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 동물 이전에 인간 자신을 위한 것”

동물보호운동가 표창원과의 만남

2017-04-28     김진주 | 본지 홍보위원
   
 

‘동물반려 인구’ 천만 시대,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은 동물과 삶을 함께한다. 그만큼 이들의 표심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19대 대선후보들의 공약이 입증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의 복지에까지’ 관심을 가지는 정당은 녹색당 정도였으나, 이제 정당을 초월해 제법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헌법에 동물 권리를 명시하고,(1) 유럽 수준의 동물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으며, 본선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재명 성남시장도 반려동물 의료보험 제도를 비롯한 ‘동물보호 8대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본지는 대선후보는 아니지만 “생명존중에는 여야가 없다!”고 외치며 동물보호법 개정에 힘쓰는 표창원 의원을 만나, 그의 생명존중 철학과 비전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예리한 눈매와 ‘사이다 발언’, 범죄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 옳다고 판단하면 즉각 행동하는 결단력과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단... 이렇듯 표창원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함’과 ‘날카로움’이다. 그런 이미지와 ‘동물보호운동가’는 선뜻 겹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표창원 의원은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유기견을 지나칠 수 없었던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그렇게 수 년 전 입양된 유기견이 표 의원 부부의 막내 ‘모카’다). 

그런 만큼, 표 의원은 ‘함께 살던 개 아홉 마리를 청와대에 버리고 간 어떤 분’에 대해, “끔찍하다”는 말로 소감을 표현했다.

“박 전 대통령이 개들과 찍은 사진들을 보면, 개들한테 표정이 없어요. 동물들도 희로애락을 얼굴에 다 표현하거든요. 그걸 볼 때마다 살짝 우려됐는데, 결국 참모와 비서들이 간곡하게 데려갈 것을 권했음에도 단호하게 거절하고 가버렸다는 게... 그렇게 생명을 홍보도구로 이용하고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사람이, 우리 국민의 안전과 복지, 행복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하고 또 불행한 일입니다.” 

표창원 의원이 동물보호법 개정을 발의하게 된 계기는 무려 40여 년 전 비롯됐다. 함께 놀던 개들이 이웃집 아저씨들에 의해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하는 참상에 충격 받은 소년 표창원은, 그 개들에게 “너희들이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할게”라고 약속했다는 것. 비슷한 경험을 한 김제동처럼 엄격한 채식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 날 이후 표창원은 보신탕만큼은 입에 댄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표 의원은, 올해 초 모란시장의 개도살장을 없앤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감사와 칭찬,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용인에 살다보니 명절이면 가족들과 모란시장에 가는데, 그 때마다 아이들이 개도살장을 보며 충격에 빠집니다. 누군가가 생명을 저렇게 학대하는 것은 나쁘다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의 순수한 본성이 그렇게 느끼는 거지요. 이재명 시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 표창원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오랜 기간 관록을 쌓아온 범죄심리학자다. 엽기적인 살인, 폭력사건의 범인들은 동물학대 이력을 지닌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일반상식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폭력성이 강한 범죄자들의 동물학대 행위가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연구는 꽤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습니다. 대표적인 국내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의 경우도 이에 해당되고요. FBI에서는 이에 대해 오랜 연구 끝에 상당히 구체적인 데이터를 확보했으며, 최근 강력 폭력학대범의 48%가 동물학대 과정을 거쳤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표 의원은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는 진행되고 있으며, 보다 구체적이고 신뢰도 높은 데이터가 축적되고 확산된다면, 동물학대범 처벌강화법에 더욱 강한 설득력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동물학대범을 처벌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처벌의 목적은 처벌 그 자체가 아니라 범죄의 예방인 만큼, 재범 예방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 위한 정신치료 프로그램의 마련 및 도입이 시급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그는 “정신치료만이 답은 아니다. 치료라 함은 본인의 의지가 아님을 전제로 한다. 범죄행위자의 성격과 이유, 동기에 따라 예방법은 치료와 교육이 될 수도 있고, 규제와 격리가 될 수도 있다”라며, 역시 범죄 심리 전문가다운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동물을 옥상에서 떨어뜨린다든가, 차에 매달고 달리는 등 끊이지 않는 동물학대사건들에 대해, ‘철학의 부재’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들었다. 

“극단적이고 왜곡된 분노표출 방식의 하나일 수 있겠지요. 쌓이는 분노를 누군가는 인터넷 폭력으로, 누군가는 방화로, 또 누군가는 동물학대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경시하고 나아가 학대하는 사람이 어떤 사회에 특히 많거나, 많아지고 있다면 그 사회에 생명존중철학이 부재하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학이 없으니 교육이 있을 리 없고요. 그런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구성원들은 아무래도 생명존중에 대한 인식을 가지기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동물, 그리고 동물을 비롯한 모든 약자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생명존중 인식을 강화하는 교육이 시급하지 않을까? 교육은 성인에게도 필요하지만, 특히 정서와 인식이 형성되는 유아동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생명존중정신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기본지식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커녕, 개구리 등 살아있는 동물의 해부실습이나 곤충채집 과제 등 반(反)생명적 행위가 의무교육기관에서 강요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역시 동물학대의 일종으로 금지돼야 마땅하지 않을까? 동물실험금지는 표 의원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도 일부 포함된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동물실험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동물실험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법제도를 실행하려면, 먼저 범사회적으로 동물실험의 잔인성과 비윤리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 법제도 개선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변화가 앞서 이뤄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적어도 두 가지가 함께 이뤄질 때 위태로운 ‘긴급 착륙’이 아닌 비교적 순조로운 ‘연착륙’이 가능해집니다.”

그는 “대중의 인식변화에 앞서 법제도를 시행시켜, 규제를 통해 인식이 변화된 경우도 있기는 하다”면서, 스웨덴의 아동학대 금지법 도입을 예로 들었다. 1970년대에 스웨덴에서 여론조사를 시행한 결과, 70%가 아동학대처벌법에 반대했다. 아동(자녀)은 성인(부모)의 소유물이라는 것이 당시의 보편적인 인식이었기 때문(현재 동물에 대한 인식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인데, 70%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서서 아동학대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민주주의 원칙에는 어긋난 처사라고 볼 수 있지만, 20년 후인 1990년대에 다시 여론조사를 해보니 90%가 아동학대처벌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제도가 인식을 개선한 경우다.

“스웨덴의 사례는 지금의 시각으로는 긍정적으로 비치지만, 아무리 도덕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일이더라도, 다수의 반대를 무시하고 소수의 엘리트가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은 독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제도 개선 이전에 대중인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동물관련 범죄 여부에 대한 판단 및 규명, 처벌은 피해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무엇보다 동물은 사람의 언어로 피해사실을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심리전문가, 수의사 등이 포함된 수사전담팀, 즉 ‘동물전문 특별수사대’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질문에, 그는 역시 범죄심리전문가답게 진지하게 답변했다.

“영국에는 이미 존재합니다. 반관반민 단체인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 ‘RSPCA’(2)에서 동물전문수사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물론 이런 전문수사팀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그 이전에 동물복지분야 전문공무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동물복지 분야 선진국인 영국의 RSPCA는 1824년 창립됐고, 1840년부터 빅토리아 여왕으로 인해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 물론 영국에 비하면 국내 동물보호단체는 대단히 늦게 설립됐지만, 국내에도 카라(KARA), 동물자유연대 등 많은 동물보호 시민단체가 있다. 이들 단체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후원만으로 운영이 이뤄지고 있어 사정이 어렵다. 상근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상당한 시간과 정신을 쏟아 일한다. 이런 단체들을 후원하는 법제도가 마련될 수 있을까? 

“우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동물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말씀부터 드립니다. 그리고 물론 이런 단체들을 후원하는 제도는 필요하고, 그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보호도 처음에는 자원봉사와 모금을 통해 시작됐습니다. 그러다가 당연히 사회적 약자의 권익은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국가보조입법을 통해 관련 민간단체들이 지원을 받고, 관련 반관반민단체 또는 국가기관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멀지 않은 미래에, 동물보호단체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표창원 의원은 유기동물 보호시설, 안락사 최소화(보호기간을 1주에서 4주로 늘리자는 것도 그가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길고양이 중성화 등 유기동물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반려동물이 유기되는 경우 중 가장 슬픈 것은 반려동물의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버리는 것이다. 건강한 동물도 버려지면 온갖 위험에 노출되는데, 이 경우 아픈 동물이 버려지는 것이다. 표 의원 역시 반려견과 생활하는 1인이니, 동물의료보험제도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을 듯하다. 그는 기다렸던 질문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활기차게 대답을 이어갔다. 

“동물의료보험제도, 물론 필요합니다. 여러 차례 논의됐던 안이고요. 하지만 이 역시 긴급 착륙이 아닌 연착륙이 필요합니다. 공감대 형성과 함께 단계별로 접근할 문제인 것이지요. 먼저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려면 반려동물을 등록하고 기존에 없던 의료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반려동물등록제가 시행된 것도 얼마 안 됩니다. 무엇보다 비용(세금)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협조가 가장 많이 필요한 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람들이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도 보다 본질의 추구에 주력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이·표창원
20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소년 시절 셜록 홈즈를 꿈꾸다가 범죄심리학자가 된 그는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로 범죄자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엑시터대학교에서 경찰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9년부터 경찰대학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나, 2012년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주장한 후 교수직을 그만뒀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3년 제27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로부터 인권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숨겨진 심리학>, <정의의 적들>, <공범들의 도시>, <한국의 연쇄살인>,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 등이 있다. 

인터뷰어·김진주
본지 홍보위원.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고 우유와 알류는 먹는 채식인) 8년 차로,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의 후원회원이기도 하다.


(1)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동물의 생명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으며, 특히 독일의 경우 미래 세대의 책임으로서 동물의 생명권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담고 있다. 이는 동물의 권리가 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복지, 권리와 연관돼있음을 시사한다.
(2) Royal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 1822년 가축학대 방지법을 통과시킨 영국 의회의원 리처드 마틴과 해당 법의 실행을 촉구한 아서 브룸 목사, 노예제도 폐지론자 윌리엄 윌버포스 등이 중심이 돼 1824년 6월 17일 세계최초로 설립한 동물학대방지협회. www.rspca.or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