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통조림에 얽힌 자본주의의 역사

2017-06-01     장바티스트 말레  언론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계곡의 한 레스토랑. 박제 곰과 코브라로 장식된 방에서 한 남성이 케첩 병 앞에 놓인 햄버거를 들고 크게 한입 베어 문다.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토마토 가공회사 ‘모닝스타’의 크리스 루퍼 회장이다. 공장만 3개 보유한 모닝스타는 전 세계 토마토 농축물의 12%를 생산하고 있다. 루퍼 회장은 햄버거를 베어 문 채 말했다.

“나는 일종의 무정부주의자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는 사장이 없다. 대신 노동자 자주관리 방식을 도입했다.”
 
여기서 노동자 자주관리란, 컴퓨터가 임직원들을 대체하되 노동자가 기업자본을 통제하지 않는 방식을 일컫는다. 자유당 지지자인 루퍼 회장은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재량껏 업무 부담을 하도록 만들었다.(1) 캘리포니아주 윌리엄스시에 있는 공장에서는 시간 당 1,350톤의 생토마토를 가공해 농축물로 만든다. 세척, 파쇄, 가압식 증발농축 등의 공정은 모두 자동화돼있다. 토마토를 가득 실은 트럭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이곳은 세계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공장이다. 임직원을 포함한 인력 대부분을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한 결과, 70명에 불과한 인원이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1차 가공’을 마친 토마토는 품질별로 대용량 포장돼 출고된다. 
 
이렇게 출고된 농축토마토는 컨테이너에 실려 전 세계로 유통된다. 이를 소포장해 유럽의 대형 유통기업에 판매하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통조림공장에서도 모닝스타 제품이 중국산 제품 옆에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스칸디나비아, 동유럽, 브리튼 제도, 프로방스 지역의 ‘2차 가공’ 공장들도 모닝스타의 농축토마토를 활용한 제품(냉동피자, 라따뚜이, 라자냐 등)을 생산한다. 농축토마토는 전통요리와 서민요리에 두루두루 사용된다. 붉고 걸쭉한 농축물을 세몰리나(굵은 밀가루) 또는 쌀과 섞으면, 마페(서아프리카식 스튜)부터 파에야나 쇼르바(아랍식 수프)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농축토마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공산품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체인 레스토랑은 물론, 아프리카에서 가장 빈곤한 마을의 식료품점에서도 발견된다(가나 북부에서는 한 스푼이 몇 상팀(유로센트)에 판매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전 인류가 이 붉은 ‘과일’로 만든 가공품을 소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2016년, 전체 생산량의 1/4에 해당하는 380억 킬로그램이 가공되거나 통조림으로 만들어졌다. 1인당 평균 소비량은 5.2kg이었다.(3) ‘정크푸드’의 주원료이면서도 지중해식단의 주재료이기도 한 토마토는 문화와 음식의 장벽을 초월한다.(4) 토마토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말했던 ‘밀, 쌀, 옥수수의 문명’ 대신 ‘토마토의 문명’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루퍼 회장이 감자튀김에 하인즈 케첩을 쭉 눌러 짠다. 모두에게 익숙한 케첩 짜는 소리가 들린다. 루퍼 회장은 이 소리를 들을 때면 이 소스의 성분도, 파란만장했던 과거도 잊어버린다. 토마토케첩에서는 그 붉은 빛깔이 무색하게도, 토마토 맛이 나지 않는다. 케첩의 농축토마토 함유량은 6~30%로 제조사마다 다르며, 설탕 함유량은 평균 25%다. 미국은 설탕 대신 옥수수시럽(대부분 유전자변형식품)을 사용한다. 포도당과 과당의 화합물인 옥수수시럽은 사탕수수나 사탕무로 만든 설탕보다 저렴해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사용되며, 미국을 강타한 비만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변성전분, 농화제, 겔화제, 산탄검(Xanthan gum), 구아검(Guar gum)까지 첨가된 최악의 형태로, 케첩은 한 세기의 식품 ‘발전’의 끝을 보여준다. 
 
전 세계 다른 토마토공장들처럼 모닝스타의 핵심기술도 이탈리아에서 온 것이다. 19세기,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에서 토마토 가공 산업이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 19세기 말, 수백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아르헨티나로 대거 이주하면서 브라질과 미국에 토마토 가공품을 이용한 요리법을 퍼뜨렸고, 동시에 토마토 통조림 수출량도 증가했다. 파시스트 시절, 통조림은 이탈리아 ‘문화혁명’을 상징했다. 도시문명, 기계발전, 전쟁 등을 선동하는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문화혁명이었다. ‘신인류’의 양식인 토마토 통조림은 과학과 공학을 접목시킨 농산물 저장법의 결정체였다. 1940년,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제1차 자급자족식 통조림 및 저장음식 박람회’가 개최됐다. 파시스트 정권의 자부심을 드러낸 자리였다. 카탈로그 표지에는 ‘Autarchia(자급자족)’이라는 문구가 찍힌 통조림 그림이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파시스트 정권은 ‘녹색(Green) 자급자족’이라는 경제정책을 내세워, ‘레드(Red) 산업’을 정당화하고 발전시켰다. 식품역사학자 알베르토 카파티는 “오늘날 세계화된 두 가지 패스트푸드 식품, 파스타와 피자에 모두 토마토가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파시스트 체제가 건설하고, 개발하고, 장려하고, 지원했던 산업이 남긴 유산이다”라고 말했다.
 
 
   
 
19세기, 미국에 캠벨 토마토수프 통조림과 팔각형의 하인즈 케첩이 등장했다. 매년 전 세계에 6억 5천만 개가 팔리는 이 두 상품은 코카콜라와 더불어 대표적인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인즈 케첩이 대량생산을 자동차보다도 먼저 시작했다는 것이다. 포드사가 자동차 조립라인을 도입하기 전부터 이미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의 하인즈 공장에서는 베이크드 빈 통조림을 대량생산했다. 밀봉 등의 공정도 기계화된 상태였다. 1904년 사진들에는, 하인즈 유니폼 차림의 직원들이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고, 케첩 병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이동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로부터 1년 후 하인즈의 케첩 판매량은 100만 개에 달한다. 그리고 1910년 통조림 생산량 4천만 개, 케첩 2천만 개를 달성하면서 하인즈는 미국 최고의 다국적 기업으로 부상했다.(5)
 
198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무균포장법(미생물 증식을 막는 처리법)이 개발되면서 대륙 간 식품유통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하인즈, 유니레버 등 대형 식품기업들은 토마토 가공 사업을 하청업체에게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1차 가공업체’로부터 대량의 농축토마토를 매우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게 됐다. 현재 캘리포니아, 중국, 이탈리아에 있는 몇몇 거대 공장들이 전 세계 가공용 토마토의 약 절반을 처리하고 있다. 우루과이 무역업자 주앙 호세 아메사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네덜란드는 현지에 있는 대규모 하인즈 공장 덕분에 유럽 최대의 토마토소스·케첩 수출국이 됐지만, 토마토를 직접 가공하지는 않는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사용하는 농축토마토는 캘리포니아, 유럽, 중국 등지에서 수입해온 것이다. 이때 어디서 수입하느냐는 시기, 환율, 재고, 수확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캘리포니아는 세계최대 규모의 토마토 농축물 생산지다. 가공공장은 12개밖에 없지만,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곳 생산량만으로 북미시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며, 유럽으로도 수출되고 있다(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가격이 낮을 때도 있다). 가공용 토마토 품종들은 생식용과는 달리, 재배 시 지지대가 필요 없다. 일 년 내내 마트에 공급되는 온실재배용 토마토와는 다르게, 가공용 토마토는 공짜나 다름없는 풍부한 태양에너지를 듬뿍 받아 들판 한가운데서도 쑥쑥 자란다. 캘리포니아는 봄에 수확을 시작해서 프로방스처럼 가을에 끝내기도 한다. 
 
유전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가공용 토마토를 ‘개량’해, 가공작업이 수월해지게 만들었다. 나아가, 가공 이전 단계까지도 과학이 개입했다. 예를 들어, 어떤 품종을 심으면 수작업 수확 속도가 높아지며, 기계수확도 가능해진다. 가지를 살짝만 흔들어도 과실이 후두둑 떨어지게 만든 덕분이다. 오늘날 가공용 토마토 대부분이 ‘하이브리드’ 품종인 반면, 토마토 퓨레는 유럽에서 최초로 상업화된 유전자변형식품이라는 역사를 지닌다.(6)
 
가공용 토마토는 아삭한 식감을 가진 두꺼운 껍질 덕분에, 덜컹거리는 트럭에 싣고 이동하거나 기계로 거칠게 다뤄도 된다. 트럭 적재함에 가득 토마토를 실어도, 맨 아래쪽이 터지는 일도 없다. 대형 종묘회사들이 가공용 토마토의 수분 함유량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마트에서 파는 생식용 품종은 수분이 많기 때문에 농축물로 만들기에는 부적합하다. 사실상 ‘레드 산업’은 끊임없는 불합리적인 ‘물의 순환’인 셈이다. 캘리포니아처럼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대량으로 물을 관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토마토를 공장으로 가져가 수분을 증발시켜버리는 것이다.  
 
 
글·장바티스트 말레 Jean-Baptiste Malet 
기자. 저서로 <L’Empire de l’or rouge. Enquête mondiale sur la tomate d’industrie(붉은 황금의 제국. 전세계 토마토 산업 조사보고서)>(Fayard, 2017년)가 있다.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루퍼 회장은 자유당 게리 존슨 대선후보에게 100만 달러가량의 후원금을 지원했다. 게리 존슨 후보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440만 표(3.29%)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2) 토마토는 식물학적으로는 과일로, 세관에서는 채소로 분류된다.
(3) <Tomato News>, 쉬렌, 2016년 12월.
(4) 오렐 & 피에르 돔 Aurel et Pierre Daum, ‘Et pour quelques tomates de plu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0년 3월.
(5) 퀜틴 R. 스크라벡 Quentin R. Skrabec, ‘H. J. Heinz: A Biography’, <McFarland & Company>, 제퍼슨(노스캐롤라이나), 2009년.
(6) 1996년 2월~1999년 7월, 영국의 세인스버리 슈퍼마켓 체인은 유전자변형 토마토 퓨레 통조림을 저가에 판매했다. 공격적인 홍보전략을 펼쳤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