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이라는 그럴듯한 직업의 이면

2017-06-01     쥘리앵 부라르트  경제학 박사 외

2013년 지롱드 도의 사회당 하원의원은, 젊은 동료의원들 일부가 ‘정치 터널’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삶’에서 유리돼 있다고 비난했다.(1) 2016년 5월, 순수한 프랑스 엘리트의 산물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저는 정치특권계급에 속하지 않고 그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들에게 질렸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프랑스 남서부 지방지 SudOuest.fr, 2016년 5월 9일) . 그는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해야 한다면서 선거운동 기간 중 ‘미성숙과 무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정치의 직업화에 대한 비난이 얼마나 팽배했는지, 결국 그에게 엘리제궁으로 가는 길을 열어줬다.

정치입문의 길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많은 비난을 사는, 직업화된 정치인들의 이력은 통계상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낙인이 되는지 잘 알고 있는 의원들은 그 이미지를 지우려고 최선을 다한다. 의원 약력에서도 ‘직업정치인’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몇 십 년 전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다른 일을 했었음을 강조한다. 관련 질문을 받을 때면 그들 모두 ‘경력’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이고 그 대신 좀 더 중립적인 ‘인생 역정’을 이야기하거나 심지어 의무와 열정이 섞인 ‘사명’을 운운한다. 

그렇지만 지난 수십 년간 정치 입문의 길과 정치신인 등용 경로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최초로 지역정치와 국가정치의 접점에 있는 프랑스 하원의원들을 4세대에 걸쳐 조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하원을 거쳐간 1,738명의 이력을 살펴 프랑스의 정치 대표단을 개괄해봤다. 평균연령 54세, 국민평균보다 높은 학력, 상당수는 상류층에 속했으며 2010년대 하원의원의 경우 대부분이 남성이었다(2012년 총선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중 27%가 여성이다). 조사 기간 동안 이 숫자는 어느 정도 안정세를 보였지만 다른 수치들은 현격하게 변했다. 2012년 당선된 의원들이 1970년대 의원들보다 정계에 몸담은 기간이 길다는 점은 정치가 직업화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직업화 정도를 가늠하는 데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지표는 해당 의원이 과거 정치참모직, 예를 들어 장관비서실에서 일하거나 정당직원, 총선이나 지방선거나 유럽의회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권력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 자리는 정치에 빠르게 입문하는 길이 되거나 또는 경선에서 실패하더라도 정계에 남아있을 구실을 제공한다. 40년 간 프랑스 하원의원 중 전직 참모였던 이들의 비율은 1978년 14%에서 2012년 33%로 2배 이상이 됐다. 이런 현상은 진영을 초월해 나타났다(2012년 당선된 사회당 의원의 36%, 공화당 의원의 32%). 자칭 ‘반체제’ 정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린 르 펜은 자신이 변호사라고 했지만, 그의 활동은 선출되기 전 국민전선 당 차원의 업무가 주를 이뤘다.

게다가 참모를 거쳐 정계로 진출하는 방법은, 수년 간 정치라는 게임의 룰을 환히 꿰고 권력을 노리는 이들에게 경력을 쉽고 빠르게 이어가기 좋은 수단이다.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그들은 의회 절차와 ‘영업비밀’에 정통하고 대중 앞에 서고 기자에게 대답하거나 교류하는 등 직업적 노하우에 익숙하다. 그들은 바뤼흐 스피노자가 <정치론>에서 ‘창의력’으로 명명한, 예술의 경지에 이른 설득력을 개발할 수 있었다. 당 내에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영향력 있는 수장이나 더 나아가 정부 고위인사와 가까운 중진인사들은 정치무명보다 공천명단에서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이름을 올리거나 이길 확률이 큰 지역구에 배정받기 쉽다. 

생의 67%를 정계에서 보내는 14대 의원들

그런데 ‘정치직업화’라는 집중포화를 받는 전직 참모진의 정계 진출 현상에 뒤덮인, 좀 더 대대적인 변화가 있다. 그들이 급여를 받는 보좌관직을 맡았든 그렇지 않았든 2012년 선출된 14대 하원의원들은 모두 전임자들보다 상당히 오랜 시간을 정계에서 보냈다. 예를 들면 지방의회에서 일하다가 국회로 진출한 식이다. 14대 하원의원들은 성년이 된 이후 인생의 67%를 정계에서 보냈다. 1978년 6대 하원의원들의 경우에는 46%였다. 그들이 선거를 치를 당시에 이미 12년 이상 정계에 종사했다는 말이다. 1978년에는 평균 6년이면 하원에 입성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길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방분권화로 인해 주와 광역자치단체 내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선출직의 숫자가 증가한 탓이다. 더불어 의원 비서진, 보좌진, 정당 직원은 물론 홍보관련 인력이나 관련 조직(재단, 연구소, 싱크탱크 등)의 구성원 등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하원의원들을 중심으로 ‘예비 정치인’ 집단이 형성됐으니 한 자리 꿈꾸는 이들은 대기줄을 설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공천을 받길 바라면서 중간 단계에 있는 여러 자리를 거치게 된다.

경력의 획일화와 ‘자리싸움’의 확대는 여파를 남기기 마련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관찰된 정치인의 사상적 동질화에 기여했다. 같은 양성소에서 모집해 동일한 틀에서 찍어낸 현재의 정치 책임자들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만 개별적으로 두드러질 뿐 서로 엇비슷한 대책만 내놓고 있다. 대기줄에서 벌어지는 경쟁으로 인해 후보자들은 소속정당 대신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인지도를 향상시키려고 하고 단편적인 문구를 앞세워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런 개인화 전략은 하원의원직을 차지한 후에도 계속된다. 기자들로부터 과도한 관심을 받는 하원은 유명세를 타기에 좋은 수단이 된다.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는 대정부질문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많은 의원들이 이 순간을 이용해보려고 한다. 대정부질문이 있는 날이면, 카메라에 노출되는 몇 초 안 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보란 듯 노란 재킷을 입고 무조건 같은 당의 발표자 뒤에 앉기로 유명한 한 하원의원처럼 말이다. 유력 언론사에 출연하려는 경쟁 또한 치열하다. 조사에 의하면, 지난 5년 간 있었던 전국 TV나 라디오 방송 출연 제의 중 절반이 14대 하원의원 30명에게만 집중됐다. 반면 46%는 재임 중 단 한 차례도 유력 방송사의 출연 제의를 받지 못했다. 

정치에 몸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긴 변화

하원의 사회적 구성도 변했다. 사회당이 변이를 겪고 있고 국회에서 공산당이 자취를 거의 감추면서(2) 서민층도 국회를 떠났다. 14대 하원의원 중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을 이루는 직업인 급여생활자와 노동자였던 이들의 비율은 대략 1%에 불과하다. 6대 하원의원 중에는 10%를 약간 넘었다. 익히 알려진 이런 변화에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 다른 변화가 수반됐다. 지난 수십 년간 상류층에 속하는 하원의원 비율 역시 줄어든 것이다. 1978년에서 2012년 사이에 의료전문직의 수는 12%에서 6%로, 고위공무원은 13%에서 6%로 감소했다. 

정치에 몸담아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 게 원인이었다. 정계에 입문하는 연령대가 점점 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길고 선별적인 학업에 매진해야 하는 상류층 청년들이 정치활동까지 병행하긴 어렵다. 그들은 더 잃을 것도 없고, 각고의 노력으로 끝끝내 자리를 쟁취하는 이들에게 이 자리를 넘겨준다. 학업을 마친 이들은 의원직으로 가는 대기줄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려 하지 않는다. 하원의원 활동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그들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미팅이 몰려있는 파리와 지방생활의 활기를 불어넣는 각종 행사(장날, 개막식, 각종 기념행사)에 참여하며 일요일을 포함한 주말의 대부분을 보내는 지역구를 오가는 하원의원들은 많은 업무를 수행한다. 의원석이 거의 비어있는 하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미뤄 짐작한 것과는 다르다. 하원의 개회시간은 5공화국 초의 3배로 증가했고 그래서 본업인 전문직을 병행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1960년대만 해도 본업을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노동자와 급여생활자가 선출직 공직자가 되기 어려워지고, 정치가 전략적 경력으로 전락하고, 의원 비서진을 고용할 때 연고주의가 만연하면서 몇 가지 개혁안이 논의됐다. 의원의 사심 없는 정치활동을 촉진하자는 명목으로 제시된 하원의원의 세비(세후 5,200유로) 축소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정당한 세비가 서민층이 선출직의 부담을 감수할만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은 된다는 점을 간과했다.(3) 19세기에 의사, 공증인, 변호사처럼 세비가 없어도 생활이 가능했던 하원의원들은 조만간 돈에 ‘이끌린’, ‘무능력’한 노동자들이 의원직을 맡으면 ‘권위가 실추될 위험’이 있다고 성토했다.(4)

올해 발효되는 하원의원과 지자체 수장(시장 또는 부시장, 주의회 또는 도의회 의장) 겸직금지법 같은 개혁안은 분명 직위교체를 촉진하고 지역 유지들이 집중시킨 권력을 재분배할 것이다. 하지만 초선 하원의원의 약력에는 변화를 주지 못한다. 이런 제안은 보좌관들이 전임 고용주의 빈자리를 맡겠다고 나서게 만들면서 의회 내 비서진의 세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격렬하게 논의 중인 다른 조치는 선출직 공직자의 전부나 일부를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안이다. 정치직업화 문제에 대한 급진적인 대책이면서 대표성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직위를 교체하면, 일이 넘쳐나는 정부와 행정부를 상대로 대안을 제안하는데 매우 유용했던 전임인사의 경험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하원의원에게 좀 더 전문성을 갖출 방안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런 개혁안은 겸직 중인 의원의 손에서 회수한 권력을 임의로 뽑힌 대표자에게 조언해줄 비선출 전문가의 손에 넘겨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변화를 이끌어 낼 잠재력이 어떻든, 이런 조치는 모두 개체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모든 조치들은 현대 정치 문제가 국민의 대표자에게서 비롯됐다고 전제한 채 비난의 화살을 그들에게 돌리고 해결책도 그들에게서 찾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효과를 보려면 권력과 대표민주주의의 조직 자체에 대한 논의 또한, 아니 이 논의가 무엇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  


글·쥘리앵 부라르트, 세바스티앵 미숑, 에티엔 올리옹
Julien Boelaert, Sébastien Michon, Étienne Ollion
<Métier : député. Enquête sur la professionnalisation de la politique en France(하원의원이라는 직업. 프랑스 정치직업화에 관한 조사)>(Raisons d’agir, Paris, 2017)의 공동저자이다. 쥘리앵 부라르트은 경제학박사로 의회의 역사와 사회학을 연구한다. 세바스티앵 미숑은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프랑스와 유럽의 정치인을 연구하고 에티엔 올리옹 또한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이자 국가사회학 전문가이고 프랑스와 미국의 정계를 연구한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Michèle Delaunay, <Le tunnel, ou comment faire carrière sans mettre un pied dans la vraie vie(터널, 또는 진정한 삶에 발 딛지 않고 경력을 쌓는 법)>, www.michele-delaunay.net, 2014년 9월 13일.
(2) Rémi Lefebvre & Frédéric Sawicki, <La Société des socialistes. Le PS aujourd’hui(사회주의자들의 사회, 사회당의 현재)>, Éditions du Croquant, Bellecombe-en-Bauges, 2006 / Julian Mischi, <Le Communisme désarmé. Le PCF et les classes populaires depuis les années 1970(무력한 공산주의, 1970년대부터 살펴본 프랑스 공산당과 서민층)>, Agone, coll. ‘Contre-feux’, Marseille, 2014를 참조
(3) Alain Garrigou, ‘Vivre de la politique. Les “quinze mille”, le mandat et le métier(정치로 먹고살기. ’15,000프랑’, 직무와 직업)’, <Politix>, vol. 5, n° 20, Paris, 1992를 참조.
(4) Michel Offerlé, ‘Illégitimité et légitimation du personnel politique ouvrier en France avant 1914(1914년 이전 프랑스의 노동자 정치인의 부당성과 정당화’), <Annales. Économies, Sociétés, Civilisations>, vol. 39, n° 4, Paris,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