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편성과 배제가 적용된 난민촌 건설

2017-06-01     미셸 아지에  인류학자

난민이나 이주민 캠프, 이민자 캠프, 심의 중인 사람들의 대기 장소, 임시 수용소, 유치 센터 혹은 행정구금 센터, 식별 및 추방센터, 국경통과지점, 망명신청자 안내 센터, ‘게토’, ‘정글’, ‘핫스팟(Hot spots, 난민통제센터)’ 등의 단어들은 1990년대 이래 모든 국가의 시사뉴스가 되고 있다. 이 단어들은 ‘세계라는 사회’의 주요 구성성분, 즉 세계 정부의 한 형태가 되고 있으며, ‘달갑지 않은 사람들’을 관리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고 있다.(1)


냉전이 끝난 후 발생한 국제적 혼란상황의 산물인 난민촌은, 정치적·환경적·경제적 상황이 급변하는 21세기에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지역적, 국가적 혹은 국제적 권력이 영토 위에서 온갖 형태의 난민촌으로 사람들을 이동시킨다는, 혹은 상황에 따라 난민촌에 살도록 강요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2014년 미얀마와 태국에 걸쳐 사는 카인족(Karens), 알제리의 서부사하라 지방주민들, 근동의 팔레스타인 주민들 등과 같이 망명 상태에 처한 주민들 6백만 명이, 유엔난민기구(UNHCR)와 유엔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등 국제기구들 혹은 아주 드물게 국가행정기구들에 의해 관리되는 450개의 ‘공식적인’ 난민캠프에 살고 있다. 대부분 긴급히 설치됐고, 그 캠프들이 오래 지속되리라고 캠프 설립자들도 상상하지 못했다. 계획하지도 않았던 그 캠프들은 때때로 케냐에서처럼 20년 이상, 파키스탄·알제리·잠비아·수단에서처럼 30년 이상, 심지어 근동에서처럼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수 캠프들은 인구가 조밀하고 서민들이 사는 방대한 교외지역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2014년 지구상에는 약 6백만 명을 수용하고 있는 1천 개 이상의 내부 이주민 캠프가 존재하고, 주로 ‘불법’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4~5백만 명의 난민들을 수용하는 수천 개의 소형캠프들도 존재한다. 이 소형캠프들은 임시적이고 눈에 잘 띠지 않으며 자율적으로 설치된 것들이다. 이 임시 시설들은 때로는 너무 열악해 ‘야만적이다’라고 표현되며 도시 주변이나 국경을 따라, 공터 혹은 폐허, 빈곳, 버려진 건물 등 전 세계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적어도 1백만 명의 이민자들은 전 세계에 나눠 설치된 1천 개의 유치센터에 살고 있다(400개의 유치센터는 유럽에 존재함). 지난 3년 간 자신들의 나라에서 도망쳐온 이라크 사람들과 시리아 사람들을 모두 합쳐 현재 1천 7백만~2천만 명이 ‘캠프’에 살고 있다고 우리는 추정할 수 있다.

인구를 재편성하는 동시에, 
배제하는 난민캠프

캠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하지만, 그것들은 치외법권, 예외, 배제라는 3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캠프들은 우선 물리적으로 제한된 별도공간이고, 흔히 지도상에 나타나지 않는 영역 밖의 장소들이다. 케냐의 다답(Dadaab) 난민캠프는, 캠프가 위치하고 있는 가리사(Garissa)도(道)보다 2~3배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도(道)에 대한 안내 내용에 들어있지 않다. 캠프들은 또한 예외적인 규정을 따르고 있다. 캠프들이 설치된 국가의 법과는 다른 법에 귀속돼 있는 것이다. 캠프들의 개방성과 폐쇄성의 정도가 어떻든, 캠프들은 캠프촌 사람들과 일반시민들 간의 정치적 평등을 인정하지 않으며, 무시하고, 늦추며 유예하고 있다. 요컨대 이런 형태로 인구를 재편성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배제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인구 재편성은 동시에 그 자체가 잉여분의, 그리고 정원 외의 인구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통합될 수 없고 확실히 타인들과 다르다는 사실은 타자(他者)성을 확인시켜 주는데, 이런 타자성은 사법적이고 영토적 격리라는 이중의 격리에 의해 생겨난다. 체류증 없는 이민자들을 유치센터에 수용하고 난민들을 인도주의 기구들에 수용시키는 식으로, 각 유형의 캠프들이 구분되는 주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우리가 그 캠프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아프리카·아시아 혹은 근동에서 온 똑같은 사람들이다. 이민자들의 신분을 확인해 주는 제도적 범주들은 얼굴에 잠정적으로 공식적인 마스크를 씌운 것일 뿐이다. 

내전이 가장 심했던 2002~2003년 몬로비아(Monrovia, 라이베리아 수도) 변두리에 위치한 캠프에 살았던 라이베리아의 ‘국내 이주민’이, 만약 다음 해에 자국의 북쪽 국경을 넘어 삼림이 우거진 기니에 위치한 유엔난민기구의 캠프에 등록하려고 출발한다면, ‘난민’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그가 2006년 코나크리(Conakry, 기니 수도)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그 캠프를 떠난다면 그는 ‘불법 이민자’가 될 것이다. 코나크리에서 그는 ‘라이베리아 구역’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동향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사하라 횡단도로를 넘어 대륙을 통하거나 바다를 통해 유럽에 가려고 시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프랑스에 도착한다면, 그는 항구와 공항에 설치된 100개에 달하는 ‘심의중인 사람들을 위한 대기소(ZAPI)’ 중의 하나로 인도될 것이다. 공식적으로 그는, ‘망명신청자’로 등록되기 전까지 ‘권리 보유자(Maintenu)’로 간주되겠지만, 그의 청구가 ‘각하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각하될 경우 그는 추방에 필요한 절차가 끝날 때를 기다리면서 행정유치센터(CRA)에 유치될 것이다. 당국이 그를 법적으로 추방할 수 없다면, 그가 ‘풀려날 것이고’, 그런 후 칼레(Calais)나 로마 교외에 위치한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무단거주지나 캠프에서 ‘불법 이민자’로 살 것이다.

난민들의 캠프와 임시숙소들은 더 이상 ‘남반구’ 국가들의 머나먼 지방들에서만 볼 수 있는 현실이 아니며, 과거의 일도 아니다. 2015년부터 근동에서 난민들이 도착하자, 유럽에 새로운 캠프건설 논리가 생겨났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 사이의 국경 혹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사이 국경에 다양한 형태의 이민자 수용·등록·분류 센터들이 생겨났다. 행정적 혹은 치안 유지 성격을 띤 이런 캠프들은 관련 국가들, 유럽연합 혹은 민간단체들에 의해 관리될 수 있다. 폐쇄된 창고, 원상 복구된 병영 혹은 컨테이너가 가득한 공터 위에 설치된 이런 구조물들은 곧바로 이민자들로 채워진다. 그러면 이런 구조물들 주위에 비정부기구들, 주민들 혹은 이민자들 자신들에 의해 만들어진 ‘야만적’ 혹은 ‘불법적’이라 불리는 조그만 캠프들이 생겨난다. 

이런 현상은 2015년 10월 난민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그들의 지문을 뜨기 위해 솅겐 접경지역에 브뤼셀이 창설한 최초의 ‘핫 스포트(유럽통제센터)’인 레스보스 섬의 모리아(Moria) 캠프에서 발생했다. 이런 임시변통 시설들은 처음에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을 수용했다가, 규모가 엄청나게 커져서 거대한 빈민촌을 형성하게 될 수 있다.

그리스의 피레(Pirée) 항구 옆에 설치된 텐트 난민촌 하나에 4~5천 명이 수용되고 있고, 거대한 대기소라 할 수 있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국경에 위치한 이도메니(Idomeni) 난민촌은 1만 2천 명까지 수용했다.(2)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수많은 ‘망명신청자보호센터(CADA)’들과 긴급거주센터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만들어졌다. 이런 센터들 역시 만성적 공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주변에 야만적인 시설물들도 엄청나게 들어서고 있다. 2016년 파리시에 의해 포르트 드 라 샤펠(Porte de la Chapelle)에 설치된 시설물에서 쫓겨난 이민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인도(人道) 위, 혹은 지상전철 밑 텐트에서 살고 있다.

캠프촌의 세 가지 존재방식과 
다른 시나리오

이런 캠프촌 풍경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캠프촌은 현재 세 가지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첫 번째 방식은, 그리스의 파트라스(Patras) 혹은 2009년과 2016년 프랑스 칼레(Calais)에서처럼 이민자 캠프촌을 폐쇄해버리거나, 혹은 파리나 리옹 주변의 ‘집시 촌’이라 불리는 캠프촌처럼 반복적으로 걷어내는 방식으로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런 난민캠프들은,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에, 무조건 없애는 것은 항상 문제를 야기한다. 잠비아에 설치된 마헤바(Maheba) 난민캠프의 경우가 이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1971년에 개설된 이 캠프는 2002년부터 폐쇄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이 캠프의 난민 수는 5만 8천 명이었는데 이들 대다수가 최초 앙골라 난민들의 2세대, 심지어 3세대 후손들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두 번째 방식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인 전환을 시도하는 것으로 난민들을 인정해주고, ‘도시에 살 권리’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근동의 팔레스타인 캠프들이나 수단의 수도 하르툼 외곽에 설치된 남수단의 국내 이주민들 캠프를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가장 흔한 방식은,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유럽과 전 세계가 난민촌을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난민 물결, 주로 시리아 사람들의 난민 물결은, 2014년과 2015년부터 확실히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난민 물결은 근동에서의 지속적인 분쟁 악화, 이전 몇 년 동안의 이민 증가 등 ‘국제 공동체’가 평화를 재건하는데 실패했던 국제적 상황에 의해 예고됐고 예견됐다. 게다가 이런 난민물결은 유엔과 인도주의 기구들에 의해 예상됐다. 그래서 유엔과 인도주의 기구들은 2012년부터 품위 있고 안도감을 주는 조건에서 새로운 이주민들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헛일이었다.

갑작스럽게 넘어온 다수의 난민들은 준비되지 않은 수많은 정부들을 공포에 빠뜨렸고, 걱정이 된 정부들은 이런 걱정을 자국의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인륜적 재앙을 도구화함으로써 강압적 개입을 정당화했고, 이민자들을 추방하거나 감금함으로써 국가 영토 방위를 우선시 했다. 2016년 10월 칼레에 설치된 ‘정글’의 해체는 여러 가지 면에서 2016년 3월 유럽연합과 터키 사이에 맺어진 협정과(3) 동일한 기능을, 혹은 여러 나라의 국경에 세워진 장벽들과 동일한 기능을 상징적으로 수행했다.(4) 여러 나라들은, 자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안전문제에 대응할 줄 알고, 달갑지 않은 외국인들을 격리함으로써 ‘연약한’ 국민들을 보호할 줄 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을 것이다.

2016년 유럽은 결과적으로 2015년에 비해 약 1/3에 불과한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지중해와 발칸반도에서 6천 명 이상이 죽고,(5) 터키와 북아프리카 국가들 쪽으로 이민문제를 외주(外注)화하고, 대륙에 난민캠프를 설치한 대가였다.  


글·미셸 아지에Michel Agier
프랑스 발전연구소(IRD)와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의 인류학자. 최근에 <이민과 우리, 바벨탑 이해하기>(CNRS 출판사, 2016년)를 출간했고, 안-비르지니 마데라(Anne-Virginie Madeira)와 더불어 <난민을 정의하다>(PUF, ‘아이디어생활’ 컬렉션, 2017년)를 공동 출간했다.

번역·고광식
파리 8대학 언어학박사로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다. <르몽드 세계사 3> 등의 역서가 있다.

(1) Gérer les indésirables. Des camps de réfugiés au gouvernement humanitaire(달갑지 않은 사람들을 관리하다. 난민캠프에서 인도주의 정부까지), Flammarion, coll. <Bibliothèque des savoirs>, Paris, 2008.
(2) Pour une description plus large des camps en Europe, cf. Migreurop, Atlas des migrants en Europe. Géographie critique des politiques migratoires(유럽의 이민자 지도. 이민정책에 대한 비판적 지리학), Armand Colin, Paris, 2012, et Babels, De Lesbos à Calais. Comment l’Europe fabrique des camps(레스보스에서 칼레까지. 어떤 방식으로 유럽이 캠프들을 만들고 있는가), Le Passager clandestin, coll. <Bibliothèque des frontières>, Neuvy-en-Champagne, 2017.
(3) 한스 쿤드나니 & 아스트리드 지바르트 Lire Hans Kundnani et Astrid Ziebarth, Entre l’Allemagne et la Turquie, l’enjeu des réfugiés (독일과 터키 사이, 난민 문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7년 3월호.
(4) Cf. Wendy Brown, Murs. Les murs de séparation et le déclin de la souveraineté étatique(장벽. 분리장벽과 주권의 쇠퇴), Les Prairies ordinaires, Paris, 2009.
(5) Cf. Babels, La Mort aux frontières de l’Europe. Retrouver, identifier, commémorer(유럽 국경들에서의 죽음. 다시 찾고, 신분을 확인하고, 추모하다), Le Passager clandestin, coll. <Bibliothèque des frontière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