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생각하는 인간’

2017-04-28     윤해동 |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5년마다 우리 국민들의 머리 위에는 한 ‘유령’이 배회한다. 그것은 대통령선거 때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교육 포퓰리즘’이라는 유령이다. 국가 교육정책을 둘러싼 선거용 슬로건이 무성하고,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그 무책임성은 갈수록 도를 더한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공약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없애며, 교육의 수월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겠다는 것! 그럼에도 보통 국민들이 느끼는 교육환경은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이를 어찌 교육을 볼모로 내건 정치인들의 도박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교육과 저출산을 양성하는 
교육 포퓰리즘

한때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고졸자의 90%를 넘어 세계최고를 기록했고, 70% 아래로 떨어진 지금도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아마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국민(=학부형)들의 강박관념이 한국을 능가하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좋은 대학이 아니라도 어쨌든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한국사회에서 “괜찮은” 인간으로 살아가기가 정말 어렵다. 따라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모든 교육정책은 대학입학으로 “소용돌이치며” 수렴된다.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 하므로, 대학입학을 위한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대학입학의 공정성이 의심받으면 정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현상을 얼마 전의 대통령 탄핵사태에서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입학사정이 투명하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 더욱이 전체 대학의 75%를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재정적‧행정적 투명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민이 불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대학의 입학사정에서 국가가 완전히 손을 뗄 수가 없고, 수학능력시험도 없앨 수가 없다.

강남지역이 ‘학군’이 좋다고들 한다. 그것은 학교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학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사교육을 받기가 좋은 환경이라는 것인데, 이런 곳일수록 집값이 비싸다. 그런데 ‘교육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바람에, 입시정책은 담당자도 잘 모를 정도로 자주, 복잡하게 바뀐다. ‘그럴듯한 교육정책’으로 보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대학 보내려면 복잡한 제도에 적응해야 하므로, 다시 사교육에 의지해야 한다. 돈이 많든 적든 모든 국민이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사교육비가 공교육비에 육박한다는 추계도 있고, 사교육의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한국의 출산율은 오랫동안 세계 최저를 유지하고 있고, 청년실업률은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 있다. 곧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고, 따라서 출산율도 높일 수가 없다. 미취업 상태이거나 비정규직 등 ‘나쁜 직장’을 다니는 상황에서는 집값과 사교육비, 육아와 보육에 대한 부담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또 교육도 모두 지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국민이 일상에서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일종의 ‘상식’이다. 수능시험 → 사교육 → 저출산이라는 사회구조적 악순환은 계속 확대되고 있고, 국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무한하게 확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것인가?

이 무한 악순환하는 악마의 구조! 사교육과 저출산을 양성하는 온상이 되는 것이 바로 ‘교육 포퓰리즘’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그 기원이 되는 대통령선거의 정치적 슬로건과 교육정책을 단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5년마다 유령처럼 배회하는 ‘교육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정책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며, 교육시스템의 변화에 필요한 강력한 권한과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인 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법률적 지위, 교육위원의 구성, 위원회의 권한과 역할 등을 정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적 차원의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의 법률적 지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부와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이미 교육자치를 강화하는 것이 시대의 추세고, 교육부 폐지까지 선거공약으로 제출된 상황이므로, 교육부 대신 국가교육위원회를 ‘헌법 차원의 독립적 국가기구’로 설치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개헌을 요구하는 일이므로, 혹은 우선적으로 법률적 차원의 독립기구를 설치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좁은 의미의 ‘교육전문가’만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지성인’을 입법, 행정, 사법의 수장이 각기 추천하는 방식도 검토해볼 수 있다. 임기는 10년 이상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강력한 권한을 줘 국가의 ‘백년대계’를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권한과 역할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신인간’을 육성하려면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세계 유례가 없는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버블만 무성한 듯 보이기도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구미와 일본을 중심으로 시작된 근대적 교육시스템은, 초등 의무교육과 징병제를 주축으로 ‘문맹을 탈피한 국민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뒀고, 여기에 실업교육 중심의 중등교육과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는 대학교육이 추가됐다. 한국은 초등의무교육시스템의 이른 정착과 중등-대학교육의 급속한 팽창을 이뤘고 이는 2차대전 이후 발전국가 시스템을 구성하는 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과열된 ‘대학진학열’은 대학을 대중화시켰고, 이는 대학의 수준을 중등교육 수준으로 하향평준화시켰다. 또 사립대학의 과도한 팽창으로 부패와 비효율을 양산했고, 초등-중등교육을 대학진학에 전면적으로 예속시킴으로써 사교육의 낭비적 팽창을 초래하게 된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하지만 대학진학율은 세계최고 수준인데 비해 문해율은 아주 낮은 수준 곧 OECD국가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한국교육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문맹탈피와 국민양성을 목표로 하는 근대적 교육시스템은 한국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다. 문해율을 높여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창의력을 기반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이제 근대적 교육시스템을 탈구축(Deconstruction, 해체-재구축)하는 데서 우리의 과제를 출발해야 한다.

근대적 교육시스템을 넘어서 ‘새로운 인간’을 육성하는 방법에서 가장 필수적이고 긴급한 과제 두 가지를 언급하려 한다. ‘교육자치’를 강화하고 ‘수능시험’을 폐지하는 것이다. 우선 ‘교육자치’를 강화함으로써 지역공동체 중심의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교육과 로컬리즘의 연계를 강화해 지방특성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자치를 강화하고, 국민국가 중심의 근대적 교육시스템의 탈구축에 대비하고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초중등교육의 교육과정 역시 지방의 특성을 중심으로 재편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광역자치체의 지방사와 지역사정을 담은 역사 및 지리교육을 교육자치제가 중심이 돼 시행하는 것이 다가오는 지방시대를 맞아 바림직한 교육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육 역시 지방자치체가 중심이 돼 국공립대학을 평생교육-재교육 시스템으로 편입해 활용할 필요가 있는 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안정적으로 고용창출에 기여할 방법도 될 것이다.

‘수능시험’은 교육구조의 악순환을 구성하는 핵심적 결절점 중의 하나다.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다.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생각하는 인간’을 육성하는 데 있어 도무지 쓸모없는, 또는 그와는 반대의 인간을 만드는 제도라는 비판이 무성함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국가교육위원회가 구성돼 교육정책의 중립성과 지속성 그리고 추진력이 장착되고, 또 교육자치가 훨씬 높은 수준에서 정착돼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수능시험을 폐지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고령화시대를 위한 학제개편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6-3-3-4’로 구성된 단선적 학제를 유치원과 실업교육-중등교육 등을 포함한 다선적-다원적 학제로 개편해, 직업을 갖기 이전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은 대학교육의 위상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국가가 주도하는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학력테스트를 없애고, 다원적 학제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또 생애주기의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종류의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된다. 

앞으로는 정년과 은퇴 개념이 사라지는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되는 바, 무형의 생산적인 자산을 육성하는 평생교육(이른바 ‘백년의 공부’)을 진행하는 기관으로 대학을 전환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글·윤해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한국근대사 연구를 입지점으로 삼아, 근대 동아시아사와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 혹은 글로벌 히스토리에 관하여 공부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식민지의 회색지대>, <지배와 자치>, <식민지근대의 패러독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