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오의 별

2017-06-01     세바스티앙 라파크  작가
   
▲ <무제>, 1988 - 프리다 바라네크

‘포르투갈어의 공주’라고 불리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마치 글쓰기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인 양, 세상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가까워지는 것인 양 글을 썼다. 브라질 문학계를 대표하는 리스펙토르는 오랫동안 프랑스에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서간집 출간으로 이제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2001년과 2007년 브라질에서 출간된 서간집 두 권의 프랑스어판 발행(1)으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찬미자들이 이 난해한 작가를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 1920년 12월 10일 우크라이나 체클니크에서 태어난 차야 핀카소브나 리스펙토르(Chaya Pinkhasovna Lispector)는 생후 2개월 때 내전을 피해 양친과 함께 브라질 북동부 지방으로 이주했으며 1977년 12월 9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영면했다. 1954년 프랑스에 처음 소개된 이래(2) 데 팜므-앙트와네트 푸크 출판사에서 1978년까지 15권의 작품이 출간됐으나 이것만으로는 프란츠 카프카의 불안, 버지니아 울프의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리스펙토르와 친해지기는 어려웠다. 또한 그녀의 넘치는 개성은 캐서린 맨스필드, 카트린 포지, 빅토리아 오캄포, 시몬 베유, 실비아 플라스 같은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여류 작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사진에서 보이는 미소(작품에서 그렸듯이)는 그녀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23살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야성의 마음에 다가서서>부터 사후 출간된 <별의 시간>(한국판 제목은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역주)까지 그의 작품은 모두 그녀와 세상 사이에 보호벽을 세우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섬세한 감각들의 집합체인 그녀의 작품들이 난해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리스펙토르는 자신이 바흐만큼이나 단순하다며 스스로를 변호하곤 했다.

엄마이자 딸, 유대인이면서 기독교인, 성녀이자 마녀, 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인간적이면서도 동물적이고, 유럽과 아메리카의 숨결이 혼재된 리스펙토르는 사후 발표된 소설 <생명의 숨결>에서 ‘작가’와 대화하는 앙젤라 프라티니의 말처럼 ‘양면적이고자’ 했다. 포르투갈어의 완벽함을 사랑하는, 호적상으로도 브라질인인 리스펙토르는 이디시어(語)(동유럽의 유대인들이 쓰는 독일어와 히브리어의 혼합어-역주)를 쓰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대교회당도 기독교회도 아닌, 이성을 초월하는 비의적인 영적 수행을 제안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즐겨 읽은 리스펙토르는 충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소원대로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카주 이스라엘 묘지에 묻혔다. 비석에는 히브리 이름인 ‘Chaya bat Pinkhas(Pinkhas의 딸 Chaya)’가 새겨져 있다.

조르지오 데 키리코가 그린, 범세계적인 면모를 지닌 그녀의 초상화, 그리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레미 해변에 세워진 청동 동상은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에 능통했던 리스펙토르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브라질 페르남부쉬의 주도 헤시피에서 ‘진정한 브라질의 삶’을 경험한 후 푹 빠져버리게 된 조국, 브라질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며 리스펙토르는 이태리, 스위스, 영국, 미국에서 몽환적인 여행자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나는 여행이 전혀 즐겁지 않아. 가족들 곁에 있고 싶을 뿐이야. 세상은 약간 지루한 것 같아.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실이지. 그래도 마음에 드는 장소를 꼽으라면 단연 브라질이야.” 리스펙토르가 1944년 유럽에서 자매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후에 그녀는 편지에 쓴 대로 약간의 권태감을 느끼며 대사관들과 문인들의 소모임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아마도 파리는 예외였을 것이다. 리스펙토르는 파리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기억을 쫓고, 프랑수아 모리악, 쥘리앙 그린, 폴 발레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리우데자네이루 법과대학 동창으로 브라질 외무부 외교관인 마우리 구르젤 발렌지와 1943년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고, 충실하지 않았던 남편과 1959년 이혼했다. 거짓말, 부정행위, 맹세를 깨뜨리는 행위는 그녀의 작품에 강박관념처럼 빈번히 등장한 소재다. 말년에는 금전적 문제로 코헤이요 다 망야, 조르날 도 브라질 같은 신문과 만쉐치(Manchete) 잡지에 시평 기사를 쓰고, 일간지 우 에스타두 드 상파울루에 단편소설을 기고하고, 조나단 스위프트, 쥘 베른, 오스카 와일드,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번역했다.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이 충만했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여성의 보편적인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녀는 1944년 7월 아마존강 유역의 벨렝에서 언니에게 쓴 편지에 이를 암시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의 길들여지지 않은 성격, 특히 <별의 시간>에서 브라질 북동부 지방 출신의 여주인공으로,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한 마카베아 같은 패배주의자의 비사교적인 내성적인 성격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놀라운 글을 보자.

“이런 일이 다른 여자들에게도 생길 것이라는 사실이 내게 중요할까? 누군가에게는 여성성의 조건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여성성이 소멸되는, 가장 민감한 모든 것의 죽음이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나는 아무 존재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알고 있어. 하지만 언니에게는 말할 수 있어. 나는 굴복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무릎 꿇게 만들 거라고 말이야. 아주 먼 옛날부터 내가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 내가 변해야 한다면 보통의 평범한 여성은 되지 않겠어.”

<야성의 마음에 다가서서>의 조아나, <배움 혹은 기쁨의 책>의 로리, <가족 관계> 소설집에 실린 매혹적인 단편 <사랑>의 아나, <포위된 도시>의 루크레시아 등 그녀 소설의 모든 여주인공은 다들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모두 여성의 육체에 여성의 정신을 가지고 남성의 폭력, 비열함, 광기에 시달린다. 윌리엄 포크너의 리나 그로브,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처럼 말이다.(3)

자매들에게 쓴 편지로 리스펙토르의 삶에 대한 비극적인 감정과, 스스로가 생각한 대로 행동하지 못함에 따라 옥죄어진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G.H.에 따른 열정>에서는 이런 식으로 리우데자네이루의 중산층 여성이 바퀴벌레를 만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래에 대한 순진무구한 믿음을 간직했던, 이전 작품인 <폐허의 건축가>(4)에서 사람들이 바랐던 것과는 반대로 숨 막히는 이 소설에서는 희망의 빛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영원이 아니라 영벌이다.”

우리는 카프카의 <변신>과 1943년 말 브라질에서 프랑스어로 출간된 조르주 베르나노스(1938년부터 브라질 거주)의 <윈 씨>를 떠올리게 된다. 책을 탐닉했던 리스펙토르가 <윈 씨>를 이미 접했던 걸까? <윈 씨>에서 무(無)는 세상을 열망하고 사이펀 같은 단어는 욕조에 담긴 물을 열망한다. 같은 해 <야성의 마음에 다가가서>가 출간됐을 때, 비평가들은 두드러지는 스타일의, 다른 행성에서 온 이 작가의 영향력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비평가 즁 알바로 링스와 세르주 밀리에는 베르나노스와 그의 작품을 잘 알고 있었다.(5) 이들은 아무도 이들 간에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리스펙토르는 출간된 서간집 어디에서도 <협잡>의 저자인 베르나노스와 ‘불행의 지배’(6)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대목을 언급하지 않았다. 서간집에 실린 많은 편지들이 자기와 같은 세대인 작가, 루시우 카르도주와 페르난두 사비누에게 쓴 것이라 더더욱 놀랍다. 이 둘 모두 베르나노스의 작품을 읽고 미나즈 주라이스(브라질 남동부의 북쪽에 있는 주-역주)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리스펙토르와 사비누가 1946년부터 23년 간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 <마음으로 다가가는 편지들>에서 이 두 작가는 문학사와 소설의 기법에 대한 의견을 나눴지만, ‘윈 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 서간집을 읽다 보면 작가의 작업실로 빨려 들어가 작가가 느끼는 공포, 밤샘작업, ‘즐겁지 않은 카니발’을 공유하게 된다. 사비누와 처음 교류를 시작했을 때, 리스펙토르는 <야성의 마음에 다가서서>와 <광채>를 집필 중이었다. 페르난두에게 쓴 편지에서는 <포위된 도시>와 <폐허의 건축가>, 그리고 대개 공포, 불안스런 내용으로 구성된 몇몇 단편(1960년 <가족 관계> 소설집에 수록)을 쓸 때 느꼈던 창작의 고통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암흑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기 위해 필요했던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쓴 책은 모두 첫 작품만큼이나 망설임과 두려움의 산물”이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리스펙토르는 영혼의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가면서 관념이 아니라 단어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언어는 나의 인간적인 노력”이라고 작품 속의 G. H.는 말한다. 리스펙토르는 소설 주인공에게 이름을 붙일 수가 없었다. 단어의 부재는 불행을 가져오지 않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무(無)가 아닌, 때로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으로 통한다. 관조, 기대나 명상 같은 기쁨의 가능성 말이다. 지칭할 수 없는 것은 항상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G. H.는 또 이렇게 말한다. “절대!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게 될 지 절대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스스로를 위해 거짓말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삶은 곧 나다. 삶은 나 자신이고,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사랑한다.”  


글·세바스티앙 라파크  Sébastien Lapaque
작가. 최근 저서로 <Théorie d’Alger(알제론)>(Actes Sud, Arles, 2016) 등이 있다.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Clarice Lispector and Fernando Sabino, <Lettres près du cœur. Correspondance(마음으로 다가가는 편지들, 서간집)>, Clarice Lispector, <Mes chéries, Lettres à ses sœurs(사랑하는 나의 가족, 자매들에게 보내는 편지들)>, 1940~1957, 포르투갈어(브라질)에서 프랑스어로 번역(Claudia Poncioni & Didier Lamaison), éditions des femmes - Antoinette Fouque, Paris, respectively 2016 and 2015.
(2) <야성의 마음에 다가서서>는 1954년 앙리 마티스의 서명이 들어있는 표지로 Plon에서 출간됐다. Denise-Teresa Moutonnier의 번역을 본 리스펙토르는 불같이 화를 냈다.
(3) William Faulkner, <8월의 빛>, Gallimard, coll. <Folio>, Paris, 1974 (초판:1935), & William Styron, <소피의 선택>, Gallimard, coll. <Folio>, 1995 (초판:1981).
(4) éditions des femmes 출판사가 아니라 예외적으로 Gallimard 출판사에서 프랑스어로 출간, 1970,  
(5) Cf. Mario Carelli, ‘Quand les écrivains brésiliens se confiaient à Bernanos(브라질 작가들이 베르나노스에게 속내를 털어놓았을 때)’ Caravelle. 이베리아, 포르투갈-브라질 Cahiers du Monde ibérique et luso-brésilien, vol.57, n°1, Toulouse, 1991.
(6) <협잡(L’Imposture)> 출간 후 1928년 앙토낭 아르토가 조르주 베르나노스에게 쓴 편지에서 사용된 표현에 따른 것. Cf. Georges Bernanos, <Combat pour la liberté. Correspondance inédite(자유를 위한 투쟁, 미간행 서간집)>, 1904-1934, Plon, Paris, 1971.