 개인용 컴퓨터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가정에 전자기기가 도입되면, 소녀보다는 소년이 먼저 친숙해지기 마련이다.(3) 가정용 컴퓨터로 구매했더라도 소년들이 독차지하거나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컴퓨터를 중심으로 ‘테크노필리아 소년 사회’가 형성된다. 프로그래밍과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 컴퓨터 동호회나 친구들 간의 모임이 형성되는 것이다. 십대 소년들은 관심사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소녀들을 배제하고 그들끼리 뭉친다. 이들이 10년 후, 동영상 강의를 수반한 대학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여성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 이상이 지났다. 기술이 발전하고, 우리 일상도 다방면으로 진화하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과학 전공자들에게 컴퓨터공학은 여전히 개인용 컴퓨터, 또는 영화 속 프로그래머의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이들 중 80%가 컴퓨터공학자의 이미지에 대해, “운동과 외모에 관심이 없고, 사람보다 기계를 좋아하는 남성이 떠오른다”고 답했다. 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 프로그래밍 같은 반복 작업에 매달리는 남성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런 현실과의 괴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렇게 대답한 학생들도 매일 휴대폰을 사용하고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또한 휴대폰과 PC를 통해 주문을 하고, 음악과 이미지, 영상을 감상하고 다운로드한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전자기기를 활용하면서도, 왜 컴퓨터공학자에 대한 이미지는 그대로일까? 실상 컴퓨터공학자 중 프로그래머는 3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머릿속엔 ‘컴퓨터공학자는 곧 프로그래머’라는 공식이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프로그래밍을 하는 컴퓨터공학자도 분명 존재한다. 바로 해커들이다. 여기서 ‘해커(Hacker)’란 용어는 시스템 및 인터넷에 정통한 ‘열정적인 브리콜뢰르(bricoleur, 손재주꾼)’이란 의미로 쓰였다.(4) 그러나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은 그 출중한 능력 덕분에 존경과 찬양을 받는 동시에, 그 능력 때문에 경계와 의심도 받고 있다. 이렇게 ‘테러리스트 또는 로빈후드’라는 양면적 이미지로 인해 호감과 거부를 동시에 사는 이 소수집단이 컴퓨터공학자라는 직업의 전형이 됐다. 이런 인식은 과학도들뿐 아니라 컴퓨터공학자들한테까지 자리 잡아서, 컴퓨터공학자들은 프로그래머가 아닌 이상 자기 직업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인식 속에서, 여성들이 ‘나답지 않아 보이는’ 직업을 가지고 당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상,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여성이었는데도 말이다.
 
1842년, 찰스 배비지가 발명한 최초의 기계식 컴퓨터인 ‘차분 기관’에 대한 논문이 발표됐다. 베르누이의 수 계산을 해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담긴 논문이었는데, 그 시대 여성이 따라야 하는 관례 때문에 논문 저자명을 A.A.L.이라는 이니셜로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논문의 저자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딸, 에이다 러브레이스였다. 훗날 미군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명칭을 그녀의 이름을 따서 ‘에이다’라고 명명했다.
 
1944년, 전기기계식 컴퓨터가 등장했다. IBM에서 일하던 하워드 에이큰이 최초의 대규모 디지털 컴퓨터인 ‘마크I’를 개발한 것이다. 그는 3명의 엔지니어로 구성된 팀의 리더였는데, 그의 팀에는 컴파일러를 최초로 개발한 그레이스 호퍼도 속해 있었다. 호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간단하게 바꿔서 수학자가 아닌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비과학적 영역과 상업 분야에 컴퓨터를 도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다. 1952년, 그레이스 호퍼는 최초의 컴파일러를 발표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대중화시킴으로써 소수의 최상위 수학자들만 독식하던 ‘프로그래밍’이란 세계에 모두가 접근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여성 컴퓨터공학자들은 
왜 이 직업을 선택했을까
 
컴퓨터공학은 다른 과학 분야에 비해 여성 참여율이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어린 여학생들은 이 분야에서 긍정적인 롤모델을 찾기 힘들다. 학문이 사회적 성별에 따라 구분되면서, ‘과학기술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공식이 어릴 때부터 주입된다. 교과서부터 만화나 영화에서까지, 온갖 일상 속에서도 이러한 공식이 발견된다. 진로문제만 해도 그렇다.(5) 미래에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자리에서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직업을 가지고 싶거나, 나와는 다른 부류로 보이는 직업을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성도 남성만큼 컴퓨터를 많이 활용하지만, 컴퓨터를 전공으로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남녀 과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학생의 2/3가 자신이 정보통신기술(ICT) 직종에 관심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남학생은 40%).(6) 또한, 오늘날의 컴퓨터공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여학생도 많았다. 
 
반면, 여성 컴퓨터공학자들은 이 직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노동시장의 현실을 따라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컴퓨터공학은 매우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이며, 여러 업종과 연계 가능하다.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가 많으며, 인간관계와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 컴퓨터공학자로서 커리어를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받고, 확실한 이유도 없이 남성 동료보다 급여 인상률이 낮았으며, 고용주들이 우려하는 30세 가임기 전후로는 커리어 정체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물들로 인해 이 분야의 수많은 여성이 공적, 사적으로 거둔 성공이 가려지면 안 된다. 실제 이 분야의 여성 실업률은 상당히 낮으며, 초봉도 남성과 비슷한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여성 컴퓨터공학자들의 주장과 이 직업에 관심이 없다고 답한 남녀 전공자들이 말하는 ‘부당한 이유들’을 비교해보면, 현 상황을 손쉽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컴퓨터공학자라는 직업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해커에 대한 고정관념이 더 심해지기 전에 이를 깨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린 여학생들이 컴퓨터공학자가 고려해봄직한 직업이며, 세상에 대해 개방적인,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적·인간적 도전으로 가득 찬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7)  
 
 
글·이자벨 콜레 Isabelle Colet
컴퓨터공학자이자 스위스 제네바대학 교육과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L’informatique a-t-elle un sexe? Hackers, mythes et réalités(컴퓨터공학에 성별이 있나? 해커, 허구 그리고 현실)>(L'Harmattan, Paris, 2006)과 <L'école apprend-elle l'égalité des sexes?(학교가 남녀평등을 가르치나?)>(Belin, Paris, 2016)이 있다.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Vivian Lagesen, Ulf Mellström, ‘Why is computer science in Malaysia a gender authentic choice for women? Gender and technology in a cross-cultural perspective’, Symposium Gender & ICT: Strategies of Inclusion, Bruxelles, 2004.
(2) 1972~1995년 자료에 관해서는 Conseil national des ingénieurs et des scientifiques de France(CNISF)의 <Bulletins ID>를 참고한다. 2000년 자료에 관해서는 Catherine Marry의 ‘Les femmes ingénieurs, une révolution respectueuse’(Belin, Paris, 2004)에 나온 수치를 참고한다. 
(3) Cf. Dominique Pasquier, Josiane Jouët, ‘Les jeunes et la culture de l’écran(volet français d’une enquête comparative européenne)’, Réseaux, n°17(92-93), Paris, 1999.
(4) 영어로 ‘to hack’은 ‘절단하다’, ‘잘게 썰다’라는 의미이다. 이 글에서 해커라는 단어는 오늘날 변질된 의미의 ‘블랙해커’가 아니라, 영어의 원뜻인 ‘컴퓨터광’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5) Cendrine Marro, Françoise Vouillot, ‘Représentation de soi, représentation du scientifique-type et choix d’une orientation scientifique chez des filles et des garçons de seconde’, L’orientation scolaire et professionnelle, vol.20, n°3, Paris, 1991.
(6)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해당 질문에 명확한 의사표시를 했다. 37%가 정보통신기술 직종에 관심이 있다, 21%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여학생의 경우 9%가 관심이 있다, 11%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7) 유럽연합의 ‘에이다 프로젝트’가 6년 전에 도입한 내용이다.(www.ada-onlin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