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코빈이 남긴 영국 진보정치의 과제

2017-06-01     폴 메이슨  기자

지난 5월 22일 멘체스터에서 테러가 발생하면서, 영국 조기총선 선거유세가 중단됐다. 하지만 6월 8일로 예정된 조기총선은 영국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선거다. 일부 유권자들은 지역적인 관심사에 따라 투표를 하겠지만, 그 투표 결과에 따라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 총리관저의 협상력이 강화될지 말지가 결정될 것이다.


영국 브록스토에 있는 밀힐 지역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기자기하다’일 것이다. 침엽수들이 줄지어 있고 잔디는 바짝 깎여 있으며, 작약과 튤립이 만발해있고 자동차들은 말끔하게 세차돼 있다. 총선을 3주 앞두고, 노동당 후보 그렉 마샬은 깨끗한 주거지역인 이 지역을 돌며 유세하고 있다. 마샬은 바로 밀힐과 같은 곳이 자신이 속한 노동당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영국 노동자 계층의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밀힐의 구시가지에는 과거 광부로 일했던 이들과 엔지니어, 숙련공이  살고 있다. 반면 신시가지에는 대학강사와 조교, 병원 노동자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중산층과 상위계층이 거주한다. 밀힐은 평범한 지역이다. 하지만 마샬이 출마한 이번 선거는 평범치 않다.

메이 총리의 위기 극복, 노동당의 위기

4월 18일, 테리사 메이 총리는 6월 8일에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해 영국과 유럽을 놀라게 했다. <데일리 메일>은 이에 대해 “훼방꾼을 짓밟아 버려라”는 제목의 1면 헤드라인 기사를 내보냈다. 이로 인해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진보적인 성향의 민족주의자들이 영국의 사회질서와 안전, 국민의 의지를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혔다. 메이 총리가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 안을 강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 토리(보수당)는 광적이고 열성적이며 불안정한 공격노선을 채택했다. 보수적인 성향의 타블로이드지만 읽는 사람이라면, 영국이 실제로 위기를 겪고 있고 국내 치안은 위태로우며 세계 종말이 바로 코앞까지 임박했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밀힐 지역 사람들의 걱정거리는, 그저 도로에 움푹 패인 구멍인 포트홀이다. 제레미 코빈을 지지하는 지방의회의원인 마샬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노동당의 급진적인 복지확대와 부자증세 공약에 대해 설명했다. 안보와 이민에 대한 코빈의 생각과 이에 대한 노동당의 입장도 설명했다. 하지만 마샬에게 제일 먼저 문을 열어준 주민 3명은 마샬의 어깨 너머를 가리키면서 도로의 포트홀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았다. 적어도 마샬을 ‘훼방꾼’이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메이 총리가 갑작스럽게 선거일정을 앞당기겠다는 결정을 내린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지리정치학적인 이유도 있다. 2016년 6월에 있었던 EU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 이후, 파운드화의 지속적인 급락과 급여인상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에 의해 영국경제는 어려워졌다. 지난 10년 간 정체됐던 근로자의 구매력은 이제 확실하게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1년 전 ‘브렉시트’ 옹호자들이 펼쳤던 낙관적인 전망과는 반대로, EU는 과거 그리스에 사용했던 ‘최종시한 및 신협정’이라는 무기로 메이 총리 내각에 망신을 줄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렇게 되면 영국은 역내 단일시장에서 완전히 분리되고, 신무역협정 체결 전까지 2년의 시한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22명의 보수당 의원들이 2015년 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될 위험에 처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메이 총리의 협상력은 크게 감소했다. 그래서 메이 총리는 행동을 취했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메이 총리는 영국인들에게 이번 조기총선의 목적은 하나가 아니라고 말했다. ‘브렉시트’의 내용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브렉시트 협상을 위해 단결된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메이 총리는 선거운동에서 자신이 속한 보수당의 흔적을 대부분 지운 후, 반대파 유권자들에게 “여러분의 표를 내게 빌려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EU는 협상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보다 더 확실히 하고, 영국 총리관저에서 열렸던 협상 만찬에서 있었던 불협화음에 대한 세부사항 몇 가지를 언론에 흘렸다. 이에 대해 메이 총리는 5월 3일에 EU 의회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메이 총리는 “유럽의 정치인과 관리들이 영국에 위협을 가했다. 이런 행위는 총선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산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튿날 지방선거에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지역선거에서 영국독립당(UKIP)이 참패한 것이다. 국내 여론 조사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영국독립당 지지자의 절반 가까이를 보수당으로 끌어왔고, 조기총선을 2주 앞둔 시점에서 영국독립당을 완전히 눌러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조기총선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됐다. 

브록스토 선거구의 ‘남과 북’

노팅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브록스토 선거구의 사회계층은 둘로 나뉜다. 북쪽은 예전에 광부들이 살던 마을이고, 남쪽은 인종적으로 다양하고 부유한 대학 교외지역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지역은 남북으로 난 고속도로로 연결돼 있고, 출구는 하나밖에 없다. 즉, 영국의 전체 모습이 이 작은 지역에 담겨 있는 셈이다.

브록스토 선거구의 북쪽에서는 탄광산업의 몰락으로 파시즘이 새로 출현했다. 마샬의 선거 유세를 돕는 베테랑 노동당 활동가들은 파시즘 성격을 가진 영국국민당(BNP)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서로 알게 됐다. 하지만 이들 노동당 의원들은 영국독립당(UKIP)의 성장과 함께 우파 성향을 가진 노동자 계층의 포퓰리즘과 맞닥뜨렸고, 이를 저지할 수 없었다. 2010년 선거에서 영국국민당은 영국독립당에게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 2개당이 받은 표는 전체 5만 2천표 중 5%에 불과한 2,600표였다. 5년 뒤 영국독립당은 5천표 이상을 얻으며 세 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자유민주당은 유권자 중 절반을 보수당에게 뺏기며 참패했고, 영국독립당은 노동당 표심을 대거 가져갔다.(1) 다시 한 번 많은 영국 소도시에서 벌어진 일들이 브록스토에서 그대로 일어났다.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브록스토는 80%에 가까운 투표율을 보였으며, 유권자 중 55%가 EU 탈퇴에 찬성했다. 

마샬은 스카웃 사무실에서 노동당 활동가 100여 명과 함께 대규모 선거 유세를 준비 중이다. 샌드위치가 줄지어 놓여있고 티포트 하나가 준비돼 있다.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혁명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50대도 있고, 간호사와 사무직 근로자, 트럭 운전수도 있다. 또 놀랍게도 동유럽 출신의 공장 노동자도 있다. 동유럽 출신의 공장 노동자들은 조기 총선에서 투표권은 갖지 못하지만, ‘노동당’ 스티커를 들고는 집집마다 돌며 선거유세를 도울 예정이다. 

마샬은 브록스토 아래쪽 거주지역에 대해 “그곳 주민들은 우리를 남부 대도시의 엘리트라고 부를 것”이라고 농담했다. 상대편 보수당은 궁지에 몰리고 있었고, 마샬의 선거사무소에서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상대편 후보인 애나 소우브리 전 보수당 의원은 EU 잔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으로, 중도파 신당 창당을 촉구하면서 메이 총리에게 의견을 달리하고 있었다.(2) 이에 대해 노동당은 브렉시트는 받아들이되 EU 단일시장에 접근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모색한다는 입장을 취했고, 이를 통해 보수당에 비해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 더군다나 마샬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소우브리 후보와 달리 이 지역 주민이다. 

코빈과 맥도널, 분열극복의 패를 마련하다

하지만 사무실 한쪽에서 강경파 활동가들과 따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노동당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확실해졌다. 마샬과 같은 좌파 성향 후보의 선거를 돕고 코빈의 급진적인 복지확대와 부자증세 공약을 지지하는 이들은 노동당 내부의 중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당 성향 때문에 자신들이 노력한 만큼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떤 자원봉사자는 “이것 좀 보세요”라며 휴대폰으로 인근 선거구에 출마한 코빈 반대파 노동당 후보의 선거운동 매니저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유권자들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충고다. 이번 선거에서 제레미 코빈이 진다는 것을 인정해라. 유권자들에게 영국에 필요한 것은,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좋은 노동당 의원이라고 말해라.”

코빈 당수가 출마했을 때 노동당 내외부 상황은 좋지 못했다. 노동당을 지지하는 표심이 나뉘었고 전통적인 텃밭인 스코틀랜드를 영원히 잃어버렸으며, 노동당 내부 분열이 심했다. 그리고 보수당은 노동당이 조성할 수 있는 선거자금보다 3배나 많은 예산을 가지고 있었다. 코빈은 노동당 당사도 제어하지 못했다. 노동당 하원의원 2/3가 코빈을 당수로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빈과 그의 최측근인 존 맥도널 ‘노동당 예비내각 재무담당 의원’은 아주 좋은 패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당권 장악 후 처음 몇 달 간 반(反)긴축정책을 마련했다. 템스 강이 보이는 국회 부속건물 내부에는 사무실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데, 이곳에는 노동당 제2당사에 속하는 맥도널 위원 주관 하의 실무위원회 사무실이 있다. 맥도널 위원의 실무위원회는 이곳에서 경제 활성화와 재분배를 위한 대규모 계획을 준비했다. 

맥도널 위원이 마련한 계획 중 첫 번째 부분이 2016년 9월에 공개됐다. 2천5백억 파운드(2천9백억 유로)를 차용해 5년에 걸쳐 국립투자은행과 지방투자은행을 신설하고 인프라 시설과 생산성, 지방투자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세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서비스 부분에 대한 신규 지출은 제한하겠다고 했다. 의료, 학교, 양육과 대학 등록금에 대해서는 더 큰 계획이 세워졌다. 대학 등록금을 폐지하기 위해서 매년 110억 파운드를, 학교를 위해서 추가로 60억 파운드를, 국영의료제도(NHS) 및 영국 공공의료 시스템을 위해서 370억 파운드(5년 간)를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3) 

세제 관련 지침도 기존 정책과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연간 소득이 8만 파운드가 넘는 이들에게 세금을 인상하고, 부동산 투기를 하는 외국계 기업에 부유세를 부과하며, 조세회피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금융거래에 대해 토빈세 또는 ‘로빈후드세’를 신설하자는 내용이었다. 오래 전부터 노동당 내에서 자유주의 노선을 걸었던 의원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들은 시나리오를 개선했다. 노동당 내 좌파 노선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당분간은 맥도널이 권장하는 사항들을 받아들이는 척 하다가, 그 사항들을 중간에 하나씩 없앤 다음에 맥도널의 프로그램을 중도 노선으로 변경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오래 가지 못했다. 노동당 내 자유주의자 거물 중 한 명이 프로그램의 초안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우파 계열의 타블로이드지에 해당 문서를 ‘유출’했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외면은 ‘각자도생’을 부른다

한편 일요일에 브록스토의 노동당원들은 외판원들처럼 담당할 구역을 나눴지만, 현실적으로 선거에서 이길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주민들 중에는 선거의 쟁점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번 선거에는 이상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전국적으로 이번 조기총선이 영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이데올로기적 그리고 문화적 전쟁으로 표현되고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만,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노동당의 선거운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아지면서, 노동당은 “그렇다”, “아니다”, “아마도” 같은 답변을 얻던 예전 선거보다 구체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샬과 그 동료들은 이번에는 설명하고, 논쟁하고, 설득을 하는 데 시간을 들이기로 했다. 때로는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이기도 했다. 물론 경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마샬이 유권자들을 방문하는 것을 지켜봤다. 방문했던 50여 가구 중에서 노동당을 지지한다고 말한 주민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노동당에 투표를 하겠다고 말했으며, 국내 언론이 그들에게 씌운 오명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정원이나 창고에서 나와서 알아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평생 지지하겠다”, “처음부터 언제나 노동당이었다”라고 말했다.

보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대체로 점잖은 사람들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마샬에게 상세하게 지역문제를 말하기도 했다. 만약에 노동당이 밀힐 같은 곳에서까지 패배한다면, 그건 단순히 우파에게 주민들을 잃는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들을 무기력과 분열 속에 방치시키는 것이다. 노동당의 개선과제가 무엇이냐고 묻자, 노동당 지지자가 아닌 이들은 도로 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다거나 좀 더 나은 시의 서비스를 원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 단어로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어깨를 으쓱하는 이들도 많았다. 노동당 소속의 시의원이자 노동당 선거운동 조직자인 돈 엘리엇은 이 점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정치적 이탈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곳에서 우리의 선거 기반은 2010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노동당에게 실망한 측면도 있겠지만, 정치 자체에 대한 실망이 크다. 긴축재정을 실시한 지 7년이 지나면서 많은 이들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정치에서 얻을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고, 정치에 무관심해졌다. 보수당이 권력을 오래 잡을수록 ‘각자도생’ 인식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시민들은 점점 공공 서비스의 가치를 잊게 될 것이다.”   

글·폴 메이슨Paul Mason
기자. <PostCapitalism : A Guide to Our Future>(Penguin Books, London, 2016)의 저자.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Will Dahlgreen, “The two tribes of UKIP”, YouGov.co.uk, 2015년 3월 25일.
(2) Thomas Colson, “Tory MP Anna Soubry : It’s time to “get on with” creating a new party to fight against a “Hard Brexit””, Business Insider, 2017년 3월 31일.
(3) Jim Pickard, “Labour spells out tax rises to fund spending surge in final manifesto”, Financial Times, 런던, 2017년 5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