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점령한 중국산 농축토마토

2017-06-01     장바티스트 말레  언론인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주도 우루무치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길목, 우쑤시 부근에 면적 35묘(중국 단위, 1묘=약 666.67㎡, 즉 35묘는 약 23,333㎡)의 토마토 밭이 있다. 토마토를 수확하는 일꾼들 대부분은 쓰촨성 출신이며, 위구르족도 섞여 있다.

 
일꾼들 중 14세 소녀가 칼을 머리 위까지 들더니, 무르익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린 줄기를 단칼에 잘라낸다. 옆에서 한 일꾼이 잎이 무성한 줄기를 한데 모아 세차게 흔든다. 그러자 토마토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후두둑 땅에 떨어진다. 토마토 밭에 빨간 줄과 녹색 줄이 짙어진다. 일꾼들은 계속 허리를 굽혔다가 펴면서 커다란 비닐자루를 가득 채워간다. 이들 중 정식으로 고용된 직원은 없다. 25kg들이 자루를 채우는 노동의 대가로 2.2위안을 받을 뿐이다. 2.2위안이면 30상팀(유로센트)이므로, 1kg당 1상팀(유로센트)을 조금 넘는 셈이다. 한 인부는 아내와 같이 일하면 하루에 170자루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1인당 일당이 25유로인 셈인데, 이는 2000년대 초에 비하면 10배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이탈리아제 수확기계가 수입됨에 따라, 인부들은 수확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세계로 가는 중량당업의 ‘수출용 제품’
 
토마토 밭 한쪽 구석에서는 소작농 리 씨가 수확작업을 감독하고 있다. 수확한 토마토는 당일 저녁 트럭에 실어 중량당업 공장으로 운송된다. 그러나 리 씨는 이후 작업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인부들과도 서로 잘 모른다. 용역회사가 보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중량당업은 리 씨에게 수확률이 높은 하인즈의 토마토 종자를 공급한다. 그러면 리 씨는 동봉된 설명서 그대로 재배해야 하며, 그 수확물은 협상된 가격에 중량그룹의 자회사인 중량당업에 판매된다. 중량그룹(중국국영 식품기업)은 중국 최초의 토마토 가공회사로, 미국의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 속한다. 마오쩌둥 시대에 설립된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리며, 당시 중국에서 유일하게 곡물 수출입이 허가된 회사였다. 중량그룹의 수많은 자회사 중 하나인 중량당업은 설탕과 토마토 가공을 전문으로 한다. 총 15개의 토마토 가공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하나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있다. 이곳에서 만든 농축토마토는 크래프트-하인즈, 유니레버, 네슬레, 카고메, 델몬트, 펩시코 등 대형 식품기업에 판매된다. 세계최대의 양념회사인 맥코믹도 중량당업의 고객이다.
 
중량당업 공장의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붉은 햇살을 머금은 토마토가 가득 실린 트럭들을 따라가면 된다. 신장위구루 자치구의 창지시에 있는 공장에서는 매일 5,200톤의 농축토마토가 출고된다. 왕보 공장장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수출용 제품만 생산하며, 이곳 제품은 유럽, 미 대륙,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으로 유통된다.”
 
인부들이 하역장 사다리에 올라서서, 트럭 적재함 쪽으로 물 호스를 끌어당긴다. 거센 물줄기에 으스러진 토마토가 설치된 배관으로 흘러들어간다. 강물처럼 흐르는 배관의 세척작업이 끝나면, 다음 단계인 박피(껍질 벗기기), 제심(씨앗 제거), 그리고 파쇄와 가열로 넘어간다. 공정라인 끝에서는 인부들이 파란 철제통에 멸균자루를 깔아 이탈리아제 액체충전기에 연결시킨다. 작동버튼을 누른 뒤 스크린을 보면, 몇 초면 220리터들이 자루에 고농축 토마토 페이스트가 가득 찬다. 중량당업 토마토사업부의 위텐츠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토마토 가공사업은 마진이 낮다. 그래서 하인즈도 우리 제품을 사서, 마진이 훨씬 높은 생산부문과 가공부문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다.” 공장에서 출고된 제품들은 대형차량에 실려 화물기차역으로 운송된다. 여기서부터 파란만장한 여정이 시작된다. 
 
첫 번째 지점은 텐진 시다. 중국지도를 보면 이곳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도시, 항구와 통조림공장이 있는 곳이다. 신장의 토마토 밭에서 3천 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진투디(Jintudi)’ 공장의 마젠영 공장장이 중문을 열자, 끈적한 열기가 굉음 속으로 퍼진다. 텐진 시에서는 토마토를 가공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대신,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가공한 농축토마토를 재작업해 용기에 담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농축토마토가 노란 네온불빛 아래 기계 사이로 흘러들어간다. 공장인부들은 팔을 접었다가 폈다가 쭉 뻗는다. 중앙라인에서는 70g들이 원통형 용기가 농축토마토로 채워진다. 식료품용 중 가장 작은 용기다. 옆 라인에서는 400g들이 용기가 채워진다. 3교대로 운영되는 이 공장은 연간 2천여 개의 컨테이너를 수출한다. 공장장에 의하면, 공장인부들의 주급은 56시간 기준 500유로(약 62만원)다. 
 
첨가물과 색소로 범벅이 된 통조림,
싼 가격으로 국내산 농산물 눌러
 
제품라벨대로라면, 이곳에서 생산되는 통조림에는 토마토와 소금, 단 두 가지 재료만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공장 내부에는 농축토마토 개봉작업장이 있는데, 이곳에는 농축토마토와 식품첨가물(대두섬유, 녹말, 포도당)을 섞는 혼합기가 있다. 이곳은 접근이 금지된 구역이라, 공장장의 감시를 피해 몰래 들어가야만 했다. 마침 한 직원이 반죽통 옆의 선반에 올라서서, 백색가루가 든 대형자루를 토마토반죽에 쏟아붓는 현장을 적발할 수 있었다. 이 가루에 물을 부으면 반죽형태가 된다. 
 
동일구역 내,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4명의 직원이 불투명한 주황색 혼합물이 담긴 양철통을 다루고 있었다. 혼합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식용색소로, 역시 제품라벨에 표기되지 않은 성분이다. 그러나 공장장은 “진투디 공장이 수출업체의 의무인 ‘ISO 22000’은 물론, 식품제조업체 필수인증은 모두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제품출하구역에서는 직원들이 컨테이너에 붉은색 박스를 싣고, 번호가 적힌 컨테이너 씰로 봉인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아프리카로 보낼 제품이었다. 
 
가나 브롱-아하포 주의 테키만 지역에는 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수백 명에 달한다. 토마토는 식민지 시대에 아프리카대륙에 들어왔다. 현재 가나에서는 서민음식에 흔히 사용되는 재료이며, 전체 채소 소비량의 38%를 차지한다. 가나에는 9만 명의 소규모 토마토 생산자가 있으며, 2014년 토마토 생산량은 36만 6,772톤으로 공식 집계된다. 그러나 테키만과 그 주변 지역에서는 현지 토마토가 잘 팔리지 않는다. 반면, 저가의 ‘메이드 인 차이나’ 토마토 통조림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아프리카의 농축토마토 수입량은 20년째 증가하고 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가나의 농축토마토 수입량은 1996년 1,225톤에서 2013년 10만 9,500톤으로 증가했으며, 이중 80%가 중국산이다. 2014년, 가나가 중국산 농축토마토의 11%를 수입했고, 나이지리아가 14%를 수입했다. 그러나 여기에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아프리카에 수출된 제품은 그냥 농축토마토가 아니라 첨가물이 들어간 혼합 농축물이라는 점이다. 2016년 파리국제식품박람회(SIAL)에 중국 최대 식품기업들도 여럿 참가했다. 
가격 정보를 얻기 위해 고객인척 접근을 시도했더니, 중국기업들은 농축토마토 함량별로 선택 가능한 가격표를 보여줬다. 보통 아프리카 수출용 제품은 ‘토마토 페이스트’라고 표기하지만, 실제 농축토마토 함량은 45%에 불과하다. 나머지 55%는 첨가물과 색소인 것이다. “중국 통조림회사 대부분이 아프리카 시장에 제품라벨에 표기하지 않은 성분을 넣은 제품을 수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대 농축토마토 중개업자인 아르만도 간돌피 사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농축토마토 모조품은 비용절감에 성공했고, 상업적 승리를 거뒀다. 테키만에서 농사를 짓는 콰시 포수는 “내 아내도 가나산 생토마토보다는 저렴한 중국산 통조림을 구매한다”고 토로했다. 또한, 가나의 토마토 재배지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프리카 시장을 점령한 
이탈리아 마스코트
 
1957년 3월 6일 독립한 가나는 범아프리카주의와 관리경제체제의 모범적 모델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콰메 은크루마는 교육, 보건, 인프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수입의존도 감축을 목표로 ‘반제국주의적’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1960년대 초, 가나에 두 개의 토마토 가공공장이 세워졌다. 우기가 되면 썩어서 버려지는 토마토 잉여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1966년 2월 24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가 일어났다. 사회주의 정부가 무너지고 기나긴 불안정 시대가 시작됐다. 1979년, 제리 롤링스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을 때까지 불안정 시대는 계속됐다. 이후 제리 롤링스는 국제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아 가나를 모범적인 신자유주의 아프리카 국가로 만든다. 1980년대 말, IMF의 구조조정 정책에 따라 두 곳의 토마토 가공공장은 폐쇄됐고, 현재 그곳엔 고철더미만 남았다.
 
한편, 아프리카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농축토마토 용기에는 이탈리아 국기와 마스코트인 ‘지노’가 그려져 있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이름을 가진 귀여운 토마토가 선글라스를 추켜올리며 손님을 향해 웃고 있다. 지노는 70g부터 2.2kg까지 다양한 용량의 제품을 선보이며, 10년 만에 아프리카 시장을 장악했다. 인도회사 ‘와탄말’이 유통을 맡고 있는 지노는 현재 아이티, 일본, 한국, 요르단, 뉴질랜드 등지에서도 해맑게 미소 짓고 있다.(1) 경쟁 브랜드로는 싱가포르회사 ‘올람’이 유통하는 ‘테이스티 톰’가 있다. 두 브랜드 모두 오래전부터 텐진시에서 같은 통조림회사들에게 제품을 납품해오고 있다.
 
와탄밀은 지노제품 홍보를 위해 광고매체를 총동원하고 있다. 심지어는 아프리카 마을 곳곳을 광고벽화로 가득 채워, 가나에서는 단 하루도 이 광고를 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나아가 와탄밀은 ‘지노 셀레브레이트 라이프 펀드’라는 자선재단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10년 넘게 재단을 운영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다(백내장 수술비를 지원했다). 그 결과, 현지 토마토 생산업체들을 제치고 마침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수술비를 지원받은 한 환자가 지노의 영상광고에 등장해서 이러한 대사를 읊는다.
 
“지노, 우리 가족을 돌보게 해줘서 고마워요.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글·장바티스트 말레 Jean-Baptiste Malet 
기자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와탄말 본사는 홍콩과 인도 첸나이(구 마드라스)의 타라마니에 있으며, 전 세계에 5억 3천만 명의 고객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